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홍천과 정준호, 낭만을 논하다

우리 안에, 로맨티시즘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3년 3월 1일 12:00 오전

젊은 남자가 바위 위에 올라서 있다. 그 앞에 광활하게 펼쳐진 바다는 안개가 자욱하다. 바람은 그의 머리를 흐트러뜨리고, 안개를 파도처럼 흔들어놓고 있다. 그의 시선이 한 치 앞을 내다보는지, 안개 너머의 먼 산을 바라보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 그 뒷모습에는 알 수 없는 무한한 세계를 향한 그리움이 번져 있다. 19세기 독일 낭만주의 풍경화가인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가 그린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에는 내면세계의 투쟁이 몽환적이면서도 선명하게 담겨 있다. “화가는 자기 앞에 있는 것뿐 아니라 내면에서 본 것까지도 그려내야 한다”라는 프리드리히의 말은, 낭만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음악가들의 외침이기도 했다. 그리고 현재를 살아가며 ‘그 낭만주의 시대’를 이야기하는 두 사람을 만났다.
독일 하노버 음대를 졸업한 뒤 유럽을 중심으로 활동해온 피아니스트 윤홍천은 지난 몇 년 간 쇼팽·슈만·볼프를 엮은 음반과 슈베르트의 소품을 엮은 음반 등을 내놓았다. 지난해에는 그가 좋아하는 소품들을 엮은 음반 ‘앙코르’를 발매하기도 했다. 음악 칼럼니스트 정준호는 이 음반 부클릿에서 8년 전부터 시작된 두 사람의 만남을 회상하며 올해 해설 음악회를 가질 예정이라고 이야기했다. 이후 윤홍천과 정준호가 ‘낭만시대’를 주제로 해설 음악회를 한다는 이야기를 다시 들었을 때, 두 남자가 ‘낭만’에 대해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가에 관한 막연한 궁금증이 생겼다.
낭만주의 시대에 관한 두 사람의 시선은 앞선 프리드리히의 외침과 다르지 않았다. 더불어 ‘두 사람, 어떻게 친해졌을까?’라는 의문은 ‘이래서 함께 하는구나’ 하는 깨달음의 웃음으로 돌아왔다. 두 사람과의 이야기는 낭만시대에 관한 재정의로 시작됐다.

‘낭만시대’를 다시 정의하다
로맨티시즘(romanticism)이 우리나라에서 낭만주의(浪漫主義)로 표현되면서, 아쉽게도 ‘낭만’이 요즘 대중에게는 감미롭고 정서적인 감정만을 떠올리는 단어가 된 것 같습니다.
윤홍천 저는 낭만주의를 ‘자연으로 돌아가자’ ‘자유로워지자’는 말로 표현하고 싶어요. 당시 피아노 음악에서는 과거의 형식에서 탈피한 새로운 것들이 많이 나왔잖아요. 그전까지 벽에 걸려 있던 액자가 부서진 느낌이랄까, 그게 저에게 낭만이에요. 만약 슈만에게 자유로운 영혼이 없었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다양한 작품들도 없었겠죠. 이번 공연에서 선보일 리스트 편곡의 ‘멀리 있는 연인에게’를 연주하고 있으면 프리드리히의 ‘안개 바다 위에 서 있는 방랑자’의 정경이 눈에 그려져요. 세상을 보지 않고 내면의 중심을 바라보는, 인간 본연의 무언가를 다시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낭만 아닐까요.
정준호 19세기 무렵 예술가의 자의식이 극대화돼요. 생각해보니 자신이 최고인 거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아요. 여기서 괴리감과 상실감이 발생하죠. 그 거리감만큼 그리움과 갈망이 생기고, 언제쯤 유토피아에서 합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을까 생각하죠. 낭만주의의 핵심은 그리움이에요. 독일어로는 Se?
hnsucht, 한자어로는 갈망(渴望), 영어로는 Longing이라고 하는데, 순우리말로는 그리움이라는 단어가 이에 가장 부합한다고 생각해요. 기다림이 길고 그리움이 길고 한숨이 긴 것을 생각해보면, 각기 다른 단어들이 하나의 의미로 연결되죠.
윤홍천 막연하게 포스터나 ‘멀리 있는 연인에게’라는 제목만 보고 연주회에 오시는 분들은 달콤한 사랑이 메인 테마인 연주회를 떠올릴지도 모르겠어요.
정준호 클라라와 슈만의 관계를 생각하면 낭만주의 시대에 사랑 이야기는 빠질 수 없죠. 리스트 작품 중에도 ‘사랑의 도피’라는 주제가 녹아든 것이 있고요. 하지만 어느 작품이든 거기에서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은 청자의 의지에 달린 일이잖아요. 혹 다른 것을 떠올리더라도 그것이 틀렸다고 할 수는 없겠죠.
가장 먼저 접한 낭만주의 작품은 무엇인가요.
정준호 제 의지로 선택해 들은 첫 낭만주의 음악은 멘델스존 ‘한여름 밤의 꿈’이에요. 그 시절 음반을 전축에 걸고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글을 읽으며 품었던 호기심을 백퍼센트 충족시켜줬죠. 일 년 내내 이 작품만 듣곤 했어요.
윤홍천 아마 문학을 좋아하는 취향 덕에 그 작품을 고르게 된 것 아닐까요. ‘한여름 밤의 꿈’은 음악과 문학 중에 어느 쪽을 먼저 접했어요?
정준호 거의 비슷한 시기인 것 같아요. 셰익스피어의 원작을 먼저 본 건 아니었고, 찰스 램·메리 램 남매가 산문으로 옮긴 것을 초등학교 고학년 때 처음 읽었어요. 음악으로 들은 건 중학교 올라갈 무렵이었고요.
윤홍천 저는 피아노 때문인지 쇼팽의 작품을 처음 접했어요. 발라드를 칠 수 있게 됐을 때 무척 좋아했던 기억이 나네요.
낭만주의는 논리보다는 직관, 이성보다는 감성에 더 힘을 싣게 된 시기죠. 스스로 어느 쪽에 가깝다고 생각하나요.
윤홍천 이중적인 것 같아요. 터널을 만들 때 양쪽 끝에서 땅을 파기 시작해 중간에서 만나 듯, 피아니스트도 테크닉과 감성 모두가 중요하죠. 공연 레퍼토리 중에 슈만 환상곡은 이번 무대에서 처음으로 연주하는 곡이에요. 정말 많이 들은 작품이라 피아노 앞에 앉기 전까지는 그동안 들어온 것처럼 연주해야겠다고 막연히 생각했어요. 그런데 악보를 펴고 직접 연주해보니 생각이 달라졌어요. 어떤 프레이즈의 경우는, 정확하게 연주해야 하는데도 감성에 치우쳐 더 깊이 들어간 연주들이 그동안 많았다는 걸 알게 됐죠. 지성 있는 감성, 감성 있는 테크닉을 잘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됐어요.
정준호 전 비교적 균등하다고 생각해요. 매우 이성적이기도 하고 지극히 감성적이기도 하고요. 어느 한 쪽에 가깝다기보다는, 이성적으로나 감성적으로나 다른 사람들이 저보다 훨씬 무심한 것 같아요. 저 사람은 왜 그런 얘기를 할까, 진짜 그럴까? 생각에 꼬리를 물고 다른 생각으로 계속 이어질 때가 많죠.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부러울 때도 있고, 그런 사람들과 지내서 답답할 때도 있어요.
타임머신을 타고 낭만주의 시대로 돌아간다면 어떨까요.
정준호 고백하자면, 저는 돌아가고 싶은 시대가 없어요. 쾌적한 환경이 좋아서 낙후된 생활을 참지 못할 것 같아요. 간혹 과거 특정 시대에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기도 하는데, 별로 만나고 싶은 사람도 없어요. 작곡가가 살던 시대와 그 음악을 지금의 시점으로 바라보고 싶은 거죠. 그래서 ‘이 작품은 어떻게 썼나요?’ 하는 궁금증도 없어요. 너무 무성의한가요? 하지만 이건 늘 생각했던 거라 단호하게 답할 수 있어요. 그래도 낭만주의 시대에 산다고 가정한다면, 음악 칼럼니스트보다는 왕이나 귀족을 택하고 싶네요. 힘들게 살고 싶지는 않아요(웃음).
윤홍천 전 낭만주의 시대에 살았다면 작곡도 하고, 글도 쓰고….
정준호 홍천 씨는 지금도 할 수 있는 일이잖아요.
윤홍천 그런가요? 슈만을 보면 클라라와 함께 연주하고 작곡하고 평론도 했잖아요. 저도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이 크지만, 하루에 소화할 수 있는 일이 참 제한적인 걸 보면 아쉬울 때가 많아요. 만약 낭만주의 시대에 살았다면 감성과 이성이 직접 연결될 수 있는 다양한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봤어요.

슈만은 일기를 쓰고, 리스트는 소설을 쓴다
이번 공연(3월 29일 예술의전당)에서 베토벤-리스트 ‘멀리 있는 연인에게’, 슈만 환상곡, 리스트 소나타 B단조를 선보입니다.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하나의 스토리라는 인상을 주는데, 실제로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레퍼토리를 구성했나요.
윤홍천 일 년 전, 함께 편한 자리에서 대화하다가 지금의 레퍼토리를 청중과 공유하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그때는 ‘소통’을 주제로 생각했어요. 저희 둘이 음악가와 저널리스트라는 독특한 사이기도 하고, 주변의 권유도 있었죠. 그런데 리스트와 슈만의 작품을 두고 여러 생각을 하다 보니 단순한 소통에서 더 나아가 ‘우정’에 초점을 두게 됐어요. 그러니까 이야기가 오히려 쉽게 풀리더라고요. 다른 프로그램을 생각할 것도 없이 이거다 싶었죠.
정준호 이번 연주회 레퍼토리는 지금껏 사람들에게 덜 알려져 있다는 사실이 이상할 정도로 여겨지는 당연한 작품들이에요. 그래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하자!”라고 외쳤죠. ‘멀리 있는 연인에게’는 연주회의 부제이자 첫 곡인데, 사실 저는 리스트의 피아노 편곡이 있는지 몰랐어요. 노래를 부를 사람을 구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차에, 홍천 씨가 리스트 편곡을 제안했죠. 베토벤에서 슈만을 거쳐 리스트에게 전해지기까지의 과정이 잘 담겨져 있기도 하고요.
윤홍천 ‘멀리 있는 연인에게’ 그 자체가 낭만주의 시대를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베토벤이 낭만주의 시대의 연결고리인 사람이기도 하거니와, 보고 싶지만 가지지 못하는 것에 대한 열망이 담긴 시대를 잘 표현했다는 느낌이에요. 슈만은 환상곡에서 ‘멀리 있는 연인에게’의 일부를 인용해 안타까운 자신의 사랑을 보여주는데요. 리스트가 신화나 문학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서 소나타를 작곡한 것과 비교해보면 슈만이라는 작곡가는 개인적인 이야기, 즉 일기를 쓰는 사람이고 리스트는 소설을 쓰는 사람이라고 비유할 수 있겠죠. 예전에도 서로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은 적이 있는데, 준호 형은 리스트를 더 좋아하더라고요.
정준호 생각해보면 ‘낭만성’이라는 것은 시대를 불문하고 있어왔어요. 과거 종교의 테두리 안에 있다가 낭만주의 시대에 이르러서야 대두됐고요. 인간의 본성을 가장 자유롭게 극대화한 사람이 베토벤이었고, 이후에 슈만·리스트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했는지를 이번 연주회를 통해 구현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리스트를 왜 좋아하게 됐나요.
정준호 예전에 홍천 씨가 피아니스트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쇼팽 파와 리스트 파로 나눠진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그럼 난 “리스트 파다!”라고 말했죠. 리스트는 그 작품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으면서 한 번 들어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작품이 많고, 계속해서 듣고 싶은 작품도 많아요. 그래서 리스트를 좋아해요. 제 생각에 사람들이 알고 있는 리스트는 피상적이고, 그의 초기적인 부분에 국한되어 있어요. 좀 더 점진적이고 깊은 부분은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죠. 또 한편으론 쇼팽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그에 대한 반발심으로 “난 리스트가 좋아. 리스트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어!” 하는 마음으로 좋아하게 됐어요.
윤홍천 리스트가 당대에 했던 역할이 크잖아요. 준호 형은 피아노곡뿐 아니라 관현악·협주곡·가곡까지 아우른 리스트의 다양한 시도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또 이것이 낭만주의 시대에 어울리는 갈망이라고 할 수 있겠죠. 어쩌면 리스트가 바람둥이여서 형이 좋아하는 건지도 모르겠네요(웃음).
지난해 출반된 ‘앙코르’ 부클릿 서문에서 슈만 음악을 두고 “끝없는 상상력과 환상, 지적인 유머”라고 정준호 씨가 표현한 것을 봤습니다. 두 사람이 생각하는 슈만 음악의 본질은 무엇인가요?
정준호 부클릿의 글은 예전에 홍천 씨를 인터뷰했던 내용을 토대로 쓴 거라 그 말이 정확히 누구의 표현인지는 기억나지 않아요. 다만 분명한 건 우리가 나눈 대화에서 나온 내용이라는 거죠. 전 ‘지적인 유머’가 정말 중요한 개념이라고 생각해요. 슈만은 ‘유머레스크’를 상당히 독일적인 것으로 이해하고 표현했는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유머’와는 좀 달라요. 찰리 채플린을 예로 들자면, 그 본질이 우스꽝스러운 슬랩스틱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깊은 공감, 즉 눈물을 자아내는 데 있어요. 그것이 바로 유머라고 슈만은 얘기해요. 그에게 유머는 공감을 이끌어내면서 부족한 것을 채워주는 감정인 것이죠.
윤홍천 전 ‘유머레스크’를 들으면 눈물이 나요. 아이러니컬한 얘기를 슈만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풀어내잖아요. 자연스럽지 않은 것을 자연스럽게 만들어내는 그 힘에 빠져들 수밖에 없죠. 피아니스트들 사이에 “베토벤이나 리스트 작품보다 모차르트·슈만·슈베르트·쇼팽 작품을 연주하는 것이 어렵다”라는 얘기가 있어요. 아마 작곡가의 독특함을 이해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의미겠죠. 그런데 저는 어렸을 때부터 신기하게도 슈만과 잘 맞았어요. 오이제비우스에서 드러나는 감성도 제가 좋아하는 것이고요. 전 슈만의 음악 세계를 ‘빠져들다’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의 일생을 보면 클라라에 빠져 있고, 나중엔 환상 속에 살잖아요. 슈만의 작품을 연주하다 보면 어떻게 연주해야겠다고 생각하기보다 그저 빠져들게 돼요. 이건 저뿐만 아니라 슈만의 음악을 듣는 모든 사람들이 느끼는 것 아닐까요.
윤홍천&정준호의 낭만시대 3월 29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글 김선영 기자(sykim@) 사진 더스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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