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 온 어 캔 올스타

뉴욕의 현대음악 앙상블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4월 1일 12:00 오전

빈 깡통 소리의 힘

1987년 뉴욕, “한 무더기의 작곡가들이 앉아 깡통을 두드리는 것 같다”라는 가벼운 농담에서 유래한 현대음악 단체 뱅 온 어 캔.

27년간 지속돼온 집요한 두드림이 드디어 한국 청중을 만난다
때는 1987년, 뉴욕 음악계는 아카데믹한 클래식 계보와 아방가르드한 예술을 표방하는 다운 타운 음악이 서로를 견제하고 있었다. 그 어느 쪽에도 소속되길 거부한 예일대 출신의 젊은 작곡가들은 이스트 빌리지의 한 갤러리를 빌려 12시간에 이르는 마라톤 콘서트를 기획했다. 마이클 고든·데이비드 랭·줄리아 울프, 세 명의 신인 작곡가들이 주도한 이벤트에는 스티브 라이히와 존 케이지까지 합류하여 현대음악의 큰 기류를 뉴욕에 가져다놓는 데 일조했다.
세 명의 작곡가는 성실하고 집요했다. 마라톤 연주회는 매해 이어져 5천 명이 넘는 관객을 모으는 뉴욕의 대형 행사로 거듭났으며, 이들은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지 않기 위해 자신들의 음악을 전 세계에서 상시 연주할 앙상블을 만들었다. 바로 1992년에 결성된 뱅 온 어 캔 올스타이다. ‘올스타’라 하니 상황에 따라 모이고 해산하길 반복하는 프로젝트 앙상블 같지만 실상은 다르다. 1987년 첫 해 앙상블 그대로의 악기 구성은 20년째 이어져오고 있으며, 두 명의 멤버는 초기부터 지금까지 교체 없이 함께 활동해오고 있다. 첼로·더블베이스·피아노·퍼커션·기타·클라리넷이라는 꽤나 특이한 악기 구성은 하나의 통제변인처럼 자리를 지키며 그 위에 여러 시도들이 덧입혀졌다.
대중음악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세 명의 작곡가들의 음악적 스타일 역시 마찬가지다. 좀더 풍성한 오케스트레이션을 자랑하는 미니멀리즘 음악으로 들리는 이들의 작품 경향은 창단 초기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대중 친화적이다. 전 세계의 잘나가는 작곡가들은 빼놓지 않고 협업을 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클래식 음악의 중심부로서 인정을 받으면서도 이들 단체는 대중음악계에서도 끊임없이 회자된다. 박자에 맞춰 미션을 수행하는 게임의 배경 음악에도 단골로 사용되는 것이 그 예인데, 규칙적이면서도 다이내믹한 박자감에 긴박감 넘치는 스펙터클이 게이머들의 기호까지 충족시키기 때문이다.
서울과 통영에서 세 차례에 걸쳐 공연을 선보이는 뱅 온 어 캔 올스타는 총 네 작품을 선보인다. 데이비드 랭의 ‘속이기, 거짓말하기, 훔치기’(1995), 마이클 고든의 ‘마들린을 위하여’(2009), 줄리아 울프의 ‘믿음’(1997)을 통해 세 작곡가의 작품 경향을 엿본 후 60여 분에 이르는 대곡 ‘필드 리코딩’이 연주된다. 창단 25주년을 기념해 스티브 라이히·크리스천 마클리·닉 자무토·토드 레이놀즈 등 10명의 작곡가에게 공동 위촉된 작품. 지난 세월 동안 이들과 인연을 맺어온 작곡가들은 세상에 이미 존재하는 각종 소리를 재료 삼아 뱅 온 어 캔 올스타만을 위한 작품을 보내왔다. 내한을 앞두고 작곡가 줄리아 울프와 전자 기타리스트 마크 스튜어트를 이메일로 만났다.

뚝심 있는 현대음악의 파워, 작곡가 줄리아 울프
뱅 온 어 캔 올스타의 독특한 악기 구성은 어떻게 고안된 것인가?
새로운 음악만을 12시간에 걸쳐 소개하는 현대음악 마라톤 축제의 첫 해 공연은 첼로·더블베이스·피아노·퍼커션·기타·클라리넷이라는 조합으로 이뤄졌다. 우리는 1987년에 이 마라톤 축제를 처음 시작했는데, 이후 샌프란시스코나 암스테르담 등 세계 각지에서 연주 요청이 들어왔다. 이에 우리는 1992년, 처음 무대에 올랐던 구성 그대로를 앙상블로 창단하기에 이르렀다. 우리는 초기 원형을 그대로 보존할 뿐이다.

뱅 온 어 캔은 ‘피치포크’와 같은 대중음악 사이트에서 다뤄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지적인’ 그룹으로 분류되지 않나?
글쎄, 모든 장르에는 지적인 음악이 존재한다. 나는 클래식 음악만이 지적인 음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뱅 온 어 캔이 클래식이라는 지적인 ‘장르’에 들어있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우리만의 장르 안에 있다고 대답하고 싶다. 우리 셋의 장르는 건축학적 엄격함이 바탕이 된 작곡 기법과 팝 음악의 신체적 에너지로 건설된 음악이다.

세 명의 작곡가에게서 미니멀리즘적인 경향이 보인다.
우리가 계승한 미니멀리즘 작곡가와 분명한 연결고리가 있다. 그들은 우리의 영웅이다. 미니멀리즘 작곡가들은 기존의 토양을 깨부수고 새로운 세대를 만들어냈다. 우리의 음악은 그에 비해 좀더 부산하고 들떠 있지만, 그 안에 미니멀리즘 작곡가들이 추구했던 선명함과 직관성이 있다.

당신이 영향을 받은 팝 음악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장르인가?
여러 대중 음악가들을 꼽을 수 있지만, 그 무엇보다도 비틀스의 영적인 탐험 과정으로부터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

이번 내한 공연 후반부의 주인공인 ‘필드 리코딩’은 어떤 작품인가.
뱅 온 어 캔의 2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10여 명의 작곡가들에게 공동 위촉된 작품인데, 여기에 작곡가 김인현의 작품이 추가되어 매우 기쁘다. 그녀의 신작은 뉴욕과 서울에서 동시에 거주한 경험을 그려내고 있는데, 울려대는 벨소리, 지하철의 소음 같은 일상의 소리들이 담겨 있다. 우리는 이 작품을 통해 젊은 작곡가와 이미 탄탄한 기반을 가진 작곡가들의 작업을 한데 펼쳐보이고 싶었다. 위촉 작곡가들은 이 프로젝트를 위해 무언가 재미있는 걸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기준으로 선택됐다. 자신들이 찾아낸 자원들을 재료로 활용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는데, 그것은 음악일 수도, 그저 소리일 수도, 또는 영상일 수도 있었다. 이것은 결국 대중음악의 샘플링 기법을 차용한 것이다. 우리는 이 샘플링 기법에 더해 실황 연주와 기록된 매체와의 결합을 강조하고 싶었다.

비주얼 퍼포먼스가 첨가되는가?
물론이다. 몇몇 영상들은 이번 프로젝트만을 위해 새로이 제작되었다. 비주얼 아티스트이자 작곡가인 크리스천 마클리의 ‘Fade To Slide’는 소리의 시각적 이미지를 옛날 필름들과 환상적으로 결합시켜낸다. 빌 모리슨이 마이클 고든의 ‘Gene Takes A Drink’를 위해 자신의 고양이에 작은 카메라를 붙여 촬영한 영상 또한 매우 흥미롭다. 작곡가 스스로 직접 편집한 닉 자무토의 ‘Real Beauty Turns’ 영상에서는 미적 가치의 변화에 대한 패러디가 이뤄진다.

전자 기타뿐 아니라 모든 악기에 앰프를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일렉트로닉 앙상블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기 위함이다. 우리는 확장된 소리의 두드리는 듯한 소리를 원한다. 앰프를 사용하면 매우 직접적이고 강력한 소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

27년간 지켜온 뱅 온 어 캔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뱅 온 어 캔은 강력한 힘을 가진 새로운 음악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탐험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가능성의 한계 지점까지 몰아붙이며, 전 세계 모든 장르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우리는 젊은 음악가들을 위한 여름학교를 열고 있는데, 이것은 그들을 교육하기 위함이 아니라 젊은 세대들과 끊임없이 연결되기 위해서이다.


▲ 왼쪽부터 데이비드 랭·마이클 고든·줄리아 울프

양 진영의 이방인, 기타리스트 마크 스튜어트
뱅 온 어 캔 올스타에 합류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1987년 뱅 온 어 캔의 첫 연주회에는 관객으로 참석했다. 나는 마이클 고든과 종종 페스티벌 무대를 함께 꾸리곤 했는데, 그에게 “전자 기타가 필요하면 언제든 불러”라고 말해뒀었던 터다. 마이클을 먼저 알게 된 후 데이비드 랭과 줄리아 울프를 차례로 알게 됐다. 어느 날 이들이 함께 작업하자고 연락을 해왔다. 세 작곡가는 트리오처럼 움직이면서도 각자의 영역을 분명히 지키고 있는 팀이다.

전자 기타리스트로서 클래식 음악과 대중음악 양쪽 진영 모두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점이 독특하다.
나는 여섯 살 때 피아노를 처음 배우고, 열한 살 때 첼로를 시작했다. 그런데 그 사이 아홉 살 때 기타를 손에 쥐게 되었다. 어머니가 사온 것은 클래식 기타였다. 나는 혼자 음반을 들으며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가면서 연주법을 익혔다. 음악원에 진학해서는 첼로를 배우면서 때때로 기타를 잡고 친구들과 거리 공연을 가졌다. 그런데 1989년 뉴욕으로 이사를 가게 되면서 기타 연주에 대한 요청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많은 곳에서 컨템퍼러리 음악에 대한 진지한 이해, 그리고 그를 수행해낼 수 있는 테크닉을 가진 연주자를 원하고 있었다. 찰리 크리스천·척 베리·지미 헨드릭스·프레드 프리스 같이 말이다. 나 또한 그들 중에 포함된 행운아였고. 1980년대의 젊은 작곡가들은 어떤 식으로든 전자 기타를 자신들의 오케스트레이션에 포함시키려 했다. 그들은 어린 시절부터 이 기타 소리를 듣고 자라왔으니까 말이다. 이 사람들은 ‘심각한’ 음악을 작곡해달라는 요청을 받으면 자신들이 진지한 악기라고 생각했던 전자 기타를 집어넣곤 했다.

당신이 기억하는 뱅 온 어 캔 올스타의 역사는 어떻게 흘러왔나?
우리는 1992년 뱅 온 어 캔 특유의 스타일을 전 세계를 유랑하며 전달하기 위해 결성됐다. 긴 역사를 가지고 있는 여타 앙상블처럼 우리 멤버들 또한 교체됐는데, 흥미로운 건 악기 구성이나 우리의 음악적 지향점은 바뀌지 않았다는 것이다. 독창적인 미학은 시대를 막론하고 살아남게 마련이다.

작곡가 주도의 운영 방식이 가져다주는 장점은 무엇인가?
세 명의 작곡가는 큐레이터이자 미학적 가이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들은 우리가 연주자로서 어떤 사람들인지 예리하게 파악하고 있다. 상호 신뢰 관계 속에서 지속되어온 유대 관계 덕택에 작곡가들은 단순히 이 앙상블 악기 구성을 위한 작품이 아니라 연주자 개개인을 위한 작품을 작곡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연주회는 언제인가?
우리는 참으로 많은 리허설을 했고, 수없이 새로운 작품들을 초연했다. 그중에서도 특별히 기억에 남는 순간은 2009년 카네기 홀에서 스티브 라이히의 ‘2×5’를 공연할 때였다. 10명의 연주자들이 모였는데, 사실 충분한 연습이 덜 돼 있었다. 전석 매진이었는데 말이다! 엄청나게 위험한 상황이라는 위기의식이 멤버들 사이에 엄습했다. 그런데 공연이 시작되자 놀랍게도 우리는 뛰어난 호흡을 자랑하며 이 거룩한 음악을 완벽히 연주해냈다.

데이비드 랭의 ‘속이기, 거짓말하기, 훔치기’, 마이클 고든의 ‘마들린을 위하여’, 줄리아 울프의 ‘믿음’에 대해 설명해달라.
데이비드 랭의 ‘속이기, 거짓말하기, 훔치기’는 로버트 블랙과 내가 브레이크 드럼(모터사이클의 브레이크를 활용한 타악기)을 연주하는 작품이다. 브레이크 드럼은 대장장이가 담금질을 하는 것 같은 소리를 내는데, 로버트와 나는 번갈아 연주하며 곡을 이끌어간다. 고대와 현대의 소리가 동시에 울리는 작품이다. 첼로·베이스 클라리넷·피아노·타악기로 이뤄진 나머지 악기들 역시 대단한 비르투오시티를 발산한다.
마이클 고든의 ‘마들린을 위하여’는 마이클의 어머니를 위해 작곡된 아름다운 작품이다. 나는 그녀를 자주 만났는데, 이 작품을 연주할 때마다 그분을 생각하곤 한다. 마이클도 마찬가지일 거다. 이 작품에서 나는 기타를 슬라이드 주법으로 연주한다. 하지만 이것은 블루스도, 컨트리도, 하와이 음악도 아니다. 고든의 음악이다.
줄리아 울프의 ‘믿음’에서 나의 기타는 끊임없이 ‘새로움’에 대해 외치고 있다.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활기 넘쳤던 시기에 작곡된 것으로, 엄청난 에너지를 안고 있는 작품이다.

당신은 클래식 음악과 대중음악 중 어느 영역에 더 가깝다고 보는가?
나는 클래식 음악을 연주할 때 스스로 이방인 같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대중음악을 연주할 때도 이방인 같다고 느낀다. 수십 년간 양쪽 분야를 연구하고 또 연주해왔지만, 그 어느 나라의 시민도 아닌 것 같다. 그러나 나는 두 나라에서 베푸는 호의를 늘 감사하게 생각하며, 그에 대한 예의를 갖추려 한다.

뱅 온 어 캔 올스타 첫 내한 공연
3월 29·30일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 4월 2일 LG아트센터

글 김여항 기자(yeohang@gaeksuk.com) 사진 LG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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