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리니스트 막심 벤게로프

활을 든 지휘자로 청중과 마주보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5월 1일 12:00 오전

어깨 부상으로 인한 공백기를 음악적 변신의 기회로 바꾸어낸 막심 벤게로프.
그에게 기회란 우연이 아니라 철저한 준비로 얻어진 필연이었다

기회란 찾아오는 것인가, 혹은 만들어나가는 것인가. 적어도 바이올리니스트 막심 벤게로프에게 기회란 저절로 찾아온 것인 듯했다. 음악가 부모로부터 천재성을 물려받은 그는 5살에 첫 솔로 바이올리니스트 리사이틀을 열며 재능을 인정받았다. 그 후 10살에 비에니아프스키 콩쿠르, 15살에 카를 플레슈 콩쿠르에서 우승을 거머쥐며 이름을 떨쳤고, 연간 130회가 넘는 연주를 소화해냈다. 2002년 그라모폰의 ‘올해의 연주자 상’과 2004년 그래미상 ‘베스트 협주곡상’을 수상한 그는 거침없고 개성 있는 연주로 기량과 음악성을 모두 입증했다.
그러던 2007년, 벤게로프는 바이올린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한다. 오른쪽 어깨 부상이 악화되어 더 이상은 악기를 잡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승승장구하던 천재 음악가에게 처음으로 기회가 아닌 고난이 찾아왔다. 하지만 이때 그는 바이올린 대신 지휘봉을 잡고 음악가로서 제2의 경력을 시작한다. 지휘자 벤게로프에게 기회란 만들어나가는 것이었다. 그의 변신이 가능했던 것은 그가 단지 로스트로포비치와 바렌보임, 유리 시모노프라는 엄청난 스승을 둔 행운아여서가 아니다. 그는 이미 25세부터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 바그 파피안에게 지휘를 배워온, 그리고 더 거슬러 올라가서 3살 때부터 합창 지휘자였던 어머니를 지켜보며 자란 ‘준비된 지휘자’였기 때문이다. 그는 2007년, 베르비에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지휘해 성공적으로 카네기홀 데뷔를 했다. 그리고 2010년에는 그슈타드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최초의 상임지휘자로 임명됐다.
2011년, 벤게로프는 치열한 재활치료 끝에 다시 바이올린을 잡고 돌아왔다. 수술 후 오직 음악만을 생각하며 의사의 도움 없이 혼자서 고통과 맞서 싸우며 재기를 꿈꿨다. 이제 우리 앞에 지휘자 겸 바이올리니스트로 돌아온 그는 5월 20·21일 예술의전당과 대전문화예술의전당에서 여전히 건재한 ‘벤게로프 사운드’를 들려줄 예정이다. 함께 내한하는 폴란드 체임버 오케스트라와는 이미 유럽의 9개 도시 순회공연을 거치며 호흡이 무르익은 상황이다. 벤게로프는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4·5번 외에도 체임버 오케스트라용으로 편곡된 차이콥스키와 생상스의 여러 작품을 연주한다. 지휘와 연주를 동시에 할 수 있는 최적의 레퍼토리를 준비한 막심 벤게로프를 이메일로 만나보았다.

약 4년간의 공백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건재한 테크닉이 놀랍다. 비결은 무엇인가?
바이올리니스트로서 4년의 공백이 두렵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지휘 공부에 전념할 수 있었으므로 어떤 의미에서는 행운이었다. 이때처럼 헌신적으로 공부에만 매달린 적이 없다. 처음 2년간은 악기를 잡지 않고 충분한 휴식을 취했는데, 그 후 어느 순간 바이올린이 그리워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모든 방법을 동원해 훌륭한 의사를 찾았고 그후 1년간 재활 훈련을 했다. 얼마간은 바이올린을 켤 때마다 더 심한 고통을 느꼈지만 이를 극복하기 위해 연습 시간을 점점 더 늘려갔다.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빠른 회복을 위해 연주 방법에도 변화를 주게 됐다. 근육의 충분한 휴식을 위해 왼손과 목, 등의 자세 전부를 새로 고쳤다. 몸의 움직임을 줄이고, 정말로 필요한 소리와 아티큘레이션에만 집중하여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고의 소리를 내는 법을 찾았다. 그 결과 이제는 연주할 때 훨씬 자유로움을 느낀다. 음악가로서 인생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온 4년간의 시간에 감사한다.

음악적 멘토로 삼는 로스트로포비치와 바렌보임 모두 연주자이자 지휘자의 길을 병행해왔다. 로스트로포비치의 직관적인 지휘에 비해 바렌보임은 오케스트레이션을 철저히 따르는데, 본인의 지휘 스타일은 어디에 더 가까운가?
러시아에서 공부한 로스트로포비치와 독일에서 공부한 바렌보임은 스타일이 많이 다르다. 로스트로포비치는 베토벤을 연주할 때 “여기서 템포를 줄여도 베토벤은 좋아했을 거야”라고 말하며 작곡가를 설득시키는 마음으로 연주에 임했다. 반면 바렌보임은 철저히 작곡가의 입장을 이해하려 애썼다. 나의 스타일은 이 둘을 합쳐놓았을 뿐 이들 중 어디에 더 가깝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나의 지휘 스타일에 영향을 준 것은 이들 뿐만이 아니다. 로스트로포비치는 쇼스타코비치·프로코피예프·리흐테르에게 배웠고, 바렌보임은 클렘페러와 루빈스타인의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에 나는 이 모든 거장들의 좋은 점만을 골라 배울 수가 있었다. 또한 지휘자 귄터 반트·조르주 프레트르·레너드 번스타인을 좋아해서 그들의 지휘 영상을 수없이 돌려보기도 했다. 러시아 지휘자 중에서는 예브게니 므라빈스키와 유리 시모노프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지휘보다는 바이올린 협연에 초점을 맞춘 이번 공연의 프로그램은 어떤 의도로 구성됐나?
솔리스트가 협주곡 한 곡을 연주하는 일반적인 공연 구성과는 달리, 이번 공연에서는 전반부에 모차르트 협주곡 두 곡을 연주하고 후반부에 차이콥스키와 생상스의 작품 여섯 곡을 연주한다. 청중이 바이올린 소리에 좀더 집중할 수 있게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모차르트는 지휘와 바이올린 연주를 동시에 할 수 있는 레퍼토리를 많이 써왔는데, 그중에서도 바이올린 협주곡 4번과 5번은 솔리스트와 오케스트라가 지휘자 없이 연주하기에 더없이 좋은 레퍼토리다. 이것이 지휘자와 바이올리니스트로서 모차르트 레퍼토리를 아끼고 개발하는 이유이며, 동시에 이번 공연에서 모차르트의 협주곡을 비중 있게 다루는 이유이기도 하다.

2012년 BBC 프롬스에서 보여준 모차르트 사운드는 상당히 로맨틱하게 느껴졌다. 당대연주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아는데, 모차르트가 원한 사운드와 본인의 해석을 어떻게 절충하는가?
우선 모차르트나 베토벤·슈베르트와 같은 작곡가들이 ‘살롱’이라고 불리는 작은 홀에서 연주할 곡을 주로 써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오늘날 콘서트홀이 6천 명까지도 수용하는 것을 생각하면 최대 4백~5백 명이 들어가는 살롱은 정말 작은 규모다. 음향 조건이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살롱에 적합한 시대악기를 들고 콘서트홀에서 연주할 수는 없다. 모차르트의 곡을 연주할 때에도 그의 의도를 따르되 연주 장소와 청중의 규모에 맞게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것이 필요하다. 나는 최근 몇 년간 바로크 레퍼토리를 집중적으로 연구해왔고, 현대 악기에 고음악의 색채를 적용해내는 일에 능숙하다.

이번 내한 연주에서도 직접 쓴 카덴차를 연주할 예정인가?
그렇다. 모차르트는 협주곡을 작곡할 때 솔리스트가 자신만의 카덴차를 연주할 수 있도록 고려했다. 오늘날까지 많은 종류의 카덴차가 만들어졌고, 어떤 연주자들은 다른 이가 작곡해 놓은 카덴차를 연주하기도 한다. 나의 경우는 직접 작곡하는 것을 선호하는 편인데, 그것이 작품에 더 깊이 관여하면서도 나의 즉흥성을 돋보이게 해주기 때문이다. 카덴차는 무대에서 바로 작곡하지는 않고 미리 준비해간다.

이번 레퍼토리 중 차이콥스키 ‘왈츠-스케르초’와 ‘우울한 세레나데’, 생상스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는 피아노 반주의 음반으로 이미 익숙하다. 같은 곡을 현악 앙상블과 연주할 때는 어떤 점이 다른가?
같은 바이올린 곡이라도 어떤 악기가 반주하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색채감을 지니게 된다.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현악 앙상블과 함께 할 때 전반적으로 조금 더 가라앉은 소리가 만들어지는 것 같다. 건반을 두드려 소리를 내는 피아노는 현악기인 바이올린을 상대적으로 더 뚜렷하고 돋보이게 해주는 듯하다. 차이콥스키와 생상스의 경우는 이번 공연에서 듣는 소리가 음반보다 더 자연스럽게 느껴질 것이다. 오보이스트 데이비드 월터가 이 곡들을 현악 오케스트라용으로 편곡했는데, 그의 노력으로 이번 공연이 한층 풍부한 색채감을 갖게 되었다. 데이비드 월터와는 오랜 시간 함께 일했는데, 현재 그는 파리에 머물며 다양한 규모의 악단을 위해 편곡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함께 내한하는 폴란드 체임버 오케스트라와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었나? 이들과의 앙상블은 어떤 점이 가장 매력적인가?
폴란드 체임버 오케스트라는 1972년 예후디 메뉴인이 설립했다. 거의 모든 원년멤버가 세대 교체된 오늘날까지도 국제화 바람에 휩쓸리지 않고 뚜렷한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이 단체의 가장 큰 매력이다. 이들과는 2006년 비에니아프스키 콩쿠르 폐막 공연을 위해 처음 만났고, 그 후 유럽과 아시아·중동에서 약 55회의 공연을 함께 해왔다. 공연을 함께 하면 할수록 서로의 소리를 더 잘 듣게 되었다. 지휘와 연주를 병행할 때 나는 오케스트라에 등을 돌린 채 연주를 하게 되는데, 단원들은 나의 솔로 연주와 지휘를 제대로 볼 수 없으므로 청각을 곤두세워야 한다. 나 역시 등 뒤에서 연주되는 단원들 소리에 더 집중해야 한다. 이는 흥미로운 경험인 동시에 큰 도전인데,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점점 더 풍부한 소리를 만들어가고 있다.

여러 콩쿠르의 심사위원장으로 연주자 발굴에 앞장서고 있다. 콩쿠르가 과도한 테크닉 경쟁을 부추긴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일정 부분 공감하지만 나는 좋은 연주자를 발굴하는 데 콩쿠르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바이올리니스트 40명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소리·인격·테크닉을 비교할 수 있는 자리는 오직 콩쿠르밖에 없다. 물론 연주자의 리사이틀에 참석하면서 그들의 기량을 비교할 수도 있지만 이 방법은 정확성이 떨어진다. 어떤 이들은 콩쿠르의 레퍼토리가 테크닉적·음악적으로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한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본래 콩쿠르란 단순히 최선을 다하는 연주자를 보기 위한 것이 아니며, 연주자들의 모든 자질을 꼼꼼히 검증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참가자의 심리적·체력적 능력, 테크닉과 표현력 모두를 볼 수 있는 레퍼토리를 선정할 수밖에 없다. 좋은 연주자를 공정하고 정확하게 가려내기 위해서는 심사위원단에도 균형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2011년 비에니아프스키 콩쿠르의 심사위원장 자격으로 2016년에 열릴 콩쿠르의 새 심사위원단을 꾸려야 하는데, 공정한 심사를 위해 일부러 서로 의견이 다른 사람들을 고르려 한다.

음악가로서 막심 벤게로프의 다음 목표는 무엇인가?
개인 레이블을 설립해 더 많은 음반을 녹음하는 것이 음악가로서 다음 목표다. 그 첫 단계로 벤게로프 뮤직 비전(Vengerov Music Vision) 레이블의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현재 옥스퍼드 오케스트라와 함께 이 레이블에서 출시할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과 멘델스존 교향곡 3번 ‘스코틀랜드’를 연습하고 있다. 레이블이 자리를 잡으면 더욱 활발한 음악 활동을 펼칠 수 있을 것이다. 곧 벤게로프 뮤직 비전에서 나올 좋은 음반들을 기대해도 좋다.

글 이채은 인턴 기자(chaelee@gaeksuk.com) 사진 크레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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