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인사색 첼리스트 린 해럴·마이스키·브란텔리드·이상 엔더스

가을의 문턱에서 만나는 첼리스트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8월 1일 12:00 오전

린 해럴·미샤 마이스키·안드레아스 브란텔리드·이상 엔더스. 네 남자가 들려주는 첼로의 미학

“내가 첼로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 나는 이 악기와 사랑에 빠졌다. 그 소리가 사람의 목소리, 특히 내 목소리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일찍이 20세기 첼로 거장 로스트로포비치는 이렇게 말했다. 아마도 많은 이가 첼로 소리를 목소리에 비유한 로스트로포비치의 말에 공감할 것이다. 굳이 첼리스트가 아니더라도 첼로 소리를 한 번쯤 들어본 이라면 낮고 부드러운 첼로의 음색이 사람의 목소리와 비슷할 뿐 아니라 그중에서도 남성의 목소리에 가깝다는 걸 쉽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더위가 잦아들고 가을이 찾아오기 시작하는 8월 말과 9월 초, 네 명의 남성 첼리스트가 잇따라 내한해 그들만의 멋진 목소리를 첼로로 들려줄 예정이다. 가을의 문턱에서 4인의 첼리스트들이 들려줄 첼로의 목소리는 과연 어떠할까?


▲ 린 해럴

그윽한 바리톤의 음성, 린 해럴의 첼로 소리

첫 번째 주인공은 8월 21일 서울시향과 협연하는 린 해럴이다. 벨칸토 발성을 연상케 하는 그의 첼로 연주는 이미 수많은 음반을 통해 잘 알려져 있지만, 실제 공연장에서 그의 연주를 듣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다. 마치 성악가가 혼신을 다해 노래하듯 음 하나하나를 노래하는 해럴의 연주는 콘서트홀에서 함께 호흡하며 감상해야 더욱 빠져들 수 있기 때문이다.

린 해럴의 연주는 훌륭한 바리톤의 노래를 연상케 하는데, 이는 우연이 아니다. 그의 아버지 맥 해럴은 바리톤 가수로 린 해럴은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노래를 들으며 자랐다. 1944년 미국 뉴욕 태생인 린 해럴은 바리톤 가수인 아버지와 바이올리니스트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음악을 접했다. 그러나 10대 중반의 사춘기 시절, 린 해럴은 부모와 사별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부모를 잃은 그는 여러 집을 전전하며 어려운 시절을 보내면서도 첼로 공부에 정진했다. 이후 조지 셀이 이끄는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의 수석 첼리스트로서 본격적인 연주 생활을 시작했다.

1971년, 린 해럴은 몇 년 간의 오케스트라 생활을 거쳐 마침내 뉴욕에서 데뷔 리사이틀을 시작으로 독주자의 길을 걷게 됐다. 그는 노래하듯 풍부한 음색과 따스한 음악성으로 세계 음악 팬을 사로잡았다. 부드러운 듯 힘찬 그의 톤은 오케스트라의 협연자로서나 실내악 연주자로서나 한결같은 매력을 발산하는데, 이는 그의 첼로 소리가 특히 사람의 목소리와 비슷한 깊은 감성을 표출하고 있기 때문 아닌가 싶다. 한 인터뷰에서 린 해럴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노래하는 목소리를 모방하는 것이야말로 악기 연주에서 이룰 수 있는 가장 높은 성취라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첼로 선생들이 그들의 학생에게 노래하라고 말하지만 악기로 노래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죠…저는 악기로 노래하기 위해 몇 시간이고 성악가들의 실황 연주 녹음을 들으면서 속도와 비브라토, 음역에 이르기까지 세부적인 것에 귀를 기울입니다…저는 특히 성악가들의 호흡에 흥미를 느낍니다.”

인터뷰 기사를 읽고 나서 린 해럴의 엘가 첼로 협주곡 음반을 주의 깊게 들어보니 연주가 다르게 들린다. 1악장의 주제는 기계적으로 흐르지 않는다. 마치 바리톤 가수의 노래처럼 숨 쉬듯 자연스럽게 선율의 굴곡을 담고 있다.

린 해럴 협연, 엘리아후 인발/서울시향
8월 21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엘가 첼로 협주곡 Op.85 외


▲ 미샤 마이스키

가슴으로 연주하는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

미샤 마이스키 역시 노래하듯 서정적인 첼로 연주로 정평이 나 있다. 해럴의 첼로 소리가 서정적이라면 마이스키의 첼로 소리는 좀 더 드라마틱하다는 차이가 있을 뿐 두 사람 모두 첼로로 노래할 수 있는 흔치 않은 첼리스트다.

미샤 마이스키는 한국을 자주 찾는 아티스트다. 내한 공연 때마다 듣는 이의 마음을 끌어들이는 타고난 감성의 첼로 연주로 특별한 감흥을 전해주곤 했다. 이번 공연에는 그의 딸이자 가장 편안한 파트너인 피아니스트 릴리 마이스키와 함께 남다른 호흡을 선사할 예정이어서 더욱 관심을 모은다.

마이스키의 첼로 연주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감정의 음악 언어’라 할 수 있다. 노래하듯 풍요로운 음색과 살아 숨 쉬는 프레이징은 가슴을 파고들며 마치 ‘가사 없는 노래’처럼 다가오곤 한다. 이처럼 마이스키가 가슴에 와 닿는 감성적인 연주를 해낼 수 있는 것은 무대에서 청중과의 교감을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마이스키는 일찍이 “청중이야말로 나의 존재 이유”라 말할 정도로 청중과의 교감을 중요시한다. 무대에 선 마이스키는 청중의 반응에 따라 즉흥적으로 여러 가지 모습을 종종 보이는데, 지난 2007년 세르히오 티엠포와 함께 한 독주회에서도 그랬다. 즉흥 연주라 해도 좋을 만큼 자유분방했던 그의 첼로 연주는 손에 땀을 쥐게 했고, 시시각각 달라지는 다채로운 음색 변화에 귀가 즐거웠다.

오는 9월 2일의 내한 공연은 미샤 마이스키의 딸 릴리 마이스키와 함께 하는 무대이니만큼 무대에서 더욱 깊은 교감과 흥미진진한 연주가 펼쳐지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이번 내한 공연에서는 바흐의 비올라 다 감바 소나타와 쇼스타코비치의 첼로 소나타 등 진지한 작품뿐 아니라, 브루흐 ‘콜 니드라이’와 마누엘 데 파야의 ‘스페인 민요 모음곡,’ 피아졸라의 ‘그랑 탱고’ 등 대중적인 소품도 연주할 예정이다. 이번 리사이틀은 일반적인 첼로 독주회에 비해 더욱 다채로운 무대가 될 것이다.

미샤 마이스키 첼로 리사이틀
8월 29일 오후 3시 안산문화예술의전당 해돋이극장
9월 2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바흐 비올라 다 감바 소나타 G단조 BWV1029 외


▲ 안드레아스 브란텔리드

안드레아스 브란텔리드, 젊은 첼리스트의 뜨거운 열정

8월 27일부터 30일까지는 주목받는 젊은 첼리스트 두 명이 잇따라 연주회를 개최해 눈길을 끈다. 27·28일 금호아트홀에서는 안드레아스 브란텔리드가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전곡을 연주하고, 29·30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는 첼리스트 이상 엔더스와 피아니스트 김선욱이 베토벤 첼로 소나타 전곡을 선보인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과 베토벤의 첼로 소나타라면, 첼로 문헌 중에서도 첼로의 ‘구약성서’와 ‘신약성서’로 꼽히는 핵심 레퍼토리가 아닌가! 첼로 작품 가운데서도 가장 진지하고 비중 있는 레퍼토리의 전곡 연주에 도전하는 20대 후반의 젊은 첼리스트들. 이들의 도전과 열정의 무대에 동참하고 싶다면 27일부터 30일까지 계속될 특별한 공연에 함께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1987년 코펜하겐 태생으로 올해 28세인 안드레아스 브란텔리드는 이상 엔더스에 비해서는 국내에 덜 알려진 듯하다. 그러나 그는 열네 살의 나이에 로열 덴마크 오케스트라와 협연해 첼리스트로 데뷔한 이후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빈 심포니·함부르크 심포니·BBC 심포니 등 세계적인 오케스트라 협연했으며, 안드리스 넬손스·유카 페카 사라스테 등 세계적인 지휘자들과 함께 호흡을 맞춘 주목받는 첼리스트다. 우리나라에선 지난 2013년 피아니스트 김다솔과의 듀오 연주회로 첫 내한 공연을 갖고 국내 음악팬에게 좋은 인상을 남겼다.

안드레아스 브란텔리드 역시 린 해럴의 경우처럼 음악적인 가정에서 성장해 일찍부터 음악적 감수성을 일깨울 수 있었다. 그의 아버지 잉에마르 브란텔리드 역시 첼리스트였기에 안드레아스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첼로 연주를 들으며 음악적인 감성을 키울 수 있었다.

브란텔리드에 관한 인터뷰 기사를 읽어보면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아름다운 첼로 연주를 듣고 자랐던 그가 첼로 소리에 매료돼 세 살이 됐을 때 아버지에게 첼로 연주법을 가르쳐달라고 졸랐다는 내용이 나온다. 아버지는 어린아이가 첼로부터 배우는 것보다는 피아노와 바이올린부터 배울 것을 권했지만 안드레아스는 첼로부터 배우겠다고 졸랐고, 결국 세 살 때부터 비올라 정도 크기의 작은 첼로를 손에 잡고 연주했다. 아버지 잉에마르는 매일 한 시간 씩 첼로 연습을 하라고 권했고, 그때부터 10년간 안드레아스는 이 약속을 지켰다고 한다.

안드레아스 브란텔리드의 음반을 들어보면 그가 얼마나 첼로를 사랑하지 느낄 수 있다. 최근 발매된 그리그 첼로 소나타 음반에서 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이흘레 하들란과 호흡을 맞춘 브란텔리드는 마치 온몸으로 연주하듯 열정적인 연주로 깊은 인상을 전해준다. 때때로 그리그는 작은 소품에는 능하나 소나타 같은 대곡에는 약하다는 지적을 받기도 하지만, 브란텔리드의 연주로 새롭게 태어난 그리그의 첼로 소나타를 들어보면 그런 생각은 들지 않을 것이다. 브란텔리드의 손끝에서 재탄생한 그리그의 첼로 소나타는 극음악과 같은 드라마틱한 작품처럼 가슴을 파고들며 깊은 감동을 전한다. 이는 그리그의 음악을 온몸으로 느끼며 전달해내는 브란텔리드의 헌신적인 연주 덕에 가능한 일이리라. 피아노 연주에 반응하는 피치카토 하나하나에서도 음악을 향한 강렬한 사랑이 전해진다. 사랑하는 연인을 향해 구애하듯 불타오르는 브란텔리드의 연주를 듣는다면 누구라도 그의 음악적인 청혼에 기쁨 마음으로 “네”라고 답할 것이다. 그리그의 소나타에서 뜨거운 열정을 폭발시킨 그가 이번 내한공연에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에 어떤 식으로 접근할지 기대를 모은다.

안드레아스 브란텔리드 첼로 리사이틀
8월 27·28 오후 8시 금호아트홀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전곡


▲ 이상 엔더스

바흐에 이은 베토벤, 이상 엔더스의 계속되는 도전

인상적이었던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연주라면 지난해 놀랄 만큼 독창적인 연주를 선보인 이상 엔더스의 연주를 빼놓을 수 없다. 금호아트홀 무대에 섰던 이상 엔더스는 마치 지금까지의 바흐 연주를 다 잊으라고 말하듯, 참신한 바흐 연주로 우리를 놀라게 했다. 올해 피아니스트 김선욱과 함께 베토벤의 첼로 소나타 전곡과 변주곡을 연주할 이상 엔더스의 연주회가 기다려지는 것도 그가 과연 베토벤 첼로 소나타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어떻게 무너뜨릴지, 베토벤의 음악을 얼마나 설득력 있게 재해석해낼지 주목되기 때문이다.

1988년 생으로 올해 27세인 이상 엔더스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났고 역시 음악적인 가정에서 자랐다. 독일인인 그의 아버지는 오르가니스트이자 피아니스트이고, 한국인인 어머니는 작곡가다. 이미 열두 살 때 미하엘 잔덜링을 사사하며 일찌감치 음악적 재능을 나타낸 이상 엔더스는 구스타프 리비니우스와 트룰스 뫼르크 등 세계적인 첼리스트들의 지도로 성장했다. 또한 첼리스트 린 해럴의 조언을 받아 빠르게 발전할 수 있었다. 스무 살의 나이에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의 첼로 수석에 임명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았고, 이후 오케스트라 무대와 실내악 무대, 독주회 무대를 통해 연주자로서 다양한 경험을 쌓고 있다.

국내에서는 지난해 엘리아후 인발 지휘로 서울시향과 함께 데뷔해 국내 음악 팬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데 이어, 금호아트홀에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독창적으로 해석해내며 주목 받았다. 전주곡으로 시작해 빠른 춤곡으로 마무리되는 바흐의 모음곡은 이상 엔더스의 통찰력 있는 연주로 마치 교향곡의 악장 구조와 같은 유기성을 보이며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가 앙코르 연주를 위해 편곡 연주한 바흐의 샤콘은 본래 바이올린을 위해 작곡된 곡임에도 첼로에 더 어울리는 곡처럼 느껴질 정도로 설득력 있었다. 올해 베토벤의 첼로 소나타로 국내 음악애호가들을 다시 만나게 될 이상 엔더스. 베토벤의 첼로 소나타를 얼마나 참신하고 설득력 있게 해석해낼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김선욱&이상 엔더스 듀오 콘서트
8월 29·30일 오후 2시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베토벤 첼로 소나타 전곡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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