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위의 젊음, ‘빛’을 향해 날았다

김선욱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대장정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1월 1일 12:00 오전

스물다섯 살 피아니스트가 악성(樂聖)의 무게를 털어내고 가벼운 날개 달기까지, 그 서른두 곡의 여정을 되짚어본다

피아니스트 김선욱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시리즈의 첫 번째 무대를 앞둔 2012년 3월 29일 저녁 LG아트센터. 베토벤의 초기 소나타가 이렇게 인기 있었던가.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첼리스트 정명화 등 거장급 연주자에서부터 잔뜩 기대에 부푼 초등학생에 이르기까지 로비는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아마도 연주 레퍼토리보다는 약관 25세의 젊은 스타 연주자와 그가 당차게 내놓은 ‘전곡 연주’라는 이벤트가 더 매력적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나타 1번의 1악장 ‘알레그로’의 스타카토로 상승하는 동기와 그 정점에서 차례차례 내려오는 셋잇단음표의 주제가 들려올 때 단숨에 축제는 사라지고 진지하기 그지없는 음악만 남았다. 무서운 흡인력이다. 모차르트의 G단조 교향곡을 업보처럼 움켜쥐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던 청년 베토벤의 악다문 입술이 엿보였다. 3악장 미뉴에트는 더 이상 단정한 춤곡이 아니었다. 격렬한 스케르초적 느낌이 동반되었다. 여기에 한 치의 미스 터치조차 용납하지 않는, 컴퓨터처럼 정확한 테크닉이 동반돼 객석을 그야말로 악성(樂聖)의 질식할 것 같은, 짓누르는 위압감으로 초긴장 상태로 몰아갔다.

그러나 뒤집어보면 첫 문을 열어젖힌 ‘김선욱 식’ 베토벤은 역설적으로 문을 굳게 잠근 거대한 성이었다. 지나친 레가토는 성벽을 더욱 공고히 붙들어 매는 연결고리 역할을 했다. 비 내리던 본 시립묘지에서 보았던 베토벤의 어머니 마리아 막달레나의 가녀린 묘비가 떠올랐다. 김선욱은 어린 시절 부성(父性)으로 인한 고통에 시달린 베토벤이 스스로 설정한 장벽에 가로막혀 모성애를 간과한 것은 아닐까. 더구나 질풍노도의 시대를 헤쳐 나갔던 베토벤의 진보적인 자유로움은 오히려 ‘논 레가토’에서 더 빛이 나야 했다. 대부분 관객은 격하고 남성적인 베토벤의 매력에 사로잡혔을 터다. 하나 그 속에 언뜻언뜻 드러나는 인간미 넘치는 사유(思惟) 또한 큰 덕목이다. 짓누르는 구름을 뚫고 비춰지는 한 줄기 빛의 경이로움은 내내 아쉬웠다.

2013년 여름, 김선욱의 베토벤이 낭랑해지다

서서히 변화가 감지되었다. 지난해 1월 18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김선욱은 서울시향과 베토벤의 ‘황제 협주곡’을 협연했다. 온통 화려하고 강력한 드라이브가 걸리는 1악장에서조차 김선욱은 빛을 에너지로 바꾸지 않고 가슴으로 받아들여 정적의 세계를 연출했다. 얼핏 보면 싱겁고 힘없는 베토벤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솟구치는 앨버트로스는 언젠가는 태양열에 녹아 추락하기 마련이다. 성문을 열고 바깥 공기와 호흡하며 내밀한 대화를 나누는 김선욱의 일취월장한 해석은 그가 지난 10년 동안 매진해왔던 베토벤 등정의 7부 능선을 넘었음을 알게 해주었다. 다만 이 연주를 담은 그의 첫 실황 음반은 명료하지 않은 연주 홀의 음향과 조악한 녹음으로 인해 감동이 반감되는 결과를 낳았다.

‘템페스트’와 ‘발트슈타인’을 넘어 중기의 또 다른 걸작 ‘열정’으로 만났던 2013년 6월 20일은 초여름 더위만큼이나 뜨거웠지만 어느덧 낭랑하게 피아노로 노래하는 김선욱의 달라진 모습을 즐길 수 있었다. 빌헬름 켐프가 영원한 투쟁을 반영한다고 했지만 한편으로는 널뛰는 격정 속에서 스스로를 통제하고, 억누르는 미덕을 감지한 채 이를 고스란히 음악으로 보여주었다. ‘테레제를 위하여’라는 부제가 붙은 24번 소나타는 또 어떤가. 수수께끼로 남은 불멸의 연인을 테레제로 확신할 만큼 사랑스러운 ‘아다지오 칸타빌레’를 김선욱은 착 가라앉은 톤으로 노래했다. ‘고별 소나타’ 3악장의 생동하는 기운은 통통 튀기까지 했다. 베토벤이 독일어로 처음 써넣은 지시어를 충실히 따르며 고양하는 감정을 마음껏 표출하고 있었다.


▲ 김선욱 베토벤 소나타 전곡 연주는 2012년 봄부터 2013년 겨울까지 LG아트센터에서 이어졌다

지난 11월 21일, 마침내 김선욱의 베토벤 대장정의 마지막 무대가 열렸다. 티켓은 일찌감치 매진되었다. 10대 팬뿐만 아니라 머리가 희끗희끗한 초로의 신사도 여럿 보였다. 음악사상 가장 위대한 피아노 음악의 걸작을 직접 체험하려는 애호가들의 표정은 어쩌면 근엄하기까지 했다. 김선욱 또한 결연했다. 그동안 7회의 공연에서는 한 곡이 끝날 때마다 의자에서 일어나 박수를 받고 등퇴장을 반복했지만 이번만큼은 마지막까지 단 한 번도 멈춤 없이 세 곡을 하나의 작품으로 연주했다. 마치 베토벤의 후기 현악 4중주에서 나타나는, 악장 구분 없이 영원으로 이어지는 천국적인 아름다움을 후기 피아노 소나타에서도 구현하는 것처럼 하나의 악장이 끝나면 그 악장의 아들, 딸들이 새롭게 탄생하는 신성한 의식이 반복되었다. 청중의 수준 또한 하늘처럼 높았다. 일체의 중간박수와 때로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몰입하는 자세는 무대와 객석이 일체감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독일어로 ‘노래하듯이’라고 적힌 소나타 30번 3악장의 주제는 귀가 들리지 않는 베토벤이 갈망하는 이데아의 세계로 진입하는 듯 신비롭기까지 했다. 그로부터 파생된 6개 변주의 색깔은 각기 달랐지만 하나로 통합되었다. 안단테로 끝나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31번 소나타의 ‘노래하는 모데라토’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듣는 이들을 더럽고 번잡한 현실세계에서 격리해 아득히 먼 시의 세계로 인도해갔기 때문이다. 3악장 도입부의 A음 연타는 시시각각 변했고 ‘탄식의 노래’에서 나락으로 떨어졌다. 푸가는 자로 잰 듯 정확도를 자랑했지만 사이사이 따뜻한 호흡을 불어넣어 결코 경질이 아니었다. 두 번째 푸가가 복귀하기 전 화음연타의 점증하는 크레셴도는 압권이었다.

그리고 Op.111의 최후의 소나타. 도입부 감7화음의 긴장감이 탁월했던 1악장에서 김선욱은 마지막 단말마를 뱉어내듯 엄청난 에너지를 투입했다. 체관(諦觀)이라는 말만이 어울리는 표현일 것이다. ‘아리에타’의 주제가 흘러나올 때 옆자리에서 낮고 깊은 한숨이 들려왔다. 베토벤이 세상과 소통하지 않고 오로지 신과 대화하는 상태에서 체득한 경지는 김선욱에게 정공법을 선택해 과시하지 않는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인도했다. 그 결과는 경건한 종교의식과도 같은 적요의 세계였다. 3변주의 포르테와 이어지는 피아니시모의 트레몰로와의 대비는 선혈로 번져왔다. 이윽고 32분음표의 무한진행과 아찔한 트릴이 곳곳에서 수놓아졌다. 김선욱은 진화를 거듭하며 비로소 베토벤이 느꼈던 자유를 체득한 것이다.

8회의 콘서트가 끝났다. 객석의 박수는 자극적이지 않되 진득했다. ‘바가텔’ 가운데 3곡 ‘안단테’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앙코르를 들려준 김선욱은 로비로 향했다. 역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인회를 하기 위함이었다. 3층 로비에서 계단을 타고 4층까지 이어진 기나긴 행렬들은 남녀노소가 따로 없었다. 기나긴 여정을 마감한 한 젊은이의 노고를 격려하기 위한 또 하나의 앙코르인 셈이었다.

글 유혁준 사진 LG아트센터

유혁준은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서 공부했다. 경인방송 클래식 전문PD를 거쳐 현재 고양문화재단에서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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