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작곡가 앨런 멘켄 & 프랭크 와일드혼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6년 3월 1일 12:00 오전

뮤지컬 ‘뉴시즈’와 ‘마타하리’는 올해 상반기 뮤지컬계 화제작이다. 한국에서 초연되는 디즈니 라이선스 뮤지컬 ‘뉴시즈’와 국내 뮤지컬 제작사 EMK뮤지컬컴퍼니가 어마어마한 제작비를 투자한 창작 뮤지컬 ‘마타하리’는 개발 과정과 규모, 창작진과 캐스팅 등 모든 면에서 관심을 끈다.

뮤지컬 ‘뉴시즈’는 1992년 제작된 영화를 원작으로 한다. 국내에는 ‘뉴스보이’라는 제목으로 개봉했다. 월트 디즈니 픽처스가 제작하고 크리스천 베일 등이 출연한 이 영화는 개봉 당시 기대만큼 흥행하지 못했다. 2011년 뮤지컬로 각색되어 2012년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랐고, 그해 토니 어워즈에서 최우수 음악상을 수상하며 비로소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1899년 뉴욕을 배경으로 거리에서 생활하던 신문팔이 소년들의 패기와 열정을 그린다.

뮤지컬 ‘마타하리’는 국내에서 ‘지킬앤하이드’ ‘드라큘라’ 등으로 많은 관객을 모았던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이 네덜란드의 무희 마타 하리를 소재로 뮤지컬을 제작할 것을 EMK뮤지컬컴퍼니에 제안하며 개발이 시작되었다. 2012년 프리 프로덕션을 결성했고 2014년 뉴욕에서 미국·영국, 아시아의 뮤지컬 개발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워크숍을 가졌다. 오는 3월 29일, 국내 초연 이후 해외 진출을 꿈꾸고 있다.

개막을 앞둔 두 작품의 작곡가들을 각각 이메일로 만났다. ‘마타하리’의 프랭크 와일드혼(Frank Wildhorn)은 11편의 한국 공연으로 뮤지컬 팬들에게는 친숙하지만, ‘뉴시즈’의 앨런 멘켄(Alan Menken)은 국내 언론과 첫 인터뷰다. 올해로 각각 70세(멘켄)와 58세(와일드혼)를 맞이한 두 명의 뮤지컬 거장에게 한국에서 공연될 작품에 대한 이야기와 오랫동안 상상력과 창의성을 발휘하며 젊은 관객들과 교감하는 법에 대해 들었다.

늘 깨어 있되, 그대로 내버려두는 앨런 멘켄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사랑하는 이라면 분명 앨런 멘켄의 음악도 좋아할 것이다. 영화 ‘인어공주’ ‘미녀와 야수’ ‘알라딘’ ‘포카혼타스’ ‘라푼젤’의 경쾌하고도 따뜻한 음악은 모두 멘켄의 손에서 탄생했다. 1946년 뉴욕에서 태어난 그는 피아노를 연주하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음악을 가까이하며 자랐고, 뉴욕대학교에서 인류학과 철학을 공부하면서도 작곡 활동을 병행했다. 1982년 ‘흡혈 식물 대소동’을 오프브로드웨이에서 공연하는 것으로 프로 무대에 데뷔했으며 1989년 영화 ‘폴리’를 통해 디즈니와 인연을 맺었다.

멘켄은 이후 자신이 작곡한 영화 ‘인어공주’(1989), ‘미녀와 야수’(1991), ‘알라딘’(1992)이 아카데미 어워즈·골든 글로브스·그래미 어워즈에서 모두 음악상을 석권하며 명성을 얻었다. 그는 이 작품들이 각각 2008년, 1994년, 2014년에 뮤지컬로 각색되어 브로드웨이 무대에 오를 때도 음악을 담당했다. 이 외에도 뮤지컬 ‘크리스마스 캐럴’(1994) ‘시스터 액트’(2009) 등 영상음악과 무대음악 작업을 활발히 이어오고 있다.

오는 4월 12일에 한국에서 초연될 ‘뉴시즈’ 역시 원작 영화음악과 뮤지컬 모두 멘켄이 작곡했다. 여기에는 재미있는 사실이 숨어 있는데, 영화 ‘뉴시즈’는 개봉 당시 최악의 작품을 꼽는 골든 라즈베리 어워즈에서 최악의 주제가상을 받았다. 같은 해 ‘알라딘’으로 아카데미 어워즈·골든 글로브스·그래미 어워즈를 휩쓸던 멘켄은 다른 작품이긴 하지만 한 해에 최고의 음악상과 최악의 음악상을 동시에 수상하는 기록을 남겼다. 부담감을 가지고 ‘뉴시즈’를 뮤지컬로 각색하기 시작한 멘켄은 영화음악의 일부를 편곡하고, 무대에 맞는 새로운 곡을 더해 결국 뮤지컬 ‘뉴시즈’로 2012 토니 어워즈 최우수 음악상을 수상했다. 멘켄은 같은 작품으로 최악의 음악상과 최고의 음악상을 수상한 또 다른 기록도 남긴 셈이다.

영화 ‘뉴시즈’를 뮤지컬로 각색하는 과정에서 어떤 변화를 거쳤나?
크리에이티브 팀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건 작품에 담긴 진실성을 유지하지는 것, 스토리가 변하는 순간들을 포착하는 것이었다. 이 지점들을 뒷받침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스토리를 각색하기 시작했다. 음악 역시 바뀌고 옮겨지며 새로운 목적을 가지고 다시 태어났다.

브로드웨이 버전의 ‘뉴시즈’ 예고편 영상을 보니 1890년대를 표현하기 위한 복고 무드를 지니고 있더라. 현재 브로드웨이에서는 랩이나 록 장르를 결합한 뮤지컬, 팝 스타일의 뮤지컬이 다양하게 창작되고 있는데, 1990년대에 쓰인 1890년대 이야기를 2010년대 관객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어떤 고민을 했는지 궁금하다.
현대의 분위기와 극의 시대적 배경을 혼합했다. 소년들의 활기찬 에너지를 드러내기 위해 모타운(1960년대 미국에서 유행하던 사운드)과 리듬 앤드 블루스의 요소를 가져왔으며 래그타임에서도 힌트를 얻었다. 넘버 중 ‘기회를 잡다(Seize the Day)’는 병사들이 행진하는 모습을 떠올리며 작곡했으며, ‘플래카드를 들고(Carrying the Banner)’는 소년들의 목소리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리듬 앤드 블루스 리프(짧은 구절을 되풀이하는 연주법) 위에 스트라이드 피아노(1920년대에 할렘에서 발전한 래그타임 피아노 주법의 일부)를 사용했다. 또 ‘뉴욕의 왕(King of New York)’은 탭댄스와 재즈에서 영향을 받았다.

그동안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상상 속 캐릭터를 표현한 음악을 많이 작곡했다. ‘뉴시즈’는 19세기 말 뉴욕에서 벌어지는 사실적인 이야기를 다룬다. 동화 같은 분위기와 판타지 요소가 돋보이는 작품을 쓸 때와 다른 접근 방식을 취했는지?
어떤 작품이든 그 속의 캐릭터를 표현하는 것은 나 자신의 확장이라고 생각한다. 항상 그(캐릭터)들의 감정이나 생각, 드라마틱한 상황이나 두려운 감정들을 내면화하며 곡을 쓴다. 그리고 나는 언제나 그들을 실제처럼 대한다.

어린 시절에는 베토벤·차이콥스키·스트라빈스키·버르토크의 작품을 자주 듣고, 청소년 시절에는 비틀스의 음악을 즐겼다고 들었다. 당신이 애니메이션 음악에 집중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무엇이었나?
나의 기억 속에서 음악을 처음 들은 순간은 디즈니 애니메이션 ‘판타지아’(1940)를 봤을 때다. 나와 음악, 영화는 그 시점부터 불가분의 관계가 되었다.

그동안의 작품들을 보면 대부분 밝고, 행복하고, 희망이 넘친다. 비극적이거나 어두운 혹은 일상적인 작품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는지? 또는 매너리즘에 빠진 적은 없는지 궁금하다.
나는 ‘창조적인 슬럼프’를 경험한 적이 있다는 점에서 축복 받은 사람이다. 어떤 이유로 실패감을 느끼며 좌절한 적이 있는데 당시 다행히 스스로 고민할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나 자신을 끌어올리는 방법을 찾아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그때의 경험이 지금까지도 큰 도움이 된다.

주변의 평가에 취하지 않고, 꾸준히 창의적인 생각과 도전적인 자세를 유지하는 방법이 있는가?
나를 가장 흥분시키는 것은 새로운 프로젝트와 새로운 협업이다. 작고 새로운 것을 크게 발전시키는 과정에 무한한 흥미를 느끼며 이러한 감정이 나를 끊임없이 노력하도록 만든다.

2000년대 이후 한국 뮤지컬 시장은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뮤지컬 창작에 도전하는 젊은 음악가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저 열정을 쏟으라는 것뿐이다. 단, 결과가 아닌 과정에 쏟아야 한다. 만약 작품이 탄생하는 모든 과정에서 깨어 있다면, 또는 그 과정보다 조금 앞서 움직이며 모든 순간을 관여한다면 틀림없이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것이다. 짜릿한 순간들을 만끽하길 바란다.

당신의 예술 철학이 궁금하다. 당신은 무엇을 위해 창작을 하는가?
예술과 꿈을 대하는 나의 마음가짐은 그저 내버려두는 것이다. 나와 내 동료들이 하는 모든 작업은 전체적인 콘셉트 안에서, 혹은 스토리나 캐릭터 안에서 우리 스스로를 잃어버리는 행위다. 삶은 흐르는 물줄기와 같다. 우리는 그것을 가질 수도 없고, 멈출 수도 없으며, 완전히 컨트롤할 수도 없다. 다만 손으로, 마음으로, 감정으로 그것이 지나가는 모양을 만들 수 있을 뿐이다.


▲ 앨런 멘켄의 뮤지컬 ‘흡혈 식물 대소동’ ⓒRichard Mitchell

▲ 앨런 멘켄의 뮤지컬 ‘인어공주’ ⓒJoan Marcus

▲ 앨런 멘켄의 뮤지컬 ‘뉴시즈’

열린 마음으로 배움을 멈추지 않는 프랭크 와일드혼

프랭크 와일드혼은 한국 뮤지컬계와 가장 친밀한 외국인 뮤지컬 작곡가가 아닐까 싶다. 와일드혼이 구상을 시작한 지 무려 17년 만에 흥행에 성공한 뮤지컬 ‘지킬앤하이드’가 한국에서 10년 동안 1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사랑 받았고 ‘몬테크리스토’ ‘황태자 루돌프’ ‘스칼렛 핌퍼넬’ ‘보니 앤 클라이드’ ‘카르멘’ ‘드라큘라’ 등 총 11개의 작품이 한국 무대에 올랐다. 2013년에는 한 해 동안 와일드혼의 작품 5편이 공연되기도 했으니 와일드혼이 한국을 ‘제2의 고향’이라고 말하는 것도 무리는 없다.

1958년 뉴욕에서 태어난 와일드혼은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역사학과 철학을 공부했고, 1990년 ‘지킬앤하이드’를 텍사스에서 초연하는 것으로 뮤지컬 데뷔를 치렀다. 이 작품을 끊임없이 개발해 1995년 미국 투어를 열었고, 1997년 비로소 브로드웨이에 입성했다. ‘지킬앤하이드’는 현재까지 28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1999년, 와일드혼은 ‘지킬앤하이드’ ‘스칼렛 핌퍼넬’ ‘남북전쟁’ 등 3개의 작품이 브로드웨이에서 동시에 공연되는 기념비적 순간을 맞이하지만, 이후 발표한 작품들이 고전하며 한동안 침체기를 가졌다. 그러나 2005년 이후 ‘네버 세이 굿바이’(일본), ‘루돌프’(오스트리아), ‘카르멘’(체코), ‘몬테크리스토 백작’(스위스) 등을 발표하며 유럽과 아시아로 활동 범위를 넓혔다.

와일드혼이 한국에서 뮤지컬 제작에 참여하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2011년 국내 제작진과 3년간의 개발 기간을 거쳐 ‘천국의 눈물’을 공연한 바 있다. 5년 만에 다시 ‘마타하리’를 준비하며 그는 어떤 목표를 세우고 있을까.

EMK뮤지컬컴퍼니에 마타 하리라는 인물을 소재로 한 뮤지컬을 제안한 계기가 궁금하다.
마타 하리의 스토리에 처음 관심을 가진 건 1998년이었다. 관련 서적과 그레타 가르보가 출연한 영화를 통해 그녀의 삶을 접했다. 그녀는 폭력적인 남편으로부터 자신을 스스로 구하고, 홀로 프랑스로 건너가 마타 하리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자아를 찾은 매우 강인한 여성이다. 빅 스타로서 삶을 즐기면서도 자신의 내면을 드러낼 수 있는 진실한 사랑을 갈망한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캐릭터라고 생각했다.

사전에 공개된 뮤지컬 넘버 ‘예전의 그 소녀’ ‘어딘가’는 감성적인 분위기의 팝 스타일 음악이다. ‘마타 하리’를 작곡하며 음악적으로 어떠한 시도를 했는가?
마타 하리에게 최고의 곡을 선사하기 위해 노력했다. 작업 과정 내내 그녀는 내 마음속에서 선율을 노래하는 목소리이자 뮤즈가 되었다. 전체적으로 감성적인 분위기를 의도하긴 했지만, 한국인 배우들이 깊은 감정을 담아 부르니 더 극대화된 것 같다.

‘천국의 눈물’ 이후 두 번째로 한국에서 창작 뮤지컬을 올리는데, 그때와 비교하여 환경에 어떤 변화가 있는가?
‘천국의 눈물’은 한국 프로세스에 대해 많은 걸 배울 수 있던 시간이었다. 이 작품을 수정해서 재공연하자는 제의를 여러 번 받았는데 아직까지 결정한 건 없다. 6년이 지나 ‘마타하리’를 다시 하지만, 사실 여전히 매일매일 배우고 더 나은 것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학생’인 것은 똑같다. 한국 관객들에게 최고의 작품을 선보이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고민을 끊임없이 할 뿐이다.

여러 나라에서 당신의 작품이 라이선스 될 때마다 당신은 직접 편곡을 하거나 때에 따라 새로운 넘버를 추가하기도 한다. 지난 1월 폐막한 뮤지컬 ‘드라큘라’ 역시 한국어 버전에만 새로운 넘버 3곡이 담겨 있다고 들었다.
나는 작품을 수정하는 것에 오픈되어 있다. 쇼는 살아 있어야 한다는 게 나의 철학이다. 새로운 배우, 새로운 문화와 만날 때마다 짜릿함을 느끼며 더 많은 관객이 나의 작품에 즐거움을 느끼고 감동받기를 원한다.

한국 청중이 선호하는 뮤지컬 음악의 특징은 무엇이라 보는가?
드라마틱한 상황과 깊은 감정을 품은 멜로디를 사랑하는 것 같다. 그에 맞게 작품을 완성하려고 한다.

주변의 평가에 상관없이 꾸준히 창의적인 생각과 도전정신을 가지는 방법이 있는지?
만약 어떤 타자가 세 번 만에 배팅에 성공한다면, 그의 타율은 0.333이다. 이것을 20년 간 계속하면 아마 그는 최고의 야구선수가 되어 명예의 전당에 오를 것이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그는 세 번 중 두 번은 무조건 실패했다. 이 사실을 기억한다. 나 역시 변화와 성장을 위해 꾸준히 노력해왔지만 늘 성공한 건 아니었다. 그때마다 학생의 자세를 유지하며 끊임없이 몰입하는 법을 배웠다. 플로리다 해변에서 라이프가드를 하던 시절, 나는 나의 음악이, 나의 인생이 지금의 모습일 거라고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불평을 할 일이 전혀 없으며 음악을 할 수 있어 그저 행복하다.

젊은 세대의 뮤지컬 작곡가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마음을 열고, 세상의 모든 좋은 것으로부터 듣고 배우라고 말해주고 싶다. 더불어 세 가지를 유지했으면 한다. 젊음, 긍정적인 생각,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믿음.


▲ 프랭크 와일드혼의 뮤지컬 ‘지킬앤하이드’ ⓒSimon Fowler

▲ 프랭크 와일드혼의 뮤지컬 ‘스칼렛 핌퍼넬’ ⓒCJ E&M

▲ 프랭크 와일드혼의 뮤지컬 ‘마타하리’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 나의 음악이 문화와 언어가 전혀 다른 세계 곳곳의 많은 사람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길 바란다. 나는 늘 배우고 싶고, 이 마음이 더 좋은 것들을 갈망하게 만든다. 여정의 끝은 잘 생각하지 않는 편이다. 지금 이대로 지속되었으면 한다.

사진 오디뮤지컬컴퍼니·EMK뮤지컬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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