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마뉘엘 베르트랑의 쇼스타코비치 첼로곡집

가을을 예고한 멋진 불안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3년 9월 1일 12:00 오전

“남편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작곡을 했고 그 모습 그대로 유지하기를 원했습니다. 공식적인 장례식이 있었고 추도식이 거대하게 열렸습니다. 사람들은 촛불을 갖다 바쳤고 그는 노보데비치 수도원에 안장되었습니다.”
2006년은 쇼스타코비치 탄생 100주년의 해였다. 그해 여름 모스크바 브류소프 거리에 있는 쇼스타코비치의 자택에서 만난 그의 아내 이리나 수핀스카야 여사의 쇼스타코비치 말년에 대한 회고는 아직도 생생하다. 모스크바를 방문할 때마다 어김없이 찾는 곳이 바로 노보데비치 수도원이다. 크렘린의 출정식이 행해졌던 곳으로 러시아 정신의 상징적 장소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곳에는 러시아를 움직였던 예술가와 흐루시초프를 비롯한 정치가의 묘가 2,000기를 헤아리며 조성되어 있다. 구묘역 동쪽 편에 스탈린 정권과 평생 애증관계에 있으면서 자신의 예술세계를 지켰던 쇼스타코비치의 묘가 단아하게 누워 있다. 묘비명 위에 놓인 이름 모를 참배객이 놓고 간 꽃바구니가 정겨워보였다. 순간 쇼스타코비치의 아파트 거실에 걸린, 화가 보리스 쿠스토디예프가 그린 13세 작곡가의 초상화와 이미지가 겹쳐졌다. 목탄과 붉은 크레용으로 그려진 그림은 파란만장했던 천재의 삶을 예고라도 하듯이 불안한 인상으로 다가왔다. 묘비에 어린 시절 쇼스타코비치의 얼굴이 서린다. 자신의 음악은 묘비와 같다며 생전에 입버릇처럼 말했다던가.
그의 묘비와 같은 음악, 그 방대한 목록 가운데 작곡가의 묘지에 올 때마다 교향곡보다는 유독 첼로 협주곡의 카덴차 악장과 첼로 소나타의 ‘라르고’가 필연적으로 떠오른다. 오직 살기 위해 당국과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죽기까지 계속해야 했던 쇼스타코비치의 여리고도 암울한 심정을 느린 첼로의 운궁만큼 적나라하게 표현해줄 악기는 없을 것이었다. 그러나 협주곡 1번은 므라빈스키 지휘로 초연을 했던 로스트로포비치의 연주는 벅벅 그어대기만 하는 선동에 어딘가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충실한 느낌이 강했다. 미샤 마이스키는 인간적인 모습에 치우쳐 감정 선이 도드라진다. 다닐 샤프란이나 한 세대를 건너뛰어 나탈리야 구트만의 연주가 인간미와 유머 그리고 정치색이 어우러진 명연이었다. 또한 장한나와 소니아 비더 아테르통, 최근의 솔 가베타에 이르는 여성 첼리스트들도 호연을 펼쳤다.
1971년생으로 프랑스를 대표하는 이지적인 외모의 첼리스트 에마뉘엘 베르트랑이 쇼스타코비치의 묘비와 잘 어울리는 연주로 무장하고 가을의 초입에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온통 붉게 물든 앨범 재킷에 형상화된, 반으로 나뉜 앞모습과 옆모습은 정치와 예술 사이에서 고민했던 작곡가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다. 안에 담긴 음악들은 첫 곡부터 입이 떡 벌어진다. 여기에 아르모니아 문디 레이블이 만들어내는 최상의 음향포착과 음질은 명불허전,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협주곡 1번의 1악장, 애매모호하고 불안정한 4개의 음표를 베르트랑은 유연하고도 직선적으로 표현한다. 남성적인 강렬함 뒤에 숨어 있는 슬픈 눈매는 그녀가 얼마나 작품의 본질에 근접했는지 알게 해준다. 덤으로 누리는 행복은 파스칼 로페가 지휘하는 웨일스 BBC 내셔널 오케스트라의 호연이다. 프랑스 지휘자와 협연자, 그리고 영국 악단은 왠지 궁합이 어색하다. 하지만 거침없이 진격하는 호른과 1악장을 마무리하는 팀파니의 솜씨는 최상급이다. 투티에서의 절도 있는 움직임은 또 어떤가! 2악장 앞부분의 현의 요동은 나락까지 떨어지며 처연하다. 그리고 카덴차, 베르트랑은 극히 낮은 음성으로 오열한다. 비브라토의 진폭은 고무줄처럼 늘어난다. 피치카토는 둔탁하면서 여리다. 작곡가가 가진 이중성이 그대로 구현된다. 더블스토핑을 가르는 심호흡은 매우 깊다. 4악장 연결부의 율동미는 기막히다. 그리고 4악장, 6월에 그라모폰 상을 받은 이유를 알게 해준다. 이 소음과도 같은 악장에서 쇼스타코비치의 상처 입은 트라우마와 당국에 대한 반항, 그리고 울분이 입체적으로 녹아 있다. 그리고 마침내 코다에서 극도로 압축된 복잡한 내면이 폭발한다.
첼로 소나타는 파스칼 아모옐의 피아노가 베르트랑의 거친 숨을 고르는 형국이다.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에 이어 작곡한 이유 때문일까. 1936년 1월 28일 아르한겔스키의 정거장에서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의 세 번째 페이지에 사설로 실렸던 오페라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읽은 작곡가의 죽음에 대한 공포는 기나긴 1악장과 3악장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베르트랑의 상상력은 이러한 현실과 맞물려 끊임없이 융합한다. 2악장에서 싹둑싹둑 내려치는 아모옐의 피아노는 프랑스적인 에스프리와는 정반대로, 러시아의 거친 대륙을 지향한다. 백미는 ‘라르고’ 악장이다. 아름답지만 구슬프다. 최약음으로 꺼져가는 후반부는 압권이다. 4악장에서 피아노는 차갑기보다는 윤택하다. 여기에 이들 듀오의 묘한 매력이 감지된다. 하지만 유머와 익살도 잠시, 베르트랑은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모데라토’에서 다시금 노보데비치 수도원의 묘비로 이끌어간다. 최근 프랑스인이 해석한 최고의 쇼스타코비치 음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글 유혁준(음악 칼럼니스트)


▲ 에마뉘엘 베르트랑(첼로)/파스칼 아모옐(피아노)/파스칼 로페(지휘)/웨일스 BBC 내셔널 오케스트라
Harmonia Mundi HMC 902132(DD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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