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칼&아미 로제의 드뷔시 ‘바다’, 라벨 ‘스페인 랩소디’ 외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3년 9월 1일 12:00 오전


▲ ⓒMark Higby

최근 20년간 세계 피아노계에서 간과할 수 없는 흐름은 프랑스 출신 피아니스트들의 눈부신 약진이다. 무엇보다 이들이 프랑스권 작품에서 벗어나 다양한 분야에서 그 음악적 영역을 확대시키는 점이 흥미롭다. 이럴수록 참으로 풀기 힘든 질문, 즉 도대체 어떤 것이 프랑스적인 음악인지, 나아가 프랑스적 피아니즘의 실체는 어디서 그 근원의 실마리를 제공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다. 아이러니·세련됨·의식적인 고상함·뉘앙스의 강조… 만약 이런 것들이 프랑스 피아니스트들의 이미지로 떠오른다면 우리가 먼저 찾아야 할 인물은 이제 60대 초반을 달리고 있는 파스칼 로제일 것이다. 스스로 설립한 오닉스 레이블에서 다섯 장에 걸친 드뷔시 대표 레퍼토리 재탐색을 마치고 원숙기에서 모든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벌이고 있는 파스칼 로제. 그의 최근 모습은 상당히 홀가분한 느낌이다. 1970년대에 들려줬던 단단한 음상이나 날카로운 터치는 다소 어눌해졌지만, 화려하고 치열했던 음표들의 자리에 작품과 작곡가에 대해 한층 넓어진 총체적 관점이 넉넉하게 들어선 모습이 흐뭇하다. 부인인 아미 로제와 함께 한 이번 듀오 앨범 역시 부담 없이 프랑스 근현대 작곡가들의 현란한 색채감각과 조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관현악곡과 연계시켜 감상하고 비교할 수 있는 작품들이지만 특별히 강한 사운드와 넓은 스케일을 의식하지 않았다는 점도 뛰어나며, 정교한 호흡을 의식하지 않으면서도 두 사람의 공감과 정겨움이 시종 흘러나온다.
드뷔시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은 은근한 서정성과 우아한 표현이 매력적이다. 대비보다는 ‘번짐’ 효과를 낸 듯한 해석의 방향도 멋진데, 굳이 설명하자면 흐릿한 흑백 영상이 주는 오랜 여운이다. 오케스트라를 위한 독보적인 걸작 ‘녹턴’은 라벨이 두 대의 피아노용으로 편곡했는데, 그중 비르투오소적인 두 번째 악장 ‘축제’는 낙천적인 흥겨움과 깨끗한 음색이 이색적이다. 한 대의 피아노 – 네 손을 위한 라벨의 ‘어미 거위’는 두 사람의 지적인 풍모가 강하게 나타난다. 다섯 악장을 도입과 에필로그로 만들어놓은 듯 논리적인 배치가 인상적이며, 소품에서 나타날 수 있는 상징성 역시 풍부하다. 중국 인형을 묘사한 ‘파고다의 여왕 레드로네트’는 자극적인 리듬감이나 악센트보다는 흥겨움이 앞서며, 마지막 곡인 ‘요정의 꽃동산’은 텍스트에서 나타나는 환상성보다는 연주자들 간의 아기자기한 대화를 중시한다.
로제 부부가 연주를 위해 직접 편곡한 드뷔시의 ‘바다’는 앨범의 하이라이트다. 작곡가의 심리와 상상력에 대한 교감과 솔직담백한 표현, 피아니즘으로 그릴 수 있는 자연 현상에 대한 특성까지 오랜 경험이 묻어난다. 1악장 ‘바다의 새벽부터 정오까지’에서는 대양의 흐름과 색채 변화를 위해 피아노 두 대가 들려줄 수 있는 지속음의 한계를 보여주는데, 그만큼 교묘한 음의 배열과 대화가 인상적이다. 격정적인 파도의 변화무쌍함을 은유적으로 들려주는 3악장 ‘바람과 바다의 대화’는 지나치게 몰아치지 않는 진행으로 자연스런 스케일의 확장을 꾀하고 있다. 생상스의 개성적인 소품 스케르초 Op.87 역시 직접적인 흥겨움보다는 내면의 즐거움이 우선이며, 두 사람이 늘어놓는 퍼즐과 같이 아기자기한 음표들의 진행과 여유로움이 앨범 전체를 마무리하는 역할을 한다.

글 김주영(피아니스트)


▲ 파스칼 로제·아미 로제(피아노)
Onyx 4117 (DD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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