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상지의 반도네온 특강

탱고를 부르는 마법의 상자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7월 1일 12:00 오전

반도네오니스트 고상지를 만나기 전, 음악을 깊고 넓게 듣는 지인들에게 이번 ‘악기 탐구 시리즈’의 주인공이 ‘고상지’와 ‘반도네온’이라 하여 부러움을 한 몸에 잔뜩 안았다. 그리고 약속한 날이 되었다.

“어서 오세요. 고상지 씨.”

분홍색의 가방을 메고 ‘객석’의 회의실에 들어온 그녀. 앤티크 풍의 가구와 서적들 사이에서 그녀의 반도네온이 분홍색 겉옷을 벗자 우아한 자태가 드러났다. 가까이서 본 반도네온은 마치 일가를 이룬 명장이 한 땀 한 땀 공을 들여 짠 작은 가구 같았다. 다양한 문양의 나뭇결에선 금빛이 감돌았고, 고상지의 무릎에 얹어지자 “휙휙” “훅훅” 소리를 내며 오늘의 인터뷰를 준비하고 있는 듯했다. 나는 그녀에게 남다른 주문을 했다.

“죄송하지만 오늘 인터뷰의 주인공은 ‘고상지’가 아니라 고상지 씨의 ‘반도네온’입니다. 반도네온의 입이 되어 이 친구의 말을 대신 전해주세요.”

오늘날 반도네온이라 하면 ‘아르헨티나’와 ‘탱고’를 떠올린다. 하지만 반도네온은 독일의 하인리히 반트에 의해 만들어진 악기로 한동안 독일을 중심으로 생산되었다. 반트가 반도네온의 조상 격인 콘세르티나를 개량하여 이 악기를 만든 때는 1840년대. 초기에는 독일의 지방 민속음악과 교회음악 등의 악기로 사용되다가 독일의 선원들을 통해 아르헨티나에 전해져 ‘반도네온’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이후 아르헨티나에서 탱고 연주에 널리 쓰였고, 비센테 그레코(1886~1924)·아스토르 피아졸라(1921~1992) 등의 명연주자들이 주법을 발전시켰다. 자, 그럼 이제 고상지의 반도네온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자.

모아라 공기를! 뿜어내자, 음악을!

“이렇게 하면 오픈, 다시 클로즈. 그리고 다시 오픈···.”

악기를 벌리는 것을 ‘오픈’, 모으는 것을 ‘클로즈’라고 한다. 이런 움직임이 가능한 것은 주름으로 구성된 상자가 있기 때문이다.

이 주름 상자를 ‘빌로즈’ 혹은 에스파냐어로 ‘푸에제’라 부른다.

“푸에제는 가죽으로 되어 있어요. 오래 사용하면 닳고 찢어져요. 새것이 마냥 좋은 건 아니에요. 바람이 새지는 않지만 뻑뻑해서 연주가 힘들거든요.”

푸에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주름진 부분이 다섯 개씩, 총 열다섯 개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악기마다 주름 개수가 달라요. 제 것은 열다섯 개. 어떤 주자는 세 개씩 해서 아홉 개짜리를 쓰기도 해요. 연주하는 데 어떤 차이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자세히보니 푸에제의 주름 사이로 먼지(?)가 제법 보인다.

“어쩔 수 없어요. 악기를 연주하면 공중의 공기를 악기 속으로 다 끌어와야 해요. 어떻게 보면 사방의 먼지가 악기로 다 모이는 거죠.”

“그럼 반도네온으로 방 청소를···”이라는 농담이 목 끝까지 올라왔다.

팔과 손만큼 중요한 다리 포지션

 “연주할 때 다리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기법을 끌어낼 수 있어요. 빅토르 라발렌(1935~)은 다리를 활용한 테크닉이 정말 화려해요. 그래서 사람들이 그의 다리만 봐요. 누구는 ‘저 구두를 신으면 저 사람처럼 할 수 있을 거야’라는 농담도 하고.(웃음)”

“보면 다리 한쪽에만 올리거나 혹은 서서 연주하기도 하던데요. 정식 자세는 뭔가요?”

“악기가 두 무릎 위에 있는 게 정석이에요. 자세는 여러 가지예요. 예를 들어 발판에 한쪽 다리를 올리고 서서 연주할 때는 앉았을 때보다 상체의 무게가 더 실리기 때문에 오픈과 클로즈를 강하게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소리가 엄청 파워풀해져요. 피아졸라가 주로 서서 했죠.”

“그 외에 다리의 움직임을 활용한 게 또 뭐가 있나요?”

“비브라토. 다리를 떨면 악기가 흔들려 음이 떨리거든요. 저는 다리보다는 팔을 이용해서 비브라토를 해요. 악기를 앞뒤로 잘게 떠는 거죠.”

반도네온 오형제 

반도네온은 사진과 같이 크게 다섯 부분으로 되어 있다. 늘어나고 작아지는 빌로즈를 중심으로 양쪽에 테클라(키)와 리드 플레이트가 달려 있다. 리드 플레이트는 재질이 쇠이기에 양쪽에 무거운 추를 달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무릎에 얹어진 반도네온은 시간이 흐르면 흘러내리듯 양쪽으로 벌어진다. 연주자의 ‘근육’과 ‘힘’ 외에 리드 플레이트의 ‘무게’와 지구의 ‘중력’ 또한 연주를 돕는 제2의 연주자다.


▲ 오른손 버튼

▲ 왼손 버튼

여덟 손가락과 71개의 키

반도네온의 오른편에는 38개의 테클라(키)가, 왼편에는 33개의 테클라가 있다. 오른손이 고음을, 왼손이 저음을 맡는다.

“전 세계 반도네온마다 누르는 키의 수는 다 똑같나요?”

“아니요. 아르헨티나 탱고용만 그래요. 낼 수 있는 음은 142개예요.”

“반도네온도 화음이 가능하다고 들었는데 몇 개의 음까지 낼 수 있나요?”

그녀가 악기를 연주한다. 푸에제가 천천히 오픈·클로즈 된다. 음 하나가 나오고 그 위로 또 다른 음이 하나 더, 그리고 또 하나, 이어 또 하나가 포개진다.

“네 개의 손가락으로 네 개의 키를 누르면 네 개의 소리가 동시에 나요. 총 여덟 개의 손가락을 사용하니 여덟 개의 음을 동시에 낼 수 있죠. 간혹 어떤 주자는 왼손 엄지까지 사용해서 아홉 개의 음을 동시에 내기도 해요.”

중고 반도네온을 거래할 때 테클라가 고르게 정돈되어 있으면 가격이 올라가기도 한다고. 각 키마다 상태에 따라 손끝에 닿는 느낌은 다르다. 어떤 건 부드럽고, 어떤 건 뻑뻑하다. 관리를 잘 못한 결과지만 때로는 이런 상태가 연주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연주 시 푸에제가 벌어지면서 손이 주자의 시야에서 벗어났을 때다.

“모든 버튼이 균일한 상태에서 뭔가 하나가 푹 들어가 있으면, 그것을 ‘기준’을 삼아서 여기가 ‘솔’이고 여기가 ‘라’라는 것을 감각적으로 익히죠.”

고상지의 반도네온 버튼에도 그런 ‘기준’이 숨어있다고 한다.

반도네온의 오른편

반도네온의 소리는 실제로 어디서 나올까? 덩굴 줄기와 섞여 있는 하프가 새겨진 문양 사이로 소리가 나온다. 하얀색 가죽은 악기를 지탱하는 손잡이다. 엄지로 단단히 움켜쥐어야 하고 땀이나 습기로 인해 연주 중 끊어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바로 옆에는 검은색 레버가 보인다. 이 레버는 악기 내부를 가로지르는 비밀(?)의 줄과 도르래에 연결되어 있다.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그 비밀은 오른쪽 페이지 7번에서 확인하시길.

반도네온의 왼편 

오른손은 고음을, 왼손은 저음을 맡는다. 오른편과 마찬가지로 구멍이 난 문양 사이로 악기 소리가 나온다. 오른편에 비하면 그 구멍은 작은 편이다. 고상지가 연주하며 왼손을 빨리 움직여 보인다. 마치 손가락 끝에 ‘눈동자’가 달려 있어 재빨리 버튼을 찾는 듯하다.

타닥! 탁! 타다닥! 

어디선가 들려온 타악기 소리. 왼손으로 테클라를 누르다가 일명 ‘카하’라 부르는 작고 속이 빈 박스를 쳐서 퍼커션 소리를 내기도 한다.

“피아졸라는 이 주법을 정말 멋있게 사용한 연주자죠!”

공기 통로 문양 

가까이서 반도네온 소리를 들어보면 악기 소리 외에 공기가 드나들 때 나는 “휙휙” 소리를 뚜렷이 듣게 된다.

“이 무늬(아래 사진)가 복잡하면 복잡할수록 바람이 들어가고 빠질 때 여기에 걸려서 ‘휙’ 소리가 크게 나기도 해요. 그게 싫어서 부착하지 않는 사람도 있어요. 저한테는 얘가 굉장히 예뻐보여요.”

1 마법의 상자가 열린다 

악기의 오른편을 분해하는 모습이다. 모서리 끝을 고정하는 네 개의 일자나사를 풀어야 한다. 그런데 뻑뻑하다. 나사가 안 풀리자 고상지가 ‘볼펜 두 개’를 찾는다. 볼펜 두 개로 ‘‖’자를 만들고 그 사이에 일자나사를 놓고 풀면 쉽게 열린다고.

2 달래고 어루만지듯

네 개의 나사가 풀렸다. 반도네온이 옷을 벗기 시작한다. 구멍과 맞물린 버튼들을 살살 달래니 뚜껑이 열리기 시작한다!

3 타자기가 아닙니다 

그녀의 반도네온이 속살을 드러냈다. 순간 타자기가 떠오른다.

“여기 보세요. 이 버튼(사진 속 왼손)을 누르니 여기(사진 속 오른손)가 살짝 들리는 거 보이죠? 이렇게 열린 구멍 사이로 공기가 드나들며 뒷면에 있는 리드를 울려요. 키를 누를 때의 느낌이 다른 것은 여기 보이는 스프링들의 강도가 각기 다르기 때문이에요.”

내부 재질의 대부분은 나무다. 그래서 충격에 약하다. 오른쪽에 여덟 개의 작은 나무 조각들이 보인다. 금이 간 부분을 꽉 붙들고 있는 수리의 흔적이다.

4 공기가 드나드는 통로

“막고 있던 부분이 열리면 이 사이로 공기가 빠지면서 소리가 나는 거예요.”

그녀의 설명을 듣고 보니 다시 타자기가 떠오른다. 이 구멍 사이로 새어나오는 ‘공기’는 마치 타자기의 ‘잉크’와도 같은 것일 거다. 공기가 ‘음’이 되고 잉크가 ‘글자’가 되는 것처럼.

5 반도네온의 심장, 리드 플레이트

“그대로 뒤집어볼게요. 리드 플레이트 부분입니다.”

‘리드’는 기명(氣鳴) 악기, 즉 공기로 울림을 만드는 악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부분으로 나무나 금속으로 만든 엷은 조각이다. 그것이 파르르 떨릴 때, 그 떨림이 음과 소리로 바뀌는 것이다. 하모니카도 이와 같은 원리다.

“그럼 반도네온은 관악기인가요?”

“그 점이 재밌어요. 어떤 컴퓨터 프로그램에서는 ‘건반악기’로 나오는 경우도 있어요.”

‘리드 플레이트’는 말 그대로 여러 개의 ‘리드가 붙어 있는 판’이다. 여기에 오늘날 반도네온의 생산이 왜 중단되었는지에 대한 비밀이 담겨 있다. 자, 비밀을 밝혀라!

6 바람에 부르르 떠는 비싼 몸

“리드 플레이트는 소리를 좌우하기에 제일 중요한 부분이에요. 요새는 이걸 만드는 기술이 전수되지 않는다고 해요. 그래서 신형이 생산됨에도 불구하고 앤티크의 음색을 좇아오지 못해요. 그래서 전문 주자들은 신형을 사용하지 않아요. 아코디언 비슷한 소리가 난다고도 하고.”

리드 플레이트는 크게 아연과 알루미늄으로 되어 있다. 재질마다 음색이 다르다. 반도네온 제조사 중 ‘도블레 아’(일명 AA)와 ‘프리미어’는 아연을, ‘ELA’는 알루미늄을 쓴다. 고상지의 악기는 도블레 아 제품이다.

7 줄과 도르래에 담긴 비밀

리드 플레이트 부분을 들어 올리니 긴 통로(?)가 나온다. 이곳으로 공기가 오고 간다. 그리고 저 멀리 또 하나의 풍경(?)이 펼쳐진다. 악기의 왼편으로, 저음을 담당하는 리드 플레이트 부분이다.

그런데 제법 굵은 줄 하나가 그 풍경을 절반으로 가르고 있다. 이 줄과 도르래는 오른손 엄지가 담당하는 레버와 ‘비밀’의 관계를 맺고 있다.

“여기 도르래 보이나요? 제가 왼손으로 줄을 당기니 이 막대기(오른손 부분)가 움직이는 거 보이죠? 오른손 엄지로 레버를 누르면 이 막대기가 움직여요. 주자의 배 쪽으로 나 있는 공기 구멍을 열고 닫는 거죠. 레버를 어떻게 조절하느냐에 따라 악기로 들어오고 나가는 공기의 양이 달라져요. 레버는 ‘그냥’ 누르는 게 아니라 ‘0’과 ‘100’ 사이가 있다면 어느 부분에서는 ‘15’의 힘으로, ‘50’의 힘으로 아주 예민하게 눌러야 해요. 그래서 초보자들에게는 다리 포지션과 레버를 누르는 힘 조절이 중요해요.”

“연주 중 이 줄이 뚝 하고 끊어지면 어떻게 돼요?”

“연주가 아예 불가능해요. 그래서 공연 시 여분의 악기를 준비하는 경우도 있어요.”

8 왼편의 리드 플레이트 

악기의 왼편도 같은 순서대로 분해한다. 오른편의 리드 플레이트와 조금은 다르게 생겼다. 오른편보다 버튼 수가 적기에 당연히 리드의 수도 적다.

당신 반도네온 연주자? 꼼짝 마!

“아르헨티나에서도 반도네온이 귀하다 보니 현지에 가면 강도들에게 매번 위협을 받아요. 안 다치면 다행이고 반도네온을 뺏기지 않으면 더더욱 다행이죠. 뺏기면 중고악기 시장으로 가요. 거기에 내다 파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래서 반도네온 주자들은 여권 번호나 휴대전화 번호를 악기 내부에 적어놓는다. 그래야 나중에 다시 찾을 때 자신의 악기를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조금은 무서운 이야기를 고상지는 마치 일상이라는 표정으로 말한다.

고상지의 추천 음반 ‘NUEVO GRAN QUINTETO REAL’

“퀸테토 레알과 전설적인 반도네오니스트 레오폴도 페데리코(1927~)가 함께 한 음반이에요. 퀸테토 레알의 리더는 피아니스트 오라시오 살간(1916~)입니다. 그는 철두철미하게 탱고의 형식을 고수하면서 새로운 음악을 만들려고 했던 인물이에요. 그래서 탱고의 형식을 탈피하며 혁신을 이뤘던 피아졸라와 많이 비교되었죠. 아마도 두 사람이 비슷한 시대를 살아서 더 비교가 됐을 겁니다. 살간이 그 특유의 중심을 잘 잡고 있는 음반입니다.”

사진 박진호(studio BoB)

Back to site top
Transla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