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독일 음악 기행

서유럽의 새해를 밝힌 다섯 공연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6년 3월 1일 12:00 오전

음악 칼럼니스트 박제성이 보고 온 화제의 클래식 음악 공연 관람기


▲ ‘박쥐’ 2막 중 로잘린데 역의 페테르젠과 아이젠슈타인 역의 스코푸스 ©Wilfried Hösl

1월 6일, 페트렌코/바이에른 슈타츠오퍼의 요한 슈트라우스 ‘박쥐’

이제 키릴 페트렌코는 바이에른 슈타츠오퍼를 완전히 장악하다 못해 거의 영웅 단계에 접어든 듯하다. 지난 몇 년 동안 이 극장에서 지켜봐온 그의 지휘에서 간간이 나타나던 다소 급이 낮은 랩소디적 스타일이나 일말의 실수들을 말끔히 걷어내고, 완벽한 앙상블과 현미경적 디테일, 강도 높은 응집력과 견고한 일체감을 악단에 불어넣었다. 필자가 알고 있던 바이에른 슈타츠오퍼 오케스트라가 맞는지 깜짝 놀랄 정도로 페트렌코의 음악적 완성도와 카리스마는 강력해졌다. ‘박쥐’ 서곡부터 놀라움을 선사한 페트렌코. 감상적이거나 허례 허식적 요소는 찾아볼 수 없고 정확한 템포와 단단한 첫 울림, 간결하되 톱니바퀴처럼 구조적으로 돌아가는 프레이징으로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여기에 빈에서 익혀온 왈츠의 리듬감과 투명한 목금관의 음향까지 얹혀, 이렇게 멋진 ‘박쥐’ 서곡은 카라얀 레코딩 이후 처음 들어보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2막 마지막 ‘천둥과 번개’ 폴카는 어찌나 강력한지 앉아 있던 의자가 떨릴 정도였다. 벽력같은 다이내믹과 포르티시시모에서도 피어나는 타악기, 트럼펫의 귀족적인 벨벳 톤이 감동적이었다. 드레스덴과 빈에서 크리스티안 틸레만이 지닌 위상에 버금가는 페트렌코/바이에른 슈타츠오퍼의 존재감을 목도하며, 이제 오페라계에서 성악·연출의 시대가 가고 다시 한 번 지휘자의 시대가 오고 있음을 체감할 수 있었다.

아이젠슈타인으로 분한 보 스코푸스의 빼어난 연기와 절창은 감동적이었고 로잘린데 역의 마를리스 페테르젠도 훌륭했다. 그러나 아델레 역의 아나 프로하스카만큼 깊은 인상을 심어준 성악가는 없었다. 전설적인 베이스 야로 프로하스카의 손녀로, 온몸에서 음악적 표현력과 연기 감각이 넘쳤다. 깨끗하면서도 톡톡 튀는 발성과 천연덕스러운 연기, 귀여운 외모 모두에서 아름다움과 에너지가 터져 나왔다. 프로덕션의 홍일점 역할을 톡톡히 해낸 프로하스카에게 최고 점수를 주고 싶다. 오페라 하우스 최고의 음향을 자랑하는 뮌헨 국립극장의 사운드도 감동을 배가시켰다.

연출에서는 전통적 무대를 강조해온 오토 솅크의 고전성이 조금 그리웠다. 막마다 정확한 콘셉트와 개성, 설득력 있는 개연성과 테크니컬한 무대 디자인이 트렌디한 연출임에 분명하지만, 보여주기 위한 보여주기 혹은 전작을 뛰어넘고자 하는 의지가 너무 강해 흐름의 일관성이나 음악과의 일체감까지 신경 쓰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특히 2막 전체에 걸쳐 긴 테이블만 배치하여, 아무런 소품이나 장치가 없는 상태에서 집단적인 춤과 회전에만 초점을 맞추다보니 무대가 정신없고 황량해 보였다. 3막의 건물 내부 절단면 디자인이 가장 좋았지만 그렇게 독창적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우리나라 국립오페라단 스티븐 로리스 연출의 ‘박쥐’가 명작임을 절감할 수 있어서 고무적이기까지 했다.

 


▲ 두 작품에 보탄으로 출연한 토마시 코니에츠니 ©Michael Pöhn

1월 10·13일, 피셰르/빈 슈타츠오퍼의 바그너 ‘라인의 황금’ ‘발퀴레’

바그너 ‘니벨룽의 반지’ 해석의 거장 아담 피셰르가 지휘한 빈 슈타츠오퍼의 ‘반지’ 사이클 가운데 ‘라인의 황금’과 ‘발퀴레’. 스벤 에리크 베히톨프의 연출로서 현대적이고 상징적인, 동시에 이전의 명작 프로덕션들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무대였다. ‘라인의 황금’은 간결하고 상징적인 무대와 강도 높은 연기를 요구하는 무대다. 이번 무대에서는 조명의 컬러레이션과 너무나 인간적인 캐릭터들의 표정 연기 및 제스처가 흥미를 더했다. 이에 비해 신화적 판타지에서 본격적인 심리극으로 접어든 ‘발퀴레’ 무대는 훨씬 훌륭했다. 1막은 액자식 구성의 실내극으로서 완전한 동선과 정확한 공간 분할 역시 베히톨프의 솜씨임을 입증해주었다. 나무들이 기둥처럼 서 있는 2막의 숲속 장면은 중요한 신탁이 벌어지는 신전으로서 상징과 사람을 나무 뒤에 가리는 심리적 은유로서 효과를 동시에 만족시켰다. 마지막 3막은 그라네 떼가 서 있는 무대로서 로게의 불이 말부터 붙으면서 점차 무대 전체로 불길이 번지는 크레셴도를 구현해냈다.

빈 필하모닉의 압도적인 화력과 정확성, 바그너 언어에 최적화된 음악적 이디엄은 단연 최강이었다. 빈 필의 연주만이 바그너에 대한 정답인 듯 느껴질 정도였다. 이를 통솔한 아담 피셰르는 빈 필 사운드의 명확성과 잘 계산된 다이내믹을 바탕으로 손에 잡힐 듯한 드라마트루기를 음악화하는 한편, 찬연한 서정성을 완벽하게 컨트롤했다. 얼마나 꼼꼼하게 지휘하는지, 반복 유니즌의 남은 개수를 손가락으로 세면서 알려주는 한편, 동일한 박자의 비팅은 거의 모습이 변하지 않고 유지하게끔 지시했다. 특히 ‘발퀴레’에서 그의 지휘는 영웅 그 이상이었다. 1막 도입부의 폭풍과 물을 달라는 대목의 아름다운 첼로, 오누이의 사랑의 장면에서 솟구치는 정염의 에너지, 금빛 안개를 흩뿌리는 현악, 듀엣을 거치며 점점 광포해지는 금관의 폭포수까지, 현지 언론에서도 아담 피셰르의 연주를 경이로웠다고 평할 정도였다. 마지막 로게의 화염이 솟구쳐오를 때엔 열반에 접어든 듯한 고양감과 음향적 엑스터시가 발산됐다. 피날레에 이르러서는 혼신을 다한 마지막 일갈을 지르는 동시에 허공을 단칼에 베며 신들의 세계를 단절시켰다.

두 작품에 보탄으로 출연한 폴란드 출신의 토마시 코니에츠니. 거장으로서의 미래가 보장된 가수로, 안으로 머금는 듯한 발성에도 불구하고 오텔로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옴므파탈적 연기로 전류가 흐르는 듯한 가창과 영웅적인 비애감을 보여주었다. 한편 크리스토퍼 벤트리스와 발트라우트 마이어의 ‘발퀴레’ 1막도 훌륭했다. 벤트리스의 서정과 힘도 훌륭했지만 아무래도 마이어의 지글린데에 관심이 모아질 수밖에 없었다. 나이에서 기인한 호흡이 느껴지긴 하지만 여전히 날씬한 몸매와 서릿발이 내린 듯한 가창, 여기에 농익은 연기를 더해 청중으로 하여금 망설임 없는 환호가 터져 나오게끔 했다. 지그문트가 노퉁을 뽑을 때 그녀가 지은 황홀한 표정과 떨림, 격렬한 몸부림과 환희의 키스는 숭고함 그 자체였다.


▲ 발렌티나 나포르니타 ©Michael Pöhn

1월 14일, 슈나이더/빈 슈타츠오퍼의 베토벤 ‘피델리오’

38년이 된 오토 솅크의 베토벤 ‘피델리오’ 프로덕션. 오랜만에 고전적인 무대를 보니 감회가 남달랐다. 솅크는 오페라에서 음악에 우선하는 것은 없다는 신념을 갖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무대 그 자체가 주는 극적·청각적 몰입감이란! 1978년 레너드 번스타인의 DVD는 너무 오래된 필름이라 화질이 나빠 무대를 온전히 감상하기 어려웠는데, 실제로 보니 조명의 색과 세트의 질감이 고전 중의 고전으로 손꼽을 만했다.

이번 프로덕션의 일등 공신은 페터 슈나이더다. 이 오래된 오페라와 무대에 걸맞은 올드 스타일의 연주를 통해 독일 극장의 카펠마이스터다운 전통의 위엄을 보여주었다. 작년 그가 지휘한 바그너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감동에 못지않은, 격한 대목에서는 의자에서 들썩이며 호른과 트럼펫에게 신호를 줄 정도로 혼신의 힘을 다하는 모습으로 열정적인 음악을 선사했다. 그에게 다가온 병마의 고난도 베토벤 음악의 열정에는 당해내지 못하는 듯했다. 크나퍼츠부슈를 연상케 하는 느린 템포, 탄탄한 주제의 출발과 사뿐한 프레이징 연결부의 이음새, 가수 이상의 선율미를 뽐내는 현악군의 비상감, 전설 같은 분위기의 호른 음향, 베토벤 특유의 시그널적 리듬 등 독일 극장의 참된 거인으로서 솜씨를 만끽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피날레 직전에 울려 퍼진 13분에 달하는 ‘레오노레 서곡’ 3번의 극적 긴장감과 빈 필의 연주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젊은 성악진은 아주 만족스럽지는 못했지만 최근의 오페라-성악 경향을 반영하여 최선을 다한 연주를 들려주었다. 안야 캄페는 고역에서 조금 문제가 있는 듯했지만 2막에서 모자를 벗은 뒤 특유의 비브라토와 색감적인 울림을 한껏 터뜨렸다. 플로레스탄 역의 클라우스 플로리안 폭트는 미성에 한층 강한 힘을 실어 짧은 등장에도 불구하고 인상적인 존재감을 보여주고자 노력했다. 첫 등장인 2막 아리아에서 최고음을 가성으로 어물쩍 넘어가는 모습을 보여 약간의 실망감을 안겼다. 역시 이 아리아가 어렵긴 어렵구나 싶었다. 미모와 연기력, 가창을 아우르는 차세대 디바인 발렌티나 나포르니타는 딕션에 다소 문제가 있어 보였지만, 전체적으로 절대적 존재감을 발산했다.

1월 15일,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연주회

마리스 얀손스가 자신의 생일을 전후하여 연 이틀 간 개최한 동일한 프로그램의 콘서트 가운데 두 번째 공연. 첫째 날에는 그를 위해 단원들이 생일축하곡을 연주했다고 하는데, 둘째 날에는 깜짝 이벤트를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이 대규모 공연만으로도 얀손스의 미덕을 추앙하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을 모티브로 삼은 미국 현대 작곡가 코릴리아노의 작품과 오스트리아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코른골트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훌륭한 프로그래밍이었다. 얀손스는 완벽에 가까운 오케스트라 운용과 고결한 음향 블렌딩을 보여주었고, 카바코스의 연주는 절제가 되어 있으면서도 개성적이었다. 앙코르로 연주한 바흐 무반주 파르티타에서는 절묘한 장식음 첨가로 이채로움을 더했다.

바이에른 합창단과 솔리스트가 가세한 라흐마니노프의 ‘종’. 탄생-결혼-고통-죽음을 그린 이 대규모 걸작에서 얀손스는 헤르쿨레스홀을 숭고한 신전으로 변모시켰다. 성악진도 완벽했을뿐더러 진실한 감동의 순간을 만들어낸 얀손스의 위대함에 머리를 조아릴 수밖에 없었다. ‘종’을 시작하기 전 얀손스는 마이크를 잡고 프로그램에 없는 합창곡을 연주할 테니 맞춰보라고 농담을 섞은 멘트를 준비했다. 무반주 아카펠라의 아름다운 합창곡을 연주한 뒤 무대로 나와 무슨 곡인지 물어보더니 아무도 대답하지 못하자 차이콥스키의 합창곡이라고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이 합창곡의 해설과 가사는 공연이 끝난 뒤 출입문에서 따로 나누어주었는데, 뮌헨 시민들에 대한 얀손스의 따뜻한 애정과 깊은 배려를 느낄 수 있었다.


▲ 세트의 구도와 동선의 대비가 돋보인 ‘아라벨라’ ©Wilfried Hösl

1월 16일, 트링크스/바이에른 슈타츠오퍼의 R. 슈트라우스 ‘아라벨라’

안드레아스 드레젠 연출의 R. 슈트라우스 ‘아라벨라’는 경이로움의 연속이었다. 2년 전 도쿄 신국립극장의 필리프 아흘로 연출의 ‘아라벨라’가 연극적이고 현실적이며 텍스처의 모든 내용을 드러내는 현미경적 연출이라면, 이번 바이에른 슈타츠오퍼의 드레젠 연출은 영화적이고 상징적이며 텍스처의 가능성을 세트의 구도와 동선의 대비로 투영한 화면적인 연출이었다. 영화감독 출신인 드레젠의 연출은 조명과 구도가 마치 영화의 프레임이 넘어가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동시에 1920년대 독일 표현주의 영화의 미장센을 오마주한 인상마저 받았다. 구부러진 계단과 끊임없이 이어지는 층계의 회전·분리를 통한 장면 변환, 검은 배경과 스포트라이트 조명의 대비, 숨어 있기 좋은 은밀한 공간을 곳곳에 배치한 무대 등 꿈과 현실의 전복, 강박관념과 불안으로 가득 찬 세계를 상징하려는 의도가 다분했다. 로베르트 비네나 프리츠 랑이 오페라를 연출했다면 이러한 스타일이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나치 제복을 연상케 하는 의상을 입은 연기자들이 나온 걸로 봐선 독일-오스트리아 합병 이후의 빈을 무대로 한 듯하다. 1막부터 3막까지 전혀 다른 세 공간이 그로테스크한 디자인의 계단과 특징적인 방향성을 통해 심리적 연속성을 보장하는 것도 이 무대만의 장점. 2막의 나체, 난교, 레즈비언 파티는 전혀 외설적이지 않고 오히려 극 중 사회의 분위기를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오브제였다. 엄마 역의 아델라이데가 브래지어를 풀어헤치고 젊은 남자와 통정을 하는 장면이나 오로지 돈과 도박에 환장하는 발트너 백작의 모습은 현대 환락의 세계까지도 연결할 수 있을 정도로 사실적이었다. 이러한 캐릭터의 성격 부여와 성악가 및 무용수들에게 주어진 섹슈얼리티는 절대적으로 그 자체로 도드라져서는 안 된다. 무대와 콘셉트의 일부로서 주제와 주연들이 유기적인 공감각적 관계를 맺고 있는 드레젠의 연출이야말로 진정으로 가치 있는 무대 연출임에 분명하다. 억지로 채우는 것은 비우는 것만 못하다는 진리를 상기할 수 있었다.

성악진은 R. 슈트라우스의 오페라를 위해 이 이상의 선택은 불가능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초호화 캐스팅이었다. 특히 아냐 하르테로스의 아라벨라는 경이로웠는데, 첫 음부터 마지막 음까지 고결하고 무게 있는 음색과 흔들리지 않는 발성, 간결하고 포인트가 정확한 연기력으로 무대를 압도했다. 즈덴카 역의 하나 엘리자베트 뮐러는 기대 이상으로 완벽한 남장 여자의 뉘앙스와 화사한 고음을 보여주었다. 언니와의 1막 2중창은 너무 반짝이고 아름다워 발코니에서 손을 내밀어 그 음을 잡고 싶을 정도였다. 피아커밀리 역의 에린 몰리도 늘씬한 몸매와 가죽 채찍 효과에 힘입어 자연스럽고 상큼한 콜로라투라의 향연을 선사했다.

한편 전 시대의 디바인 도리스 소펠과 역전의 노장 쿠르트 리들도 여전히 넓은 소리 결과 옹골찬 음색으로 무대를 사로잡으며 젊은 성악가들과 조화를 이루었다. 독일 오페라 극장에서 잔뼈가 굵은 토마스 J. 마이어는 2막부터는 완전히 몸이 풀린 듯 노련한 감정 표현과 폭발적 가창을 들려주며 촌구석 졸부이지만 마음만큼은 순수한 청년 이미지를 잘 보여주었다.

마지막으로 2015년 서울시향을 이끌며 바그너 ‘발퀴레’와 슈만 교향곡 2번을 연주했던 콘스탄틴 트링크스. 그는 독일 극장의 독특한 냄새를 간직하고 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디테일 하나하나에 신경 쓰는 한편, 성악가의 상태를 고려하여 유연한 진행을 도모하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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