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리스트 송영훈, 피아니스트 박종훈에게 묻다

클래식 음악, 대중과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11월 1일 12:00 오전


▲ “공연 당일 무대에 오르는 연주자와 관객의 다리 역할을 하면서 그들이 어떤 대목에서 어떤 인상을 받는지 피부로 느낄 수 있었어요. 그러면서 절실히 느낄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좋은 연주를 들을 때 대중도 감동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전문 연주자로서 방송과 해설 등을 통해 대중과 더 가깝게 소통해온 첼리스트 송영훈과 피아니스트 박종훈이 지난 8월, 예술의전당 ‘11시 콘서트’ 진행자의 마이크를 주고받았다. 각각 탄탄한 팬덤을 확보하고 있는 그들에게 던진 클래식과 소통에 관한 질문

첼리스트 송영훈

“결국 연주가 좋아야 대중도 감동한다”

첼리스트 송영훈은 지난 8월, 5년간 진행을 맡아온 예술의전당 기획 프로그램 ‘11시 콘서트’의 마지막 공연을 마쳤다. ‘11시 콘서트’는 오전 11시 공연이라는 파격적인 시도로 2004년 9월부터 시작되어 현재까지 120회 공연을 했고, 28만여 명의 관객을 모았다. 송영훈은 중저음의 따뜻한 목소리와 부드러운 해설로 많은 고정 관객을 확보하며 새로운 클래식 음악 문화의 탄생에 일조했다. 빽빽한 국내외 연주 스케줄 속에서 5년간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정기 공연을 이끌어오기란 쉽지 않은 여정이었을 터.

“힘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죠. 그래도 ‘11시 콘서트’는 한 공연 한 공연 끝날 때마다 꼭 하나씩 배울 점이 있었어요. 연주도 하긴 했지만 주로 말로 관객을 만나는 자리라 더 직접적인 소통이 이루어졌죠. 공연 당일 무대에 오르는 연주자와 관객의 다리 역할을 하면서 청중의 반응을 살피는 데 만족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어떤 대목에서 어떤 인상을 받는지 피부로 느낄 수 있었어요. 그러면서 절실히 느낄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좋은 연주를 들을 때 대중도 감동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송영훈은 이외에도 KBS 1FM ‘송영훈의 가정음악’ 진행과 문화나눔프로젝트인 ‘해피 뮤직스쿨’의 음악감독 등 대중과 가까이 만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러한 그의 행보는 일종의 의무감에서 비롯됐다. 두 살 때 미국으로 건너가 모국어보다 영어를 먼저 배웠던 그가 처음 첼로를 잡은 것은 다섯 살, 다시 한국에 돌아왔을 때였다. 중학교 1학년, 미국으로 다시 돌아가기 직전까지 한국에서 열리는 클래식 공연을 매주 한두 편씩 보며 꿈을 키웠다. 인생의 반 이상인 30여 년을 외국에서 생활했지만 꾸준히 한국 대중과 만나는 통로를 찾는 이유는 자신이 받은 관심과 사랑을 한국 관객과 나눠야겠다는 의지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클래식 음악은 역사가 그리 길지 않음에도 엄청난 발전을 해왔어요. 좋은 시설의 콘서트홀을 여럿 가지고 있고 훌륭한 연주자들을 수없이 배출했죠. 세계적인 대가들도 이제는 한국에서 공연하기를 원하고요. 한국에 클래식 음악을 향유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해외에서 연주 활동을 하는 대한민국 연주자로서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지 몰라요. 앞으로도 한국 클래식 음악계에 도움이 되는 일이 있다면 계속할 겁니다.”

독일·스위스·영국·일본 등을 바삐 오가며 정통 클래식부터 월드뮤직까지 다양한 레퍼토리를 선보여온 송영훈의 11월 공연 소식도 기대를 모은다. 이번 리사이틀의 레퍼토리를 살펴보면 베토벤의 ‘모차르트의 ‘마술피리’ 중 ‘사랑을 느끼는 남자들은’에 의한 7개의 변주곡’을 제외하고는 전부 프랑스 색채를 띠는 곡으로 채워져 있다. 스페인 출신 작곡가지만 파리에서 유학하며 드뷔시·라벨과 친교를 나눈 덕에 프랑스 음악 성격을 띠는 파야의 ‘스페인 가곡 모음’과 드뷔시의 첼로 소나타, 그리고 첼로 버전으로 편곡한 프랑크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연주한다.

프랑스 음악의 색채를 더한 선물

“프랑스 음악으로 채워야겠다고 의도한 건 아니었어요. 드뷔시·파야의 첼로는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던 곡이고요. 프랑크의 바이올린 소나타는 이미 50여 년 전부터 많은 첼리스트에 의해 첼로 소나타로 연주되어 왔어요. 언젠가 꼭 한 번 무대에서 연주하고 싶었는데 이제야 하게 됐네요. 전부 사랑의 감정에 호소하는 곡들이에요. 아름다운 로맨스와 풍경이 어우러져 공연 당일, 낭만적인 밤을 선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번 리사이틀이 그에게 특별한 건 최근 1〜2년간 한일 리사이틀 투어와 아시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아시아 투어 등 아시아권 공연을 개최하며 겪은 여러 가지 경험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독도 문제가 다시 불거져 한일 관계가 악화되었을 때 송영훈은 후쿠오카 데뷔 무대를 준비 중이었다. 기자회견 자리에서 한 일본 기자에게 독도에 관련된 공격적인 질문을 받았고, 그는 한국과 일본이 영토 분쟁으로 적대적 관계에 있지만 내가 연주하는 브람스를 듣기 위해 한국과 일본의 많은 관객들이 한 자리에 앉았다는 것에 고마움을 느낀다. 역사적·정치적 문제도 초월할 수 있는 것이 문화고,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소통하고 화합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음악가가 되고 싶다”고 대답했다.

정명훈이 지휘하는 아시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공연 역시 아시아를 대표하는 연주자들이 모여 연습을 하고, 한 나라 한 나라 이동하며 화합의 연주를 선보일 때마다 그는 큰 뿌듯함을 느꼈다. 양복을 입고 악수하며 미소 짓는 카메라 속 모습이 아닌 100여 명의 인원이 하나의 소리로 깊은 울림을 전하는 값진 순간은 그의 연주 활동에 자양분이 되었다.

“40대 연주자는 그동안의 경험과 갈고닦은 음악성을 한데 모아 포장하는 단계에 서 있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20대에는 궁금한 게 많았고 뭐든지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시기였어요. 30대에는 나한테 공부가 될 만한 것이 무엇인지 판단하고 바쁘게 움직이는 시기였고요. 이제는 하나하나 무대를 마칠 때마다 감사함으로 충만해요. 관객들과 만나는 시간이 어느 때보다 기다려집니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관객들이 어떤 곡을 좋아할지 고르고, 선물을 받았을 때 더 기뻐할 수 있도록 열심히 연습하고 있어요. 이런 행복을 느끼기 위해 그동안 음악을 해온 것 같습니다.”

자만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내면의 깊이를 더해가는 중년의 연주자는 앞으로의 행보도 기대하게 하는 힘을 가진다. 이번 무대에서 한층 더 여유로워진 그의 연주가 풍성한 선물처럼 펼쳐질 것이다.

사진 스톰프뮤직


▲ “방송과 해설을 통해 클래식을 소개하며 느낀 것은 ‘억지로 클래식을 좋아하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술이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청중도 클래식을 전하는 사람들도 모두 각각 마음의 문을 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피아니스트 박종훈

“클래식을 억지로 가르치려 하지 마라”

따뜻한 햇살이 아름다운 목요일 오전 11시, 예술의전당에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든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오랜만에 친구들과 외출한 주부부터 은퇴한 후 인생의 여유를 즐기고 있는 노부부에 이르기까지 모두 삶 속에서 클래식을 만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다. 무대의 조명이 꺼지고 누군가를 향해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진다. ‘11시 콘서트’의 진행을 맞은 한 남자가 천천히 걸어온다. 시크하지만 따뜻한 음성을 가진 그의 모습이 비친다. “안녕하세요. 피아니스트 박종훈입니다.”

“올 9월부터 ‘11시 콘서트’ 진행을 맡게 되었는데, 연주도 수준이 높고 청중도 굉장히 집중도가 높습니다. 편안한 오전 시간에 ‘음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많은 청중과 함께 음악을 나누고 즐기는 여유로움 때문에 저도 행복하고요. 진행을 통해 대중과 자연스럽게 만나고, 음악을 전해주고 나눌 수 있다는 것이 개인적으로도 굉장히 의미 있게 느껴집니다.”

그는 얼마 전 TV 드라마 ‘밀회’에 출연해 관심을 모았고, 5년 전에는 KBS 1FM ‘가정음악’을 진행했을 만큼 방송과도 인연이 깊다. 배우 김태우와 함께 진행하고 있는 ‘두 남자 콘서트’는 어느덧 10년이 되어 이제 라이브 클래식 공연으로는 스테디셀러가 되었을 정도다.

“김태우 씨는 워낙 다양한 예술을 좋아해서 지금까지 즐겁게 공연을 같이 이끌어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2004년 처음 진행을 함께 했는데 이제 서로 더 친해졌고 무대에서 자연스럽게 음악을 즐기는 분위기라서 저 역시 편안하고 좋습니다. 가끔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서로 나누며 청중에게 웃음을 전해주기도 하는데, 이런 무대는 정통 클래식 무대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어요. ‘가정음악’ 같은 라디오 진행의 경우, 제가 공부해야 하는 부분도 많았기 때문에 여러모로 음악적인 도움이 많이 된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방송은 시간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부담감이 크기 때문에 연주자가 오래 진행하기에는 힘든 면도 있습니다. 특히 외국에 나갈 때는 하루 종일 녹음을 해야 했기 때문에 진행 과정에서 어려움이 많았지요.”

그동안 클래식에만 국한하지 않고 뉴에이지·재즈·자작곡까지 피아노의 다양한 색채를 보여주었던 그의 다양한 음악은 여러 방송 프로그램과 TV 광고에 채택되기도 했다. 또한 예술영화 ‘탱고’의 음악감독과 2012년 EBS가 기획한 교육기획 다큐멘터리 다큐프라임의 MC·연주·녹음까지 직접 진행한 만능 음악제작자로도 잘 알려져왔다. 그가 클래식 피아니스트이면서도 대중에게 친밀하게 다가갈 수 있었던 것은 아마 이런 다재다능한 능력 때문이었을 것이다.

박종훈은 클래식을 좋아하는 청중이라면 음악뿐 아니라 전시와 미술, 문학과 영화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을 접하며 소통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방송과 해설을 통해 클래식을 소개하며 느낀 것은 ‘억지로 클래식을 좋아하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클래식과 예술 장르를 자연스럽게 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겠지요. 처음부터 끌린다기보다는 자꾸 들을수록 좋은 것이 클래식의 특징이기 때문에 시간을 갖고 삶 속에 예술이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청중도 클래식을 전하는 사람들도 모두 각각 마음의 문을 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이것만은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클래식은 그렇게 멀리 있지 않다는 것, 언제나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을요.”

한 편의 시가 된 슈베르트

다양한 채널을 통해 대중과 소통해온 그의 11월 독주회 소식은 한층 넓어진 관객층과 만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으로 보여 기대를 모은다. 그가 이번 무대에서 들려줄 레퍼토리는 고독한 삶 속에서도 끝없는 노래로 삶을 이야기했던 슈베르트의 작품들로,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16번과 슈베르트 즉흥곡 Op.90이다.

박종훈은 특히 이번에 슈베르트 원곡에 기반을 두고 자신이 새로 작곡한 작품을 선보인다. ‘슈베르티아나’(슈베르트 곡을 주제로 한 피아노 독주를 위한 환상곡), ‘로자문데’에 대한 콘서트 패러프레이즈, ‘군대 행진곡’에 대한 콘서트 패러프레이즈를 직접 연주로 들려준다. 독주회와 함께 새로운 클래식 음반인 ‘슈퍼 슈베르트(Super Schubert)’의 발매도 앞두고 있다.

연세대 음대와 줄리어드 음대 대학원을 거쳐 이탈리아 이몰라 피아노 아카데미에서 라자르 베르만을 사사한 그는 2000년 이탈리아의 산레모 클라시코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펼쳤다. 지난 10여 년간 로마·밀라노·피렌체·볼로냐·파르마·베로나를 비롯해 이탈리아 내 20여 개의 도시에서 성공적인 독주회와 실내악 연주를 마친 그는 현재 슈베르트 작품 녹음과 함께 독주회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슈베르트는 어린 시절부터 아주 좋아하는 작곡가였어요. 슈베르트 작품은 피아니스틱한 곡들이 아니라서 콩쿠르 과제곡으로 잘 나오지 않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음악적인 생각이 뚜렷해져야 더 가깝게 느껴지고 서서히 이해가 되지요. 제가 좋아하는 작곡가가 베토벤과 슈베르트인데, 슈베르트는 음악을 작곡할 때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것이 없었던 것 같아요. 피아노 작품의 경우 연주를 하다 보면 피아니스틱한 면은 크지 않지만 그가 피아노의 소리와 울림에 대해 아주 잘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소리와 울림을 잘 살려 그대로 작품에 옮긴 음악가가 슈베르트가 아닌가 싶어요.”

박종훈이 이번에 슈베르트를 주제로 이용해 작곡한 작품들은 전개에 있어서는 슈베르트의 본능적인 음악적 움직임과 흐름이 잘 살아있고, 피아니스틱한 부분에서는 리스트와 라흐마니노프 같은 후기 낭만 음악의 색채가 묻어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에 박종훈만의 색을 덧입혀 아주 특별한 슈베르트가 재탄생했다.

“지금은 대체로 작곡가와 연주자가 구분되어 있지만 리스트·고도프스키·라흐마니노프처럼 예전에는 작곡가가 대부분 연주자였지요. 그런 면에서 저는 음악가가 작곡과 연주를 함께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곡을 잘 쓴다는 것은 연주를 잘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렵고 힘든 일이지요. 작곡가로서 그동안 여러 장르의 작품들을 작곡했지만 이번 작업은 오래전부터 제가 꼭 쓰고 싶었던 곡들이었기 때문에 무척 의미있었습니다. 연주회도 많이 기대되고요.”

슈베르트의 음악을 ‘한 편의 시’와 같다고 많이 표현한다. 끝없는 노래로 선율의 아름다움을 전했던 슈베르트 음악이 주는 감동은 시대와 공간을 넘어 그 울림이 크고 깊다. 그동안 클래식에서부터 뉴에이지·재즈까지 다양한 장르에서 작곡과 편곡을 통해 자신만의 음악성을 구축한 박종훈이기에 슈베르트 음악이 갖고 있는 그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잘 표현해주리라 기대한다. 이번 무대는 슈베르트 마니아들에게도 색다른 매력을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사진 강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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