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선지에 그린 바다 풍경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7월 1일 12:00 오전

19세기 인상주의 사조가 프랑스를 중심으로 퍼져나갔을 때, 바다는 수많은 화가들의 영감의 원천이었다. 음악가들 역시 자신만의 바다를 악보에 담아내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음악적 시도를 했고, 그 결과 각양각색의 바다가 음악으로 탄생했다. 차이콥스키의 폭풍우 치는 바다부터 드뷔시의 한 폭의 그림 같은 바다까지. 작곡가 6인의 다양한 모습으로 펼쳐지는 이들의 바다 음악에 귀 기울여보자

일찍이 프로이트가 ‘바다란 곧 모성애’라고 말했듯, 바다는 모든 생명의 원천이다. 만물을 구성하는 4대 원소인 ‘지수화풍(地水火風)’ 가운데서도 바다의 주요 원소인 물(水)은 모든 것을 수태하고 비옥하게 하여 만물을 성장시키는 특성이 있다. 물이 있기에 씨앗은 싹트고 대지는 초록빛이 되며 인간은 목마름을 채우고 생기를 얻을 수 있다. 많은 음악가들이 생명의 원천인 바다에서 영감을 받아 그토록 많은 작품을 남긴 것도 물이 지닌 생명의 힘 때문이 아닐까! 또 물이라는 원소가 ‘감정’을 상징한다는 점도 일종의 ‘감정 언어’인 음악과 가까워질 수 있는 요소일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음악가들은 ‘바다’를 그의 음악 속에 담기까지 다른 예술 장르의 매개를 필요로 했다. 바다의 광대함을 곧바로 음악으로 바꿔내기란 천재 음악가들에게도 어려운 과제였던 모양이다. 바다와 음악 모두 잡히지 않는 애매모호함이 있기에 바다의 구체적인 모습을 담은 문학작품이나 미술작품, 때로는 점성술과 신화에 나온 바다의 이미지야말로 음악가들에겐 중요한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템페스트’의 폭풍 장면과 ‘오텔로’의 바다 장면은 차이콥스키의 환상 서곡 ‘템페스트’와 베르디의 ‘오텔로’를 탄생시켰다. ‘바다’에 관한 월트 휘트먼의 시는 본 윌리엄스의 ‘바다 교향곡’으로 거듭났다.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판화 ‘가나가와 앞바다의 파도’는 드뷔시의 관현악곡 ‘바다’에 고스란히 담겼다.


▲ 차이콥스키(위)·림스키 코르사코프(아래)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와 차이콥스키의 ‘템페스트’

문학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바다 음악 가운데 원작의 느낌을 가장 충실히 살려낸 곡을 꼽는다면 역시 차이콥스키의 환상 서곡 ‘템페스트’일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템페스트’를 바탕으로 한 이 작품에서 바다는 프롤로그이자 에필로그로서 곡의 중심 역할을 한다.

1873년, 당대의 음악평론가이자 러시아 음악가들의 이론적 지도자인 블라디미르 스타소프의 권유로 환상 서곡 ‘템페스트’의 작곡에 착수한 차이콥스키는, 이 희곡에 나타난 미란다와 페르난도의 숙명적 사랑 이야기에 마음이 이끌려 두 사람의 사랑의 주제를 특히 아름답게 작곡했다. 하지만 사실 이 환상 서곡에서 사랑의 주제보다 더욱 비중 있게 사용된 것은 ‘바다’와 ‘폭풍’의 주제다. ‘바다’는 셰익스피어의 희곡에서나 차이콥스키의 환상 서곡에서나 작품의 주요 모티프가 된다.

동생에 의해 밀라노의 대공 지위를 찬탈당한 프로스페로는 딸과 함께 외로이 무인도에 정착해 마법을 익히며 복수를 꿈꾼다. 그러던 중 나폴리의 왕 알론소와 더불어 자신을 왕위에서 몰아낸 동생 안토니오가 항해길에 올랐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복수할 기회를 얻은 프로스페로는 자신의 마술을 이용해 폭풍우를 일으켜 그들을 자신이 사는 섬으로 유인한다. 바다의 폭풍은 ‘템페스트’ 이야기의 발단이 된다.


▲ 셰익스피어 ‘템페스트’ 초판의 첫 페이지

프로스페로는 알론소 왕의 아들 페르디난드를 무리에서 떼어내 홀로 섬에 상륙시켜 자신의 딸 미란다와 사랑하는 사이로 만드는 한편, 원수들을 섬으로 유인해 복수하려 한다. 하지만 결국 그는 모두 용서하고 마술을 버림으로써 행복한 결말을 맞이한다. 차이콥스키는 셰익스피어 ‘템페스트’의 핵심적 이야기를 다음과 같은 간결한 표제를 곁들인 환상 서곡으로 요약해냈다.

‘바다. 마술사 프로스페로는 아리엘에게 페르디난드가 타고 있는 배를 난파시킬 만한 큰 바람을 일으키라고 명령한다. 마법의 섬. 미란다와 페르디난드가 처음으로 수줍게 서로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아리엘, 칼리반. 두 연인은 자랑스럽게 정열의 충동에 몸을 맡긴다. 프로스페로는 자신의 마력을 포기하고 섬을 떠난다. 바다.’

차이콥스키가 악보에 적어둔 간결한 이 표제는 곡의 구조 자체를 드러낸다. ‘바다’라는 단어가 표제의 첫머리와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듯, 실제 음악 속에서도 바다는 프롤로그인 동시에 에필로그로서 바다의 다채로운 이미지와 복수를 꿈꾸는 프로스페로의 마음을 담고 있다. ‘바다’는 곧 이 음악의 핵심적인 ‘동인(動因)’이며 전곡을 이끌어나가는 역할을 한다. 알레그로 섹션에 나타난 폭풍 음악은 단지 음악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다양하고, 다이내믹한 시각적 이미지를 불러일으킨다. 이는 음악으로 시각적 이미지를 불러일으킨 러시아 작곡가 특유의 개성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리라.

풍부한 항해 경험을 음악으로 녹여낸 림스키 코르사코프

러시아의 음악가들은 음악을 통해 마치 눈에 보이듯 생생하게 묘사하는 능력이 뛰어나 극음악이나 발레음악에 유리한 점이 많았다. 또한, 표제 음악에서 러시아 작곡가들의 능력은 더욱 빛을 발했다. 바다의 다채로운 모습을 실감나게 표현한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셰에라자드’ 역시 생생한 묘사가 돋보이는 명곡이다. 특히 작곡가 자신의 풍부한 항해 경험이 반영됐기에 바다를 담은 음악 가운데서도 단연 돋보인다.

18세 때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사관후보생으로서 세계를 항해하며 바다에 깊은 인상을 받았던 림스키 코르사코프는 그 누구보다 바다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아라비안나이트’를 바탕으로 한 ‘셰에라자드’를 작곡하면서 바다를 소재로 한 이야기를 1악장과 4악장에 넣은 것도 ‘바다’가 그에게 매우 친숙했기 때문이리라.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작품 제목이기도 한 ‘셰에라자드’는 아라비아어로 쓰인 설화집 ‘아라비안나이트’의 여주인공 이름이다. 그녀는 포악한 술탄 샤리아르 왕에게 1001일 동안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며 위기를 모면한 지혜로운 여인이다. 아내에게 한 번 배신당한 후 ‘여자란 믿을 수 없고 부정한 존재’라고 생각한 술탄 샤리아르는 어떤 여자든 결혼한 후 다음 날에 죽였다. 그때 한 대신의 영리한 딸 셰에라자드가 자청해서 술탄과 결혼한다. 그녀는 왕에게 매일 밤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줘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마침내 왕의 사랑을 받아 오래도록 행복하게 산다.

‘셰에라자드’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4악장으로 구성된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교향시에 담겼다. 그중 첫 악장인 ‘바다와 신바드의 배’와 마지막을 장식하는 4악장 ‘바그다드의 축제-바다-난파’가 바다와 관련돼 있어 전곡에 걸쳐 ‘바다’의 모티프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술탄 샤리아르의 위협적인 음악으로 시작하는 1악장은 바이올린으로 표현한 ‘셰에라자드’의 주제에 이어 고요한 바다의 주제로 이어진다. 저음 현이 바다의 물결을 나타내듯 천천히 움직여가는 사이 바이올린은 망망대해를 떠올리게 하는 장엄한 주제를 연주한다. 처음에 바다의 주제는 고요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웅장하게 변모하고, 거대한 대양의 물결과 신바드의 배가 눈에 보이듯 묘사된다. 무엇보다 4악장에 나타난 바다의 폭풍 장면이야말로 바다의 거친 속성을 잘 드러낸다. 점차 거세지는 바다의 물결은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풍부한 오케스트레이션 덕분에 더욱 실감나게 다가온다. 거센 폭풍을 이기지 못한 배가 난파되는 장면에서는 탐탐의 깊은 울림이 강렬한 인상을 전한다. 그 누구보다도 오케스트라의 악기들을 효과적으로 다룰 줄 알았던 림스키 코르사코프는, 이 곡에서 오케스트라가 더욱 다채로운 빛깔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사이드 드럼·탬버린·탐탐 등의 타악기를 사용했다. 그뿐 아니라 트릴과 스피카토 등 각종 현악기의 주법을 동원했는데, 그 덕분에 시시각각 변해가는 바다의 모습이 더욱 생생하게 담겼다.


▲ 본 윌리엄스(위)·브리튼(아래)

본 윌리엄스의 영적인 바다

림스키 코르사코프가 오케스트라만으로 바다의 웅장한 모습을 담아냈다면, 영국의 작곡가 본 윌리엄스는 ‘바다’라는 표제를 붙인 그의 교향곡 1번에 인간의 목소리와 관현악이 어우러진 웅장한 음악으로 바다의 광대함을 노래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노래되는’ 이 교향곡은 단순한 교향곡이라기보다는 대규모 칸타타나 오라토리오 같은 작품이다. 가사는 미국의 시인 월트 휘트먼의 시집 ‘풀잎’ 중 바다와 관련된 부분에서 따온 것이다.

말러 교향곡 8번 ‘천인’ 1악장의 어마어마한 도입부에 비견될 만한 본 윌리엄스 ‘바다 교향곡’의 1악장은, 금관악기의 팡파르에 이어 ‘바다를 보라!’라는 웅장한 합창으로 시작한다. 처음부터 듣는 이를 압도하는 이 음악은 바다의 광대함과 신비로움을 전해준다. 또 ‘바다’라는 상징을 통해 영적인 세계로 출범하고자 했던 휘트먼적 비전을 잘 표현해냈다.

이 곡은 성령강림절의 찬미가를 가사로 하는 말러의 교향곡 8번 ‘천인’ 1악장과 비슷한 영적인 느낌을 준다. 하지만 초연 당시 1000명 이상의 인원이 필요했던 말러의 작품보다는 악기 편성이 작다. 소프라노·바리톤 합창과 오케스트라가 함께 연주하며 1악장에는 ‘모든 바다, 모든 배를 위한 노래’, 2악장에는 ‘고독한 밤의 바닷가에서’, 3악장에는 ‘파도’, 4악장에는 ‘탐험가들’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그러나 본 윌리엄스의 ‘바다교향곡’ 역시 말러의 교향곡처럼 인간에 대한 성찰과 그 본질적인 문제를 음악으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지극히 영적인 작품이라 할 만하다.

브리튼의 무자비한 바다

본 윌리엄스가 바다의 영적이고 신비로운 측면에 주목했다면, 브리튼은 그의 ‘네 개의 바다 간주곡’에서 무엇이든 삼켜버리는 무시무시한 바다의 이미지를 그려냈다. 브리튼의 ‘네 개의 바다 간주곡’은 그의 성공작인 오페라 ‘피터 그라임스’에서 발췌한 네 곡으로 구성된 일종의 모음곡이다. 이 간주곡들은 오페라 ‘피터 그라임스’의 분위기를 묘사하는 짧은 곡이지만 그 자체로 교향시라 해도 좋을 만큼 묘사적이고 상상력을 자극한다.

조지 크래브의 시 ‘도시’에 바탕을 둔 오페라 ‘피터 그라임스’에서 바다는 불길하고 어두운 이미지로 드러난다. ‘피터 그라임스’의 주인공인 어부 피터 그라임스는 마을 촌장 겸 검시관인 스왈로로부터 살인자로 의심받고 있다. 스왈로는 그라임스의 어린 조수의 죽음이 그라임스의 탓이라고 생각한다. 그라임스는 소년이 갑작스러운 역풍을 만나 사흘 동안 바다 위를 표류하다 극도의 피로와 추위로 죽은 것이라 해명한다. 별다른 증거가 없기에 스왈로는 소년의 죽음을 사고사로 판정한다

그러나 스왈로를 비롯한 마을 사람들 모두 그라임스를 의심해 그를 고독 속으로 내몬다. 여기에 그라임스를 믿고 도와주려 했던 교사 엘런이 데려온 소년마저 사고로 죽는 바람에 그라임스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의혹은 더욱 커진다. 스왈로는 그라임스를 살인 혐의로 추적하고, 궁지에 몰린 그라임스는 야수처럼 흉포해져 정신 착란 상태에 빠져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결국 그는 바다의 희생양이 된다. 마을 사람들은 그라임스의 죽음에도 무관심한 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일상생활을 이어간다.

오페라 ‘피터 그라임스’의 지극히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는 브리튼의 ‘네 개의 바다 간주곡’에서 불안감을 품은 ‘바다’의 느낌으로 표현된다. 1악장 ‘새벽’은 오페라에선 프롤로그와 1막 사이에 연주되는 음악으로, 새벽의 바닷가를 담은 음악이지만 은근한 불안감을 풍긴다.


▲ 홀스트(위)·드뷔시(아래)

홀스트의 신비로운 바다

본 윌리엄스의 바다가 인간의 영적 성장을 이끌어주는 ‘영적인 바다’라면 브리튼의 바다는 한 인간의 고통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불인(不仁)한 바다’다. 이처럼 본 윌리엄스와 브리튼은 바다의 서로 다른 측면에 주목했지만, 실상 이 두 가지 측면 모두 인간이 헤아릴 수 없는 바다의 신비로움으로부터 뻗어나온 것이다.

바다의 신비로움을 그린 음악 가운데 홀스트의 ‘행성’ 중 ‘해왕성’이야말로 으뜸이라 하겠다. 점성학에 관심이 많던 홀스트는 이 작품에서 해왕성의 특성을 점성학적이고 신화적으로 조명했다. 바다의 신 넵튠의 이름을 딴 해왕성은 점성학에서 그 어떤 행성보다 그 성격을 포착하기 어려우며 인간의 마음속에 광범위하게 스며드는 특질이 있다. 그가 상징하는 세계는 여러 가지 영상의 유동적인 흐름과 덧없는 신기루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심령적 에너지는 자아의식의 언저리에서 일렁이기도 하고, 때로는 자아의식을 완전히 삼켜버리기도 한다. 해왕성은 열광적인 공상이나 계시 같은 것을 유도하는 한편, 술과 마약 따위에서 정신적 만족을 구하는 이들의 방탕한 환락을 부채질하기도 한다. 때로는 영적인 커뮤니케이션과 관련되기도 한다.

홀스트는 일곱 개의 행성을 표현한 ‘행성’ 모음곡 중 마지막을 장식하는 제7곡 ‘해왕성’에 ‘미스틱’이라는 부제를 붙이고, 신비롭고 몽환적인 분위기로 마무리했다. ‘미스틱’이라는 부제와 어울리게 안개에 싸인 듯 모호하고 신비로운 느낌을 전한다. 곡 후반에는 여성 합창이 들려온다. 뚜렷한 가사 없이 허밍으로 부르는 합창 소리는 마치 뱃사람들을 유혹하는 사이렌 요정의 목소리처럼 느껴진다. 합창단은 대개 무대 뒤에서 노래한다. 종결부에서는 여성 합창의 신비로운 목소리와 하프, 첼레스타의 반짝임이 잔잔한 여운을 남긴다. 해왕성의 모호함과 그것이 상징하는 바다의 신비로움을 이처럼 잘 표현한 곡도 드물 것이다.

드뷔시의 그림 같은 바다

같은 ‘바다’를 묘사한 작품이라 해도 그 영감의 원천이 무엇인가에 따라 작품의 성격은 달라진다. 드뷔시의 경우가 그렇다. 림스키 코르사코프만큼 바다를 충분히 경험해보지 못한 드뷔시는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판화 ‘가나가와 앞바다의 파도’에서 바다를 경험했고, 이는 그림 같은 관현악곡 ‘바다’를 탄생시켰다.

드뷔시는 이 곡을 ‘교향적 스케치’라 불렀다. 호쿠사이의 판화에서 영향을 받았을 뿐 아니라 때때로 모네의 인상주의 회화를 연상시키기에 ‘교향시’라는 명칭보다는 ‘교향적 스케치’라 부르는 것이 이 작품에 더 어울린다. 작품에서 시시각각 변하는 바다의 모습은 ‘바다의 새벽부터 정오까지’ ‘파도의 유희’ ‘바람과 바다의 대화’라는 세 가지 스케치로 나타난다.

첫 번째 스케치의 제목 ‘바다의 새벽부터 정오까지’는 매우 특이한데, 실제로 드뷔시는 클로드 모네의 그림처럼 하루 중 어느 정확한 시점에서의 바다의 모습을 그리고자 했다. 그는 그 시각의 본질을 붙잡고 허무 속의 영원한 부분을 잡으려 했던 것이다. 제1곡 ‘바다의 새벽부터 정오까지’의 도입부는 동트기 전 어둡고 고요한 바다의 인상을 나타낸다. 어둠을 표현하기 위해 현악기 중 가장 낮은 소리를 내는 더블베이스가 먼저 연주를 시작하고 첼로와 비올라, 하프의 연주가 이어지면서 바다의 잔잔한 모습을 전한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바닷새의 울음소리가 플루트와 잉글리시 호른 등의 목관악기로 연주되고, 바다 위로 부는 바람은 바이올린 합주로 표현된다. 드디어 동쪽에서 해가 떠오를 때, 첼로와 호른이 새로운 선율을 연주하면서 태양을 반갑게 맞이한다. 태양이 한낮의 하늘 꼭대기까지 떠올라 뜨겁게 빛나는 대목에서 드뷔시는 금관악기로 황금빛 소리를 만들어낸다.

제2곡 ‘파도의 유희’에서 드뷔시는 파도치는 모습을 멋진 음악적 회화로 묘사한다. 하얀 거품을 내며 부서지는 파도 소리는 잉글리시 호른의 선율로 표현되고, 경쾌하게 움직이는 파도는 스페인 춤곡 리듬을 타고 춤을 춘다. 마치 가까이에서만 관찰할 수 있는 세세한 에너지 현상을 그려내고 있는 것 같다. 바다의 움직임을 현미경으로 잡아 세부적으로 관찰하는 것 같기도 하다.

제3곡 ‘바람과 바다의 대화’에 드러난 생생한 역동성은 단지 ‘교향적 스케치’가 아닌 ‘교향적 율동’이라 할 만하다. 첼로와 더블베이스의 으르렁거리는 저음과 목관악기군의 불안한 화음이 폭풍우의 시작을 알리면서 바람과 바다의 대화가 멋지게 펼쳐지고, 거친 바람과 파도가 싸우듯 거센 폭풍우가 몰아치는 장면이 펼쳐진다.

이처럼 생명의 원천인 바다는 그 모습이 너무도 다양하기에 바다를 담아낸 음악도 매우 다채롭다. 마치 물이 그 자체의 형태를 갖지 않고 담긴 그릇의 모양에 따라 모습을 바꾸듯이 때로는 아름답고 잔잔하게, 때로는 거칠고 무시무시하게 다가오는 바다의 음악은 독특한 음향으로 우리에게 많은 영감을 준다. 무더운 여름을 맞아 생명의 근원인 바다를 담아낸 음악을 들으며 우리의 귀를 새롭게 해보는 것도 특별한 음악 피서가 될 것 같다.

글 최은규(음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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