바이센베르크/카라얀/베를린 필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ㆍ5번

그 비범함은 다 어디로 갔을까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3년 1월 1일 12:00 오전

2012년 1월 타계한 알렉시스 바이센베르크와 카라얀의 1977년 일본 도쿄에서의 베토벤 치클루스 공연을 수록한 음반이다. 두 사람은 이 공연이 있기 두 달 전, 베를린에서 피아노 협주곡 1ㆍ2ㆍ3번을 녹음해 그들의 유일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전곡집을 완성한 바 있다. 카라얀은 비교적 폭넓은 관현악 레퍼토리를 가지고 있었지만, 협주곡은 그 시절의 여타 마에스트로들처럼 극히 제한된 작품만을 연주회 프로그램에 포함시켰다. 게다가 교향곡이나 관현악곡 심지어 오페라는 자신이 연주회에서 다루지 않았던 작품들도 음반화하여 정규 기록으로 남겼던 반면 협주곡 장르에는 그다지 큰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버르토크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이나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들, 베르크의 바이올린 협주곡처럼 자신의 주요 연주회 레퍼토리였던 작품들도 음반화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독일-오스트리아계 지휘자라면 거의 빠짐없이 지휘했던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조차 이상할 정도로 기피했다. 만약 음반사의 요구가 없었다면 결코 실현되지 않았을 상업적인 기획 음반들을 제외하면 카라얀의 협주곡 디스코그래피는 그가 편애했던 극소수 독주자들과의 협연만이 남아있는데, 바이센베르크와의 관계는 그중에서도 각별한 것이었다. 당시 카라얀의 나치 전력으로 그를 공개적으로 비난했던 루빈스타인 같은 아티스트들 때문에 카라얀은 자신의 맘에 드는 협연자를 수월하게 찾지 못했다. 하지만 이를 전혀 개의치 않았던 바이센베르크와는 1970년대 EMI 클래식스에서 여러 작품들을 함께 녹음했을 뿐만 아니라, 1980년대 후반 바이센베르크가 DG로 소속을 옮기고 나서도 공동작업을 재개할 계획을 논의하기도 했다. 물론 이 둘의 공 작업물은 무터와의 그것과는 달리 세월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했다. 다소 기계적으로 들리는 바이센베르크의 단조로운 표현력과 바이센베르크와의 협연에서 유독 심해졌던, 카라얀의 엿가락처럼 늘어나는 레가토는 이미 그 당시에도 평가가 좋질 못했다. 도쿄 FM의 베토벤 협주곡집 역시 그런 약점을 고스란히 안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EMI 클래식스 음반에 비해 바이센베르크의 표현이 보다 자연스러워지고 연주자를 잡아먹을 듯이 위압적이었던 베를린 필의 서포트도 뒤로 한 발짝 물러나 있어 카라얀의 협주곡 음반들이 가지는 사운드의 과잉은 피했다. 그럼에도 카라얀의 어딘지 모르게 부자연스러운 보폭은 그가 베토벤의 이 작품들에 일정 정도 거리를 두었던 이유를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때문에 다른 모범적이고 게다가 비범하기까지 한 수많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음반들을 제치고 이 음반을 집어 들어야 할 이유는 없다. 다만 바이센베르크와 카라얀의 실황 녹음들이 이전에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다는 희소성과 이들의 베토벤 해석을 좋아하는 애호가들에게는 EMI 클래식스의 정규 녹음을 대체할 수 있는 연주 내용 때문에 구매의 이유가 충분한 음반이다. 특히 EMI 클래식스 음반의 부자연스러운 독주자와 오케스트라 밸런스에 비하면 여기에 담겨 있는 사운드가 실제 연주회에서 카라얀과 베를린 필이 만들어냈던 오케스트라 사운드에 가까울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 실황 음반은 카라얀 애호가들의 라이브러리 한 편을 차지하겠지만, 모두를 위한 음반이 아닌 소수를 위한 ‘사치재’에 가깝다.

글 송준규(음악 칼럼니스트)


▲ 알렉시스 바이센베르크(피아노)/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지휘)/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Tokyo FM TFMC 0040 (AD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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