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 탄생 450주년 기념 ‘로미오와 줄리엣’ 들여다보기 Part 2

음악으로 태어난 ‘사랑과 죽음의 강렬한 선율’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9월 1일 12:00 오전


▲ 조반니 바티스타 치프리아니 ‘부드러운 밤아, 어서 오너라…’

PART 2

음악으로 태어난 ‘사랑과 죽음의 강렬한 선율’

셰익스피어(1564~1616)가 생존했던 당시 셰익스피어에 대한 평가는 오늘날에 미치지 못하는 보잘것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가 죽은 지 100여 년이 지나면서부터 시작된 열기는 지금까지 거세기만 하다. 특히 18세기 말 프랑스와 독일에 소개된 셰익스피어의 희곡은 낭만주의 정신이 싹트고 있는 두 나라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의 ‘이야기’는 연극으로만 국한되지 않았고 여러 장르에서 그 흔적을 두루 찾아볼 수 있다. 그중 음악에서도 그 희곡의 영향을 찾아볼 수 있다.

흔히 셰익스피어의 대표적인 비극으로는 ‘햄릿’(1599~1602) ‘오셀로’(1604) ‘리어왕’(1606) ‘맥베스’(1611)를 꼽는다. 불가피한 운명에 대항한 치열한 인간들··· 그들의 고뇌를 담은 이 작품들은 비극으로서 응당한 무게를 지녔기에 셰익스피어를 대표하는 ‘4대 비극’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음악에서 깊이 흡수하고 호흡한 것은 무엇보다도 ‘로미오와 줄리엣’일 것이다. 베로나의 뿌리 깊은 원한을 지닌 두 가문의 아들과 딸. 그들의 애절한 사랑과 애달픈 죽음으로 막을 내리는 이 이야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디서나 존재할 수 있는 서사이기에 ‘4대 비극’보다 훨씬 깊은 호소력을 지닌다.

구상화로, 추상화로, 극적 교향곡으로

사랑과 죽음의 비극성이라는 이미지에 천착한 이 전대미문의 히트작에 수많은 작곡가가 음악을 만들어냈다. 음악의 공통점은 ‘사랑’이라는 ‘밝고 아름다운 주제’와 ‘죽음’이라는 ‘어둡고 격렬한 주제’가 연극처럼 극적인 대비를 이룬다. 그래서인지 사랑과 죽음의 대비가 극단적이면 극단적일수록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그 생명력을 잃지 않고 자주 연주된다.

오늘날 가장 많이 알려져 있는 ‘로미오와 줄리엣’은 우연하게도 두 러시아 작곡가에 의해 작곡된 곡들이다.

하나는 프로코피예프의 발레음악 ‘로미오와 줄리엣’. 원작의 줄거리를 그대로 표현한 이 작품은 1935년에 쓴 발레음악으로 원래는 약 2시간에 이르는 발레에 맞추어 진행되는 무용음악이다. 선율은 원작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고, 태생이 발레음악에 있기에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박자가 특징이다. 하지만 음악만을 놓고 보아도 완성도가 높아 오늘날에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프로코피예프가 서사를 음악으로 드로잉한 세밀화라면, 차이콥스키의 환상 서곡 ‘로미오와 줄리엣’은 원작을 접하고 난 뒤 밀려오는 사랑과 죽음의 비극적 이미지를 음악화한 한 폭의 추상화다. 1869년에 완성된 이 작품은 소나타 형식으로 수도사 로렌스를 상징하는 서주, 몬태규 가문의 로미오와 캐퓰릿 가문의 줄리엣의 격한 대립을 표현하는 격한 템포의 제1주제,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과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감미롭고도 애절한 제2주제로 구성된 20여 분의 관현악이다.

특히 2주제에서 잉글리시 호른과 비올라가 뿜어내는 우아한 선율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청순하고 덧없는 사랑의 테마로 림스키 코르사코프는 이 대목을 “러시아의 모든 음악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테마”라고 절찬하기도 했다. 멜로디 메이커로서 차이콥스키 특유의 선율과 연주 내내 팽팽하게 유지되는 긴장감을 통해 희곡이 지닌 문학성과 작곡가의 음악성이 잘 어우러진 명곡이다.

낭만주의 작곡가 베를리오즈. 그 자신은 행복한 ‘로미오’였을지도 모른다. 1827년, 베를리오즈는 영국 셰익스피어 극단이 파리에서 상연한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고 줄리엣 역을 맡았던 해리엇 스미드슨에게 반해 끈질기게 구애한 끝에 결혼했기 때문이다. 1839년, 파가니니의 지원을 받아 작곡을 완성한 그의 ‘로미오와 줄리엣’ 앞에 붙는 장르 명칭은 ‘극적 교향곡(Symphonie Dramatique)’. 1830년 ‘환상 교향곡’, 1834년 ‘이탈리아의 헤롤드’ 등 서사가 있는 극적 교향곡을 작곡한 경험이 있는 베를리오즈는 곡의 진행은 대체로 극의 진행과 유사하며 동시에 낭만주의의 주된 특징인 광기와 과대망상을 쏟아부었다. 오케스트라와 합창 등 200명에 달하는 연주 인원과 100여 분이라는 부담스러운 연주 시간 때문에 자주 연주되지 못한다는 점이 못내 아쉬운 작품이다.

오페라로 그려진 작품들

베를리오즈로부터 최고의 오페라 작곡가라는 찬사를 들은 샤를 구노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그랜드오페라로 만들었다. 셰익스피어 원작을 바탕으로 쥘 바르비에와 미셸 카레가 대본을 쓴, 5막 8장의 오페라다. 구노는 1859년 파리 리리크 극장에 ‘파우스트’를 올리고 이어 1867년 같은 극장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을 선보임으로써 프랑스 낭만오페라의 매력을 한껏 뽐냈다. 이 작품에서 로미오(테너)와 줄리엣(소프라노)은 아름다운 사랑의 2중창을 네 번 꽃피우는데 1막의 운명적인 첫 만남 장면, 2막의 발코니 신, 4막의 첫날밤이자 마지막 밤, 5막 비극적 장면이다.

사랑과 죽음의 미학에 있어서 구노의 ‘로미오와 줄리엣’과 바그너가 1865년에 작곡한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비교해보면 흥미롭게도 몇 개의 공통점이 보인다. 원수지간의 사랑, 남의 눈을 피해 밤에 몰래 나누는 사랑, 생과 사의 경계를 나누는 비약(秘藥)과 칼, 죽음을 지나 완성되는 사랑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작품의 중심을 이루는 사랑의 색채와 성격은 전혀 다르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청순과 불운으로 대변된다면,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음습과 불륜으로 대변되기 때문이다.

구노의 작품과 셰익스피어의 원작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원작에서 독약을 마신 로미오가 죽고 난 뒤에 줄리엣이 깨어나는 반면 오페라에서는 줄리엣이 깨어나 함께 사랑의 이중창 ‘슬퍼하지 말아요, 가여운 연인이여’를 부르고 난 뒤 신의 용서를 구하고 죽는다. 남녀가 피날레를 장식하며 막을 내려야 한다는 오페라의 형식을 고수한 구노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이탈리아의 빈센초 벨리니는 1830년에 오페라 ‘캐풀레티가와 몬테키가’를 작곡했다. 제목은 어감에서 느껴지듯 줄리엣의 캐퓰릿 가문과 로미오의 몬테규 가문을 뜻한다.

셰익스피어의 천재성은 비유와 은유가 팽팽한 대사에 있다고 하지만 서사의 모티프는 영국 역사나 외국 민담으로부터 얻은 것이 많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야기도 원래 이탈리아 각지에 전승되던 얘기다. 벨리니는 이탈리아 오페라의 장인답게 셰익스피어가 아닌 루이지 다 포르타라는 이탈리아 작가의 소설을 텍스트로 삼았다. 따라서 등장인물도 셰익스피어와 다른 점이 많다. 특히 줄리엣의 사촌 오빠 티발트와 줄리엣의 약혼자 파리스 대신 두 사람이 복합된 캐릭터인 테발도가 등장한다.

이 오페라의 특이한 점은 로미오 역을 남자가 아닌 메조소프라노가 부른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랑의 노래도 줄리엣 역의 소프라노와 메조소프라노인 로미오의 이중창으로 불려진다. 대신 테발도 역을 테너에게 맡겼다. 로미오를 여자가 부르도록 한 것은 당시에 카스트라토를 출연시켜야 했기 때문이 아니라 벨리니와 각별한 관계였던 당대의 명가수 주디타 그리시가 부르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아무튼 이 때문에 오늘날에는 이질적인 작품으로 여겨져 공연될 기회가 적고 한때 로미오 역을 테너가 부르도록 편곡이 가해진 적도 있다.

글 송현민(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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