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의 인간과 신들

열정적인 사랑의 승리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8월 1일 12:00 오전

글루크의 오페라 속 주인공들은 뜨거운 피가 흐르는 생생하고 일상적인 인간으로 등장한다. 이들과 함께 등장하는 신들은 두 젊은 남녀의 사랑을 걸고 내기를 한다. 그리고 결국 가장 세속적인 예술인 오페라에서 궁극의 승리는 언제나 숭고한 사랑이 아닌 열정적인 사랑에 있었다


▲ ⓒ최다혜

노래와 연주로 맹수들을 온순하게 만들고 바위를 눈물짓게 했다는 그리스신화의 오르페우스 이야기는 초창기 오페라의 단골 소재였다. 악보가 현존하는 최초의 오페라인 페리의 ‘에우리디체’(1600), 오페라의 신기원을 연 몬테베르디의 ‘오르페오’(1607), 글루크의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1762), 하이든의 ‘애지자(愛智者)의 영혼 혹은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1791) 등 오르페우스 이야기는 여러 시대 작곡가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는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이탈리아어 이름이다).

그리스신화 속에는 제우스·헤라클레스·테세우스 같은 엄청난 힘과 지혜의 소유자들이 등장한다. 그런데 왜 그런 존재들을 제쳐두고 유약해 보이는 오르페우스가 가장 인기를 끌었던 것일까? 그 이유는 첫째, 오르페우스는 최초의 시인이자 음악가였다. 오페라는 시와 음악을 결합한 예술이니 오르페우스보다 더 잘 어울리는 주인공을 달리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둘째, 400년이 넘는 오페라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로 군림했던 ‘절대적이고 변치 않는 사랑’을 이 오르페우스 이야기가 보여주고 있어서다. 죽은 아내를 살리려고 목숨 걸고 저승으로 간 남편의 절절한 사랑이 관객의 심금을 울릴 만한 소재였던 것이다.

물론 신화에서는 ‘부부의 사랑’보다 ‘신과 인간의 관계’에 초점을 두고 있다. 아내를 돌아보는 오르페우스의 실수를 통해 ‘인간의 조급한 열정’을 경고한다. 그러나 오르페우스 소재 오페라들 가운데 대본과 음악 모두 가장 생동감 있고 감동적인 작품으로 꼽히는 크리스토프 빌리발트 글루크(1714~1787)의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Orfeo ed Euridice)’는 바로크를 벗어난 새 시대의 작품답게 인간의 사랑에 초점을 맞췄다.

올해 탄생 300주년을 맞이한 ‘오페라의 개혁자’ 글루크의 주인공들은 이전의 오르페우스 오페라들과는 달리 혈관에 뜨거운 피가 흐르는 생생하고 일상적인 인간으로 등장한다. 오르페오가 갖은 고생 끝에 저승에 들어가 에우리디체를 만났을 때 에우리디체는 감격하기보다는 어리둥절한 태도를 보인다. ‘정령들의 춤’이라는 대표적인 발레곡에서 짐작할 수 있듯, 에우디리체는 죽어서 이미 밝고 평화로운 세계에 와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자신을 찾으러 온 오르페오에 의해 삶과 죽음의 갈림길로 떠밀려 나오게 된 것이다. “정말 당신이에요? 내가 환영을 보고 있나요? 꿈인가요, 생시인가요, 망상인가요?” 그렇게 묻는 에우리디체에게 오르페오는 답한다. 자신은 살아 있고 에우리디체는 죽었지만 그녀도 다시 생명을 얻어 ‘우리의 하늘, 우리의 태양’을 볼 것이라고. 그러나 산 자와 죽은 자가 같은 공간에 존재할 수 없음을 아는 에우리디체는 지극히 논리적인 질문을 던진다. “살아 있다고요? 어떻게요? 어떤 방식으로 말인가요?”

이 질문에 대답할 말을 잃은 오르페오는 “아무것도 묻지 말고 서둘러 따라오기만 하라”고 아내에게 강압적으로 명령한다. 지상에서 함께 살 수 있다는 오르페오의 말에 기뻐하던 에우리디체는 자신을 돌아보지도 않고 포옹하지도 않는 오르페오를 보며 분노한다. 우리의 사랑과 추억과 신의와 믿음은 다 어디로 사라졌느냐고 탄식하며 에우리디체는 “당신과 함께 사느니 죽음의 세계에 머무르는 게 낫다”고 외친다. 그러자 오르페오는 마음으로 피눈물을 쏟으며 “나는 영원히 당신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닐 것”이라고 결연한 의지를 밝힌다. 긴 실랑이 끝에 인내심이 한계에 도달해 결국 신들의 금령을 어기고 에우리디체를 돌아본 오르페오. 모든 희망이 끝나는 순간이다.

글루크의 오페라에는 비극적 신화와는 다른 반전이 있다. 절망에 빠져 “에우리디체 없이 어찌 살까”라고 노래한 오르페오가 “기다려요! 이번에는 절대로 남편 없이 당신 혼자 망각의 강을 건너게 하진 않을 테니!”라고 외치며 자신의 심장에 단도를 꽂으려는 순간, 사랑의 신 아모르가 달려와 “스톱!”을 외치기 때문이다.

“오르페오, 그대는 내 영광을 위해 충분한 고통을 감내했어요!”

그러니까 신들은 이 젊은이들의 사랑을 걸고 내기를 즐겼던 것이다. 물론 사랑의 신은 오르페오가 저승에 가서 아내를 구하는 쪽에, 그러니까 사랑이 승리하는 쪽에 걸었다. 가장 세속적인 예술이었던 오페라에서 궁극의 승리는 언제나 숭고한 사랑이 아닌 열정적인 사랑에, 그리고 진이나 선이 아닌 미에 돌아갔다.

오페라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줄거리 들여다보기

오르페오는 간절히 사랑하던 님프 에우리디체와 마침내 결혼하지만, 들판에서 화관을 엮던 에우리디체가 뱀에 물려 죽자 절망한다. 사랑의 신 아모르의 조언에 따라 아내를 되찾으러 저승으로 간 오르페오는 그곳에서 저승 신과 정령들의 마음을 음악으로 움직이는 데 성공하고 아내를 돌려받는다. 그러나 지상의 빛을 볼 때까지 아내를 돌아봐서는 안 된다는 신의 금령을 어겨 사랑하는 에우리디체를 다시 잃고 만다. 모든 희망을 잃고 자살하려는 오르페오 앞에 나타난 아모르는 “신들이 부부의 사랑을 시험해보았을 뿐”이라며 에우리디체에게 다시 지상의 삶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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