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프랑크푸르트 방송교향악단·뮌헨 필

독일 오케스트라 군단의 귀환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11월 1일 12:00 오전

전통과 개성으로 무장한 3개 도시의 오케스트라. 그들이 선사하는 관현악의 정수

관현악 애호가들에게 11월은 즐거운 달이 될 것 같다. 서울시향·KBS교향악단·수원시향 등 국내 대표적인 오케스트라가 말러와 시벨리우스 등 야심찬 프로그램으로 특별한 무대를 준비하고 있을 뿐 아니라, 유서 깊은 독일의 오케스트라가 줄줄이 내한해 관현악 명곡들을 연주한다. 유구한 역사를 지닌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를 비롯해 프랑크푸르트 방송교향악단과 뮌헨 필하모닉이 내한하는 만큼 11월은 관현악과 더욱 가까워질 수 있는 달이 될 것이다.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최고(最古)의 전통 사운드

11월에 내한하는 독일 오케스트라 가운데 19일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의 공연은 단연 눈에 띈다. 그동안 여러 차례 내한 공연 때마다 독일 악단 특유의 고풍스런 음색과 일사불란한 합주력으로 깊은 감동을 전해준 만큼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란 이름은 국내 음악 애호가들에겐 보증수표나 다름없다.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가 어떤 무대에서나 흔들림 없는 앙상블과 최고 수준의 연주를 선보일 수 있는 것은 오랜 연륜과 전통을 중시하는 자세 덕일 것이다. 16세기 중반 오페라가 유행하기 시작하던 시기에 오페라 오케스트라로 출범했으니, 이 오케스트라의 역사가 곧 서양음악사 자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470년 가까이 되어가는 오랜 세월 동안 바흐·바그너·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등 서양고전음악의 대가들이 이 악단을 거쳐 가며 소리를 가다듬었다. 지난 2012년 독일음악의 전통에 충실한 크리스티안 틸레만을 수석지휘자로 맞이한 이후 더욱 숙성된 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의 매력이라면 그 어떤 악단도 따를 수 없는 그들만의 독특한 음색이라 하겠다.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의 소리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독일 낭만주의의 신비를 담은 소리’라고나 할까. 그들이 만들어낸 음색을 단지 독일 악단 특유의 두텁고 중후한 소리라 표현하기에는 어딘가 부족하다. 목관 수석들의 솔로는 투명한 수채화처럼 가볍게 다가오며, 현악의 소리는 지극히 환상적인 색채감을 만들어낸다. 독일의 초기 낭만주의 음악에 속하는 베버나 멘델스존의 작품을 연주했을 때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의 진가가 더욱 빛나는 것도 이 악단 특유의 신비로운 음색 덕일 것이다.

필자는 아직도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가 2009년 내한 공연 당시 앙코르로 연주했던 베버 ‘오베론 서곡’의 가볍고 투명하며 섬세한 연주를 잊을 수 없다. 도입부를 장식하는 호른 솔로를 듣는 순간, 요정의 왕 오베론의 신비로운 뿔피리 소리가 어떤 것인지 비로소 깨닫게 되었고, 현악의 날렵한 연주를 들으면서 요정들이 바로 눈앞에서 날아다니는 것 같은 환상에 빠졌다. 올해 내한 공연 프로그램에는 비록 베버와 멘델스존이 포함돼 있지는 않지만 독일 음악의 핵심이라 할 만한 베토벤의 교향곡 중 2번과 3번 ‘영웅’이 연주된다고 하니 각별한 기대를 모은다.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는 지난 2006년 내한 공연 당시 베토벤의 교향곡을 연주했다. 그때도 이번 공연과 마찬가지로 정명훈이 지휘봉을 잡고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과 브람스 교향곡 4번을 연주했는데, 당시 꾸밈없고 정확한 그들의 연주를 들으며 이것이 바로 베토벤과 브람스의 정석임을 새삼 느꼈다. 아름답고 감각적인 음색이나 세부 묘사에 치우치기보다는 음악 자체의 구조와 정신을 살리는 데 주안점을 둔 그들의 연주는 논리적이고 탄탄한 구성미를 보여줬다. 때로는 고지식하게 느껴질 정도로 정확한 리듬과 꾸밈없는 표현은 오히려 베토벤과 브람스의 음악 그 자체의 구조를 명확하게 드러냈고, 여기에 정명훈의 감성적이고 드라마틱한 표현력이 더해지면서 음악적 생명력이 배가되었다.

이번 19일 공연에선 서양음악사에서 낭만주의의 기운이 드러난 혁명적인 작품으로 꼽히는 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이 기대를 모은다. 교향곡에서도 오페라를 방불케 하는 드라마틱한 표정을 살려내곤 하는 정명훈의 지휘이니만큼 1악장의 과격한 리듬과 역동성, 2악장 장송행진곡의 감정적 깊이, 4악장 변주의 다채로운 맛이 그 어느 때보다 잘 살아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프랑크푸르트 방송교향악단, 유연함과 다채로움

21일 저녁에는 프랑크푸르트 방송교향악단의 내한 공연이 펼쳐진다. 지난 2010년과 2012년에 파보 예르비와 함께했던 프랑크푸르트 방송교향악단의 연주회를 관람했던 이들이라면 이번 공연에 더욱 관심이 갈 것이다. 특히 2012년 내한 당시 말러 교향곡 5번 연주는 음악애호가들을 열광의 도가니에 빠뜨린 명연주로 꼽힌다. 당시 말러 교향곡 특유의 다채로운 소리의 세부 표정까지 낱낱이 살려낸 그들의 연주를 들으면서 말러의 스코어를 세밀하게 연구한 예르비의 해석 능력에도 감탄했지만, 그의 지휘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다양하고 명확한 소리로 말러 음악의 매력을 소리로 구현해낸 프랑크푸르트 방송교향악단의 뛰어난 연주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그날 공연을 지켜본 이들 중 평소 말러의 음악을 다소 어렵게 생각했던 이들이라도 그날만큼은 말러의 교향곡 음표 하나하나가 귀에 쏙쏙 들어왔을 것이다. 올해 내한 공연에서도 말러의 교향곡을 연주한다고 하니, 말러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음악 애호가들에겐 절호의 기회다.

이번 공연에선 2014년부터 수석지휘자를 맡고 있는 콜롬비아 출신 지휘자 안드레스 오로스코 에스트라다가 지휘봉을 잡는다. 아직 국내에선 이름이 다소 낯설지만, 그는 2004년 빈 페스티벌에서 톤퀸스틀러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뒤 ‘신동’이라는 극찬을 받으며 부지휘자로 부임할 정도로 일찍부터 지휘자로서 자질을 보였고, 현재 파블로 헤라스 카사도와 함께 서유럽에서 가장 촉망받는 30대 지휘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음악 해석과 레퍼토리 개발에 있어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는 프랑크푸르트 방송교향악단으로서는 30대 젊은 지휘자의 영입이 또 한 번 도약의 계기가 되지 않을까 기대를 모은다.

엘리아후 인발이 수장으로 있던 20세기 후반 명 오케스트라로 급부상한 프랑크푸르트 방송교향악단은 독일과 세계를 항공으로 연결하는 도시 프랑크푸르트를 대표하는 오케스트라이니만큼 음악적으로도 유연하다. 게르만의 전통을 고수하는 여타 독일 도시와 비교해 훨씬 더 다양한 레퍼토리를 자랑하며, 소리도 정통 독일 사운드라기보다는 참신하고 신선하다. 다채로운 음색을 표현해야 하는 말러 교향곡 연주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프랑크푸르트 방송교향악단의 이번 공연에는 해외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피아니스트 김혜진이 협연 무대에 오른다. 김혜진은 2005년 부조니 콩쿠르에서 17세의 나이로 입상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이후 10년간 독일을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크고 작은 페스티벌에 참가하며 실력을 갈고닦은 김혜진은 이번 무대에서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협연한다. 그동안 갈고닦은 역량을 검증받을 수 있는 무대가 될 것이다.

피아니스트 김혜진

1987년 서울에서 태어난 김혜진은 예원학교를 거쳐 서울예고 재학 중 독일로 유학길에 올라 한스 아이슬러 음대에서 파비오 비디니를 사사했다. 2005년 이탈리아 부조니 콩쿠르에서 3위에 입상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2013년에는 소니 클래식에서 아르메니아 필하모닉과 협연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음반을 발매했다. 베를린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북서독일 필하모니·뉘른베르크 심포니·로베르트 슈만 필하모니 등과 협연했다. 국내에서는 2010년 대전시향과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2번으로 데뷔 무대를 가졌으며, 이후 강남 심포니·경기필 등과 연주했다. 현재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콜번 음악원에 재학 중이며, 내년 상반기부터 아티스트 매니지먼트사인 IMG 소속으로 연주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뮌헨 필하모닉, 명상적 게르만 사운드

 

23일 뮌헨 필하모닉의 무대는 지휘자와 악단, 협연자와 레퍼토리 모든 면에서 구미가 당기는 공연이다. 가장 유명한 클래식 명곡 가운데 하나인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비창’과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가 연주되는 데다, 게르만의 전통적 사운드를 잘 구현해내고 있는 뮌헨 필하모닉의 연주, 그리고 최근 뮌헨 필하모닉의 수장이 된 게르기예프의 지휘,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협연이라는 조합은 너무나 완벽하다. 특히 차이콥스키 교향곡은 게르기예프가 가장 잘 연주하는 곡으로 알려져 있는 만큼 이번 공연에 거는 기대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이번 공연에서 게르기예프와 뮌헨 필하모닉의 조합이 어떤 소리를 만들어낼지 기대된다.

여러 독일 악단 가운데서도 뮌헨 필하모닉은 독특한 그들만의 소리를 지니고 있다. 브루크너 교향곡 연주로 유명한 첼리비다케와 함께한 시절에 만들어진 뮌헨 필 특유의 명상적인 사운드는 단지 ‘독일적’이라고 하기에는 또 다른 차원을 보여준다. 지극히 느린 템포 속에서도 음의 긴장감을 유지하며 한없이 이어지는 천상의 레가토를 선보일 수 있는 악단은 뮌헨 필하모닉이 유일한 것 같다. 이토록 느린 템포 속에서 음 하나하나가 다 채워지고도 남을 만큼의 충만함은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 뮌헨 필의 연주를 들을 때마다 생기는 의문이다.

지난 2007년 틸레만과 함께 성남아트센터 무대에 섰던 뮌헨 필하모닉이 연주한 R.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돈 후안’과 ‘죽음과 변용’은 경이로웠다. ‘돈 후안’에서 틸레만이 이끄는 뮌헨 필하모닉은 폭풍과도 같은 도입부에서부터 청중을 압도했을 뿐 아니라 완벽한 하모니를 이룬 목관과 부드러우면서도 힘 있는 금관, 넘실거리는 현악의 질감이 어우러진 명품 사운드를 들려주었다. 죽음의 순간에 직면한 인간의 심리 상태를 그린 ‘죽음과 변용’에서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긴 호흡으로 음악을 이끌어가며 팽팽한 긴장감을 끝까지 유지해 전율과 감동을 안겨주었다. 순간적인 폭발이나 감각적인 사운드를 통해 말초적인 즐거움을 주는 연주와는 근본적으로 차원이 달랐다.

올해 내한 공연에선 러시아 음악의 거장 게르기예프가 러시아 음악의 백미라 할 만한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비창’을 연주하는 만큼, 뮌헨 필하모닉이 러시아 음악을 통해 새로운 면모를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은근한 기대감을 품게 된다. 선율 하나하나 세밀한 표정을 생생하게 이끌어내는 게르기예프 특유의 해석이 힘을 발휘하면 뮌헨 필하모닉의 명상적인 음색에 다채로운 색채감이 더해지리라 기대해본다.

백건우의 협연 무대도 각별한 관심을 모은다. 지난 6월 드레스덴 필하모닉과의 협연 무대에서 ‘건반 위의 구도자’로서 한결같은 태도로 베토벤 협주곡 3번과 4번을 연주한 백건우는, 이번 게르기예프/뮌헨 필하모닉과의 무대에서 베토벤 협주곡 5번 ‘황제’를 협연함으로써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후기 3부작을 완주해내는 셈이다. 음악가로서 항상 연구하는 자세를 잃지 않는 그의 성실함을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백건우의 이번 협연 무대는 각별할 수밖에 없다.

11월, 독일의 명 오케스트라들의 잇따른 내한 소식은 반가우면서도 고민스럽다. 각각의 공연마다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요소가 너무 많아서 어떤 공연을 보아야 할지 선택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이토록 행복한 고민거리가 있을 수 있다니, 참으로 감사한 일 아닌가!

사진 빈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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