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현대무용의 거장 마기 마랭

움직임으로 세상을 말하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8월 1일 12:00 오전

프랑스 현대무용을 이끌어온 거장 마기 마랭. 예순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가는

그녀의 새로운 작품이 한국 관객과 만난다


▲ 벤저민 레브렌턴이 디자인한 ‘징슈필’의 무대

1951년 프랑스 툴루즈에서 스페인계 프랑스인 부모 아래 막내로 태어난 마기 마랭은 여덟 살이 되던 해에 툴루즈 콘서바토리에서 발레를 배우기 시작했다. 이후 스트라스부르 발레에 합류해 무용수 생활을 하던 중 스트라스부르 국립극단의 배우들과 연기 지망생들을 만나면서 지금까지 받아온 교육에 대한 한계를 느끼게 된다. 앳된 얼굴과 달리 어른다운 고민을 해왔던 걸까. 새로운 길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한 소녀는 열아홉의 나이에 학교로 돌아갈 것을 결심한다. 그리고 모리스 베자르가 철학을 담아 설립한 무드라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브뤼셀로 이주한다. 3년간 무드라에서 연기와 소리, 리듬과 즉흥으로 확장되는 공연예술의 세계를 경험한 소녀는 무용과는 또 다른 다양한 예술로 시야를 넓히게 된다.

“춤이 사람들의 말을 대신할 수 있을까?”

움직임으로서의 무용이 할 수 있는 사회적 역할을 고민하던 그녀는 학교를 졸업하고 모리스 베자르 20세기 발레단에 입단해 무용수이자 안무가로서 활동을 시작한다. 학교에서 배운 것들을 토대로 춤의 정체성을 확립해나갔고, 1978년 바뇰레 안무 대회에서 1위를 차지하며 무용계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같은 해 무드라 학교에서 함께 수학했던 다니엘 앙바슈와 무용단을 설립하는데, 이것이 마기 마랭 무용단의 모태가 된다.

그녀의 무한한 상상력과 특유의 작품 스타일은 ‘메이 비’(1981)에서 빛을 발했다. 정제된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던 프랑스 무용계에 등장한 뚱뚱하고 못생긴, 온몸에 진흙을 묻히고 그로테스크한 분장을 한 무용수들은 파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새뮤얼 버킷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를 텍스트로 낭만주의 작곡가 슈베르트의 교향곡이 흐르고, 이 가운데 움직임은 무용수들이 외치는 말이자 사회에 던지는 이야기가 되어 펼쳐진다.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사회와 그 내부의 인간 군상이 직설적으로 표현된 그녀의 작품에 찬사가 쏟아졌다.

그녀의 또 다른 작품 스타일은 리옹 오페라 발레에서 초연된 ‘신데렐라’(1985)에서 발견된다. 어린이의 시각에서 바라본 동화의 장면을 환상적으로 그려낸 고전 레퍼토리의 새로운 해석과 연출은 평단으로부터 주목받았고, 그녀의 대표작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새로운 무용의 탄생

마기 마랭의 작품은 독일의 피나 바우슈에 상응하는 ‘프랑스적 무용’으로 대표된다. 춤 언어에만 의존하지 않고 소리와 시각적 요소 등을 다양하게 사용해 작품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독일 탄츠테아터에 대한 프랑스의 대답’이라 불리는 마기 마랭의 작품 스타일은 프랑스 현대무용의 시초가 되는 ‘누벨 당스(Nouvelle Danse)’를 이끌어냈다.

‘새로운 무용’이라는 의미의 누벨 당스로 일컬어지는 1980년대 프랑스 현대무용의 흐름에서 안무가들은 무용을 단순히 움직임이라는 개념에 국한하지 않고, 영화·문학과 연계하거나 대본을 바탕으로 하는 연극적 작업을 추진했다. 누벨 당스를 이끈 안무가 중 한 명인 마기 마랭도 기존의 안무 구조를 해체하고, 무대에 비중을 두거나 새로운 미학적 코드를 만들어나가는 등 움직임보다 주제가 부각되는 작품을 만들어왔다. 이러한 경향은 1990년대 중반에 들어서부터 심화되어 ‘농 당스(Non Danse)’까지 진행된다. 무용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움직임이 사라지고 텍스트·영상·미술 등 연출적 요소가 강조된, 무용인지 연극인지 구분할 수 없는 작품들이 주류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마기 마랭이 있다.

지난해 6월 ‘총성’으로 국내 무대를 찾았던 마기 마랭이 올해 또 하나의 새로운 작품 ‘징슈필’을 들고 온다. 그녀가 발굴한 무용수가 홀로 무대를 빛내는 이번 신작 역시 특유의 상징적이고 암시적인 움직임으로 가득하다. 일상적인 움직임이 나열되는 가운데 관객은 어떤 의미를 찾아낼 수 있을까. 예순을 훌쩍 넘기고도 여전히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마기 마랭과 새로운 작품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 마기 마랭

‘징슈필’이라는 제목은 어떤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가.

작품을 쓰기 전에 ‘징슈필(Singspiele)’이라는 제목을 정했다. ‘노래의 연극’이라는 의미로 18세기 독일에서 유행했던 민속 음악극을 지칭하는 단어다. 연기와 노래가 어우러진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서 비롯한 것이다. 실제로 다비드 맘부슈는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도중에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철학에 바탕을 두고 이뤄지는 작업이 특징이다.

이번 작품 역시 발터 베냐민과 귄터 안더스 같은 독일 철학자들의 책을 읽으며 계획하게 됐다. 특히 에마뉘엘 레비나스의 철학이 이 작품에 영향을 미쳤다. 나는 인간의 얼굴에 관한 작업을 하고 싶었고, 에마뉘엘 레비나스의 저서 ‘존재와 다르게: 본질의 저편’ 역시 인간의 얼굴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책에서 그는 인간의 얼굴이야말로 살인을 막는 요소라고 말한다.

이번 작품 역시 인간을 주제로 하고 있다.

핵심적인 내용은 로버트 앙텔므의 텍스트에서 영감을 얻었다. 그는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것이고, 인정받지 못할 때는 지옥을 경험할 만큼 고통스럽다고 했다. 이 작품은 사람이 누군가와 마주하고 서로를 바라볼 때 느끼는 감각에 관해 다루고 있다.

작품에 참여하는 다비드 맘부슈는 어떤 배우인가.

다비드는 강한 예술적 감성과 지성을 갖춘 연기자다. 무용수는 아니지만 몸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그는 작가이기도 하며, 사운드 디자인에도 종종 참여했다.

무대 디자인을 맡은 벤저민 레브레턴과의 작업은 어떻게 진행됐는가.

벤저민과 함께 작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디자인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다른 이의 의견을 경청하는 모습과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작품의 진행 과정이 만족스러웠다. 그가 제안한 이번 무대는 작품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이번 작품은 한국의 대전예술의전당을 비롯해 프랑스의 여러 극장과 공동 제작했다.

우리가 소수의 공동 제작을 제안한 것은 단지 함께 일하고 싶다는 소망 때문이었다. 작품이 완성된 후에 대전예술의전당과 직접 관계를 맺었고, 한국에서의 공연이 가능하게 됐다.

어떤 방식을 통해 작품에서 몸과 움직임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는가.

처음부터 무용수가 아니라 ‘사람’이라고 인식하면 무용수의 몸과 그에 따르는 움직임을 부각시킬 수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나는 무용수들이 아닌 사람들과 작업하는 셈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작품 스타일이 조금씩 변화하는 것이 보인다.

1985년에 안무한 ‘신데렐라’와 2014년에 발표한 ‘징슈필’은 완전히 다른 맥락의 작품이다. 적어도 우리 무용단에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작품에 변화를 주고 발전시켜나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당신의 작품에서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무용은 인간을 나타낼 수 있는 하나의 표현 수단이다. 나는 인간이라는 존재이기 때문에 이 위치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작품의 영감은 어디서 얻나.

특별히 없다. 그저 인생을 살아가면서 영감을 얻는다.

무용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무용은 내 삶을 변화시켰다. 예술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의 인생 역시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무용이 사회를 단번에 바뀌게 할 수는 없어도 한 사람씩 차례로는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녀의 예술세계를 좀 더 가까이에서 듣고 싶었던 바람은 프랑스까지 닿지 못했던 것일까. 다소 매정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짤막한 대답을 보며 왠지 모를 서운함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다시금 단어를 곱씹어보니 그녀가 하고자 했던 이야기가 들리는 듯하다. 카리스마가 엿보이는 사진 속 인자한 미소에는 앞으로도 수많은 작품을 만들어낼 창작의 열정이 느껴진다.

마기 마랭 안무 ‘징슈필’

9월 19~20일 대전예술의전당, 25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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