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명여대 김운성 교수의 트롬본 특강

황홀한 금빛 노래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6년 4월 1일 12:00 오전

묵직한 몸에서 뿜어내는 관의 위엄과 부드러움의 조화를 엿보다

트롬본은 금관악기 중에서 사람의 목소리와 가장 비슷한 음색을 지녔다. 사람의 목소리와 융합이 잘되어 성악곡에서 합주악기로 인기가 많다. 트롬본은 저음에서 위협적이고 극적인 요소를 표현하는 데 적합하며, 고음에서는 부드럽고 서정적인 선율을 연주한다. 무엇보다 웅장한 악구에서 트롬본의 진가가 발휘된다. 취재를 위해 만난 트롬보니스트 김운성은 트롬본의 매력을 줄줄이 꼽았다.

“트롬본은 단일 악기로 알토·테너·베이스 음역을 모두 담당하고 있어요. 또한 사람의 목소리와 잘 어울려 항상 성악과 동일한 선율을 연주하죠. 반대로 소리를 크게 내면 완전히 압도적인 음향이 나와요. 클래식 음악부터 재즈까지 여러 사운드를 커버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트롬본의 매력이죠!”

트롬본은 오른손으로 슬라이드를 넣었다 뺐다 하며 연주하는 것이 특징이다. 슬라이드 덕에 ‘황홀한 글리산도 제조기’라 불리기도 한다. 슬라이드를 끝까지 밀면 그 길이가 거의 1미터지만, 정확한 음을 내려면 연주자들은 5밀리미터 이내로 슬라이드를 세밀하게 조절해야 한다.

“덕분에 트롬본 연주자는 다른 금관악기 연주자보다 청각이 예민한 편이죠.”

김운성은 연세대 음대에서 트롬본을 전공하고, 쾰른 음대에서 석사 과정을, 만하임 음대에서 최고연주자 과정을 공부했다. 현재는 숙명여대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큰 키와 긴 팔을 가진 김운성에게 “팔이 길면 트롬본 연주가 수월한가” 물었다. 그는 “팔이 길면 슬라이드 조절에 유리하지만, 정작 세계적으로 유명한 트롬본 주자들은 체구가 아담하다”며, 연주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노력’임을 강조했다. 자, 그럼 김운성이 들려주는 트롬본의 세계로 빠져보자!

대형 트럼펫의 탄생!

트롬본은 낮은 음역이 필요한 작곡가들의 필요에 의해 14세기 말에 만들어졌다. 15세기 초 프랑스 궁정 음악용으로 S자 형태의 트럼펫이 등장했고, 당시 S자 형태 트럼펫은 ‘트롱프트-새크부트(trompette-saicqueboute)’란 명칭으로 불렸다. 이는 ‘밀고 당기는 트럼펫’이란 뜻이다. 슬라이드가 S자에서 U자로 점차 변화했으며, 15세기 말에는 슬라이드가 더욱 길어져 반음계를 연주할 수 있게 됐다.

온전한 외형

슬라이드가 길어지며 주선율 연주가 가능해지자 트롬본은 트럼펫으로부터 독립해 독자적인 악기가 됐다. 오늘날의 트롬본은 벨 부분이 넓어진 것 외에는 크기나 슬라이드 모양이 16~17세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른 금관 악기는 외형적인 변화와 개량 작업을 거쳐 지금의 음색이 만들어졌지만, 트롬본은 태생부터 지금까지 원형 그대로입니다. 처음부터 완벽하게 만들어진 악기라는 뜻이죠.”

트롬본의 종류

일반적으로 테너 트롬본과 알토 트롬본, 베이스 트롬본이 많이 사용된다. 이 외에도 소프라노 트롬본과 콘트라베이스 트롬본이 있다. 트롬보니스트는 보통 테너 트롬본을 연주하고, 오케스트라에선 세 명의 트롬본 주자가 ‘제1트롬본(알토 트롬본 혹은 테너 트롬본)’ ‘제2트롬본(테너 트롬본)’ ‘베이스 트롬본’을 나눠 연주한다.

“알토 음자리표는 보통 알토 트롬본으로 연주하는데, 테너 트롬본 주자들의 기량이 향상돼 알토 음역도 테너 트롬본으로 불기 시작했어요. 현재는 연주자로서 욕심 있는 사람들이 따로 알토 트롬본을 공부하는 편입니다.”

알토 트롬본과 테너 트롬본

현악기로 비유하면 알토 트롬본은 비올라, 테너 트롬본은 첼로 음색과 비슷하다. 테너 트롬본으로 알토 음역까지 소화가 가능하지만, 작곡가들이 원하던 음색과는 다소 다르다. “베토벤이나 브람스 교향곡에서 알토 트롬본은 성악가 음색과 동등해야 해요. 하지만 테너 트롬본으로 알토 음역을 내면 둔탁한 소리 때문에 작곡가의 의도가 달라지죠.”

베이스 트롬본

김운성은 “베이스 트롬본은 따로 배워야하는 악기”라고 강조했다. 전문 오케스트라에서 테너 트롬본과 베이스 트롬본은 주자를 분류해 선발한다. 각 대학에서도 베이스 트롬본 전공생을 따로 모집하고 있다.

“오케스트라 규모가 작은 대학에서는 트롬본 전공생이 베이스 트롬본까지도 소화해요. 하지만 밀도 높은 소리가 나오긴 어렵죠. 트롬본 주자가 베이스 트롬본을 연주한다는 것은 완전히 전공을 바꿔 다시 시작하는 개념으로 봐야 합니다.”

트롬본 구성

트롬본은 벨, 슬라이드, 마우스피스로 구성되어 있다. 다른 금관악기들처럼 크룩, 밸브, 키로 음정을 조절하지 않고 슬라이드를 움직여 음정을 변화시킨다. 슬라이드에는 7개의 포지션이 있다. 첫 번째 포지션에서 마지막 포지션으로 갈수록 슬라이드가 길어지며, 음정이 반음씩 낮아진다. 주로 입술을 사용하여 음정을 조절하는 다른 악기와 달리, 트롬본은 슬라이드로도 음정을 바꾸기 때문에 더 정확한 음정을 연주할 수 있다.

벨은 솔로, 오케스트라, 재즈 연주에 따라 크기가 달라진다.

“테너 트롬본의 벨은 보통 8.5인치이며, 풍부한 울림을 원하면 9~9.5인치까지 큰 벨을 사용해요. 재즈에서는 7~7.5인치 정도로 작은 벨을 사용합니다.”

워터키

“금관악기는 침과 호흡으로 인해 악기 안에 수분이 고이죠. 이 수분은 악기를 부식시키므로 워터 키를 통해 밖으로 배출합니다.”

F당김쇠의 등장!

F당김쇠가 달린 트롬본은 1939년 독일 라이프치히의 악기 제작자 크리스티안 프리드리히 자틀러가 만들었다. 연주자의 왼손 엄지로 추가된 밸브를 작동시키면 포지션이 변한다. “F당김쇠의 키를 누르면 1포지션에서 6포지션의 음이 나고, 2포지션에서 7포지션의 음이 납니다. F당김쇠의 등장으로 팔이 길지 않은 연주자도 트롬본을 수월하게 다룰 수 있게 됐죠. 획기적인 장치입니다.”

마우스피스

트롬본은 7개의 슬라이드 포지션과 더불어 마우스피스를 이용하여 입술을 긴장시키고 완화시키며, 호흡을 조절하여 음을 만든다.

“오케스트라에서 제1트롬본 주자는 작은 마우스피스를 사용하여 고음을 수월하게 연주하고, 제2트롬본 주자는 큰 마우스피스를 사용하여 넓고 풍부한 중음을 연주하죠. 마우스피스가 커질수록 호흡이 많이 실려 굵고 큰 소리가 납니다.”

좋은 치열

금관악기 주자들은 폐에서 만든 숨을 목을 거쳐 마우스피스에 낭비 없이 전달해야 한다. ‘좋은 치열’을 가진 사람들이 ‘좋은 소리’를 내는 것은 당연지사.

“트롬본의 마우스피스는 윗니 세 개의 넓이입니다. 덧니가 있으면 바람이 새겠죠. 치열이 고르지 않으면 음이 불균형적으로 떨려요.”

슬라이드

슬라이드는 고정된 내관과 움직이는 외관으로 구성됐다. 내관의 내부 직경인 ‘보어’는 오늘날 세 종류로 제작된다. 프랑스에선 좁은 사이즈의 보어를 선호하고, 영국에선 중간 사이즈, 미국과 독일에선 넓은 사이즈를 사용한다. 보어가 넓어질수록 소리는 따뜻하고 풍부해진다.

“과거에는 악기마다 국가별로 특색이 있었어요. 프랑스는 아티큘레이션의 미묘한 차이를 중요시하고, 독일은 화음을 쌓기에 유리한 투명한 소리가 특징입니다. 미국은 울림의 깊이를 추구했어요. 하지만 현재는 나라별로 악기가 거의 표준화됐습니다.”

튜닝 슬라이드

트롬본은 튜닝 슬라이드로 관을 늘리거나 줄여서 음정을 조절한다.
“튜닝 슬라이드를 빼면 관이 길어져 음이 낮아지고, 넣으면 관이 짧아져 음이 높아집니다. 악기를 아무리 정교하게 제작해도 모든 악기가 똑같은 피치를 낼 수 없어요. 튜닝 슬라이드로도 음정이 맞지 않으면 슬라이드를 조절하여 음을 맞춥니다.”

팔이 길면 유리할까?

“신기하게도 세계적인 트롬본 주자들은 체구가 작은 편이에요. 팔이 길면 7포지션을 한 번에 소화할 수 있으니 유리한 면이 있긴 하죠. 하지만 요즘은 악기가 개량돼 아래 포지션에서 밸브를 누르면 위 포지션 소리가 나요. 팔 길이보다는 오히려 구강구조가 더 치명적으로 작용합니다.”

청각 + 순발력 = 트롬본 연주자가 갖춰야 할 필요조건!

트롬본 연주자는 입술 진동과 함께 슬라이드를 정확하게 조절하여 포지션을 찾아야 완벽한 음정이 나온다. 따라서 트롬본 연주자에게는 섬세한 청각과 민첩한 순발력이 요구된다.

“슬라이드 작동이 익숙해질 때까지 시간이 제법 걸리는 편입니다. 아무래도 팔의 움직임이 손가락보다 속도가 느리니까요. 악기마다 반음계 간격도 미세하게 다르죠. 청음 실력이 좋아야 슬라이드를 조절하는 센스가 생겨요.”

약음기

약음기는 재질과 모양에 따라 다양한 소리를 연출할 수 있다. 왼쪽부터 연습용 뮤트, 스트레이트 뮤트, 컵 뮤트, 와와 뮤트, 플런저 뮤트다.

“일반적으로 스트레이트 뮤트를 많이 사용하고, 연습용 뮤트는 보통 집에서 연습할 때 사용해요. 포근한 소리를 만들고 싶으면 컵 뮤트를, ‘우와 우와’ 하는 코믹한 소리를 내고 싶으면 와와 뮤트를, 극적인 효과를 연출하고 싶으면플런저 뮤트를 사용합니다.”

붉은 악기? 노란 악기?

트롬본 주자들은 악기를 선택할 때 ‘노란 악기냐’ ‘붉은 악기냐’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악기가 노란빛을 띠면 아연이 많이 들어간 악기로, 밝고 가벼운 소리가 난다. 붉은 악기는 구리 함량이 많아 어둡고 무거운 소리가 난다. 취향에 따라 악기를 선택하지만, 보편적으로 노란 악기를 많이 사용하는 편이다.

좋은 악기란?

“보편적으로 우리나라 전공생들은 레슨 선생님이 추천하는 고가의 제품을 사용해요. 중고등학생들이 뉴욕 필이나, 빈 필, 베를린 필 주자들이 사용하는 수준의 악기를 사는 거죠. 비싸다고 좋은 소리가 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에게 맞는 악기는 따로 있어요. 여러 제품을 사용하다 보면 유독 와 닿는 소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맑은 소리, 어두운 소리, 에너지 넘치는 소리, 유연한 소리 등 어떤 사운드를 좋아하는지 고민하고 악기를 선택하길 바랍니다.”

악기 교체 주기

고악기일수록 가격이 높아지는 현악기에 비해 금관악기는 새 악기일수록 좋은 소리가 난다.
“금관악기의 평균수명은 7~12년 정도이며, 관리를 잘하면 15~20년까지 사용할 수 있어요.”

악기 관리를 위한 팁!

“청결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죠. 연습이 끝나면 마우스피스와 악기를 마른 천으로 깨끗이 닦아 수분이 없도록 만들어야 해요. 오랜 시간 연습하다 보면 손닿는 부분에 염분이 묻어요. 녹슬지 않도록 그 부분을 잘 닦아야 합니다. 테너 트롬본은 밸브가 장착돼있으니 움직임이 원활하도록 오일도 꾸준히 발라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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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향곡에 트롬본을 최초로 도입한 작곡가는 베토벤이다. 베토벤은 교향곡 5번 ‘운명’에서 트롬본 트리오를 작곡했고, 이로 인해 트롬본의 인지도가 높아졌다. 트롬본은 오케스트라는 물론 재즈나 군악대에서도 위용을 뽐낸다. 음폭이 넓어 솔로 연주로도 탁월하지만 아쉽게도 낭만시대 이전에는 트롬본을 위한 소나타가 많이 작곡되지 않았다. 바로크와 고전 시대에는 현악기와 목관악기 곡들을 트롬본으로 연주했으며, 1900년대 이후부터 트롬본을 위한 소나타와 협주곡이 다양하게 작곡되고 있다. 현악기 중 음역대가 비슷한 첼로 소나타를 트롬본으로 연주하면, 별다른 편곡 없이도 수월하게 연주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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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음반

김운성은 세 연주자의 음반을 ‘객석’ 독자들에게 추천했다.

첫 번째는 미국 출신으로 현재 뉴욕 필 수석 주자로 활약 중인 조세프 알레시의 음반이다. “알레시는 트롬본 음역을 넓힌 사람이죠. 테너 트롬본으로 베이스 트롬본 음색을 낼만큼 힘 있는 소리를 가졌어요. 특히 훌륭한 오케스트라 주자이니 교향곡에 대해 아이디어를 얻고 싶으면 조세프 알레시 음반을 참고하면 좋아요.”

두 번째는 김운성이 쾰른 음대에서 사사한 프랑스 출신 연주자 미셸 베케의 음반이다. “미셸 베케는 굉장히 시적으로 연주해요. ‘트롬본으로 저렇게 섬세하게 연주할 수도 있구나’ 싶을 정도로 서정적인 연주를 보입니다.”

세 번째는 ‘트롬본계의 파가니니’라 불리는 스웨덴 출신의 크리스티안 린드베리의 음반이다. “크리스티안 린드베리는 기량이 매우 뛰어나요. 트롬본의 역할을 ‘솔로악기’로 확장시킨 연주자입니다.”

사진 심규태(HA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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