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가을, 그날의 공기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3년 11월 1일 12:00 오전

정확히 만 10년 전. 2003년 10월 월간객석 입사를 위한 마지막 면접이 있었습니다. 발행인 이하 회사 임원들 앞에 서는 자리였습니다,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3분 이내에 박용완 씨 본인을 설명해보세요”라고 말하던 발행인, 온몸이 딱딱하게 굳는 긴장감을 등 뒤에 꽁꽁 숨긴 채 26년 평생을 3분 내로 압축해 설명하던 제 모습이 영화의 정지 장면처럼 정확히 그려집니다. 그때 저는 무슨 객쩍은 혈기인지, 고등어 한 마리가 통과하고도 남을 만큼 성근 검은색 망사 스타킹을 신고 집을 나섰습니다. 만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 망사 스타킹이 행운을 가져다 주었다고, 혹은 저를 아주 정확히 대변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날의 엉뚱한 차림새처럼, 무모할 정도의 용기와 객기로 지난 10년간 한자리를 지켰습니다. “먼 훗날 늙어 세상 떠날 때 자식이나 남편 이름을 부르겠지, 설마 ‘객석!’ 하고 외치겠어. 너무 집착하지 마.” 어느 어른이 꽤 안타까운 말투로 이런 조언을 들려주신 적도 있었습니다. 한 달의 일주일은 천국에 살았고, 일주일은 지상에 발 붙인 듯, 또 다른 일주일은 불판 위 맨발처럼 종종 거리며… 그렇게 120권의 ‘객석’을 만들며 살았습니다.
되돌아보니, 왜 슬프고 아팠던 기억만이 선명한가요. 낯선 나라, 낯선 도시에서의 고생고생. 마감으로 사흘간 씻지 못해 온갖 냄새를 풍기던 몸뚱이, 지면에 실린 혹평을 향한 더욱 처절한 구두(口頭) 혹평, 정확히는 혹독한 항의, 급작스런 선배의 퇴사에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늘어졌던 순간, 온 마음을 주었던 후배들과 서로의 가슴에 굵은 상처를 그으며 헤어졌던 날, 어쩌면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환경들.
지금 월간객석이 큰 변화 앞에 놓여 있습니다. 이 잡지를 자아(自我)처럼 여기는 남은 사람들은 그 변화에 몸을 실었습니다. 어떻게 될지, 나름 편집장이라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로써 또 한 번의 무능을 느낍니다.
지난 10년은 정말 강렬했습니다. 온전히 행복했다고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그저 강렬했습니다. 제 인생의 3분의 1을 선명히 채워준 오직 하나의 존재에, 그 강렬한 시간을 만들어준 분들께 진정한 감사를 표합니다. 직접 말해보라 하면, 가슴 깊숙이부터 심히 울렁거려 입을 뗄 수 없을 만큼의 감사입니다.
마음 약해진 2013년 가을. 다시금 10년 전의 호기로움으로 “저는 영원히 ‘객석’을 지키겠습니다!”라고 소리 지르고 싶습니다. 지키고 싶은 다짐이든, 지킬 수 없는 약속이든…. 오래전 그날, 입사 최종면접을 마치고 바로 이 건물을 나서던 그날의 신선한 공기가 절실합니다.

박용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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