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에는 왜 베토벤 ‘합창’인가

인류를 향한 박애정신 담긴 베토벤 교향곡 9번, 미약했던 시작에서 이데올로기 침식까지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3년 12월 1일 12:00 오전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어김없이 12월 정기연주회에서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을 연주한다. 대전시향과 부산시향도 이 대열에 합류했다. 의정부예술의전당에서는 의정부시합창단과 시민 합창단이 연합으로 이 곡을 연주한다. 해외로 눈을 돌려보면 샌디에이고 심포니·시애틀 심포니·빈 심포니·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가 교향곡 9번을 연말 무대에 올린다. 샅샅이 뒤져보면 전 세계 무대에서 울려 퍼지는 ‘합창’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사실 ‘합창’이 평소에는 베토벤의 9개 교향곡 중 합창과 독창자를 동원해야 한다는 번거로움 때문에 그리 자주 연주되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연말이 가까워오면 ‘합창’의 연주 빈도가 급속히 증가한다.
베토벤 페스티벌은 물론 굵직한 정치 이벤트나 기념행사를 축하하는 무대에서도 ‘합창’을 빼놓을 수 없다. 1845년 8월 10일 베토벤 탄생 75주년 기념 음악제 개막 공연을 장식했다. 1963년 10월 15일 베를린 필하모니 개관 공연, 1981년 10월 8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개관 공연, 1967년 4월 30일 몬트리올 엑스포 개막 축하 공연, 1998년 나가노 겨울 올림픽 개막식, 2007년 와세다 대학 개교 125주년 기념 음악회도 ‘합창’, 지난 10월 27일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개관 40주년 음악회의 피날레를 장식했다. 11월 2일 서울 광림교회 60주년 기념 음악회, 11월 29일 대구 시민회관 재개관 공연에서도 ‘합창’이 연주되었다.
베토벤의 교향곡 9번은 음악사에서 독창자와 합창을 동반하는 최초의 교향곡이다. 독창과 합창이 등장하는 말러 교향곡에 영감을 주었음에 분명하다. 베토벤의 후계자로 자처한 리스트는 ‘합창 교향곡’ 에 대해 “음악의 거대한 피라미드” “판테온(萬神殿)”이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자신의 ‘파우스트 교향곡’에 합창을 삽입하기도 했다.
‘합창’이 헨델의 ‘메시아’와 더불어 송년음악회 단골 레퍼토리로 자리 잡은 것은 언제부터일까. 시작은 매우 미약했다. 베토벤 시대에는 작곡가가 직접 음악회를 기획해 자기 작품을 연주하기도 했는데, 1824년 5월 7일 빈 케른토너 극장에서 베토벤 교향곡 9번을 초연할 때가 그랬다. 작곡에 기획에 지휘까지 맡으려고 했으나 청력 상실로 인해 독일 궁정 오페라단 오케스트라의 악장 미하엘 움라우프에게 대신 맡기고 자신은 ‘총감독’으로서 무대 위에 올라 각 악장의 빠르기만 알려주었다. 베토벤은 빈의 귀족이나 청중이 자기 음악을 별로 이해해주지 않는다고 불만을 품은 나머지 이 곡을 베를린에서 초연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몇몇 소수 베토벤 지지자들의 격려에 힘입어 빈 초연을 감행했다. 다른 베토벤 콘서트에서 종종 발생했던 ‘연주 중단’ 사태는 없었다.
베토벤은 녹색 드레스 코트를 입고 무대로 나왔다. 모처럼 말끔하게 이발도 했다. 이날 공연은 베토벤에게 매우 특별한 무대였음에 분명하다. 오페라 반주에 익숙해 있던 현악기 주자들은 이 교향곡 악보를 보고 매우 당황했다. 당시 관습대로 악장이 끝날 때마다 박수가 터져 나왔다. 가장 큰 박수는 마지막 4악장이 끝났을 때 나왔다. 650석에 입석까지 보태 1천 명이 관람했지만 흥행에 성공을 거두진 못했다. 티켓 1천 장을 팔아도 독창자와 합창단, 오케스트라 출연료에 대관료까지 주고 나니 적자였다. 초연의 ‘성공’에 힘입어 5월 23일 앙코르 공연이 열렸다. 그날따라 유난히 화창한 일요일 오후 시민들은 교외로 나들이를 가고 시내는 텅텅 비었다. 객석은 반쯤 비어 있었다. ‘합창’과 함께 연주된 곡은 베토벤의 ‘헌당식 서곡’, ‘장엄미사’ 중 키리에, 크레도, 아뉴스 데이 등이었다.
교향곡 9번의 하이라이트는 ‘합창’이라는 별명이 말해주듯 4악장 ‘환희의 찬가’다. 가사는 프리드리히 실러가 쓴 시의 일부를 발췌했다. 베이스 독창으로 시작하는 첫 부분 “오 친구여 이런 곡조는 그만두고 더 즐겁고 기쁜 노래를 부르자”는 베토벤이 직접 가사를 썼다.

환희여, 신들의 아름다운 광채여/낙원의 처녀들이여/우리 모두 감동에 취하고 빛이 가득한 신전으로 들어가자/악한 현실이 갈라놓던 이들을 신비로운 그대의 힘은 다시 결합한다/
그대의 다정한 날개가 깃드는 곳, 모든 인간은 형제가 된다/…억만의 인간이여! 서로 손을 마주잡자/이 포옹을 전 세계에 퍼뜨리자!…

실러의 시는 1785년에 완성되었다. 사실 실러 자신은 이 시에 별로 가치를 두지 않았다. 처음엔 ‘자유의 찬가’였는데 혁명과 자유라는 글자만 나오면 과민 반응을 보였던 메테르니히의 보수 정권의 검열을 의식해 ‘환희의 찬가’로 바꿨다. ‘자유’라는 표현은 사라졌지만 가사에 담긴 만민 평등의 메시지 때문에 바쿠닌·엥겔스·레닌 등이 이 곡을 즐겨 들었다. 로맹 롤랑은 ‘합창’을 가리켜 “인류애와 사해동포주의, 이성과 환희로 건설한 이 땅 위에 선포된 천국 복음”이라 말했다.
베토벤의 ‘합창’ 이전에도 같은 가사로 카를 젤터와 슈베르트가 각각 합창곡(1792년)과 가곡(1815년)으로 발표했다. 차이콥스키는 1865년 러시아 가사로 독창, 합창, 관현악을 위한 작품을 썼다. 마스카니는 이탈리아어 가사로 칸타타를 발표했다. 멘델스존은 자신의 교향곡 2번에 `환희의 송가’라는 제목을 붙이기도 했다. 요한 슈트라우스는 ‘억만의 인간이여 서로 손을 마주잡자’라는 제목의 왈츠를 작곡했다.


‘합창’이 송년음악회의 단골 메뉴로 자리 잡은 것은 이 곡에 담긴 자선과 박애정신 때문이다. “모든 인간은 형제가 된다”는 가사가 이를 잘 말해준다

EU 본부에 전화 걸면 ‘합창’이 울린다?
‘합창’이 송년음악회의 단골 메뉴로 자리 잡은 것은 이 곡에 담긴 자선과 박애정신 때문이다. “모든 인간은 형제가 된다”는 가사가 이를 잘 말해준다. 1837년 이그나츠 모셸레스의 지휘로 런던 드러리 레인 극장에서 열린 자선 음악회에서 연주된 이 곡은 ‘전 인류의 할렐루야’라는 별명을 얻었다.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의 세속 버전인 셈이다. 바그너는 1846년 4월 5일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단원 유가족을 돕기 위한 자선 음악회에서 이 곡을 지휘했다. 그는 서양음악이 폭풍우에 모두 사라지더라도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은 반드시 구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1846년 뉴욕 필하모닉이 이 곡을 미국 초연한 것도 음악당 건립을 위한 자선 음악회에서였다. 2012년 정명훈 지휘의 아시아 필하모닉은 북한 어린이 돕기 위한 자선 음악회를 위해 이 곡을 골랐다.
연말 송년음악회의 효시는 1918년 12월 31일 라이프치히에서 열린 ‘평화와 자유의 축제’다. 밤 11시에 음악회를 시작해 자정 정각에 4악장을 시작하도록 꾸몄다. 2010년 성남아트센터, 2011년 고양 아람누리 도 ‘합창’으로 장식했다.
‘합창 교향곡’은 각종 정치 행사에서 자주 연주됐다. 가장 대표적인 이벤트가 1989년 12월 23일 베를린 필하모니에서 열린 베를린 장벽 붕괴 축하 공연이다. 독일·프랑스·미국·영국·러시아 등 제2차 세계대전 참전국 출신 단원들로 구성된 연합 오케스트라가 레너드 번스타인의 지휘로 ‘합창’을 연주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으로 종탑이 두 동강 난 빌헬름 황제 기념교회당 옆에서 수많은 군중이 모여 대형 스크린으로 공연 실황을 지켜봤다. 같은 해 11월 9일 베를린 장벽 붕괴 생중계 방송에서는 미구엘 리오스가 영어 가사의 팝송으로 부른 ‘환희의 노래’가 배경음악으로 흘렀다.
이 밖에도 1936년 베를린 올림픽 개막식, 1937년 파리에서 열린 독일 박람회, 1942년 히틀러 생일 전야제, 1946년 독일 사회주의통일당(SED) 창당 전야제, 1981년 프랑수아 미테랑의 프랑스 대통령 당선 축하 공연, 2005년 유네스코 창설 60주년 기념 음악회, 2010년 유럽 연합 창설 주창 60주년 기념 행사에서 연주되었다. 중동 평화를 위해 다니엘 바렌보임이 창단한 서동시집 오케스트라가 2011년 8월 임진각 평화누리에서 연주하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서독과 동독은 서로 누가 베토벤 추모 사업을 더 잘하는지를 놓고 불꽃 튀는 경쟁을 벌였다. 동독에서는 1952년 베토벤 서거 125주년 기념 행사를 성대히 치렀다. 동독 지도자들은 베토벤에게 “자유와 진보를 위한 투사” “열정적인 휴머니스트” “마르크시스트”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환희의 찬가’는 1956·1960·1964·1968년 올림픽에서 동서독 단일팀의 국가로 사용되었다.
4악장 ‘환희의 찬가’가 유럽연합(EU)의 공식 국가로 연주된다는 사실은 ‘합창’의 정치적 수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카라얀의 편곡을 거쳐 1985년 공식 승인을 받았다. 원곡의 빠르기는 ♩=120이지만 ‘유럽 국가’에서는 ♩=80으로 늦췄다. 2004년에는 재즈·테크노·록·오르간 버전의 음반이 나왔는데 EU 본부의 전화 대기음으로 사용되었다. ‘환희의 찬가’를 유럽연합의 국가로 사용하자는 제안은 1955년부터 꾸준히 나왔다. 독일 작곡가의 음악이 유럽 연합의 국가로 채택된 것은 베토벤이 경을 초월해 전 인류에게 존경받는 작곡가인데다 EU의 이상인 자유·평화·단결을 잘 표현한 음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같은 메시지를 담고 있는 가사는 독일어라는 이유 때문에 빠졌다. 반주부만 피아노, 브라스 밴드 또는 오케스트라로 연주된다. 실러의 가사를 독일어가 아닌 라틴어로 번역해 부르자는 사람도 있다. 헨델의 ‘왕궁의 불꽃놀이’ 피날레 악장이나 샤르팡티에의 ‘테데움’을 쓰자는 제안도 있었으나 ‘환희의 찬가’에 밀려나고 말았다.

‘합창’을 끊임없이 침식해온 정치 이데올로기
요즘 전 세계에서 ‘합창’이 가장 자주 연주되는 나라는 어디일까. 정답은 일본이다. 일본 전역에서 매년 160회 이상 연주된다. 전문 연주단체가 연주하는 숫자다. 아마추어 오케스트라까지 합치면 훨씬 많다. 매년 12월이 되면 도쿄에서만 다이쿠 연주회가 25회 정도 열린다. 한 달 안에 줄잡아 거의 매일 한 차례씩 ‘합창’이 울려 퍼진다는 얘기다. ‘합창’은 일본에서 ‘다이쿠(第九)’라는 별명으로 더 알려져 있다. 일본인에게 ‘다이쿠’는 서양인에게 ‘올드 랭 사인’, 기독교인에게 ‘메시아’와도 같은 존재다. ‘다이쿠’를 연주해야 비로소 새해를 맞는 기분이 든다. ‘다이쿠’ 중 ‘환희의 찬가’를 오케스트라 반주와 함께 부를 수 있는 가라오케 디스크도 나와 있다. NHK TV는 ‘다이쿠’의 합창 파트를 배우는 특강을 방영하기도 했다.
1980년대 중반부터 도쿄 스미다 국기원에서는 5천 명, 오사카 성에서는 1만 명의 합창단이 모여 매머드 규모의 다이쿠 연주회를 열고 있다. ‘다이쿠’에 참가하기 위해 1년 내내 모여 연습하는 아마추어 합창단도 많다. 국내에서도 이를 본떠 1990년 홍연택 지휘의 코리안심포니가 잠실실내체육관에서 ‘5천명이 연주하는 합창’ 연주회를 열었다.
‘합창’이 일본 영토에 처음 상륙한 것은 제1차 세계대전 직후다. 1918년 당시 일본은 영국의 동맹국 자격으로 동남아의 영국 식민지를 보호하고 있었다. 중국 칭타오에서 데려온 독일인 전쟁 포로들이 도쿠시마 나루토 수용소에서 반주 없이 ‘환희의 찬가’를 부른 것이 효시다. 그 후 ‘합창’은 일본 대표 선수단의 베를린 올림픽 출정식, 도쿄대 학생들의 대동아 전쟁 참가 송별 음악회, 태평양 전쟁 생존자 위로 음악회에서 연주됐다.
일본인에게 ‘합창’은 어떤 존재이기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매년 수천 명이 합창단으로 참가하는 것일까. ‘합창’이 일본에 본격 상륙할 때는 제2차 세계대전 중이었는데 당시 일본은 독일과 동맹국이었다. 우연한 기회에 시작된 문화교류로 싹튼 ‘다이쿠’ 연주가 제2차 세계대전 때는 독일 문화에 대한 존경심, 군사적 프로파간다를 거쳐 전후에는 평화에 대한 갈망, 새해맞이 축제의 일환으로 발전했다. 일본인에게 ‘다이쿠’는 평화와 위로, 치유의 상징이다. 아마추어 합창의 열기와 일본인 특유의 집단주의가 ‘다이쿠’ 열풍을 더욱 부채질한 것이다. ‘다이쿠’ 연주는 일종의 종교 집회다. 하지만 군국주의의 부활을 염려하는 사람이라면 매년 1만 명이 모여 함께 노래하는 모습에서 섬한 두려움을 느낄지도 모를 일이다. 베토벤의 ‘합창’은 작곡자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정치 이데올로기로 가장 많은 침식을 받은 음악임에 분명하다.
글 이장직 객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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