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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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3년 6월 1일 12:00 오전

‘비디오&미디어’전은 미디어 혹은 뉴 미디어 아트가 예술 영역에 거론되기 이전에 존재했던 비디오아트에 그 출발점을 두고 있다. 오늘날 암암리에 비디오아트를 미디어 아트 섹션에 통섭해 사용하기도 하지만, 미디어 아트 자체의 용어는 뉴 미디어 아트 신에서 앞으로 획기적으로 일어날 해프닝을 어느 정도 포함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6월 14일까지, 갤러리 정미소.

 


▲ 1 육병근·전소정 작


▲ 2 김희선 작 Unknown therritory


▲ 3 염지혜 작 solmier, Isoland

컴퓨터 매체가 상용화되지 않아 비디오아트만이 예술 장르에 거론되었던 시기와 현재 미디어 아트의 개념적 차이가 어떠한 방식으로 전시되고, 이론화되어 기록될 수 있을까에 대한 화두를 두고 공론의 담화를 생성하는 것이 본 전시의 궁극적인 목적이다. 전시장 동선에 따라 5명 참여 작가의 작업을 만나보자.
전시장 입구에는 뉴 미디어 아트의 소재로 사용되고 있는 전가영의 LED 작업이 관객을 맞이 한다. 최근 도심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LED 소재가 예술가의 손에 닿게 되면 어떻게 빛을 발하게 되는지를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전가영은 LED 위에 아크릴을 씌우고, 한지를 입혀 그 한지에 드로잉을 했다. 바느질의 흔적을 두어서 빛의 색과 조감도를 조정한다. LED의 컬러풀한 색상보다는 한지의 다양한 색감을 자아내게 해 마치 빛 자체가 본래의 LED 색인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입구에서 몇 걸음을 옮기면 관객은 염지혜의 작업과 마주하게 된다. 염지혜는 일반적으로 영상을 기반으로 하되 영상 화면에서 파생되는 다양한 레이어의 이미지들을 여러 매개 장치를 통해 설치 오브제와 함께 하나의 작업으로 완성한다. 본 전시에서는 그의 ‘솔미어(Solmier ‘외국인’의 뜻을 지닌 가나어)’와 ‘아이솔랜드(Isoland)’를 만날 수 있다. 염지혜 작업의 기본 테제가 되는 것은 자신이 익숙하지 않은 공간이 어느새 집과 같이 안락해지고 또 정착하게 되면 떠날 채비를 시작한다는 점이다. 이렇게 떠날 채비를 하는 장소의 선택 또한 현재 자신이 느끼고 있는 감정 상태 혹은 평소에 떠올리며 지냈던 단어로부터 시작된다. 가령, ‘솔미어’는 가나의 볼가탕가 지역에서 한 달가량 지내면서 제작된 작업 결과물이다. 하지만 작가가 가나에 가게 된 궁극적 동기는 ‘가나초콜릿’ 때문이었다. ‘가나초콜릿’ 한 박스를 들고 찾은 가나의 쿠마시에서 그는 초콜릿을 나누어주는 퍼포먼스를 진행 후, ‘솔미어’의 제작지 볼가탕가로 떠난다. 전시장에서는 그곳에 머무르게 되면서 지역 주민들과 쉽게 교감할 수 있는 흥미로운 상상을 하게 되어 바게트를 뒤집어쓰고 마을을 걷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그것을 기록한 영상물과 함께 실제 가나 현지에서 뒤집어썼던 바게트의 원형을 비롯해 빵이 지금 막 요리되어 부풀어 오르는 동화적 상상까지 가미된 설치작이다.
우리가 거닐 수 있는 공간이 고스란히 투명한 스크린이 되어 길거리를 지나가면서 순간 스쳐 지나가는 행인의 얼굴들, 길을 걸을 때 들리는 사람들의 수군거리는 소리들이 총체적으로 집합되었다. 김희선의 ‘무명의 지역(Unknown Territory)’ 작품은 작가가 15년 전에 유학 시절 수없이 거닐던 사적 경험의 거리를 전시장에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다. 스크린을 기반한 관객 체험작인 이 작업에서는 관객이 텔레비전 모니터를 통해 그 길거리를 정보로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그 길에서 보고, 느끼고, 걸었을 때의 모든 정황을 고스란히 체험하게 된다. 높이 1.3밀리미터의 스크린을 비껴 설치하여 작품을 관람하는 관객은 영상 속에서 걸어오는 행인과 눈이 마주치기도 하며, 또 그들의 사적인 담화까지 생생하게 듣게 된다. 이 작업은 몇 년 전 미디어 아트계에서 화두가 되었던 가상현실, 증강현실론으로 넘어가기 이전에 주요한 화제를 던졌던 작업 형태다.
그렇게 김희선의 작업을 통해 거닐던 골목길을 빠져나오면 우리는 곧바로 육근병의 ‘낫싱(Nothing)’을 바라보게 된다. 그는 최근 양평 스튜디오에 머무르게 되면서 자신이 바라보는 자연과 풍광을 그대로 비디오로 담았다. 자연 빛이 차단되었던 갤러리 정미소 공간의 철판 위에 빔 프로젝션을 투사시킴으로 마치 화면에 등장한 난간의 장면이 밖에서 빛이 새어 들어오는 것과 같은 상황이 연출되기도 한다. 시적인 감성이 풍부하게 삽입된 최근 작품 외에 육근병의 작업세계의 중요한 모태가 되는 ‘비디오 눈(eye)’ 작업을 전시장 조명난간 위에 설치함으로써 누군가가 아래를 내려다보는 시선을 연출했다. 때로는 관객이 비디오의 눈과 갑자기 마주치도록 해 당혹스러움을 경험하기도 한다. 컴퓨터 매체가 예술 영역에서 적극적으로 사용되기 이전 시기의 비디오아트는 텔레비전 모니터를 쌓거나 늘어뜨리는 설치 방법을 택하기도 했는데, 본 전시장에서는 그의 텔레비전박스 자체가 설치 오브제로 변하는 풍경을 볼 수 있다.
이어서 정미소의 유리 바닥 위를 서서히 걷다 보면 가로 5밀리미터의 스크린에 투사된 전소정 작가의 싱글 채널 ‘마이 페어 보이(My Fair Boy)’와 ‘썬 앤드 스타(Sun and Star)’를 만날 수 있다. 그는 지속적으로 예술가가 되기 위한 습관과 유사한 과정을 지닌 사람들을 찾아다닌다. 줄 타는 사람, 오래된 장소성과 함께 몇 십 년의 숙련이 느껴지는 미싱사, 지금은 사라져가는 극장 간판을 그리는 사람 등이 그의 영상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이다. ‘이들의 삶이 과연 예술가의 삶과 무엇이 다를까?’에 대한 의문이 전소정의 작업을 이해하기 위한 출발 지점이기도 하다. 즉, 그들의 숙련된 기술과 하루하루의 삶 속에서 반복적으로 굴러가는 시간과 일의 축척성을 통해 자신의 삶과 그들의 삶을 비교, 반추해보는 테제가 전소정 작업의 중요한 메시지이다.
전소정의 스크린을 지나면 전시장 입구에서도 마주했던 전가영의 LED 작품을 다시 감상 할 수 있다. 프란크 포페르는 ‘전자시대의 예술’에서 레이저아트·홀로그래피아트·비디오아트·컴퓨터아트 등의 기술발전 속도에 따라 생산되는 기계와 매체에 따라 예술 장르를 구분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관점으로 LED라는 소재를 들여다보자면 LED는 현재 뉴 미디어 아트 영역에서 중요한 섹션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도심을 걸을 때 건물 벽면에서 혹은 가로등 불빛 등이 LED 빛으로 대체되어 있는가 하면, 미디어 파사드라는 개념으로 건물 전체에 LED를 설치하기도 한다. 이처럼 제품 자체의 LED 빛과 작가의 손을 거친 LED 소재가 어떻게 다르게 구현되는지 다시 음미해볼 수 있다. 이처럼 본 전시에서는 여러 각도의 작품에 의해 파생되는 의미를 통해 비디오와 미디어를 둘러싼 경계 지점에 대한 이 시대의 또 다른 해석을 비롯해 새롭게 정립되고 있는 기계와 기술에 의해 파생된 ‘아트’ 형태에 대한 연구가 다양한 관점에서 진지하게 이루어지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글 이은주(갤러리 정미소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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