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발레 시어터 ‘잠자는 숲 속의 미녀’

감정도 색채도 선명해진 75주년 기념작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7월 1일 12:00 오전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 ‘잠자는 숲 속의 미녀’


▲ ⓒ Doug Gifford

감정도 색채도 선명해진  75주년 기념작


▲ ⓒ Gene Schiavone

올해 75주년을 맞은 미국의 대표적 발레단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의 ‘잠자는 숲 속의 미녀’를 보기 위해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를 찾았다.
‘잠자는 숲 속의 미녀’는 오로라 공주의 돌잔치에 초대받지 못해 앙심을 품은 악한 요정 카라보스가 공주에게 저주를 내리면서 시작된다. 카라보스는 오로라 공주가 16세가 되면 바늘에 찔려 죽도록 저주를 내리지만 라일락 요정의 중재로 오로라 공주는 죽음 대신 100년 동안 긴 잠에 빠지는 운명에 처한다. 왕과 왕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100년 동안 깊은 잠을 잔 오로라 공주는 데지레 왕자의 키스로 깨어나 아름다운 결말을 맺는다.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 수석 무용수 서희가 오로라 공주로 분하고 역시 수석 무용수인 코리 스턴스가 데지레 왕자 역을, 크레이그 살스타인이 남자 무용수가 여장을 해서 연기하는 카라보스 역을 맡았다.
차이콥스키의 발레 음악과 마리우스 프티파의 안무가 이뤄낸 환상적 조합과 더불어 모두에게 익숙한 플롯은 고전발레의 정수를 온몸으로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는 조건이다. 여기에 예술감독 알렉세이 라트만스키의 창조성이 더해져 변화무쌍하고 다채롭게 꾸민 무대 연출은 관객으로 하여금 넋을 잃고 공연에 빠져들게 했다.
고전발레를 완성했다고 평가받는 마리우스 프티파 안무의 기본 틀은 유지하면서 중간중간 알렉세이 라트만스키의 위트가 녹아들었다. 피리 부는 요정의 동작은 조금 더 요란해졌고, 카라보스는 우스꽝스럽게 리듬을 타며 관객의 웃음을 자아냈다. 풍부한 마임 동작을 좀 더 노골적으로 살린 덕분에 가사가 있는 오페라만큼 메시지 전달도 분명해졌다. 무대를 가득 메울 정도로 인원이 늘어난 무용수들의 군무도 다채로운 볼거리 중 하나였다.
특히 무대의상은 작품을 한층 돋보이게 했으며, 어느 장면에나 화려한 물감을 흩뿌린 것 같은 다채로운 색감이 존재했다. 주요 인물의 개성 있는 색감의 의상과 그들을 바라보고 격려하는 인물들의 무채색 의상이 대비를 이뤄 무대의 부족함 없는 미장센을 완성했다. 오로라 공주가 16세가 되었을 때는 소녀의 특징을 살린 고운 분홍색 의상이, 공주가 왕자의 환상에 등장하는 초현실적 장면에서는 안개 속 한 줄기 햇살이 비추듯 금장식을 머금은 흰 의상이 스토리를 더욱 살렸다. 이와 함께 철저한 리허설을 통해 완성한 듯한 조명은 공연에 완벽함을 더했다.
안무의 난이도가 높다고 손꼽히는 작품답게 오로라 공주 역을 맡은 프리마 발레리나에게는 고도의 기량이 요구되었다. 16세가 되던 해 각국에서 온 네 명의 청혼자와 만나는 장면에서 오로라 공주는 푸앵트로 아라베스크를 유지해야 한다. 이는 오르골 위의 발레리나처럼 왼발로 중심을 잡고 서서 네 명의 왕자와 차례로 악수를 나눠야 하는 안무로, 잠깐이라도 중심을 잃으면 자칫 그대로 쓰러질 수 있는 고난도 안무라 관객도 숨죽이고 지켜보았다.
발레를 볼 때면 인체가 표현할 수 있는 아름다움의 극단을 보는 듯한 경이로움을 느끼곤 한다. 1940년 창단 이후 미국 발레의 역사를 주도해온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의 75주년을 축하하며 이러한 경이를 앞으로도 계속 보여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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