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열음 홀딱 반하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3년 4월 1일 12:00 오전

단정 짓는 것이 싫습니다. 지금부터 저를 새롭게 소개해보겠지만, 정답이나 단정이 아님을 알아주십시오. 저는 왜 태어났는지 알아가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이 말에 누군가는 웃을 수 있겠지만, 정말이지 그 이유를 알기 위해 사는 것 같습니다.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의 첫 독주회가 지난 3월 7일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의 엄연한 첫 독주회로는 여섯 살 겨울, 원주 치악예식장에서의 독주회를 꼽고 싶습니다. 부모님의 지인들 앞에서 모차르트와 슈만을 연주했습니다. 사실 제 꿈은, 이뤄지지 않을 것이 분명하지만 오케스트라 악장입니다. 모차르트를 많이 연주하는 악단에 들어가 원 없이 모차르트의 오케스트라 작품을 연주해보고 싶습니다. 두 스승 가운데 김대진 선생님은 마치 의사처럼 저를 진단해주시고, 아리에 바르디 선생님은 제 음악을 좋아해주십니다. 콩쿠르에 나가는 이유는 늘 달랐습니다. 폐쇄적인 환경을 타파하기 위해 선택했었는가 하면, 그 콩쿠르 무대 자체를 동경해 나간 적도 있습니다. 사실, 음악을 빼고서 제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음악은 제게 너무 큰 부분이어서 음악 앞에 있을 때와 아닐 때의 저는 너무도 다르니까요. 음악이 아니면 게으름 피우고 의욕조차 없지만, 음악 앞에서는 욕심도 부려봅니다. 음악이 없는 나, 피아니스트가 아닌 나를 재정의하는 것이 쉽지 않군요. 어쩌면 지금의 저는 피아노를 진짜 잘 치고 싶은 한 사람일 뿐입니다. 진짜 잘 치고 싶은 손열음.

 


▲ 인터뷰이 피아니스트 손열음
인터뷰어 박용완 편집장


▲ 2013년 3월 4일 오후 8시
월간객석 사옥 갤러리 정미소

안녕하세요, 월간객석 편집장 박용완입니다. 예술가와 기자가 밀실에서 진행해온 인터뷰를 만천하에 공개하는, 홀딱 벗고 깨고 반하는 시간. 월간객석 오픈인터뷰 ‘홀딱’에 와주신 여러분, 반갑습니다. ‘홀딱’ 여섯 번째 주인공은 피아니스트 손열음 씨입니다. 박수로 맞이해주십시오.
손열음이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입장한다.
먼저 오늘의 청중께 인사해주십시오.
안녕하세요. 손열음입니다.
열음 씨와 단 둘이 대화를 나눌 때 보면, 어떤 음악가를 좋아하는지,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지를 묻고 답할 때 가장 생기를 띠는 것 같았어요. 그런 얘기를 해보죠. 좋아하는 음악가는 누군가요?
연주자요? 너무 많아서…. 오다가 차 안에서 모이세비치를 들었는데, 오랜만에 들어서인지 정말 좋았어요. 항상 좋아하는 사람은 릴리 크라우스, 그리고 알렉시스 바이센베르크. 또 누가 있을까요?
마르셀 메예르 좋아한다고 했죠.
아, 엄청 좋아해요! 어떤 곡은 이 사람이 좋고, 어떤 곡은 저 사람이 좋고, 그래서 정말 많아요.
우리 지금 다리를 서로 다른 방향으로 꼬고 있는데, 서로 맘에 들지 않으면 이렇게 반대로 다리를 꼰다고… 어디선가 읽었어요.
아까는 이쪽으로 하고 있었는데! 다리 꼬는 방향을 자주 바꾸라고 해서, 의식적으로 바꾸고 있어요.
크라우스ㆍ바이센베르크ㆍ메예르… 왜 옛날 사람들만 좋아하세요?
좋아했는데 알고 보니 옛날 사람이었어요. 요즘 사람들 중에는 넬송 프레이리. 아, 라두 루푸도 어떤 곡에서는 좋아요.
프레이리나 루푸가 요즘 사람이긴 하지만 나이가 많으시니… 아, 바이센베르크도 최근까지 살아계셨네요. 그런데 오래 전 활동했던 연주자들을 어떻게 좋아하게 됐나요? 물론 음반으로 처음 접했을 테고요.
음반을 워낙 좋아하다 보니 많이 모으게 되었는데, 특히 같은 곡을 다른 연주로 모으는 걸 좋아해요. 한 곡에 40~50개씩 모으기도 해요. 음반은 어려서부터 모았어요. 수집 목적은 아니고, 그냥 좋아서요.
어떤 연주자들은 “나는 다른 연주자의 음반은 듣지 않는다”라고 확고하게 말하기도 합니다. 나름의 이유도 분명하죠. “따라 하게 될 수도 있다.”
저는 음악 듣는 걸 너무 좋아해서, (음반을) 안 듣는다는 건 상상이 안 돼요. 만약 다른 연주자의 음악을 듣지 않는다면, 그는 음악을 만들기만 할 뿐 음악 애호가로서의 역할은 없는 거잖아요. 저는 음악가로서의 나도 있고, 애호가로서의 나도 비등하게 셉니다. 그래서 좋아서 듣는 걸 듣고, 사실 그게 진짜 좋아요. 솔직히, 그걸 따라 하게 될까 걱정하는 것은… 뭐랄까. 분명 ‘이 사람은 이렇게 하네’라며 똑같이 따라 해볼 수는 있지만 그건 포장일 뿐이니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디테일까지 똑같이 만들 수 있지만, 영혼이 다르니까요. 그걸 카피한다고 문제가 될 순 없을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의 요리가 맛있어 보여서 똑같은 재료와 똑같은 방법으로 요리한다고 해도, 맛이 다르잖아요. 누가 따라 한다고 해서 그 비법을 뺏기는 건가? 아닌가? 그건 아닌 거 같은데?
음악에 대해 얘기하다가 싸운 적은 없어요?
없어요. 우선 저랑 안 맞으면 안 만나요. 잘 맞는 편인 친구들, 음악 얘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주는 건 정말 좋아요. 제 연주에 대해서도 “말 좀 해봐!” 요구하는 식이에요. 최대한 많은 얘기를 들으려 해요. 저와 통하는 사람의 말이라면.
그럼 통하지 않는 사람 얘기는 듣지 않나요?
신경 쓰이진 않아요. 하지만, 어떤 말이든 아주 사소하게라도 작용한다고 믿어요. 쟤는 팔이 왜 저렇게 생겼어, 그냥 이런 말이라도 건질 만한 게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완전히 무시하진 않아요. 좋게 받아들이는 편이죠.
언론 매체에 실리는 본인의 연주평이나 인터넷 게시물 등을 읽나요?
읽을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어요. 제가 수용할 수 있는 건 ‘진짜 맞아’라면서 좋아하지만, 아무리 좋은 칭찬이어도 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닌데?’ 하고 넘겨요.
아이러니컬하네요. 모든 의견을 듣지만, 자기가 수긍하지 않으면 ‘아닌데?’ 하고 넘긴다니요. 지난 5월호 커버스토리 인터뷰 때 느낀 점이, 열음 씨는 반문이 많았어요. 그래서 이번 ‘홀딱’의 부제도 원래 ‘손열음의 아닌데?’로 지으려 했는데, 열음 씨의 반대로 인해….
저는 정답을 모르는 사람이에요. 확고한 의견이란 게 많지가 않아요. 지금 이렇게 얘기하는 것조차도 그래요. 현대사회는 너무 말이 앞서는 거 같아요. 설명하긴 힘들지만…. 저는 스스로를 우유부단하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하나를 갖고 몇 달을 고민하고 결국 답도 내리지 않아버리는 현실도피형에 가까워요. 반대로 사람들은 제가 결단력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 그런 면도 저고, 저런 면도 저예요. 그런데 “저는 우유부단해요”라고 말하면, 정말 그런 사람이 되어버려요. 그렇게 말로 뚝뚝 끊어 정의하는 현대사회가 마음에 안 들어요. 사람도, 음악도, 모든 게 하나로 정의될 수 없다고 봐요. 예를 들어, “그 음악은 너무 강렬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 강렬함의 뉘앙스가 백만 가지일 수 있죠.
음악산업계에도 소위 ‘주류’라는 것이 있습니다. 음반업계로 치자면, 독립 레이블이 힘을 얻고 있지만 분명 메이저 레이블이 존재합니다. 오늘 날 음악산업계가 원하는 ‘주류’ 피아니스트 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산업계가 원하는 사람들… 글쎄요. 유튜브형 아닐까요? 금방 “오!” 하고 불꽃이 튈 수 있는. 영어로 ‘아이캐칭’하는 그런 모습 아닐까요. 잘 모르겠어요.
그런 모습이 이상적이라 생각하는지.
정답은 없는데, 제 취향은 아니에요.
열음 씨에게 한번 ‘유튜브형’으로 가보자 제안한다면, 분명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죠.
굳이 안 하려고 해서 안 한 것도 아니에요. 만들면 할 수도 있겠는데, 지금까지 그런 기회가 찾아오지 않았죠. 제가 원한 적도 없고요.
노골적으로 물어보겠습니다. 유자 왕은 초미니 드레스를 입고 콘서트홀에 오릅니다. 예술의전당 콘서트홀로 치면 E열에 앉은 분들은 대단히 파격적인 모습을 보고 말겠죠. 저는 가끔, 행위예술인가 싶기도 해요. 이런 얘기를 하면 어떤 분들은 또 이렇게 반문합니다. 유자 왕의 음악을 듣고 있는데 그런 모습이 눈에 들어오느냐고. 그런 생각을 하는 당신을 이해할 수 없다고. 결론은, 이런 작지만 재미난 시도로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킬 수 있는 건 대륙의 마켓 파워가 세계적인 영향을 끼치기도 해서인데요. 부러운 적은 없나요?
당연히 있죠. 제가 그 옷을 입겠다는 건 절대 아니고요. 유자는 다리가 예뻐서 입어도 된다고 생각해요. 근데 (마켓과 관련해) 부러운 점은 당연히 있죠.
예전에 ‘객석’ 편집부 기자들이 문화부의 청탁으로 ‘케이클래식’이란 책자의 원고를 쓴 적이 있습니다. 케이클래식, 클래식 한류라는 개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근데 클래식 한류란 게 정말 뭐죠?
저도 원고를 쓰면서 조금 혼란스러웠는데, 요점은 이거겠죠. 대중문화만이 한류가 아니다. 세계 콩쿠르를 석권하는 우리의 유망한 젊은 음악가들이 많다. 그들의 해외 진출을 도와서 또 다른 한류를 만들어내고 싶다. 즉, 돕겠다는 뜻이겠죠.
문제는, 한국 내수시장이 너무 작아요. 통일이 되기 전엔 사이즈 문제가 분명히 있어요. 사실 억울한 건 다른 게 아니고, 한국엔 연주자밖에 없어요. 기획사도 없고, 이렇다 할 음악언론도 없고, 마켓도 없고, 소비자ㆍ공급자도 없고, 사실 아무것도 없어요. 음악을 하는 애들밖에 없어요. 그런 저희가 모든 걸 갖춘 애들이랑 경쟁해야 하는 건 너무 힘들어요. 제 상황에 비춰봤을 때 억울한 게 아니고, 음악 애호가로서 유럽에서 함께 공부하는 동양인 친구들을 보면 그래요. 유럽 친구들은 너무 쉽게 살고, 동양인 친구들은 정말 잘하는 데도 너무 안 되고. 해도해도 안 되고. 그게 아쉬워요.
예전에 열음 씨가 김대진 선생님의 말씀이라며 이런 얘기를 전해준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콩쿠르가 난센스라고 생각하겠지만, 물론 난센스다, 근데 세상에 나가보면 콩쿠르만큼 공평한 것도 또 없을 거다.” 만약 콩쿠르가 공평하고 확실한 등용문이라면, 성공하고 싶다면 콩쿠르에 나가야 할 겁니다. 근데 체질적으로, 정신적으로 콩쿠르와 안 맞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어떤 조언을?
사는 게 그렇게 쉽나? 하고 싶은 거만 하고 살 수가 있나?
정말 그렇게 말할 건가요?
저와 똑같은 상황이라면, 한국에서 나고 자란, 그런 경우라면… 일단 어려서 마켓에 진입하는 게 중요해요. 아, 이렇게까지 얘기할 건 아니지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마켓이 원하는 게 있고 그걸 충족시키면 돼요. 사실 그 시장은 단순하다고 봐요. 유자가 짧은 드레스 입고 나오는 그런…. 딱 끌리잖아요.
지금까지 낸 음반이, 아주 오래전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에서 쇼팽 에튀드를 녹음해서 출반했고, 유니버설뮤직에서 쇼팽 녹턴 편곡반을, 지난해에는 셰드린 차이콥스키 에튀드ㆍ카푸스틴 변주곡 등이 실린 음반을 냈습니다. 여기에 밴 클라이번 실황까지 네 장인데, 사실 상업용으로 녹음한 것은 두 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중 대표작을 꼽으라면요?
아무래도 지난해에 낸 음반이요. 심혈을 기울였어요. 제가 프로듀서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고, 기계만 직접 만지지 않았지 에디팅도 제가 했고, 트랙도 직접 정했어요. 악당이반 김영일 대표님이 하고 싶은 것 다 해보라며 도움을 주셔서 할 수 있었어요. 녹음을 많이 하지 않은 이유는 단순해요. 그 작업이 너무 힘들어요. 저는 청중과 기운을 주고 받는 걸 좋아하는데, 여긴 그게 없으니까요. 큰 이유는 아니네요.
그럼 이쯤에서 청중에게 연주를 들려주시겠어요?
손이 시려서. 한 오 분만 더 얘기해도 될까요?
그럼요! 이번 독주회 프로그램에 카푸스틴이 포함돼 있습니다. 최근 많은 연주자들이 카푸스틴을 즐겨 연주합니다. 왜 각광받는 걸까요?
싸이 ‘강남스타일’ 대히트를 보면서도 왜 그렇게까지 유행할까 생각을 해봤어요. 바보 같은 답인데 ‘흥’이라고 해야 하나, 신 나서인 것 같아요. 사실 그런 흥이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거 같아요. 클래식 음악보다는 재즈에 신 나는 요소가 많잖아요. (재즈적인) 카푸스틴 곡을 재미있어 하시는 분들도, 신 나는 걸 좋아하시는 거겠죠.
지금 카푸스틴 연주해주실 건 아니죠?
그거 칠까요?
전 좋아요. 사실 오늘 연주 목록에 카푸스틴은 없었는데.
없었지만 칠게요. 내일모레 연주할 콘서트 에튀드 7번 인테르메조 치겠습니다.
손열음의 흥겨운 연주가 끝났다.
독일 음대에서 카푸스틴을 배울 수 있나요? 카푸스틴이나 사티 등을 클래식 음악으로 봐야 하나, 그런 논쟁도 있잖아요.
독일에서 석ㆍ박사 과정만 한 거라 어떤 식으로 가르치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갑자기 생각나는 게 있어요. 저희 (아리에 바르디) 선생님께서 70대 중반이신데, 1933년에 나온 그로브 사전에 라흐마니노프에 대해 이렇게 쓰여 있었다고 얘기해주셨어요. 칩(cheap)한 취향의 사람들이 듣는 음악, 금방 없어질 음악이다. 선생님 어렸을 때 라흐마니노프를 시험에서 치기는 좀 그런 분위기였대요. 특히 협주곡은요. 베토벤ㆍ슈베르트와는 비교 자체가 안 되는 음악이었다고 해요. 그런데 지금 보면 라흐마니노프는 ‘너무나’ 클래식이잖아요. 시간이 흐르면 카푸스틴도 클래식으로 분류될 거 같아요.
최나경 씨가 신시내티 심포니에 처음 갔을 때, 그곳은 팝스 오케스트라를 병행해야 해서 스윙감을 익히려고 열심히 연습하고 있었는데, 연습실을 지나가던 한 미국 친구가 “왜 스윙 안 하냐”고, 그거 스윙 아니라고 했다더군요.
그 친구 못됐네.
그만큼 스윙감이란 게 하루아침에 익히기 어렵다는 얘기일 텐데, 클래식 음악만 평생 듣던 사람이 카푸스틴의 악보만 보고 스윙의 맛을 살릴 수 있을까요?
아니요. 그래서 저도 재즈 선생님을 찾아갔어요. 대여섯 번 배우러 갔고, 입문의 입문의 입문, 정말 기본만 배운 그런 단계예요.
열음 씨는 좋아하는 곡과 싫어하는 곡이 분명히 나눠지나요?
우선 단정 짓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레퍼토리 욕심은 진짜 많고요. 이 세상 피아노곡을 다 쳐보고 싶어요. 죽을 때까지 쳐보지 않아도 후회하지 않을 곡이 있다면, 베토벤 소나타 중 몇 곡, 반면 베토벤 소나타 중 다른 몇 곡은 제가 제일 좋아하는 곡이에요.
그럼 베토벤 소나타 전곡 연주는 절대 안 하겠네요?
아뇨, 그렇게 단정 짓진 않는다니까요.
이쯤에서 열음 씨의 또 다른 장기, 글쓰기 얘기를 해볼게요. 자신의 공연 프로그램북에 직접 곡 설명을 쓰곤 하는데, 아직 누군가의 연주에 대해 쓴 글을 본 적이 없는 듯합니다. 저도 연주평을 쓰지만, 현장의 ‘순간’ ‘소리’ ‘피아니스트의 근육 움직임’ ‘의도하려던 바’를 글로 표현하는 게 쉽지도 않거니와 어떨 땐, ‘이거 다 뻥 아닌가’라는 회의도 들곤 합니다. 그저 내 주관적 소견이 아닌가 라는 뜻에서 말이죠. 연주평 혹은 음반평을 쓴다면 어떻게 접근할 건가요?
주관성은 음악의 가장 큰 특징이고, 또 하나의 특징은 추상성이에요. 그걸 구체화한다는 거 자체가 모순이죠. 낱낱이 풀어버리면 음악이 가진 예술성을 해부하는 셈이니… (연주평이) 어떤 식으로 얼만큼의 의미가 있는지는 저도 모르겠어요. 소리가 어땠고 이런 해석은 어땠고… 솔직히 그런 것엔 관심이 없어요. 이렇게든 저렇게든 칠 수 있죠. 어떻게 치느냐로 접근한다면, 특정 피아니스트가 가장 잘 치는 사람이 될 수 있죠. 저는 피아니스트가 어떤 걸 전달하려 했는지, 그 사람 내면의 판타지는 무엇인지에 관심이 있어요. 그것도 객관적이기보다 주관적이죠.
조금의 객관성이라도 얻으려고 악보를 펴놓고, 요긴 요렇고, 조긴 조렇게 틀렸네… 치졸해질 때가 많아요. 그렇게라도 해야 내 주관적 의견의 정당성 찾을 수 있다는, 일종의 강박이죠. 근데 글을 다 쓰고 나면 ‘이 연주 듣지 않은 사람에게 네 번째 마디에서 크레셴도가 이런 식이었다’라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도 싶어요. 그럼에도 글로써 표현하고 싶은 게 분명이 있어요. 하나 예를 들자면 소리인데, 피아노 건반 끝까지 꼭 눌렀음에도 피아니시시모의 소리가 나면서, 공기를 머금은 듯한, 그러면서도 공명은 적은… 소리가 있잖아요. 이런 소리를 어떻게 글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잘 설명하셨네요. 구체적이면서도 이미지가 딱 떠오르는데요. 그렇게 하면 되겠네요.
연주자 내면의 판타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어떻게 찾아내세요?
표현하기 너무 힘들죠. 사실 그런 걸 말로 표현 못하니까, 음악이 있는 거잖아요. 그런 면에서 타고난 듣는 감이 좀 필요한 것 같아요.
언론 매체에 실리는 음악 관련 저술로는 인물 소개ㆍ공연 소개ㆍ감상평 등이 있는데, 앞서 우리가 말한 연주평, 즉 주관적 평이란 게 과연 필요할까요?
진짜 잘 모르겠어요. 글 자체에 의의를 두고, 문학적 측면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겠지만 그 평이 음악과 결부하면 발전적인 측면이 있을 것이다? 그건 잘 모르겠어요. 분명 글 그 자체로의 의의는 있다고 봐요.
음악을 공부했거나 무대 경험이 있는 사람만 써야 하나요?
아니요,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것도 강박인 거 같아요.
이제 관객들이 보내준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유시진 씨가 여러 질문을 보내주셨는데 그중 하나입니다. 음악 또는 예술 하는 남자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특별한 반감은 없는지?
반감 전혀 없어요. 근데 음악 하는 모습을 보고 남자로서 멋있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객관적으로 선욱 군의 피아노 치는 모습이 굉장히 멋있던데, 아무리 멋있어도 이성으로 멋있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어떤 스타일의 남자가 좋습니까?
제가 좋아하는 남자가 제 스타일이에요. 이상형은 따로 없어요.
클래식 음악을 전혀 듣지 않는 남자는?
아, 그거 하나 있네요. 제 연주를 듣고 발전적인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사람.
객석이 “으어어어” 하고 요동쳤다.
사실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은 그런 점에서 좋았어요. 제일 갑갑할 것 같은 경우가, 제 연주 후에 무조건 잘했어, 잘했어 하는 사람. 쳐다보기도 싫을 것 같아요. “여긴 이렇게 했어야지”, 그런 사람 좋아요.
취향이 바뀔 거 같아요.
아니요. 전 친구도 다 그래요.
네. 다음 서예은 씨 질문입니다. 음악을 너무 좋아해서 이런 짓까지 해봤다.
제가 하노버 사는데, 오페라를 보려고 베를린에 가곤 해요. 베를린에서 하노버로 오는 막차가 밤 9시 30분, 그럼 오페라 끝나고 못 오잖아요. 그래도 호텔 예약도 하지 않고 그냥 가서 결국 기차역에서 뒹굴다가 오고, 오페라 보는 걸 좋아해서…. 답변이 별로인가요?
저희가 기대한 건 막 “제가 막 손이 커지려고 막, 힘이 세지려고 막, 이렇게 이렇게….”
허허! 어려서 근육 단련을 많이 했어요. 처음 진지하게 배웠던 선생님께서 이런 메소드를 연마하신 분이었어요. 온갖 종류의 스트레칭을 30분 이상 하고 레슨을 시작했어요. 손을 가만히 놓아둔 적은 잠잘 때뿐이었어요. 동그랗게 보이는 건 뭐든, 무릎이라도 늘 이렇게 잡고 있었어요. 완력기도 많이 썼고요.
공통 질문. 열음 씨에게도 너무너무 어려운 악보가 있나요?
제가 악보를 쉽게 보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고, 흐름을 예측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음악 안의 상식ㆍ내러티브ㆍ플롯을 예측하는 능력? 그래서 빨리 외울 수도 있고요. 제 상식에서 벗어난 악보는 힘들겠죠.
현대음악은요?
한예종 시절 현대음악을 정말 많이 했는데, 확연하게 사조가 구분되는 건 흐름이 느껴져요. 오히려 카푸스틴이 듣기엔 편안한 것 같지만, 저의 논리에 어긋나다 보니 예상 외로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역시 공통질문입니다. 지난 ‘객석’ 10월호 클라라 주미 강 커버 스토리에서 열음 씨가 브람스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언급이 있었는데, 이유가 궁금하다.
허허. 우선 주미가 브람스를 정말정말 좋아해요. 클라라잖아요. 진짜 브람스를 각별히 생각해요. 남의 집 이야기를 해서 죄송하지만, 주미 오빠는 보리스 고두노프의 보리스, 언니는 바흐 부인 아나, 주미는 클라라 슈만의 클라라, 형제들 이름이 이렇게 음악적이에요. 그에 비하면 제가 브람스를 덜 좋아한다는 얘기였겠죠. 저는 브람스를… 흠, 이게 더 나쁜 표현일지도 모르겠는데 브람스를 좋아하지 않는 게 아니라 저평가하는 듯해요. 물론 좋아하는 곡들도 많아요. 피아노 협주곡 2번도 좋아하고, 변주곡, 왈츠 등등…. 다만 제 생각에 브람스는 저랑 안 맞는 부분이 있어요. 그는 혼연일체가 안 되는 사람 같아요, 제가 봤을 땐. 나쁜 뜻이 아니라, 괴리가 있어요. 몸ㆍ머리ㆍ마음이 일치되지 않는 음악가라고 생각해요. 완벽한 일치는, 제 생각에 모차르트이고 충돌이 예술로 승화된 경우는 베토벤, 완전히 마음으로 간 건 슈만이죠. 근데 브람스는 그게 다 따로 놀아요. 그런 이유로 브람스를 좋아하는 분들이 계세요. 다만 저랑 그 점은 안 맞아요. 다시 말하지만, 저도 분명 좋아하는 곡이 있어요. 그래서 그 얘기는 더 이상 안 나왔으면 해요. 이게 고착화돼서, 제가 브람스를 연주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시니까요. 피아노 곡들뿐만 아니라 바이올린 소나타 다 했고, 4중주도, 5중주도 다 해봤고, 브람스의 많은 곡을 좋아합니다.
김지아 씨 질문입니다. 자서전을 낼 의향이나 계획은 없는지?
아, 저는 소설 한번 써보고 싶어요. 제 얘기는 재미없을 거 같고요.

열음 씨가 주인공인 소설 있잖아요. 이강숙 선생님의 소설.
‘피아니스트의 탄생’이요. 제가 열여섯 살 때인가, 총장실로 부르셔서 몇 번의 인터뷰를 거쳐 소설을 쓰셨죠. 그때 총장님께서 뭐라 하셨냐 하면, 삶에서는 모르겠지만, 음악 배우는 건 너무 순탄했다고, 드라마가 안 나온다고 하셨어요. 사실 그 이후부터 인생이 달라졌기 때문에. 만약 자서전을 쓰면 죽기 직전에 써야 할 것 같아요. 공개할 수 없는 개인적인 내용이 많아서요.
그럼, 자전적 소설을 쓰세요. “이 이야기는 모두 허구입니다.”
허허, 누가 그 말을 믿겠어요.
이제부터 현장 질문을 받아볼까요?
“진짜 궁금했는데 열음 언니는 손이 어디까지 닿아요?”
(손을 크게 벌리며) 이렇게 하면 파까지 닿아요. 잡을 순 없고요. 쇼팽 에튀드 Op.25-10 중간에 왼손이 미하고 솔# 잡는 게 있는데, 그거 잡는 게 소원이에요. 4-1(약지와 엄지), 5-1(새끼와 엄지), 3-1(중지와 엄지)의 차이가 없어서, (중지와 검지를 펼쳐보이며) 이렇게도 미까지 닿아요.
“슬럼프에 빠진 적이 있습니까?”
슬럼프, 음악을 하지 말아야 할까, 이런 거요? 피아니스트는 음악가라고 하기엔 무척 직업적인 직업인 듯해요. 여행도 많이 해야 하고, 사람도 많이 만나야 하고, 음악과 전혀 상관 없는 게 많은 직업이죠. 그런 것에 대한 회의는 항상 있지만, 음악을 안 하고 싶단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어요. 그런 슬럼프는 없었어요. 직업적인 건 늘 있지만.
열음 씨, 피아니스트가 직업이라면 그럼 ‘음악을 한다’는 건 무슨 뜻이죠?
‘사는 거’ 같아요. 살면서 배우는 거죠. 저는 상황이 좋지 않고 힘들면 오히려 음악이 잘돼요. 그래서인지 행복하고 일이 술술 풀리면 오히려 불안해요. 반대로 안 좋은 일이 있으면 ‘음악은 잘 나오겠구나’ 해요.
마지막으로 ‘다시 쓰는 바이오그래피’가 남았습니다. 그전에 한 곡 더 듣고 싶은데, 괜찮으세요?
핑계인 것 같지만, 저도 몰랐는데 말하는 데 에너지를 꽤 많이 쏟나 봐요. 사실 연주 두세 시간 전에는 아무 말도 안 하고, 말하는 걸 듣지도 않으려 해요. 자꾸 신경이 쓰여서. 그렇게 말을 지양하는 편인데. 그래도 연주를….
아니요! 인터뷰 다 진행하고 끝으로 한 곡 들려주세요. ‘홀딱’의 마지막 순서 ‘다시 쓰는 바이오그래피’를 시작하겠습니다. 손열음은 1986년 5월 2일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났다. 대신, 손열음은 왜, 무엇을 하기 위해 이 땅에 태어났다.
비장한데…. 왜 태어났느냐. 왜 태어났는지 알아가기 위해서. 진짜로요. 전 진짜 궁금해요. 그거 때문에 사는 거 같기도 하고요.
손열음은 초등학교 6학년 때인 1998년 9월 30일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5층 강의실에서 김대진 선생을 처음 만났다. 대신, 김대진 선생을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언제이고, 무엇을 배웠다.
허허, 바로 지난주에 뵙긴 했어요. 선생님께 배운 게 진짜 많은데 마지막 기억에 대해서 말하는 거라면, 음… 선생님은 의사처럼 진단을 잘하시는 분이에요. 그래서 조언을 구하기도 편해요. 지난해 10월에 선생님과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3번을 했는데, 그때 한마디 해주셨어요. “너는 빌드 업(쌓아 올리기)은 정말 잘하는데, 너무 순식간에 내려온다. 올라가는 듯 내려오면 좋겠다.”
손열음은 2006년부터 하노버 국립음대에서 아리에 바르디와 공부하고 있다. 대신, 여전히 아리에 바르디와 공부하는 이유는 이것이다.
진짜 감사한 건 선생님이 제 음악을 좋아하세요. 스승과 제자가 서로의 음악을 취향 안에서 좋아하는 건 쉽지 않을 일인데 말이죠. 제 음악 좋아해주시니 거기서 용기를 많이 얻곤 해요. 평생 배워도 모자랄 것 같다는 느낌, 그 느낌이 정말 좋아요.
손열음은 게르기예프ㆍ마젤ㆍ콘론ㆍ정명훈 등의 지휘로 마린스키 오케스트라ㆍ뉴욕 필ㆍ이스라엘 필ㆍ체코 필ㆍ바르샤바 필ㆍ도쿄 필ㆍ아카데미 오브 세인트 마틴 인더 필즈 등과 협연했다. 대신, 만약 피아노 단원으로 근무해야 한다면, 이 오케스트라에서, 혹은 이 지휘자가 상임으로 있는 곳에서 일하고 싶다.
사실 꿈이 오케스트라 악장이에요. 물론 이루어지지 않을 꿈이지만. 오케스트라 음악 중 좋아하는 것도 많아요. 그래서 꿈이 잉글리시 체임버 오케스트라 악장이었어요. 그 오케스트라를 특별히 좋아한다는 건 아니고, 모차르트를 많이 해서예요. 모차르트를 많이 하면 행복할거 같아요. 마린스키도 좋아해요. 색깔이 분명하고, 여러 가지를 하니까.
2005년 루빈스타인 콩쿠르 3위, 2009년 밴 클라이번 콩쿠르 준우승, 2011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준우승했다. 대신, 나는 콩쿠르에 왜 나갔다.
어렸을 때는 나가야만 하는지 알아서 그냥 나갔고, 밴 클라이번의 경우는 독일에 갔는데 다른 건 솔직히 너무 힘들더라고요. 그 사람들은 정말이지 우리가 필요 없어요. 동양인에, 한국인은. 푸념일 수도 있지만, 정말 그래요. 그게 악의도 아니고 인종차별도 아니고… 그냥 자기 나라 애들이 있는데 왜 굳이 낯선 사람들과 함께해야 하느냐겠죠. 독일은 특별히 폐쇄적이었어요. 그래서 콩쿠르를 해보는 게 어떨까 해서 나갔어요. 차이콥스키는 그냥 해보고 싶었고요. 정말 그 무대에 서보고 싶었어요.
3월 7일, 손열음은 첫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독주회를 펼친다. 대신, 진정한 의미에서 나의 ‘첫 독주회’를 꼽으라면, 이것이다.
1991년 11월 아니면 1992년 1월인가. 제가 여섯 살에 했던 독주회요. 1부ㆍ2부 나눠지고, 드레스도 바꿔 입었어요. 원주 치악예식장에서 했어요. 어머니ㆍ아버지 지인들이 오셨고 모차르트 소나타, 슈만 ‘어린이를 위한 앨범’, 클레멘티 등을 쳤어요. 아직도 생각나요. 정말 좋았어요. 하….
“손열음은 피아니스트다”를 대신할 수 있는 자기 정의.
어렵다. 피아니스트 대신, 글쎄… 지금까지의 다섯 분도 여기에 다 대답을 하셨나요? 하나만 들려주심 안 돼요?
지용 씨는 사랑을 주고 받는 사람.
그렇게 치면 저는 그냥… 사유하는 인간? 사유하고 행동하는 인간. 음악을 빼면 잘 모르겠어요. 음악은 제게 너무 큰 부분이어서. 음악 앞에 있을 때와 아닐 때의 저는 너무 달라서. 음악이 아니면 엄청 게으르고 욕심도 의욕도 없어요. 하지만 음악이 있으면 욕심도 없지 않아요.
“음악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사람.” 이렇게 정의하면 너무 비참할까요? 아! 평론가 윤중강 씨의 정의가 생각나요. “한때 자신의 묘비명을 100개나 써보았으나 지금은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 사람. 유쾌상쾌통쾌, 쾌쾌쾌한 사람.”
그렇다면 저는 “진짜 잘 치고 싶은 사람!”
인터뷰가 끝나고, 손열음은 어떤 곡을 칠지 잠시 고민했다. “쇼팽 에튀드 10의 3, 이별.” 이렇게 말하고 그녀는 피아노로 향했다.
글 박용완 기자(spirate@) 사진 이은비(studio B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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