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리스트 양성원

베토벤의 투명한 영혼과 마주 앉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11월 1일 12:00 오전

첼리스트 양성원의 음악적인 이상은 자신이 사라지는 것, 자신이 사라져야 비로소 작곡가가 보이고 진정한 자신이 음악 안으로 스며든다. 그의 철학은 바흐 첼로 소나타 전곡 연주에서부터 브람스 소나타 전곡 연주까지 이렇게 이어졌다

INTERVIEW

지적이고 독창적인 해석과 연주로 주목받아온 첼리스트 양성원(연세대 교수)이 브람스 첼로 소나타 전곡 음반 발매 기념으로 11월 20일부터 25일까지 전국 각 지역의 무대에서 음악회를 갖는다. 그는 올해 3월부터 피아니스트 엔리코 파체와 함께 브람스 첼로 소나타 전곡을 레퍼토리로 부산 영화의전당·여수 예울마루·해남 미황사 등에서, 7월에는 프랑스 샤토 쇼몽과 이탈리아 카살마조레 음악제에서 음반 녹음과 영상 작업을 했다. 그 결실과 감동을 담은 음반 발매 기념 투어를 국내를 비롯해 일본 도쿄(11월 17일)와 오사카(11월 18일), 카나가와(11월 19일)를 포함한 아시아 순회공연으로 진행하게 되었다. 특히 이번 녹음과 연주는 첼리스트 페터 치머만과 호흡을 맞추며 유럽에서 주목받고 있는 이탈리아 출신의 피아니스트 엔리코 파체가 참여한다.

“아주 오래전부터 브람스를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막상 브람스 음반 작업을 끝내고 나니 열심히 했는데도 왠지 모를 허전함과 섭섭함 같은 것들이 남는군요. 이상을 추구하는 것과 완벽을 추구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죠. 예술가는 완벽이 아니라 이상을 좇아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완벽은 자신을 거대한 틀 속에 가두지만 이상은 자신을 자유롭게 꿈꾸고 도전하게 하니까요. 모든 일은 아쉬움이 남아야 다시 도전하게 되고 저는 그런 작업이 의미 있고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발매되는 그의 음반을 통해 브람스 음악과 함께 그의 삶과 음악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슈만의 작품들도 만날 수 있다.

“연주를 오래 하다 보면 내 자신이 어느새 버려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이번 작업을 할 때도 어떻게 하면 내가 없어지고 브람스와 슈만만 남을 지에 대해 많이 고민했습니다. 얼마나 더 브람스다운 연주인가, 얼마나 더 슈만다운 연주인가 하구요. 이 세상에는 많은 작품이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작품은 작곡되는 그 순간부터 새로운 세대에게 어떤 영감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연주자는 그 영감들을 전달해주는 사람들이고요. 그러니 지금 내가 느끼고 생각하고 표현했던 브람스와 슈만의 연주가 누군가의 마음에 스며들어 시간이 흐른 뒤에도 오랫동안 아름다운 여운으로 남아 있다면, 그것이 가장 훌륭하고 좋은 연주겠지요.”

음반 발매 기념으로 펼쳐지는 양성원&엔리코 파체 듀오 음악회에서는 특히 브람스가 남긴 주옥같은 작품 중 첼로 소나타 1번과 2번, 슈만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환상곡 Op.73, 한국인이 사랑하는 클래식 곡 중 하나인 슈베르트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를 연주할 예정이다.

“브람스의 첼로 소나타 1번은 30대에 작곡한 곡으로 그의 성숙한 음악 세계와 짜임새 있는 음악적인 구성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그야말로 첼로와 피아노의 앙상블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지요. 첼로 소나타 2번은 그 후 20여 년이 지난 50대에 쓴 작품으로 음악적인 에너지가 넘칩니다. 피아노와 첼로가 사라지고 브람스의 언어가 마치 오케스트라에서 나오는 소리처럼 변화하지요. 저는 이 소나타를 ‘첼로의 소리를 잊어버리게 하는 소나타’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이 있어요. 첼로 소나타 1번을 가만히 들어보세요. 느린 악장이 빠져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느린 악장의 주제가 먼 훗날 작곡된 소나타 2번에 담기게 되는 것이죠. 아마도 브람스가 당시 소나타 1번을 작곡할 때 훗날 쓰고 싶었던 느린 선율을 마음속에 남겨두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주 젊은 시절에는 브람스를 그냥 잘 연주했다면, 지금은 어느덧 브람스를 ‘느끼게’ 된 것 같다고 말하는 그. 브람스가 이제 양성원의 몸에 자연스럽게 배어든 듯하다.

“가장 소수의 단어로 가장 깊은 감동을 주는 작곡가가 슈베르트라면 브람스는 깊이가 있으면서도 순수하고 투명한 것이 특징이죠. 그래서 브람스 작품은 음표에만 매달려 연주를 하다 보면 두터워지기 쉽습니다. 반면 슈만 음악의 아름다움은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고통과 슬픔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고통과 부딪침에서 오는 음악의 흐름은 청중이 이해하기도, 연주자가 연주하기도 쉽지 않지요. 그래서 그의 음악을 마치 시냇물 아래의 많은 돌 사이로 흐르는 물 같다고 표현할 때가 많습니다. 슈만의 음악을 어떤 단어로 규정지을 수 없는 것은 아마도 음악 안에서 발생하는 치열한 긴장감과 황홀경 때문일 겁니다.”

다양한 취미로 깊이있는 음악을 만든다

첼로뿐만 아니라 요리·사진·미술 등 다양한 분야의 문화예술에 조예가 깊은 그는 지인들과 연주 여행을 하고 향이 좋은 와인을 마시고 맛있는 식사를 함께할 때 또 다른 삶의 기쁨을 느낀다고 한다.

“사람이 가진 오감은 참 중요한 것이지요. 저는 워낙 듣는 것을 주로 많이 하기 때문에 하루 종일 청각에 치우쳐 있는 시간이 많습니다. 그래서 일상생활에서는 되도록 보는 것, 만지는 것, 느끼는 것을 더 많이 체험하려고 합니다. 초록 숲을 보고, 좋은 향기를 맡고, 오선지에 그려진 악보를 넘기는 촉감 속에서 예술을 더 느끼고 깊은 영감을 받게 되지요.”

그것은 비단 음악 문화예술을 하는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는 연세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강단에서도 음악도들에게 자신의 몸의 다양한 감각과 음악을 이해하는 것에 대해 많이 강조한다. 또 악기 연주와 함께 음악 이외에도 다양한 분야에 대한 관심과 지식을 쌓도록 노력하기를 주문하고 있다.

“20년 전만 해도 악기를 전공해 직업을 갖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지요. 이제 학생들도 대학에서 악기 연주뿐만 아니라 음악을 통해 사회와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지 그 방법을 다양하게 고민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바로 코앞에 닥친 콩쿠르와 실기 성적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인생에 대해 멀리 바라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지한 음악가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연주자도 마찬가지예요. 연주자는 음악이라는 언어로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면에서 형식적인 연주보다는 무대에서 진실한 이야기들을 청중과 더 많이 나눌 수 있는 연주가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려면 더 높은 수준의 연주가 많이 펼쳐져야겠지요. 연주자들이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무대를 채울까 고민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음악의 핵심을 전하고 나눌 수 있을지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노력했으면 합니다.”

그는 말한다. 브람스와 슈만, 첼로·공간·청중이라는 퍼즐이 모여 하나가 되는 그 순간, 음악이 주는 최고의 기쁨, 따뜻한 위로, 진정한 사랑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이 세상에는 두 가지 연주가 있는 것 같습니다. 환호를 만들어내는 연주와 고요함을 만들어내는 연주, 제가 추구하는 것은 고요함을 만들어내는 연주입니다. 이번 무대가 청중에게 음악을 좀 더 귀 기울여 듣게 하고 끝난 후에는 작곡가가 남긴 이야기의 여운이 마음에 오래도록 남는, 겸손하고 결이 고운 무대였으면 합니다. 저도 청중도 모두 브람스에 스며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가 말하는 고요함이란 무엇일까. 우리 내면에 가득 찬 허황된 욕심을 버리고 진정한 영혼과 만나는 순간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스며든다는 것은 자신이 사라지고 자연스러워진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의 브람스 연주가 말해줄 것이다. 결국 우리가 미치도록 갈망하는 것들을 내려놔야만 진정한 예술도 삶도 비로소 펼쳐진다는 것을.

브람스 첼로 소나타 전곡 음반 발매 기념

양성원&엔리코 파체 듀오 리사이틀

11월 20일 오후 7시 30분 대구 북구문화예술회관

11월 21일 오후 7시 30분 경기도문화의전당 아늑한소극장

11월 22일 오후 7시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

11월 25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사진 심규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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