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렘페러/뉴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로열페스티벌홀 실황반

낭만적인, 너무나 낭만적인 음의 조각가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3년 5월 1일 12:00 오전

전 세기를 풍미한 포디움의 거장 오토 클렘페러(1885~1973)의 유산을 스무 점 넘게 발매한 테스터먼트 레이블이 또다시 대지휘자의 라이브 음원을 정리, 다섯 편의 앨범으로 내놓았다. 최만년 런던 로열페스티벌홀에서 가진 콘서트를 BBC 방송국이 녹음한 것. 악단은 모두 뉴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이다. 수록곡의 면면이 흥미로운데, 제일 눈에 띄는 타이틀은 베를리오즈 환상 교향곡 1966년 1월 30일 실황이다.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동곡의 1963년 스튜디오 버전(EMI)보다도 일층 냉철하고 유니크한 호연으로 이토록 육중한 4악장과 5악장을 만나보기란 좀처럼 쉽지 않으리라. 커플링된 곡은 예후디 메뉴인과 협연한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스튜디오 세션 직후 연주임에도 메뉴인의 솔로가 한결 유연하다.
브루크너 교향곡 5번은 1967년 3월 실황. 클렘페러의 동곡 레코딩은 넉 종이다. 로열 콘세르트헤보를 지휘한 1957년 실황(Arkadia)·뉴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1967년 스튜디오반(EMI)·빈 필하모닉을 지휘한 1968년 실황(Testament)이 그것들로, 금번 시리즈에 담겨 있는 것은 뉴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1967년 3월 실황이다. 포석은 거대하지만, 디테일이 엉키고 앙상블이 산만한 스튜디오반보다 완성도가 월등한 수연이다. 음질도 빈 필 버전에 비해서 양호한 편이다. 같은 날 공연된 슈베르트 교향곡 8번 ‘미완성’은 아홉 종의 음원이 전해지는 지휘자의 단골 레퍼토리다. 템포 설정 면에서 빈 필하모닉과의 1968년 6월 16일 실황(DG)과 흡사한, 과묵하고 숙연한 연주이다.
브루크너 교향곡 7번은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을 지휘한 1956년 실황(Medici Masters)·베를린 필하모닉을 지휘한 1958년 9월 3일 실황(Music&Arts)·빈 심포니를 지휘한 1958년 2월 28일 실황(Testament)·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1960년 스튜디오 버전(EMI)·북독일 방송교향악단을 지휘한 1966년 실황(Music&Arts)·뉴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본 1965년 11월 실황 이렇게 총 여섯 종의 음원이 현존한다. 거침없이 악상을 끌고 나가는 능숙한 견인력이 돋보이는 연주로, 스케르초 악장에서의 독특한 강약 변환은 여전하다. 모차르트 교향곡 40번은 시기적으로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1956년 버전(EMI)과 동일 악단을 지휘한 1962년 버전(EMI) 뒤에 위치한다. 브루노 발터와는 또 다른 고독한 낭만주의의 모습이 드러난다.
슈만 교향곡 2번은 1968년 10월 10일 실황으로 2년 후 같은 뉴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스튜디오 버전(EMI)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느긋한 연주로 테이프 보관 상태가 좋지 않아 사운드에 지글거리는 잡음이 많이 끼어 있다는 게 애석한 단점이다. 모차르트 교향곡 38번 ‘프라하’와 클렘페러가 직접 편곡한 라모의 지그와 여섯 개의 변주곡이 이를 보상해주는 필업곡이라 할 수 없어 더더욱 유감스럽다. 슈베르트 교향곡 8번 ‘미완성’과 베토벤 교향곡 1번이 수록되어 있는 디스크에서는 어둡고 심오한 모차르트 프리메이슨을 위한 장송음악과 베를리오즈 극적 교향곡 ‘로미오와 줄리엣’ 중 사랑의 정경이 한 번쯤 들어볼 만한 트랙이다.

글 이영진(음악 칼럼니스트)


▲ 예후디 메뉴인(바이올린)/오토 클렘페러(지휘)/뉴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Testament SBT2 1479 (ADD, 2C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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