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서울, 전통과 현대 사이에서의 몸부림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7월 1일 12:00 오전

music 차갑고도 따뜻한 우리의 모습, 윤이상의 오페라 ‘심청’

작년 겨울 시칠리아 팔레르모의 프리토리아 광장 앞을 지나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듣게 되었다. 줄지어 늘어선 관광 마차들이 호객용으로 요란하게 틀어놓은 것이다. 고대 그리스부터 시작된 시칠리아의 수천 년 역사 속에서 한국어 가사로 된 노래가 울려 퍼진 건 아마도 이때가 처음 아니었을까? 그들이 우리말 가사를 어설프게나마 흥얼거리며 직접 따라 부르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여러모로 신기한 경험이었다.

‘강남스타일’에서 보듯 서양인의 눈에 비친 한국은 다이내믹하고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최첨단의 현대 도시 이미지다. 영화나 외신에서 다뤄지고 규정되는 서울의 모습 또한 미래도시의 전형이다. 한편으로 기쁘지만 사실은 조금 아쉽기도 하다. 우리에게도 그들처럼 굴곡 많은 지배와 피지배의 민족사가 있고, 유구한 전통과 문화가 있으며, 한국인만이 공유하는 다양한 집단무의식과 상징이 존재한다. 한 시절의 트렌드만 담아낸 음악 말고 한 민족이 수천 년간 축적해온 유구한 민족정서를 서구의 음악어법으로 심도 있게 다룬 작품은 없는 걸까? 기왕이면 전 세계인들에게 예술성과 인지도 면에서 모두 인정받는 작품이면 더할 나위 없겠다. 그러자 오페라 하나가 떠올랐다. 윤이상의 ‘심청’이다.

‘심청’은 1972년 뮌헨 올림픽 문화축전 행사를 위해 특별히 위촉받아 작곡된 오페라다. 당시 바이에른 슈타츠오퍼의 총감독 귄터 레네르트가 이 기획을 주도했는데, 그는 윤이상에게 ‘철저하게 아시아적인 소재와 정서를 담아낸’ 오페라를 요구했다. 이를 서유럽 음악가들이 연주하고 노래함으로써 동·서양 두 세계 간의 정서적인 벽을 허물고 문화적 가교를 놓겠다는 의도였다. ‘심청’은 윤이상과 절친한 극작가 하랄트 쿤츠가 대본을 쓰고, 귄터 레네르트가 직접 연출을 맡았다. 초연의 지휘자는 거장 볼프강 자발리쉬였다.

쿤츠와 레네트르는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1970년대 초반 윤이상과 함께 아예 서울로 직접 날아왔다. 그들은 판소리 ‘심청가’를 관람했고, 전통연희인 산대놀이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 그 결과 오페라 ‘심청’ 속에도 가면극 요소가 적극적으로 도입됐다. 산대놀이란 놀이꾼들이 탈을 쓰고 재담과 춤, 노래와 연기를 펼치는 일종의 즉흥 가면극이다. 서울의 경우 녹번·아현·구파발·퇴계원·송파·사직골 등지의 산대놀이가 유명했다 하는데, 그 중에서도 현재 잠실 인근에서 펼쳐지는 송파산대놀이는 원형이 비교적 잘 보전되어 오늘날까지도 전승되고 있다.

‘심청’은 유럽 오페라의 본고장 뮌헨에서 큰 호평을 받으며 대성공을 거뒀다. 대본가 하랄트 쿤츠는 심청이 죽음으로 이루려 한 ‘극단적인 효’ 대신 아버지 심봉사의 실존적인 고뇌에 포커스를 맞췄다. 심봉사가 장님일 때와 다시 눈떴을 때를 대비시켜 이를 인간 실존의 구속과 해방의 문제로 풀어낸 것이다. 그러나 쿤츠에게도 못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있었던 모양이다. 동네 아낙들이 젖동냥을 하러 온 심학규에게 심한 말을 늘어놓으면서도 심청에게 젖을 물려주는 장면이다. 우여곡절 끝에 ‘심청’의 서울 공연이 성사되었을 때 수십 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은 쿤츠는 서울 사람들에게 이 장면의 맥락을 물어봤다. 왜 욕을 하면서도 살가운 친절을 베푸느냐는 거다. 독일인에게 그런 식의 묘한 이중정서는 이해하기 힘든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에겐 너무나 익숙하다. 대학가 허름한 술집의 고모들이 달랑 학생증 하나로 외상술을 마음껏 마시게 해주고, 무뚝뚝한 구내식당 아저씨가 모른 척하며 주걱을 꾹꾹 눌러 고봉밥을 담아주는 그런 은근한 사람 사이의 정 같은 것 말이다. 한반도라는 물리적 공간을 중심으로 수천 년의 역사를 켜켜이 쌓아왔던 우리에게도 분명 무수히 많은 역사적·심리적·문화적 가치들이 있고, 그것들은 이미 우리의 몸과 마음속에 고유한 문화DNA로 잠재되어 있다.

21세기의 서울은 케이팝의 본고장으로 더욱 유명하다. 한국의 대중음악이 세계로 뻗어나가 동시대 다른 나라 사람들과 그 감성을 공유하는 건 분명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수천 년의 시간 동안을 함께 부대껴가며 키워왔던 한국인의 깊숙하고도 본질적인 정서를 다룬 작품들도 필요하다. 서울이 수도로 자리 잡은 지도 800여 년, 한강 어귀의 중심도시로 그 기능을 시작한 지도 벌써 수천 년이 훌쩍 넘었다. 서울의 신비와 비원, 문화적 깊이를 제대로 보여줄 또 하나의 위대한 교향곡과 오페라를 기대하는 것이 비단 개인의 바람만은 아닐 것이다.

novel 한국 사회의 다양한 담론, 양귀자 ‘원미동 사람들’

서울의 위성 도시라고도 불리는 부천. 그 부천의 한 조그마한 동네 원미동에 사는 소시민들의 삶의 이야기를 11개의 단편으로 묶은 연작소설이 ‘원미동 사람들’이다. 개발이라는 논리에 밀려 자신의 삶의 터전이 어쩔 수 없이 바뀔 수밖에 없는 사람들. 도시화로 인한 각박한 환경과 이기적인 인간관계 속에서도 소설 속 주인공들은 삶의 의지와 인정을 가지고 서로 엮이고 도우며 시대를 살아낸다. 1980년대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소설이자 부천 원미동의 모습을 통해 도시와 농촌, 중심과 주변, 개발과 보존, 보수와 진보 등 지금도 이어지는 한국 사회의 다양한 담론을 이야기를 통해 자연스럽게 고민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희망과 감동은 물신주의와 개발지상주의에 있지 않음을 작가는 이미 20년 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데 우리는 왜 아직도 제자리일까. 다시 희망을 가져본다. 소설 ‘원미동 사람들’에서 부천은 무지갯빛이다.

play 명랑과 우울이 교차하는 서울 거리, 성기웅의 ‘소설가 구보씨의 1일’

종일 경성을 배회하는 소설가 구보 박태원의 눈으로 본 1934년의 서울. 한국의 젊은 극작가 성기웅은 근대적 감각의 1930년대의 경성을 동시대의 서울을 사는 우리와 만나게 한다. 그 당시의 종로 거리·영화관·백화점·다방 등은 80년이 지난 지금도 이 도시를 이루고 있는 현대의 산물이다.

‘소설가 구보씨의 1일’은 순수 서울말을 구사하는 소설가 박태원을 등장시켜, 하루 동안 벌어지는 일을 바탕으로 당시의 문인이던 이상과 김기림과의 일화를 공개한다. 근대의 식민지 시절이기는 했으나 비단 고통스럽지만은 않은, 그렇다고 희망적이지도 않았던 예술가의 모습이 담겨져 있다. 성기웅은 근대 도시 풍경과 식민지 지식인의 내면 풍경을 절묘하게 포착해냈다. 이러한 ‘명랑과 우울’의 교차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실상 그러고 보면 서울의 종로 거리는 여전히 배회하기에도, 탐색하기에도 딱 알맞은 공간이리라.

dance 외국인 눈에 비친 한국, 피나 바우슈 ‘러프 컷’

외국인의 눈에 비친 한국은 어떤 모습일까. 무용과 연극의 요소를 결합한 ‘탄츠테아터’를 통해 20세기 현대무용의 장을 새롭게 연 피나 바우슈는 1979년 첫 내한을 계기로 변화하는 한국의 모습을 관찰해왔다. 2005년 6월, 그녀가 도시 시리즈의 일환으로 무대에 올린 ‘러프 컷(Rough Cut)’은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도시 서울의 모습을 그려낸 작품이다. 영화의 1차 편집본을 뜻하는 이 제목에는 무엇이든 빠르게 진행하는 한국인과 다양성·가능성을 지닌 한국 사회의 모습이 함축적으로 담겨 있다. 부퍼탈 탄츠테아터 무용수들의 움직임에 어우러진 한국음악이 외래문화와 전통이 혼재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대변하는 듯하다.

작품에는 한국의 문화와 정서가 담긴 장면들이 콜라주 형식으로 등장한다. 처음 만난 사람과도 서슴없이 서로의 등을 밀어주는 사우나의 풍경, 김장철 품앗이 문화, “안녕하십니까”라며 인사를 반복하는 클럽 웨이터의 모습, 굿판에 펼쳐진 원색적인 꽃들, 사람들로 가득한 백화점 풍경 등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서울의 일상이 한 편의 파노라마처럼 차례로 펼쳐진다.

페터 팝스트가 디자인한 무대에는 한국의 산수가 펼쳐진다. 거대한 암벽을 배경으로 들판과 파도가 투사되며 아름다운 산하가 펼쳐진다. 사람들로 가득한 백화점 에스컬레이터와 화려한 네온사인은 또 다른 우리사회의 풍경을 보여준다.

서양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한국 사회가 진지한 통찰보다는 다소 우스꽝스럽게 표현된 점에 대해 아쉬움이 남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관객들은 피나 바우슈라는 위대한 안무가가 서울의 모습을 그려낸 것 자체만으로도 박수를 보냈다.

music 황지원(오페라 칼럼니스트)
play 정진세(작가·연극평론가)
novel 한송희(북칼럼니스트)
dance 김태희 인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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