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사 데 셀라의 ‘라 요로나’

서른 일곱에 생을 마감한 여가수의 울부짖음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3년 12월 1일 12:00 오전

바라볼 때마다 아쉬움이 묻어나는 음반이 있다. 몇 해 전 파견 근무지 파리에서 혼자 생활하며 남는 시간을 온통 공연장 순례로 보내던 시절이었다. 그해 봄, 공연 예매 사이트에서 라사 데 셀라의 이름을 발견하곤 6개월 후 있을 공연 티켓을 구매해 하늘이 두 쪽 나더라도 그 공연은 반드시 보리라는 다짐을 해두던 터였다. 그런데 공연을 2주일 앞둔 어느 날 공연예매 사이트에서 그녀의 공연이 사라졌다. 두어 시간의 구글링으로 정보를 찾아 헤매다 물어물어 확인해본 결과 건강상의 문제로 공연이 취소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가수라면 누구나 서고 싶어 하는 파리 올랭피아 극장의 공연을 취소할 정도면 병세가 상당히 심각한가보다 생각했다.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활동하던 멕시코계 미국인 가수 라사 데 셀라. 그녀의 음반 ‘라 요로나(La Llorona)’는 멕시코의 리듬에 집시·포크·샹송에 에스파냐어 보컬이 버무려져 세상 어디에서도 들어볼 수 없는 독특한 음악세계를 보여준다. 음악 장르를 떠나 이 음반이 특별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라사가 불렀기 때문이다. 그녀의 창법이 이 음악을 차별 짓게 만드는 데 가장 큰 몫을 한다.
그리스 신화의 메데아를 비롯하여 신화나 전설에 등장하는 여자들은 변심한 남자에게 복수를 하는 방편으로 자식을 죽이는 편을 택한다. 멕시코 전설 속의 마리아도 사랑하는 남자를 얻기 위해 자식들을 물에 빠트려 죽이는데 남자가 끝내 변심하자 강물에 뛰어들어 목숨을 끊는다. 저승의 문턱에서 자식들의 행방을 찾았으나 자식들을 데려오지 않아 내생으로 들어가는 것이 허락되지 않은 마리아는 울부짖으며 온 구천을 떠돌게 된다. 그래서 울보라는 뜻의 ‘요로나(llorona)’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라사의 앨범 타이틀이 ‘라 요로나(La Llorona)’인 것은 그녀가 울부짖듯 노래하기 때문일 것이다.
라사는 독특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작가인 멕시코계 미국인 아버지와 사진가인 유대계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이들은 히피 문화의 세례를 받은, 소위 68세대였다. 라사의 부모는 각자 데려온 아이들과 함께 낳은 아이들까지 모두 열 명의 아이들을 노란 스쿨버스에 태우고, 버스 안에서 숙식을 하며 미국과 멕시코 국경 지대를 떠돌았다. 아버지의 글과 어머니의 사진을 팔거나 농장에서 오렌지를 따면서 생계를 꾸려나간 형제들은 경제적으로는 궁핍했을지언정 문화적으로는 매우 풍족한 성장기를 보냈다. 라사는 학교에 가는 대신 가족들에게 글과 음악을 배우고, 밤이면 자신들이 창작한 연극을 부모 앞에서 상연하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라사의 친자매 중 두 명은 프랑스의 서커스 극단 배우가 됐고 그녀는 가수가 됐다.
‘라 요로나’는 1997년에 발매된 그녀의 첫 음반으로, 유럽과 미국·캐나다에서 70만 장 가까이 판매된 베스트셀러다. 당시 수입된 음반을 내내 아껴가며 듣고 있던 중, 그녀의 공연이 취소된 2009년 초겨울 무렵 파리의 한 음반 매장에서 재발매된 콜렉터용 음반을 발견했다. 그때 마치 그녀를 다시 본 듯 반가운 마음에 대여섯 장을 구입해 아끼는 이들에게 선물하고 남은 것을 소장하고 있는 중이다.
이듬해 1월 첫날 아침, 언제나처럼 잔뜩 찌푸린 파리의 겨울 하늘을 내려다보며 CD 플레이어에 얹은 동그란 음반이 바로 ‘라 요로나’였다. 음악을 들으며 신문을 펼쳤는데 그녀가 유방암으로 서른일곱 짧은 생을 마감했다는 부고가 실려 있었다. 가슴 한편이 서늘해지며 그녀의 공연을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것이 못내 안타까웠다. 그녀의 영혼이 요로나처럼 구천을 떠돌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글 신경아(프랑스문화원 홍보담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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