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보로 만나는 카운터테너 베준 메타·막스 에마누엘 첸치치

카운터테너 전성시대!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4월 1일 12:00 오전


▲ 베준 메타의 신보


▲ 막스 에마누엘 첸치치의 신보

21세기 들어 카운터테너는 완전히 하나의 성부로 자리 잡은 듯하다. ‘새로운 카운터테너 스타 탄생’이 소프라노·테너의 슈퍼스타만큼이나 일상적인 소식으로 들려오고 있으니 말이다. 특히 현대적 카운터테너의 선구자인 앨프리드 델러가 옛 카스트라토의 가창력을 재현하기에는 힘이 부쳤던 것과 달리, 반세기 동안 그 성량과 테크닉이 크게 향상되어 바로크 오페라에서 메조소프라노의 바지 역할을 점점 밀어내는 양상인 것은 물론 독일 리트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불러낼 정도로 예술적인 표현력에 있어서도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바로크 오페라에서 절정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필리프 자루스키의 아성을 위협할 만한 스타도 여럿 있다. 그중 미주 출신으로는 베준 메타, 유럽 출신으로는 막스 에마누엘 첸치치가 가장 돋보이는 이름이다. 둘 다 자루스키보다 나이가 많고, 보이소프라노 시절부터 활동하여 일찌감치 명성을 날렸다는 공통점이 있다. 최근 따끈따끈한 독집 신보가 나온 점도 같다.
원숙의 경지에 이른 신세대 교과서, 메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출신인 베준 메타는 1968년생이니 이미 40대 후반에 접어들었지만 카운터테너의 경력은 길지 않다. 지휘자 주빈 메타와 가까운 친척뻘인데, 인도계 피아노 교수인 부친이 주빈 메타의 사촌이라고 한다. 9세 때부터 6년간 보이소프라노로 활동하던 1983년(15세)에 발표한 음반이 스테레오 리뷰지로부터 ‘올해의 데뷔 음반’으로 선정될 정도로 일찌감치 스타 대접을 받았고, 이 음반을 접한 대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으로부터 “어린 소년의 노래로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음성이 풍요롭고 음악적 이해의 수준이 성숙하다”라는 칭찬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변성기를 맞이하자 진로를 바꿔 예일 대학에서 독문학을 전공하면서 취미로 첼로를 공부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졸업 후에 녹음 프로듀서로서 활동했다. 특히 첼로 녹음에 일가견이 있어서 그가 작업한 야노스 스타커의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BMG)은 1997년 그래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 즈음 다시 노래에 대한 향수를 느껴 평범한 수준의 바리톤 가수 생활을 병행하던 메타는 어느 날 카운터테너로서 자신의 소질을 발견하게 된다. 곧 그의 보이소프라노 시절의 명성에 주목한 마릴린 혼 재단의 스폰서를 받게 되었고, 이후 빠른 속도로 명성을 얻었다.
베준 메타의 신보는 크리스토프 빌리발트 글루크의 오페라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에 나오는 아리아 ‘얼마나 아름다운 하늘인가’라는 제목을 사용하고 있다. 바로크 오페라에서 고전주의 시대로 이행하는 시기의 작곡가들인 글루크와 톰마소 트라에타, 요한 아돌프 하세, 대바흐의 막내아들인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 그리고 모차르트의 10대 시절 초기 오페라 세리아가 담겨 있다.
늘 그렇듯이 메타의 소리는 무척 자연스럽다. 넓은 음역대에서 두루 깨끗한 음색을 유지하고 있으며 훈련을 통해 만들어낸 팔세토(가성)라는 느낌이 거의 들지 않는다. 음역 간의 이동이 매끄럽다는 점은 가장 찬탄할 만하다. 그의 롤모델이었다는 데이비드 대니얼스가 구세대 스타일이라고 여겨질 정도로 메타의 창법은 물 흐르듯 할 뿐 아니라 대단한 정확도를 자랑한다. 빠르고 유연한 멜리스마 창법은 이미 모든 카운터테너를 넘어섰으며 어느 일류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와 비교하더라도 모자랄 것이 없다. 게다가 감정의 완급 조절도 원숙한 경지에 이르렀으니 바로크 음악의 권위자인 르네 야콥스가 베준 메타를 총애하는 것은 당연해보인다.
틀에 얽매이지 않는 ‘록’코코 스타일, 첸치치
1976년 크로아티아의 자그레브에서 출생한 막스 에마누엘 첸치치는 베준 메타보다도 어린 나이에 유명세를 탔다. 6세 때 TV에 출연하여 ‘마술피리’ 중 밤의 여왕의 아리아를 부른 것이다. 1987년에는 빈 소년합창단에 입단하여 약 5년간 활동했는데, 이 유서 깊은 합창단의 독창자로 선발되었고 합창단 밖에서도 소프라노를 노래할 기회를 자주 얻게 된다. 첸치치가 독창자로 활약한 빈 소년합창단의 음반은 필립스 레이블로 몇 장 찾을 수 있다. 특히 요한 슈트라우스의 ‘봄의 소리’ 왈츠를 소프라노용으로 부른 것은 깜짝 놀랄 만큼 인상적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변성기가 찾아온 다음에도 첸치치는 자신이 선천적인 소프라노의 음성을 갖고 있다며 소프라노의 영역을 고집했다는 점이다. 당시의 상황은 1994년(18세)에 하이든의 ‘천지창조’에서 가브리엘을 부른 영상물 등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그 한계는 분명했기에 결국 카운테테너로서의 훈련을 받고 2001년에 새롭게 데뷔하게 된다. 그 이후는 탄탄대로다.
첸치치의 이번 신보는 요한 아돌프 하세의 18세기 오페라 아리아를 담은 것인데 ‘로코코(Rokoko)’라는 제목을 붙였다. 로코코(Rococo) 시대의 세련된 노래라는 뜻인 동시에 록음악을 연상시키는 격렬한 감흥을 기대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과연 성악의 본질을 꿰뚫고 있었던 ‘성악가들의 아버지’ 하세의 솜씨는 헨델이나 비발디에 견줄 만하며 첸치치는 그 기교와 뉘앙스를 십분 살렸다. 사실 소리 그 자체로는 베준 메타에 비해 아름다움이나 기계적인 테크닉에서 미세하게 떨어진다. 그렇지만 틀에 얽매이지 않는 분방한 표현력을 갖고 있어서 바로크 오페라의 영웅적 남성상에 더 잘 어울리고, 풍부한 호흡으로 긴 패시지를 한숨에 해결하는 능력이 돋보인다.
이들보다 어린, 아직 30대 초반이지만 필자가 생각하는 다크호스로는 이탈리아계 아르헨티나 가수인 프랑코 파지올리가 있다. 2012년 최고의 바로크 오페라 음반(버진 클래식)으로 꼽혔던 레오나르도 빈치의 ‘아르타세르세’에 필리프 자루스키·막스 에마누엘 첸치치와 함께 참여한 파지올리는 주역이 아니었음에도 카운터테너의 두 슈퍼스타를 능가하는 강력한 화력과 걸쭉한 음색으로 눈길을 끌었다. 필자는 지난해 12월호 음반 리뷰에서 그의 독집에 만점을 준 바 있는데, 고음부에서의 경이로운 속도감, 중저음부에서의 남성적인 음색이 압도적인 매력을 뿜어낸다.

글 유형종(음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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