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ST SOUNDING RECORD]정명훈/서울시향의 말러 교향곡9번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2월 1일 12:00 오전

정명훈/서울시향의 말러 교향곡9번

 음향에 집착하는 오디오 마니아를 위해! 음악·오디오 칼럼니스트 박성수가 이달의 신보 중 베스트 사운딩 레코드를 선정합니다. 오직 ‘음향’이 기준이며, 모든 음반은 동일한 청취 시스템으로 평가합니다.

청취 시스템 컴퓨터 뮤직 플레이어 Sonic Studio Amarra (Ver 3.0.3)·

iTunes DAC Sonic Studio Model 304

라인 앰프·파워 앰프·스피커·케이블 D4A Sound 레퍼런스 시스템

이달에는 리마스터링 녹음을 포함해 총 11종의 음반을 감상했다. 총평부터 하자면, 다른 달과 비교할 때 녹음 수준이 유난히 차이가 났다. 먼저 안토니오 파파노가 지휘한 로시니의 서곡집(Wanner Classics)을 살펴보면, 소극적인 태도로 로시니의 음악을 담은 이유를 알 수가 없다. 당당함이 없다면 우아함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마저 살아나지 않으니 답답하기 그지없는 녹음이다. 다음으로 피오트르 보르코프스키와 윤소영이 협연한 시벨리우스·차이콥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Dux)은 세심하게 포착한 윤소영의 독주는 볼만하지만, 오케스트라는 음량에 따라 심도 표현과 스케일의 안정성이 떨어진다.

실내악과 기악으로 와보면, 레 방 프랑세의 목관 앙상블 음반(Wanner Classics)이 눈에 들어오는데, 결과는 신통치 않다. 언뜻 목관 앙상블의 다채로운 음색을 담아낸 듯하지만, 속빈 강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중고음의 속도가 너무 빠른 까닭에 중저음의 존재감을 느낄 수 없다. 저음이 없다면? 앙상블이 무너져버린다. 메나헴 프레슬러 탄생 90주년 기념 라이브 녹음(Erato)도 이와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음량은 크고 당당하지만, 허세가 심한 녹음이다. 안정감이 부족한 까닭에 편안하게 음악에 집중하기 어렵다. 다음으로 장 기엔 케라스와 알렉산더 멜니코프가 호흡을 맞춘 베토벤의 첼로 소나타 전집(Harmonia Mundi)은 긴 여운 탓에 포근한 느낌이 들고, 전체적으로 정갈한 인상을 주지만 첼로와 피아노의 조화가 부족하다. 악음의 선도 또한 그리 좋지 못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달의 베스트 사운딩 CD는?

정명훈의 말러 교향곡 9번(DG)과 마르크 앙드레 아믈랭이 연주한 드뷔시의 피아노 음반(Hyperion)을 놓고 한참 고민했다. 이들 음반은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과 런던 헨리우드홀이 눈앞에 펼쳐진 듯한 생생한 공간감 그리고 그 공간 속에서 떠오르는 명료한 음색을 담아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케스트라와 기악 녹음의 대결이라면, 녹음 작업의 규모와 과정 그리고 포스트프로덕션의 복잡성을 고려해 오케스트라 녹음에 손을 들어주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했다. 또 하나! 정명훈의 말러가 실황 녹음이라는 점 또한 베스트 사운딩 CD를 고르는 중요한 포인트가 되었다.

2013년 8월 29일과 30일에 예술의전당에 있었던 서울시향의 연주회를 담은 정명훈의 말러 교향곡 9번 녹음은, 결론부터 말하면 지금까지 들어본 ‘정명훈/서울시향’ 녹음 중 최고라고 생각한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의 공기를 희롱하는 듯한, 수묵화 같은 현악 앙상블! 콘서트홀의 공간을 파스텔 톤으로 물들이지만 선도 높은 음색으로 떠오르는 현악 앙상블은 그야말로 ‘베스트 오브 베스트’다. 그런데 이처럼 우아한 현악 앙상블 위에서 광채를 번뜩이며 터져 나오는 금관 섹션 그리고 현악과 금관 사이의 간극을 풍부하면서도 명료한 음색으로 채워주는 목관 섹션이 만들어내는 오케스트라 음향은 황홀함 그 자체다. 다음으로 선택한 아믈랭의 음반은 드뷔시 사운드의 핵심인 파스텔 톤의 분위기 연출에는 정명훈의 말러와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는다. 이 음반에서 가장 주목할 것은 완벽주의자 아믈랭이 구사하는, 풍부한 음색과 명료한 선율선이 거의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는 점이다. 그 결과 작곡가 드뷔시가 상상한 ‘음악의 인상주의’가 지향하는, 자연의 숨결을 시각화한 음향 풍경이 무엇 하나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눈앞에 선하게 펼쳐진다. 한마디로, 드뷔시 중 최고라고 해도 좋다.

플란테와 자크가 연주한 피아졸라의 탱고 음반도 추천한다. 이 음반에서는 반도네온과 기타의 생생한 음색을 바로 옆에서 감상하는 듯한 근접 마이크 테크닉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녹음 엔지니어링의 관점에서 보면, 근접 마이크는 양날의 칼이다. 생생한 악음을 포착한 대가로 자연스러움을 포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이 음반은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성공했다. 그 결과 생생함과 편안함이 공존하는 독특한 음향을 담아냈다. 한마디로 안정감, 절제력, 다이내믹, 어느 것 하나 지나친 것이 없다. 다만 포근한 맛이 부족하고, 악음에 살집이 부족한 것이 이 음반의 약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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