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가 로베르 르파주

우리 시대 진정한 이미지 아티스트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9월 1일 12:00 오전

캐나다 출신의, 이름도 생소했던 이 연출가는 어떻게 연극과 오페라 연출의 새로운 시대를 연 것일까?

 

캐나다 출신의, 이름도 생소했던 이 연출가는 어떻게 연극과 오페라 연출의 새로운 시대를 연 것일까?

2002년 말의 일이다. 필자는 LG아트센터에서 기획한 일련의 아방가르드 연극 내한 공연 티켓을 세트로 구매했다. 원래 목적은 함부르크 탈리아 극장의 단테 ‘신곡’을 감상하는 것이었지만, 함께 예매한 다른 연극도 어쩔 수 없이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도중 어느 날 아무 생각 없이 찾은 LG아트센터. 내로라하는 유럽 아방가르드 연극 가운데 이름도 생소한 캐나다 연극, 그것도 퀘벡에서 온 연극 한 편을 보게 됐다. 연출가·극작가이자 배우인 로베르 르파주(Robert Lepage)의 연극 ‘달의 저 편’. 소박하지만 세련된, 그리고 상상을 초월하는 현란한 무대 효과와 연출에 넋이 나간 것도 잠시,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필자는 숨이 멎을 듯 놀라고 말았다. 맙소사! 이 모든 판타지가 일인극이었다고?’ 최소한의 사전 정보 없이 공연장을 찾은 스스로를 자책할 겨를도 없이, 그날부터 필자는 르파주의 열렬한 팬이 됐다. 이후 르파주는 2007년 LG아트센터에서 ‘안데르센 프로젝트’로 다시 한 번 필자의 심박수를 증가시켰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니벨룽의 반지’

‘안데르센 프로젝트’의 흥분이 채 가라앉기도 전, 뉴욕에서 놀랍고 반가운 소식이 전해져왔다. 2013년 바그너 탄생 200주년을 준비하며,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이하 메트)가 2010/2011·2011/2012 시즌에 걸쳐 새롭게 올릴 ‘니벨룽의 반지’ 프로덕션의 연출을 르파주가 맡게 된다는 것이었다. 소식이 들려온 지 3년 뒤인 2010년 9월, 드디어 시즌 오프닝 갈라로 ‘라인의 황금’이 화려하게 막을 열었을 때, 서울에서 스크린을 통해 지켜본 필자는 또 한 번 놀랐다. 정갈하기로 소문난 르파주의 무대답게 그저 큰 기둥들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움직이고 조합해 만들어내는 무대는 지금까지 어떤 ‘반지’ 무대보다도 창의적이었다.

1억6천만 달러(약 1800억 원)의 천문학적 제작비가 투입된 이 새로운 ‘반지’ 프로덕션의 전체 무대는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진 스물네 개의 4면체 기둥으로만 이루어져 있다. 기둥들은 전동식 유압 장치에 연동돼 따로 움직이기도 하고, 합쳐지기도 하면서 다양한 형상을 표현한다. 각각 기둥의 한쪽 면은 가운데가 불룩하게 튀어나온 각면으로, 반대쪽 면은 평면으로 만들어져 있다. 또한, 기둥들의 양면에는 고화질 3차원 영상이 투사돼 무대는 일순간 물과 불, 숲과 바위 등으로 자유롭게 변신한다. 견고하기로 소문난 메트의 무대 시설이지만, 45톤에 달하는 거대한 장치를 지탱하기 위해 무대 바닥의 철골 구조를 더욱 보강해야 했고, 전선과 유압 장치 때문에 통상적 무대장치처럼 해체할 수 없어 이 ‘기계 장치’를 보관하기 위한 전용 창고를 극장 후면에 따로 지어야 했다. 르파주의 단짝인 무대 미술가 카를 필리옹(Carl Fillion)과 그가 이끄는 무대 테크놀로지팀 ‘엑스 마키나’, 그리고 특수 그래픽 효과팀 ‘레알리자시옹’의 3D 프로젝션까지 가세해 창조한, 거대하면서도 정교한 무대는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시각적 체험을 오페라 관객에게 선사했다.

2012년 1월, 메트에서 ‘신들의 황혼’ 뉴 프로덕션 공연때 필자는 우연히 극장 로비에서 르파주와 마주쳤다. 깜짝 놀라 “마에스트로, 완전히 새로운 ‘반지’ 프로덕션은 바그너 연출사에 있어 또 하나 이정표가 될 것입니다”고 외쳤다. 당치도 않다고 손사래를 치며 겸손해했지만 필자의 말은 진심이었다. 바야흐로 오페라 연출에 있어 아이디어 고갈의 시대다. 한때 오페라 무대에서 ‘연출가의 시대’라 불리던 때가 있었지만, 21세기 들어 그 약효가 점점 떨어져가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해볼 만한 이야기를 이미 소진해버려 요즘 여러 극장에서 보게 되는 수많은 신연출은 더는 재미가 없다. 그 어떤 충격적인 묘사가 나와도 관객은 눈꺼풀조차 까딱하지 않는다. 이젠 야유를 보낼 기운조차 없다. 그저 실소를 하고 나면 그만이다. 오페라 연출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낸다는 것이 대체 가능하기나 한 걸까. 르파주는 그것을 해냈다. 본고장 유럽의 연출가가 드라마와 스토리 안에서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끄집어내려고 안간힘을 쓰는 동안 르파주는 극의 외면에서 해답을 찾았다. 바로 무대라는 공간에서의 시각적 표현이다. 시각적 표현을 위해서라면 무대와 영상의 경계도 허물고 모든 것을 동원한다.

사실 메트의 ‘반지’ 프로덕션에서 르파주는 요즘 동시대 유럽의 연출가처럼 스토리 전체를 완전히 새롭게 재구성하는 파격적인 시도를 하지 않는다. 새로운 시각적 표현을 통해 장면을 조금씩 비틀 뿐이다. 하지만 이것은 마치 나비효과 같이 결과에 미치는 극적 파장이 적지 않아 완전히 다른 작품을 보는 듯 착각에 빠지게 한다.

르파주의 무대 위에 오르는 배우는 필연적으로 경사면의 불안과 싸워야 한다. 오페라 가수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라인의 황금’의 막이 열리자 물결치는 라인 강물 기둥 위의 라인 처녀들은 와이어에 매달린 채로 ‘바이아 바가’를 외쳐야 한다. 자기 몸도 가누기 어려운 육중한 체구의 베이스는 기울어진 기둥 위를 미끄럼 방지 밑창이 달린 신발을 신고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겨야 한다. 불안하게 기울어진 경사면은 어쩌면 르파주의 드라마에 있어 인간 내면의 불안과 사회의 부조리를 시각화하는 효과적인 극적 장치인지도 모른다. 경사면에 대한 도전은 중력과의 싸움이다. 중력은 지구 위에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의 숙명이다. 결국, 르파주의 무대는 인간과 세계, 그리고 그들이 짊어진 숙명과의 상호작용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하는 캔버스다.

 

‘달의 저 편’에서 ‘바늘과 아편’으로


▲ 공연을 앞둔 ‘바늘과 아편’의 한 장면

‘달의 저 편’에서 인상적이었던 마지막 장면을 떠올려보자. 모스크바 공항 대합실 의자에 앉아 있던 주인공은 갑자기 무대 바닥 위로 내려가 헤엄을 친다. 무대 안쪽에 있을 때는 무엇을 하는 것인지 잘 이해할 수 없지만, 그가 무대 앞쪽으로 헤엄쳐 나올 때 관객들은 그제야 연출가의 의도를 알아차리게 된다. 무대 위 비스듬하게 기울어진 거울이 바닥의 주인공을 비추고 검은 무대 바닥을 헤엄치는 주인공의 모습은 마치 우주 유영을 하는 것처럼 비친다. 그 위로 무심히 흐르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4번 ‘월광’은 마치 이 세상의 음악이 아닌 듯하다. 이렇듯 중력의 극복은 르파주의 연출에 중요한 화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것은 이번에 국내에 선보일 그의 초기작 ‘바늘과 아편’에서도 마찬가지다. 기울어진 정육면체의 상자로 표현된 공간 안에서 장 콕토와 마일스 데이비스를 연기하는 배우들은 끊임없이 중력과 싸우며 내면의 갈등을 시각화해야 한다.


▲ 장 콕토와 로베르 역을 맡은 마르크 라브레슈

단언컨대 로베르 르파주는 무대의 시각적 체험이 드라마의 내면을 이해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처음으로 부각시킨 선구자다. 감각이 드라마의 내면을 표현하고 지배하는 대표적인 장르는 역시 오페라다. 그런 의미에서 그가 연출하는 모든 드라마는 오페라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 그는 21세기의 진짜 오페라 연출가인 것이다.

사진 LG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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