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무가 정영두·교사 이건학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3년 5월 1일 12:00 오전

어제의 관객이 오늘의 춤꾼이 되었다. 길들여지지 않은 몸 구석구석에 기름칠을 하고 관절과 마디를 움직이며, 스스로 움직이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전문 무용수 못지않은 치열함으로 연습실의 온도를 높이는 그들은 지금껏 대중·관객·일반인이라 불려온 사람들이다.
지금, 춤이 변하고 있다. 특히 예술가만의 신비한 고유 영역, 추상적인 예술 행위로 여겨졌던 현대무용이 대중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에 사람들은 그간 무심히 지나쳐온 스스로의 몸을 돌아보고, 움직임을 통해 새로운 세상과 마주하게 됐다. 지극히 관계적이면서도 개인적인 춤, 춤이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있다.
춤을 통한 일반인과 전문가의 만남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최근 3, 4년 사이의 일이다. 안은미댄스컴퍼니와 두산아트센터는 2011년부터 할머니와 청소년, 중년의 아저씨들을 무대 위로 초대해 ‘조상님께 바치는 땐쓰’ ‘사심 없는 땐쓰’ ‘무책임한 땐쓰’를 지속적으로 선보였다. 해방의 몸짓이자 시대의 몸을 리얼하게 기록한 자리였다. 2012년 초, 안무가 정영두와 LG아트센터가 선보인 ‘먼저 생각하는 자-프로메테우스의 불’의 트라이아웃 공연은 일반인을 작품 깊은 곳까지 들어가게 했다. 3회의 워크숍 가운데 선발된 24명의 일반인들은 약 한 달여의 연습 과정을 통해 공연에 선보일 다양한 몸짓을 안무가와 함께 고민하고 공유하며 무대 위에 공연을 올렸다.
궁금증은 그 이후부터 시작됐다. 그날의 춤이 늘 바쁘게 살아가는 대중의 삶에 새롭고도 지속적인 원동력이 되었는지, 안무가는 일반인과의 만남에서 어떤 자극과 발상을 얻었는지 말이다.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그 마음 변치 않았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조심스레 안무가 정영두와 당시 일반인으로 공연에 참여했던 이건학 씨에게 연락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안무가 정영두는 동시대 사람들의 정서를 창작의 밑거름으로 삼게 되었고, 이건학 씨는 춤이 곧 일상이 되었다.

‘먼저 생각하는 자-프로메테우스의 불’
안무가 정영두

2012년 ‘먼저 생각하는 자-프로메테우스의 불’ 트라이아웃 공연을 올리기 전, 여러 차례 일반인 대상 무용 워크숍을 가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일반인과의 무용 워크숍은 7, 8년 전부터 진행해왔습니다. 공식적으로는 2006년 LIG아트홀, 2007년 후쿠오카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워크숍과 공연을 해왔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시기는 2009년 LG아트센터에서 관객 참여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현대무용 워크숍을 진행했을 무렵이죠. 그때부터 정부의 지원과 문화재단, 극장 등이 여러 이유로 일반인과 함께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여러 단체와 개인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이러한 워크숍을 진행해왔습니다.
2009·2012년 LG아트센터에서 가졌던 워크숍은 각각 어떤 차별성을 두고 진행했나요.
각 연도의 워크숍마다 목적이 달랐습니다. 2009년에는 현대무용을 경험하는 워크숍이었지만, 2012년에 있었던 워크숍은 사람들 모두가 두 달간 함께 연습해 공연을 만들고 일반인이 무대 위에 섰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일반인과 공연을 올리는 것은 상당한 시간·인력·비용을 요구하기에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공연 자체를 만들 수 있는 풍토가 어느 정도 형성됐다는 것은 문화예술 전반의 입장에서 볼 때, 발전의 일부로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워크숍 참가자 선발 당시, 선정 기준은 어떠했나요,
춤에 대한 열정이 있지만 여러 이유들로 인해 그동안 춤을 접하기 어려웠던 분들을 위주로 선발했습니다.
워크숍에서 즉흥 춤과 집단 창작을 진행했습니다. 이 두 가지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즉흥 춤은 각자의 움직임을 그대로 솔직하게 드러나게 해줍니다. 스스로의 움직임을 발견하고 다른 사람이 가진 움직임을 고스란히 볼 수 있죠. 더불어 대부분의 일반인들이 일상에서 창작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그리 많지 않기에, 집단 창작은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무엇을 만들어내는 색다른 경험이자 계기가 됩니다. 개인적으로 창작을 누구나, 어디서나 할 수 있다면 한 사회 안에서 살아가는 개인의 존재감과 정체성이 더 분명해질 것이라 믿습니다. 워크숍 과정에서는 즉흥 춤과 집단 창작을 진행했지만, ‘먼저 생각하는 자-프로메테우스의 불’ 공연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집단 창작의 방식은 몇몇 장면에만 사용했습니다. 출연자들과 함께 토론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움직임을 만들면, 그 움직임을 안무가인 저와 무용 단원들이 커다란 흐름으로 다시 구성하는 방식으로 작업이 이뤄졌습니다.
일반인과 함께 하는 작업이 안무가에게 어떤 유익을 주는지 궁금합니다.
길들여지지 않는 몸을 만나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기발한 아이디어와 춤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다시 맛보는 것도 큰 기쁨입니다. 또한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몸이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지 볼 수 있고, 공연이 갖는 소통의 한계를 일반인과의 작업을 통해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공연을 준비하며 소통이나 표현 전달의 어려움을 느낀 적은 없었나요.
전문 무용수와 작업할 때도 소통과 표현의 어려움은 항상 존재합니다. 창작의 단계에서 스스로 검열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을 일반인이 아니라 전문 무용수라 생각하고 작업했습니다.
참여자들에게 특별히 강조한 부분이 있다면요.
워크숍에서는 움직임을 마음껏 펼치지 못하게 만드는, 어떤 억압에서 조금 더 자유로워지라는 얘기를 자주 했습니다. 내용 역시 어색함이나 쑥스러움을 떨쳐낼 수 있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공연을 준비할 때는 공연 주제인 인간과 기술에 관한 부분을 많이 얘기했어요. 스스로 일반인이라 생각하지 말고 전문 무용수라고 생각하라는 주문도 틈틈이 했습니다.
연습실 풍경이 특별했을 것 같습니다.
초반에는 몸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모르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또 전문 무용수들보다 몸이 유연하지는 않지만 움직임 하나하나를 굉장히 소중하게 다루고 표현하려는 모습들이 지금도 기억에 남습니다. 춤을 추고자 하는 열정과 순수함을 많이 느꼈습니다.
안무가 정영두가 정의하는 ‘춤’은 무엇인가요.
실존하는 몸으로 실천하는 행위이자, 실천하는 행위로만 실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일반인과 함께하는 프로젝트를 앞으로 지속할 계획이 있나요. 이러한 일들이 좀더 활발히 일어나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과 환경이 필요할까요.
물론 계속하고 싶습니다. 최근 분위기를 보면 이러한 일들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어느 정도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프로젝트가 확실히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꾸준한 지원과 관심이 필요하겠지요. 더불어 일반인과 함께하는 프로젝트와 예술가가 진행하는 개인의 프로젝트가 서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예술가가 하는 일들이 사회적으로 해석되면서, 예술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이 보다 강조되고 의미가 부여되어 자칫 커뮤니티댄스 같은 프로젝트에만 관심과 지원이 생기는 부분도 있습니다. 예술가의 독립된 작업 역시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동시에 이뤄질 때 전문 예술과 아마추어 예술이 서로 균형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생각하는 자-프로메테우스의 불’
참여자 과천외고 교사 이건학

지난해 LG아트센터에서 있었던 일반인 무용 워크숍과 공연은 어떤 계기로 참여했나요.
살사를 배우며 만난 현대무용 전공자를 통해 알게 됐습니다. 그분 소개로 처음에는 안애순무용단이 진행하는 일반인 대상 워크숍에 참여했는데, 걷고 뛰는 간단한 동작을 보는 것만으로도 주변 공기가 무용수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강한 인상을 받았죠. 몇 달 후 LG아트센터에서 진행하는 일반인 무용 워크숍과 공연이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바로 신청했습니다. 처음에는 워크숍에만 참여할 생각이었어요. 그러다 함께하는 분들의 열정적이고 진지한 모습을 보면서 자극을 많이 받았어요. 열심히 하다 보니 더 배우고 싶고, 무대에 서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됐습니다.
어떤 계기로 춤에 관심을 갖게 되었나요.
2년 전, 우연히 본 영화가 일본판 ‘쉘 위 댄스’였어요. 그 영화를 보면서 직장 초년생이지만 일상에 매몰되어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죠. 영화에는 댄스 스포츠가 나왔는데, 전 살사도 같은 춤인 줄 알고 시작하게 됐어요.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어린 시절엔 ‘내 몸이 아름답고 멋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도 많이 했고요. 이런저런 관심들이 모여 춤을 배우게 된 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워크숍에 참여하기 전까지 현대무용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어요. 그저 가사가 없는 음악을 틀어놓고 추상적인 몸동작을 펼치는 ‘난해한 춤’ 정도로 생각했죠.
현대무용을 배우면서 달라진 고정관념이 있나요.
춤이라는 것이 보는 사람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워크숍에 참여하고 더 나아가 무용수 입장에서 공연을 준비하다 보니, 몸을 바꾸는 과정에서 사고와 감정이 변하는 경험을 했어요. 흔히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라는 표현을 쓰잖아요. 그런데 반대로 몸을 움직이면서 감정이 차분해지거나 격해지는 것이 새로웠어요. 그전까지 작품을 볼 때 ‘저건 어떤 생각으로 만들었을까’ 생각했는데 동작이 먼저 만들어지고 의미가 생기거나 의미 자체가 규정되지 않는 동작도 있다는 것, 그래서 작품을 감상하는 방법이 참 다양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리고 무용수는 춤만 잘 추는 사람이 아니라, 고민하는 인간이라는 점도 새로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공연 중 남녀 듀엣으로 무대에 섰습니다. 유일한 장면인 만큼 준비 과정도 혹독했을 텐데요.
제가 맡은 역할은 지구상의 생명체가 사라지고 마지막으로 남은 인간, 혹은 사자 아니면 늑대, 어쩌면 또 다른 무엇이었어요. 마지막 남은 두 생명체가 주고받는, 이제 곧 사라질지도 모르는 아련한 몸부림이라고 할까요. 두 사람의 호흡이 중요했고 일반인이 하기엔 위험한 동작도 있어서 연습을 정말 많이 했습니다. 전체 연습이 하루에 3시간씩 일주일에 네 번 있었어요. 직장인이나 학생이 대부분이라 평일 오후 7시부터 10시까지 단체 연습을 했죠. 듀엣 장면은 전체 연습이 끝난 보통 밤 11시나 12시까지, 때로는 새벽 2시까지도 연습했어요. 정영두 선생님도 옆에서 함께 가르쳐주셨죠. 선생님이 추천한 현대무용 작품의 듀엣 장면을 보면서, 서로의 에너지를 주고받고 자연스럽게 흘려보내는 모습을 연구했어요. 선생님이 명확하게 짚어주지 않아서 때론 답답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파트너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우리들 스스로 어떤 상(象)을 만들어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공연 준비 과정에서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부분이 있다면요.
책을 읽고 토론하면서 준비하는 과정이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정영두 선생님은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먼저 생각하는 자-프로메테우스의 불’의 계기가 됐다면서 일본의 핵물리학자가 쓴 책과 각종 자료를 보여주셨어요. 여기에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고 토론하는 과정 자체가 ‘무용작품 만드는 거 맞나’ 싶을 정도로 생소했죠. 또 연습하면서 때로는 정말 모르겠고 힘들고 아무것도 못할 것 같이 죽겠는데 정영두 선생님이 “안 되면… 된다고 생각하고 하세요”라고 말하셨어요. 그 말에 담긴 기운이 굉장해서 모두가 ‘아직 할 수 있다’ ‘더 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면서 힘든 연습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모든 프로젝트가 끝난 뒤 허탈감은 없었나요.
두 달 동안 매일 몸을 움직이며 살다가, 갑자기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니 정말 괴로웠어요. 정확하게는 몸을 가만히 두기 힘들었죠. 집에 얌전히 있는 것이 어색하더라고요. 그래서 퇴근 후 저녁마다 밖에 나가서 마냥 길을 걷거나 뛰면서 계속 몸을 움직였어요. 순전히 몸이 원해서 한 일들이었죠. 몸이 마음과 생각을 지배할 수 있다는 걸 다시 느꼈어요.
워크숍과 공연 참여 이후 1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후 일상의 변화가 있었나요.
작년 5월부터 현대무용 아카데미에 등록해서 일주일 네다섯 번씩 수업을 듣고 있습니다. 저 말고도 취미로 배우는 일반인들이 많더군요. 춤추는 시간을 늘리려다 보니 자연스레 사람들과 술 마시는 시간이 줄어들었어요. 작년 가을에는 다른 단체에서 진행하는 일반인 대상 워크숍에도 참여했고요.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춤과 관련된 소식도 챙기고, 무용 시즌 프리뷰도 꼼꼼히 살펴보게 됐죠. 요즘에는 춤으로 만난 사람들과 ‘피나 안 인 서울(Pina Ahn in Seoul)’에 참여하게 돼서 창작의 고통을 제대로 느끼고 있답니다. 몇 년 전까지도 이런 생활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는데 말이죠. 몸으로 직접 맞닥뜨리면서 춤이 가진 힘과 매력을 더 크게 느껴가는 것 같습니다.

글 김선영 기자(sykim@) 사진 LG아트센터

호흡을 할 때 나를 느껴보세요
천천히 자신의 숨의 방향과 바람의 기류에
당신의 몸을 맡기세요
그렇게 움직여보세요
_ 로레타 리빙스턴(Loretta Livingston)
서울국제즉흥춤축제 ‘즉흥워크샵’ 수업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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