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주 드 라 투르의 ‘주먹질하는 거리의 악사들’

손풍금 ‘허디거디’에 담긴 애환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8월 1일 12:00 오전

조르주 드 라 투르의 작품 속 허디거디는 당시 거리 연주자들의 초라한 생활을 말해주고 있다

조르주 드 라 투르의 ‘주먹질하는 거리의 악사들’

지하철에서 동전 바구니를 들고 구슬픈 노래를 부르며 지나가는 시각장애인을 본 적이 있는가. 노래가 애절할수록 바구니에 쌓이는 동전과 지폐는 늘어나는 법이다. 요즘에야 시각장애인들도 어엿한 사회 구성원으로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먼 옛날에는 동냥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시각 대신 상대적으로 발달한 청각 덕분에 노래도 곧잘 불렀다. 그래서 이들이 부르는 노래는 더 감동적이었다. 길거리를 다니면서 허디거디(손잡이를 돌려가며 연주하는 휴대용 풍금)를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며 구걸하는 시각장애인인 악사들은 17세기 프랑스 파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적 풍경이었다. 요즘으로 말하자면 혼자 연주도 하고 노래도 부르는 ‘원 맨 밴드’였다.


▲ 조르주 드 라 투르의 ‘주먹질하는 거리의 악사들’

마치 코앞에서 싸움을 벌이는 듯한 생생함

LA 게티 미술관이 소장 중인 조르주 드 라 투르의 ‘주먹질하는 거리의 악사들’은 남루한 옷차림이나 덥수룩한 수염으로 보면 비슷한 두 악사가 칼부림에 가까운 몸싸움을 벌이고 있는 장면이다. 서로 뺏고 빼앗길 게 거의 없는 거지들의 싸움이어서 더욱 안타깝다. 왼쪽 악사의 일행이나 아내쯤으로 보이는 여인은 겁에 질려 지팡이를 꽉 붙들고 그림을 보는 이에게 ‘사람이 죽을지도 모르니 제발 말려달라’고 애원하는 것 같다. 왼쪽의 시각장애인 악사는 오른손에 거머쥔 단칼과 왼손에 든 허디거디의 손잡이로 자신을 방어하고 있지만 매우 불리해 보인다. 오보에의 전신인 숌을 허리춤에 묶고 있는 오른쪽 악사는 상대방을 정면으로 노려보고 있다. 오른손으로는 레몬을 짜서 왼쪽 악사의 눈에 바르려고 한다. 항상 눈을 감고 있는 왼쪽 악사가 진짜로 시각장애인인지 아니면 시각장애인 행세를 하는 것인지 시험해보려는 것이다. 레몬즙 때문에 눈이 따가워서 펄펄 뛴다면 가짜이다. 등 뒤에 백파이프와 바이올린을 들고 잔인한 표정으로 서 있는 또 다른 악사를 대신해 그는 허디거디 연주자와 한판 대결을 펼치고 있다. 두 사람은 거리에서 행인들이 빈번하게 지나다니는 목 좋은 곳에 터를 잡기 위해 서로 다투다 칼부림까지 하게 되었다.

같은 거리의 악사이지만 시각장애인 악사는 앞을 볼 수 없는 장애인이라는 점에서 서민층에게 강한 호소력을 발휘하며 동정심을 자아냈다. 음악 연주 외에는 달리 생계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황상 왼쪽 악사의 수입이 더 짭짤했을 것이다. 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한 시각장애인들이 거리의 악사로 나서기도 했지만, 눈을 일부러 상하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 거리의 악사들끼리는 경제적 손익이 달려 있는 활동 영역을 둘러싸고 싸움이 잦았다. 화가는 비좁은 화폭에 많은 사람을 배치해 보는 이로 하여금 폐소공포증마저 자아낸다. 마치 바로 코앞에서 싸움이 벌어지는 것 같다.

드 라 투르는 길거리에서 벌어지는 일상적인 풍경에 주목했다. 그래서 걸인이나 떠돌이 악사를 화폭에 자주 담았다. 짧은 순간에 벌어진 싸움판을 매우 세밀하게 묘사한 것을 보면 평소에도 이들의 표정이나 행색을 유심히 관찰해둔 것 같다. 그의 작품 ‘허디거디 연주자’에서도 허디거디를 연주하는 늙은 시각장애인 악사는 자신의 반주에 맞춰 구슬픈 노래를 부르고 있다. 조르주 드 라 투르 등 로렌 출신의 화가들은 가난하고 병든 불구자로 거리를 떠도는 부랑자들의 세계에 대한 생생한 묘사에 관심이 많았던 이 지방의 페트론들의 요구에 부응해 거리의 떠돌이 악사들을 화폭에 담았다. 귀족들은 자신들이 직접 접하기 힘든 서민의 일상을 그림에 담아 조소와 비난의 대상으로 삼았다.

가난했지만 자유로웠던 거리의 악사들

허디거디는 원래 교회음악의 반주를 위해 고안된 현악기였다. 연주를 할 때도 두 명의 연주자를 필요로 했다. 한 명은 L자 모양의 손잡이를 돌리고 나머지 한 명은 키를 눌러 현을 울렸다. L자 손잡이로 둥근 바퀴 모양의 나무판자를 돌리면 이 나무는 현을 마찰시켜 소리를 낸다. 세월이 흐르면서 허디거디는 점점 연주하기 쉬운 악기로 변모해갔고 13~15세기에는 춤곡을 연주하는 악기로 사랑받으면서 하류층 사이에서 특히 인기를 모았다. 허디거디가 백파이프와 비슷한 점은 선율과 함께 연주되는 지속음에 있다. 니콜라 셰드빌은 비발디의 ‘사계’를 허디거디를 위해 편곡하기도 했다. 도니체트의 오페라 ‘샤무니의 린다’에도 허디거디 반주로 부르는 아리아가 등장한다. 슈베르트도 연가곡 ‘겨울 나그네’ 중 ‘거리의 악사’에서 허디거디 연주를 흉내 냈다. 하지만 현을 활이 아닌 나무토막에 긁어내는 소리가 듣기에 그리 유쾌한 소리는 아니었고 간혹 삐걱거리는 소리로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주로 길거리의 시각장애인 악사나 떠돌이 거지가 연주했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높은 대접은 받지 못했다. 18세기 루이 14세 당시 프랑스에서는 전원생활을 동경하는 궁정과 귀족 사회에서 허디거디가 백파이프와 더불어 재조명받기도 했다. 마크 트웨인의 소설 ‘왕자와 거지’에서 보듯 말하자면 ‘가진 자의 여유’쯤 될 터이다.

허디거디 연주자의 별명은 ‘사부아 사람’이다. 알프스 지방의 사부아 출신으로 알프스를 넘어 프랑스 전역을 누비며 동냥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떠돌이 악사를 가리킨다. 사부아 지방엔 동계 올림픽 개최지인 알베르빌을 비롯해 샹베리 등의 도시가 있다. 요즘에야 겨울엔 스키장으로 여름엔 피서지 별장으로 인기지만 옛날에는 못 먹고 가난한 사람들이 살던 곳이었다. 추운 겨울이 되면 온 식구가 도회로 나가서 구걸과 온갖 허드렛일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했다. ‘레미제라블’에 나오는 굴뚝 청소부들도 사부아 출신이다.

귀족 가문의 딸이 사부아 사람 흉내를 내면서 허디거디를 연주하는 그림이 있다. 그림에 등장하는 앤 고어는 당시 열여섯 살이었는데 결혼 직전에 그린 이 그림에서 여주인공은 실제 나이보다 훨씬 더 나이 들어 보인다. 앤 고어는 무려 스무 살 위의 신랑과 결혼했다. 왼쪽 아래에 그려진 강아지는 결혼 후 앤 고어가 맞게 될 운명을 예견해준다. 남편에게 위안을 주는 충견 같은 모습 말이다. 화가 요한 초파니는 고어가 귀족의 거실에서 건반 악기를 연주하는 가족 초상화도 그렸다. 허디거디를 연주하는 초상화는 고어의 약혼자의 부탁으로 그린 것이다. 스무 살 위의 신랑은 이 그림에서 어떤 궂은일을 해서라도 가족을 부양하는 사부아 사람들처럼 생활력 강한 아내의 모습을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사실 허디거디는 거칠고 강한 소리를 내는 야외용 악기이기 때문에 고어에겐 어울리지 않는 악기다. 연주자들은 좀 가난하긴 하지만 정처 없이 어디든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자유를 누렸다. 이제 곧 결혼하면 가정에 얽매여 살아야 하는 18세기 여성에겐 동화 속 이야기일 뿐이다. 허디거디가 한때 베르사유 궁전에서 류트를 제치고 사랑을 받은 적도 있지만 하류층 떠돌이 악사들이나 연주하는 악기인 것은 마찬가지다. 사부아 사람들이 북쪽으로 진출하기 전엔 허디거디는 시각장애인 악사의 전유물이었다. 앤 고어의 초상화에는 하류층 악기와 복장을 흉내 내는 ‘가면극’의 요소와 더불어 비록 일시적 유행으로 그치긴 했지만 프랑스 궁정 문화를 모방하려는 귀족 문화의 아이러니가 담겨 있다.


▲ 요한 초파니(1733-1810), 사부아 사람으로 분장한 앤 고어

자동 악기 기술의 발달로 인해 허디거디 대신 손잡이를 돌리기만 하면 음악이 연주되는 ‘거리의 오르간’이 나타났다. 여러 개의 파이프를 울려내는 소리는 허디거디보다 훨씬 크고 강력했고, 바퀴 위에 상자를 올려놓고 연주하다가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어 편리했다.

카미유 실비가 1855년경 런던에서 촬영한 사진에는 허디거디를 연주하는 두 소년이 등장한다. 누더기는 아니지만 초라한 옷차림이며 카메라맨을 경계의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다. 문밖으로 쫓겨나 비바람에 맞서야 하는 길거리로 내몰린 악사의 기구한 운명을 잘 말해주는 듯하다.


▲ 카미유 실비가 1855년경 런던에서 촬영한 거리의 악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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