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화려하고, 더 강렬하게!

사라 바라스의 '아트 플라멩코'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6월 1일 12:00 오전

눈빛과 표정으로 객석을 단숨에 장악해버린 열정의 무대, 그 뒤에는 어떤 이야기가 숨겨져 있었을까?

눈빛과 표정으로 객석을 단숨에 장악해버린 열정의 무대, 그 뒤에는 어떤 이야기가 숨겨져 있었을까?

어두운 무대에 숨겨진 열정의 눈빛

붉고 화려한 조명을 상상하고 들어선 이날의 백스테이지는 오히려 스페인 시장 한복판을 보는 것 같았다. 에스파냐어를 사용하는 무용수들과 연주자·무대 스태프들 간에 나누는 대화로 연신 왁자지껄한 분위기였다. 활기 넘치는 분위기와 격양된 목소리에 순간 이곳이 스페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을 정도로 열정적인 기운이 무대 전체에 감돌고 있었다. 어둡고 캄캄한 무대에 검은 연습복과 검은 구두를 신어 무용수들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눈빛만은 빛났다. 그들은 웅장한 음악이나 화려한 조명 없이도 표정과 눈빛만으로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무대 뒤편에는 여섯 명의 연주자들이 무용수들을 둘러싼 대형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각자 앞에 생수를 한 병씩 두고 과자 한 봉지를 나눠먹으며 자유롭게 대화가 오갔다. 그들은 무용수들의 춤에 음악을 맞춰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그저 흥에 몸을 맡긴 듯했다. 여섯 명의 연주자 중 두 명은 기타, 두 명은 타악기, 그리고 나머지 두 명은 칸테로 선율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때로는 집시의 애환이 어린 절절한 노래가, 때로는 신명 나는 기타 연주와 두드림이 이어졌다. 심장이 쿵쾅쿵쾅 울릴 정도로 강렬한 무용수들의 발 굴림에 비해 이들에게 주어진 악기는 간소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단순한 형태지만 독특한 소리를 내는 반원형의 타악기가 인상적이었다. 연주자에게 특별한 악기냐고 묻자 단순히 박을 반으로 쪼개 속을 긁어 말린 것뿐이라고 설명하곤 “오늘 공연에 준비된 가장 저렴한 악기”라며 웃었다.

연주자들이 담소를 나누며 음을 맞추는 사이 무용수들은 소품을 바꿔들고 다시 무대로 나왔다. 첫 작품에서는 지팡이로 바닥을 치며 화려한 박자를 뽐내더니 곧 따스한 색상의 부채를 꺼내들었다. 조명에 따라 강렬한 붉은 빛과 따뜻한 주황 빛이 교차되는 부채의 움직임에 마치 지중해의 바람이 불어오는 듯했다. 이후에도 숄을 두르거나 두 개의 부채를 바꿔들기도 하면서 의자를 활용한 동작들을 연습했다. 위로는 소품을 활용한 손동작이 화려하게 펼쳐졌고, 아래로는 그에 대응하기라도 하듯 현란한 사파테아도(발동작)가 이어졌다. 정신을 쏙 빼놓을 정도로 화려하고 열광적인 발 굴림은 몇 번을 구르는지 손꼽아 셀 수 없을 정도였다. 쉼없이 진행되는 강도 높은 리허설에도 무용수들은 찡그림 하나 없이 열성을 다했다.

 

발끝에서 피어난 플라멩코의 꽃

오후 1시부터 달려온 리허설은 오후 5시가 되어서야 잠깐의 쉬는 시간을 가졌다. 군무진들이 쉬는 동안 공연 전체의 감독을 맡아 조명부터 음악·안무·지도까지 모든 것을 총괄 담당해온 사라 바라스는 그제야 몸을 풀고 자신의 연습을 시작했다. 가장 먼저 그녀는 무대 바닥 전체를 걷고 뛰고 두드려보면서 공연에 문제가 없는지 꼼꼼하게 체크했다. 이번 공연의 무대에는 플라멩코를 위해 특수 제작한 댄스 플로어가 설치됐다. 사라 바라스의 요청으로 설계도를 받아 국내에서 제작한 이 플로어는 무용수들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표면이 사포처럼 거칠게 처리되어 있고 속을 비워 무대 바닥과 공간을 두었다. 또 내부에는 24개의 마이크를 설치해 무용수들의 사파테아도를 더욱 생동감 있게 느낄 수 있도록 설계됐다. 특이하게도 음향 콘솔이 무대 사이드 막 사이에 위치해 있는데, 이곳에서는 악기에 연결된 마이크를 비롯해 플로어의 마이크까지 모든 음향을 각 작품에 맞게 조절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Mira! Mira!(여기 봐!)”

꼼꼼한 발 놀림으로 무대 곳곳을 두드리며 음향을 섬세하게 점검하던 사라가 찡그리며 바닥을 쿵쿵 내리쳤다. 사라 바라스 발레 플라멩코 측의 기술 스태프는 물론 국내에서 무대 제작을 맡은 스태프들까지 열댓 명의 인원이 그녀를 둘러싸고 모였다. 격양된 목소리로 특정 부분 플로어의 소리가 다르다며 토론이 오갔다. 바닥을 뜯을 것인지, 마이크를 고칠지 치열한 논의 끝에 결국 한 스태프가 드릴을 들고 나서서 여섯 개의 나사를 박았다. 옆에 있던 통역 담당자는 “사라 바라스가 특히 플라멩코 플로어의 소리에 대해 예민하다”라며 속닥였다.

무대를 보수하는 사이 휴식을 취한 무용수와 연주자들이 다시 무대로 나왔다. 낮부터 계속 리허설을 해왔지만 이들의 일정은 공연 한 시간 전까지도 쉴 틈이 없었다. 가장 중요한 리허설은 이때부터였다. 이번에 공연되는 작품의 구성은 한국 무대만을 위해 사라 바라스가 특별히 안무·구성했는데 바쁜 일정 때문에 피날레를 장식하는 ‘축제의 끝’ 장면을 아직 완성하지 못한 것이다. 저녁 식사도 건너뛰고 계속된 리허설은 공연 시작 20분 전이 돼서야 끝이 났지만 이들은 서두르거나 다급해 하지 않았다. 오히려 국내 스태프들과 관계자들이 무용수들을 바라보며 초조해 하자 통역 담당자가 “이게 바로 스페인의 시에스타죠”라며 걱정 말라고 전했다. 햇살이 쨍쨍한 오후 시간 동안 여유롭게 낮잠을 자는 스페인의 시에스타 문화. 정말로 그 때문이었을까, 무용수들은 공연 15분 전에서야 메이크업과 헤어를 단장하기 시작했지만 휘파람을 불 정도로 여유가 넘쳤다.

커다란 아이홀을 그리는 발레 분장과 달리 플라멩코 무용수들의 분장은 의외로 간단했다. 눈빛을 강조하기 위해 아이라인을 진하게 그리고 마스카라를 덧바르기만 하면 완료! 머리에는 물과 젤을 듬뿍 발라 깔끔하게 정리하니 금세 무대로 나갈 준비가 됐다. 남자 무용수들은 거울 앞에 서서 가위를 들고 수염을 싹둑싹둑 정리하더니 머리에 물을 충분히 적셔 빗어 넘겼다.

무용수들이 각자 분장하느라 바쁜 와중에 사라 바라스는 분장실에서 연습을 이어갔다. 단원들을 챙기느라 연습을 하지 못했던 그녀는 촉박한 시간 동안 한정된 공간에서 동작과 음악을 점검하면서도 표정은 연신 여유로웠고 웃음이 가득했다.

공연은 예정된 시간을 15분 넘기고서야 막이 올랐다. 첫 장면은 발레 플라멩코 사라 바라스의 군무. 호세 세라노와의 듀엣 의상을 갖추고 무대 옆에선 사라 바라스는 바쁜 와중에도 무대를 비추는 화면을 통해 진행 상황을 꼼꼼히 점검했다.

“지금! 지금 조명 켜져야 돼!”

그들의 열정적인 음악과 춤은 관객이 가득한 무대에서 비로소 가장 화려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사진 이규열(라이트하우스 픽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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