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스 캉탱 드 라 투르의 ‘퐁파두르 백작 부인의 초상화’

초상화가 말해주는 그들의 생각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9월 1일 12:00 오전


▲ 프랑수아 부셰르의 ‘퐁파두르 백작 부인’

초상화 속에는 신분 상승을 위해, 연인을 사로잡기 위해 주인공이 말하고자 했던 진짜 이야기가 담겨있다

거실 탁자에 앉아 있는 한 여인이 손에 악보를 들고 바깥쪽 어딘가를 쳐다보고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음악적 영감을 갈구하는 시선이다. 그녀의 음악적 재능은 하늘에서 내려주신 것이다. 그림 전면에 부각되진 않지만 의자 뒤에 기타가 놓여 있다. 방금 전까지 기타를 연주하다가 악보를 다시 들여다보면서 뭔가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는 것 같다. 화려한 의상에 비해 여성의 외모를 한껏 돋보이게 하는 귀고리나 보석 장식 등이 없는 것도 특징이다.

소망에 따라 변하는 초상화의 소품들

이 초상화를 직접 주문한 그림 속 주인공은 다름 아닌 루이 15세의 정부(情婦)였던 마담 퐁파두르이다. 퐁파두르 후작 부인이라고도 하는데 본명은 잔 앙투아네트 푸아송이다. 푸아송이 물고기를 뜻하는 프랑스어라는 사실로도 그녀가 평민 출신임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녀는 예쁘고 똑똑했고 몸가짐이나 말에서도 세련된 풍모를 자아냈다. 어려서부터 하프시코드·춤·노래·판화를 배웠는데 당시 유명했던 오페라 가수 피에르 제리오트가 그녀의 성악 선생이었다. 그녀는 나중에 고백하기를 아홉 살 때 점쟁이를 찾아갔는데 언젠가 프랑스 국왕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세금 징수원이었던 아버지는 횡령 혐의로 국외 도주를 했고, 잔 푸아송은 어머니의 애인인 투른앙의 조카 르 노르망과 결혼했다. 결혼 후 살롱을 운영했는데 여기에 볼테르·몽트스키외 등 사상가와 문호들이 자주 출입했다. 몇 년 후, 국왕의 애첩이 되기 위해 궁정 사냥터에 잠입한 그녀는 사냥의 여신 다이애나로 분장해 루이 15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궁정에 출입하기 위해서는 귀족 신분이어야 했기 때문에 루이 15세는 그녀를 위해 퐁파두르에게 작위를 사서 르 노르망 부부에게 주고서는 남편을 멀리 내쫓아버렸다. 스무 살에 결혼한 뒤 스물네 살 때 루이 15세의 정부가 된 퐁파두르 백작 부인은 궁정에 출입하는 여인 가운데 왕비 다음 가는 지위와 권력을 누렸다.

퐁파두르 부인은 1747년 베르사유에 아마추어 극장인 프티 카비네 극장을 설립해 직접 운영했다. 자신의 저택을 방문하는 친구들에게 가벼운 여흥을 제공하기 위해서였다. 프티 카비네 극장의 작품은 연극과 오페라를 적당히 버무려 놓은 형태였고 주로 전원생활을 동경하는 내용이었다. 대표적인 작품은 라모의 ‘사랑의 놀라움’이다. 전체 작품 중 3분의 1 정도는 퐁파두르 부인이 직접 주인공으로 출연했는데 그녀는 목소리는 작아도 노래는 곧잘 했다. 그러나 오페라 제작 때문에 궁정 예산이 점점 바닥이 나자 루이 15세는 결국 오래지 않아 극장 문을 닫게 했다.

퐁파두르 부인의 초상화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모리스 캉탱 드 라 투르가 5년여에 걸쳐 완성한 파스텔화인데 세로 약 1.7미터의 실물 크기 초상화로 현재 루브르박물관이 소장 중이다. 드 라 투르는 작품료로 당시로는 엄청난 금액이었던 4만 8,000프랑을 요구했지만 백작 부인은 완성이 늦어졌다며 반값만 지불했다고 한다. 이후 그녀는 많은 화가들에게 초상화를 주문하는 등 예술을 후원하며 궁정 문화가 꽃피는 데 기여했다.

그림 속 테이블 위엔 두꺼운 책들이 놓여 있다. 과리니의 ‘충직한 목자’, 디드로·달랑베르가 엮은 ‘백과전서’, 몽트스키외의 ‘법의 정신’, 볼테르의 ‘앙리아드’ 등이다. 이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가장자리에 펼쳐져 있는 것은 건축 도면이고 바닥에는 퐁파두르 부인이 틈틈이 취미로 해오던 판화 드로잉들이 담긴 스케치북이 있다.

퐁파두르 부인은 왜 멋진 장신구 대신에 악보나 책을 초상화의 소품으로 넣었을까. 그림에서 부인은 자신이 외모만 빼어난 애첩이 아니라 많은 독서량과 음악적 재능을 갖춘 교양 있는 여성임을 보여주려 했다. 초상화는 그림 속 주인공의 몸매나 얼굴 생김새뿐만 아니라 교양이나 인생관, 삶의 철학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퐁파두르 부인의 초상화 가운데 악기가 등장하는 또 다른 그림은 궁정화가 프랑수아 부셰르가 그린 유화이다. 역시 루브르박물관이 소장 중이며 르 라 투르 그림의 3분의 1 크기이다. 여기서 백작 부인은 손가락으로 하프시코드 건반을 두드리고 있으며 악기 위에는 물론 악보가 놓여 있다. 머리와 옷에는 아름다운 꽃 장식이 곁들이고, 바닥에 스케치북이 보이긴 하지만 드 라 투르 그림에 등장하는 책들은 보이지 않는다.

그 이유는 부셰르가 이 초상화를 그릴 때만 해도 퐁파두르 부인은 루이 15세에게 여전히 육체적 매력을 발산하는 파트너였기 때문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주 미술관이 소장 중인 ‘술탄으로 분장해 커피를 마시는 퐁파두르 부인’을 그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5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면서 루이 15세에겐 또 다른 젊은 애첩이 생겼기 때문에 드 라 투르 그림에서는 육체적 매력보다는 많은 독서와 사색으로 다져진 교양을 자랑하고 싶었던 것이다. ‘팜므파탈’에서 ‘팜므 사방트’로의 변신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그림을 기점으로 퐁파두르 부인은 루이 15세의 친구이자 조언자라는 새로운 역할을 찾아 나섰다. 퐁파두르 부인은 베르사유에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거실에 드 라 투르가 그린 자신의 초상화를 평생 걸어두었다. 그녀가 처음부터 염두에 두었던 관객은 루이 15세다. 성적 매력은 좀 시들었는지 몰라도 풍부한 교양으로 말벗이 되어주겠다는 과감한 제안이자 베르사유 궁정에도 계몽주의 사상이 물결치도록 하겠다는 도전장이기도 했다.

 


▲ 모리스 캉탱 드 라 투르의 ‘퐁파두르 백작 부인’

▲ 아브라함 반 덴 템펠 ‘다비드 레이우 가족 초상화’

악기를 연주하는 그림 속 주인공들의 속마음

백작 부인의 초상화를 가장 많이 그린 궁정화가 프랑수아 부셰르도 1756년과 1758년에 실내와 야외에서 책을 읽고 있는 부인의 초상화를 그렸다. 각각 뮌헨 알테 피나코텍과 런던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이 소장 중이다. 오스트리아 작곡가 레오 팔은 오페레타 ‘마담 퐁파두르’를 작곡했는데 베를린에서 초연된 이 3막짜리 작품은 빈 폴크스오퍼를 비롯한 유럽 굴지의 오페라에서 자주 공연하는 레퍼토리로 자리잡았다. 궁정화가 부셰르가 단역(베이스)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이번에는 부셰르의 초상화에 등장하는 하프시코드에 주목해보자. 악기가 여성의 몸을 은유하던 당시로서는 여성이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을 그린다는 것은 몸을 다스릴 줄 안다는 의미였다. 다시 말해서 자신이 성적으로 타락하지 않고 냉정한 자제력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보통 그림 속 여주인공이 가장 즐겨 연주하는 악기는 오르간이나 보통 클라비코드 등인데 건반악기를 연주한다는 것은 육체적 욕망에 대한 자제력, 즉 순결과 정절을 갖춘 여성이라는 뜻이었다. 또한 음악적 능력은 곧 명석하고 통찰력 있는 판단을 의미했기 때문에 지성과 덕성을 겸비한 여성을 보여주는 데 건반악기만큼 좋은 소품도 없었다. 이런 이유 탓에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 작센 바이마르 공국의 대공 부인 안나 아말리아, 프랑스 사교계의 리더였던 마담 레카미에 등도 초상화를 보면 건반악기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루이 15세의 딸 가운데 빅투아 부인은 하프, 앙리에트 부인은 베이스 비올을 연주했다.

부부와 자녀들이 등장하는 가족 초상화에서도 악기의 역할은 매우 중요했다. 아브라함 판 덴 템펠이 그린 가족 초상화에는 암스테르담에서 영국으로 건너온 성공한 상업 귀족 다비드 레이우 부부와 1남 4녀가 등장한다. 외동아들 피터르는 베이스 비올, 열두 살짜리 둘째 딸 베인티어는 하프시코드를 연주하고 열여덟 살짜리 맏딸 마리아와 여덟 살짜리 셋째 딸 코르넬리아는 악보를 들고 노래를 한다. 식구들이 모여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은 가정의 화목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교양 있는 가문임을 보여주는 징표이기도 했다. 왼쪽에 서 있는 가장의 오른손은 마치 ‘가정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것 같은데 그림에 나와 있는 악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종교음악이다. 레이우가 당시 개신교의 일종인 메노파의 신도였던만큼 이 가정의 경건함을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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