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덱 컬렉션

텔덱은 무엇을 남겼는가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3년 11월 1일 12:00 오전


▲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

텔덱 레이블의 방대한 유산 중에서 50장의 스냅샷을 골라낸 이 박스는 20세기 클래식 음반 산업의 성장과 영광, 그리고 갑작스런 소멸에 관한 기록이다. 1929년 독일의 전자 기기 회사인 텔레풍켄이 음악산업 분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이듬해 쿠르트 바일의 ‘서푼짜리 오페라’(CD44)를 초연 멤버 거의 그대로 기용해 녹음한 것을 텔덱의 출발점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텔레풍켄 음반사는 별다른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고, 1950년 녹음 기술과 판매 유통 부분에 있어 제휴 관계에 있던 데카(Decca) 레코드와의 합작 투자를 통해 텔덱(TEL+DEC)이라는 새 이름을 얻게 된다. 당시 텔텍은 두 모회사의 제품들을 유통하거나 프로젝트성 음반을 제작했는데, 1958년 시작한 고음악 시리즈 다스 알테 베르크(Das Alte Werk) 역시 이런 기획의 하나였다. 이 시리즈는 예상외의 성공을 거두었다. 이에 따라 이 시리즈에 사업을 집중하게 되면서 텔덱은 고음악 전문 레이블로 알려지게 된다. 알반 베르크 현악 4중주단의 데뷔 시절 녹음(CD31)을 제외하면 이 박스에 1960~1970년대 기록이 전무한 것은 그런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다.
1980년대 초 텔레풍켄과 데카는 텔덱의 지분을 정리했고, 1988년 워너 클래식스로 매각되면서 비로소 우리가 알고 있는 텔덱의 영광 시대가 시작된다. 1980년대는 클래식 음반업계 최대의 황금기였다. CD는 음반업계 스스로가 전망한 장밋빛 기대치마저도 보수적으로 보이게 만들 정도로 기존의 LP 레코드를 빠르게 대체해나갔으며, 새로운 녹음에 대한 수요는 늘어만 갔다. 이에 자극받은 워너 클래식스는 텔덱을 단기간에 메이저 레이블로 변모시켜 수많은 스타 아티스트들을 영입하고 대형 프로젝트들을 여럿 성사시켰다. 인발(CD11)과 바렌보임의 브루크너 전집, 마주어의 멘델스존(CD21), 로스트로포비치의 쇼스타코비치(CD34), 아르농쿠르(CD2)와 바렌보임의 베토벤 교향곡 전집, 바렌보임의 바그너(CD40·41)가 카탈로그를 채우면서 텔덱은 외면적으로는 1990년대 가장 성공한 클래식 음반사처럼 보였다. 하지만 영광의 시대는 갑작스레 종말을 맞았는데 2001년 워너 클래식스가 클래식 음반 사업을 정리하면서 텔덱은 에라토와 함께 문을 닫고 말았던 것이다. 사실 텔덱이 메이저 레이블이 되었던 것은 시장에서의 수요를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모회사의 사업 구상에 텔덱이라는 이름이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워너가 AOL과 합병되면서 수익이 남지 않는 클래식 음반 사업을 지속해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게 되자 퇴출이 결정되고 말았다. 사실 메이저 레이블로서 텔덱의 몰락은 필연적이었다. 도이치 그라모폰이 수익이 보장되지 않는 20/21이라는 현대음악 시리즈를 출범시키자 곧바로 뉴 라인(New Line)이라는 현대음악 프로젝트(CD5·17)를 론칭한 것은 실속보다는 외형을 중시한 것으로, 이는 곧 수익 악화로 연결되었다. 아르농쿠르(CD13·15·33·35·46) 외에는 레이블을 떠받을 만한 아티스트가 없었던 텔덱이었지만 아르농쿠르는 결코 카라얀이나 파바로티가 될 수 없었다. 그런 텔덱이 무엇을 남겼는가에 대한 해답은 여기 50장의 CD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1980~1990년대 가장 강력했던 레이블의 기록들이 여기 있는 것이다.

글 송준규(음악 칼럼니스트)


▲ 아르농쿠르·바렌보임(지휘)/유럽 체임버 오케스트라·베를린 필·알반 베르크 현악 4중주단·보로딘 현악 4중주단 외
Teldec 2564643851A (ADD, DD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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