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들’

새 그릇에 담긴 시대의 감수성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3년 5월 1일 12:00 오전

모처럼 대형 창작 뮤지컬이 막을 올렸다. ‘그날들’은 대극장 무대에, 창작 뮤지컬 초연임에도 꼼꼼한 극 전개로 관객의 눈과 귀를 집중시키는 매력을 담아낸다. 작가 겸 연출가 장유정 특유의 아기자기한 재미는 이 무대의 최대 장점이다. 하지만 ‘김광석’이라는 시대적 코드와 감수성 짙은 음악을 담아내기엔 그 그릇이 너무 이질적이지 않나 싶다.
4월 4일~6월 30일, 대학로뮤지컬센터.
글 원종원(뮤지컬 평론가·순천향대 교수) 사진 이다엔터테인먼트

‘그날들’이 일찍부터 인구에 회자됐던 이유는 물론 음악 때문이다. 익히 알려진 대로 이 뮤지컬은 고(故) 김광석의 선율들로 꾸며진 작품이다. ‘서른 즈음에’ ‘이등병의 편지’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등 주옥같은 그의 음악들은 아직도 라디오 방송에서 신청곡 수위를 다투며 인기를 누리는 현재진행형의 유명 대중가요들이다. ‘맘마미아’가 아바를 재해석해내고, ‘위 윌 록 유(We Will Rock You)’가 퀸을 부활시킨 것처럼 우리의 음악·노래·정서로 꾸며진 한국형 주크박스 뮤지컬의 등장을 기대해온 공연 애호가들에게 이 작품은 제작 그 자체로 이미 남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반반’이다. 우선 ‘오! 당신이 잠든 사이’ ‘김종욱 찾기’ ‘형제는 용감했다’ 등을 통해 대학로 소극장 뮤지컬의 블루칩으로 통했던 작가 겸 연출가 장유정이 특유의 색깔을 담아 아기자기한 재미를 펼쳐낸 것은 이 무대의 최대 장점이다. 신경 쓸 것이 많다는 대극장 무대에, 그것도 창작 뮤지컬 초연임에도 작은 톱니바퀴까지 꿰맞춘 듯한 꼼꼼한 극 전개는 관객의 눈과 귀를 집중시키는 매력을 담아낸다. 1천 석짜리 대형 공연장이라도 혜화동에 등장하면 대학로 특유의 끈질기고 끈끈한 무언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명제를 다시 증명하는 것 같아 반갑다. 원곡을 그 모습 그대로 활용하지 않고 폭넓은 변주나 중창, 역할에 따른 가사의 분배 등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고민해 반영한 장소영 감독의 음악적 노력도 그 흔적을 여실히 엿볼 수 있어서 흥미롭다.
반면 아쉬운 부분도 있다. 우선 청와대 경호원과 대통령 딸의 솜사탕 러브 모드나 스파이 이야기를 다루는 영상물에서 자주 활용되는 음모론의 활용은 다소 식상한 주말 연속극을 떠올리게 한다. 영상이나 무대나 요즘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판타지’와 무슨 차이가 있느냐고 반문한다면 특별히 할 말은 없지만, 그래도 ‘김광석’이라는 시대적 코드와 해당 인물이 지녔던 아우라 짙은 음악을 담아내기에는 그릇이 너무 이질적이지 않나 싶다. 정말 김광석을 떠올리고 싶어서, 그 시절 음악의 감수성과 추억을 되새김질하고 싶어서 공연장을 찾은 관객이라면 적잖이 당황할 것 같다. 극적 반전의 감동이 크게 ‘극적’이지 못한 것도 아쉽다. TV드라마 ‘아이리스’를 연상케 하는 삼각관계나 미스터리의 전개는 결국 연출가 장유정 특유의 ‘따뜻한’ 반전으로 이어진다. 왈칵 눈물을 쏟아내야 하지만 아쉽게도 딱 거기까지다. 이야기의 허구성이 지닌 극적 구도의 비현실성과 거리감, 인위적으로 느껴지는 인물 관계가 관객으로 하여금 머리로는 이해되지만 감성적 공유까지 다다르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드러낸다. 배우들의 연기가 이야기에 적절히 녹아들지 못한 배경도 있다. 초연이 대형 무대에서 자주 드러내는 문제다. 앞으로 공연을 계속하며 개선됐으면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올해 창작 뮤지컬의 재미난 화두는 ‘같은 소재, 다른 무대’다. 프랑켄슈타인을 소재로 한 두 편의 무대가 동시에 준비 중이고, 고(故) 김광석 노래가 등장하는 두 편의 주크박스 뮤지컬도 엇비슷하다. 전자가 유명 소설을 무대화하는 과정에서의 재미와 작품 간의 간극이 감상 포인트라면, 후자는 잘 알려진 선율의 인기 음악이 극적으로 어떻게 가공되는지가 관심의 대상이다. 먼저 막을 올린 ‘그날들’이 선택한 방식은 ‘맘마미아’와 유사했다. 음악이 극적 구조 안에서 다시 쓰이는 재미를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등장할 또 다른 주크박스 무대에서는 어떤 양식과 실험을 선보일까. 비교하며 관극하는 재미가 쏠쏠할 것 같아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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