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세연 개인전 ‘스페이스 오디세이’

신화, 그 너머의 상상력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3년 11월 1일 12:00 오전

오늘날 신화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신화를 통해 우리가 획득하는 가장 큰 가치 가운데 하나는 현대 사회의 과학적인 방식을 통해 도달되지 못하는 상상력을 복원하는 데 있다.


▲ room

“오디세우스가 그의 기억을 잃고 여정을 통해 회상하려고 한다. 그는 카오스의 가운데에 존재하며, 그의 기억에 반응하는 방법은 기억의 실을 따라가는 것이다. 이 기억의 실로 시작된 시스템은 회전하는 건축 표면으로 경계 공간의 복합체인 것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또는 역행하면서 인접한 공간의 표면에 나타난 다른 공간 내부의 흔적을 찾아 표류한다. 서로 다른 지점에서 사건을 연결시키는 시스템은 인터페이스를 통해 공유하고 각각의 움직임에 대응한다. 이 시스템은 리좀 네트워크 또는 하이퍼텍스트 표면으로 객체가 없는 다른 공간을 드러낸다. 공간에서의 변위를 연속된 기하학적인 흔적으로 직조하여, 행동이 페브릭-텍스처로 변환되어 경계 공간의 막으로서 사건을 나타난다.”
– 허세연 작가의 글 중에서

작가 허세연은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했고 철학에 심취하였으며 예술과의 경계를 탐구하는 데 관심을 가지고 건축과 예술의 경계선 넘나들기를 구상하고 있다. 갤러리 정미소 개인전을 통하여, ‘오디세이’라는 신화적 담론에서 출발한 새로운 도시와 장소, 공간 탐험을 재현하려 한다.
왜 우리는 신화에서 다시 시작하려 하는가. 과학적 사고의 출현과 함께 신화는 공중분해되었고, 다만 그 파편만이 남아있다. 오늘날에는 무엇보다 과학이 옛날 신화가 다루고 있었던 많은 문제에 답을 부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우리는 결국 신화 분산의 시대, 신화 해체의 시대에 살고 있다. 과거의 신화를 가져와서 단순히 신화를 복원하려는 것은 아니며, 소설과 같은 이상한 이야기만을 만들려고 하는 것도 아니다. 신화적 가능성을 통하여 새롭게 재정의할 수 있는 상상적 이야기를 탐구하는 데 의미를 찾고 싶다. 신화를 통하여 획득되는 가장 큰 의미는 현대사회의 과학적인 방식을 통하여 도달되지 못하는 상상력을 복원하는 데 있다. 신화를 통한 상상력은 과학이 이루어낼 수 없으리라 가정되는 결합과 변위를 제공한다. 과학이 도달될 수 없는 철학적이며 문학적이고 영화적인 결합에 도달되기를 원하는 것이다.
허세연의 오디세이적 신화는 근본적인 물음을 향한 표류와 항해를 통한 경계 공간의 여정을 출발한다. 기억을 잃고 자신의 집으로부터 도시로 떠나며 일어나는 과정을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비춰 전개한다. 오디세이의 여정은 현대 도시인들이 자신의 집에서 도시로 떠나가는 여정의 비유이며 상실된 정신적 혼돈을 대변한다. 단순히 물리적으로 구축되는 현실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들뢰즈적 좌표와 구조를 통하여 끊임없이 초현실적인 공간의 탐험 과정을 통하여 새로운 경계로의 확장을 꿈꾸는 전제를 포함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성찰된 건축적 발견은 건축실현의 한 부분으로의 작용점을 찾는 과정이며, 도시의 잠재적 요인을 발견하는 새로운 사고적 확장을 의미한다.
허세연의 신화적 여정은 도시를 항해하는 움직임의 궤적과 형태를 탐색하고 디지털적인 결과물로 드러냄으로서 더욱더 신화적 현상을 실현한다. 초현실적인 오브제와 전개를 통해서 무한한 상상력의 내러티브를 원형의 입자로 생성된 기계적인 메커니즘으로 결론짓는 것도 흥미롭다. 결국 신화는 근대 과학혁명이 우리에게 상상력을 과거에 제공한 것과 같이 시간을 초월한 매개 고리를 찾아내고 있는 것이다. 오디세이의 항해의 불분명한 경계인 유토피아도 아닌 디스토피아도 아닌, 아토피아(atopia)의 장소이면서 장소가 아닌 새로운 영역으로 도달된다. 현재에는 실현되지 않은 불안정하지만 새로운 잠재적인 차원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이다. 10월 25일~11월 15일, 아트스페이스 갤러리 정미소.

글 장윤규(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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