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도/베를린 필의 ‘더 라스트 콘서트’

‘꿈’으로 엮은 멘델스존과 베를리오즈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6년 4월 1일 12:00 오전

멘델스존 ‘한여름 밤의 꿈’과 베를리오즈 ‘환상 교향곡’을 담은 아바도와 베를린 필의 마지막 녹음.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멘델스존 ‘한여름 밤의 꿈’과 베를리오즈 ‘환상 교향곡’을 담은 아바도와 베를린 필의 마지막 녹음.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그는 세 번의 이별로 우리를 놀라게 했다. 하나는 2014년 세상과의 이별이었고, 다른 하나는 1998년 베를린 필하모닉과의 계약을 연장하지 않겠다는 선언, 그리고 2002년 베를린 필과의 이별이었다.

‘더 라스트 콘서트’는 아바도가 베를린 필을 지휘한 마지막 실황(2013년 5월)으로, 낭만주의 시대의 중요한 두 작품인 베를리오즈 ‘환상 교향곡’과 멘델스존 ‘한여름 밤의 꿈’을 담은 한정판 에디션이다. 각 곡은 두 장의 CD에, 한 장의 블루레이에는 음원과 공연 실황, 다큐멘터리 ‘베를린의 클라우디오 아바도-그 첫 해’가 담겨 있다. 그리고 아바도와 베를린 필의 추억이 담긴 하드커버 책자가 함께 수록됐다.

‘한여름 밤의 꿈’을 들으며 에디션의 이모저모를 만지작거리는데,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든다. 헤어진 애인과 함께 했던 사진을 담은 고급 사진첩을 뒤적거리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한여름 밤의 꿈’의 백미인 ‘결혼 행진곡’이 들려올 때는, 정말이지 ‘라스트’라는 말의 가장 대척점에 있는 아바도와 베를린 필의 첫 만남을 떠올리게 된다.

찰떡궁합, 그리고 이별

1989년 7월 16일. 카라얀이 세상을 떠나고 그 뒤를 이을 베를린 필의 지휘자 선정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던 중 끊임없이 돌던 회전목마에서 뛰어내린 이가 있었으니, 이탈리아 태생의 클라우디오 아바도였다. 그 회전목마에는 로린 마젤·제임스 러바인·다니엘 바렌보임·베르나르트 하이팅크가 타고 있었다. 베를린 필의 107년 역사상 처음으로 치러진 완전 민주주의 선거에서 투표 인원과 내용, 기준은 비밀에 붙여졌다. 알려진 것은 단지 투표 인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했다는 것뿐. 아바도의 고향인 밀라노의 ‘코리에레 델라 세라’지는 “러바인을 그 자리에 앉히려는 미국인들의 지대한 압박에 대한 거부이며, 마젤과 결부된 상업적 유혹에 대한 단호한 부정이다. (···) 아바도의 그 자리 점령은 음악 세계의 엄정함과 진지함의 표시”라고 논평했다.

1989년 12월 16·17일 양일간의 취임 연주회에서 슈베르트 ‘미완성 교향곡’, 볼프강 림 ‘황혼’, 말러 교향곡 1번 ‘거인’을 선보인 후, 아바도와 베를린 필호는 순항하는 듯했다.

하지만 1998년, 아바도는 2002년 이후 베를린 필과의 계약을 연장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아바도가 현대음악을 통해 연주 스펙트럼을 확장하는 것을 반기던 처음과 다르게 단원들은 독일 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전통이 흐려지는 불안감을 느꼈다. 카라얀과 달리 각 단원의 의견에 귀 기울여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가는 자세를 환영했던 단원들은 이제는 아바도 특유의 질질 끄는 리허설과, 뻔한 미뉴에트와 템포를 놓고 30분 이상 토론을 벌이며 다수결의 원칙을 고수하는 것에 불만을 품었다. 결국 초기의 찰떡궁합을 자랑하던 아바도와 오케스트라 사이에도 균열이 생긴 것이다.

베를린 필을 떠난 그는 2003년 세계 최정상 연주자들을 한데 모은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창단해 축제의 품격을 한껏 높였다. ‘더 라스트 콘서트’보다 먼저 발매된 2013년 루체른 페스티벌 개막 콘서트 실황(Accentus)에는 ‘장송행진곡’이 들어간 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 브람스 ‘비극적 서곡’, 쇤베르크 ‘구레의 노래’ 중 토베의 죽음을 알리는 ‘산비둘기의 노래’ 등이 담겨 있다. 이 실황이 ‘죽음’과 관련된 작품들로 돼 있다면, ‘더 라스트 콘서트’는 ‘꿈’으로 엮여 있는 것 같다. 이 ‘꿈’은 베를린 필과 순항하던 꿈만 같던 시간들, 죽음 이후 꿈꾸는 세계를 암시한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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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라우디오 아바도/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BPHR 160081 (DDD, 2CD+1Blu-ray)

‘꿈’과 ‘환상’으로 적신 마지막 시간

멘델스존이 이탈리아적 영향과 토양 위에서 발아된 명쾌함의 표상이라고 할 때, 아바도의 ‘한여름 밤의 꿈’에 대한 접근은 거의 본능에 가까울 정도로 자연스러워 보인다. 이 연주는 런던 심포니와 함께 한 멘델스존 교향곡(DG) 중, 특히 4번 ‘이탈리아’에 투영된 투명한 색채감까지 연상케 한다. 아바도의 ‘한여름 밤의 꿈’은 셰익스피어의 ‘문학성’보다 멘델스존의 ‘음악성’에 더 에너지를 싣고 있다. 이런 점에서 연극적 흐름에 영향을 둔 오자와 세이지/보스턴 심포니(DG)의 녹음과 극단적인 대척점에 있다고 볼 수 있겠다. 바로크 음악에 능한 소프라노 데보라 요크의 목소리는 청순한 소릿결과 비브라토의 절제미를 느끼게 한다.

내밀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음악에 서사성을 부여해 다채로운 감정 상태를 표현하며, 묘사력을 극대화하는 ‘가사 없는 음악극’이 지향하는 미학을 담고 있는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은 지휘자들에게 다양한 해석을 이끌어낼 수 있는 자유를 부여해온 표제음악의 대표작이다. 이번 음반을 통해 아바도는 총 세 개의 ‘환상 교향곡’ 녹음을 남긴 셈이다. 시카고 심포니와의 녹음(DG)이 시카고 심포니의 아킬레스건이라 할 수 있는 금관력을 잘 활용한 것이 특징이라면, 25년 뒤에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환상 교향곡’(DG)은 그다지 개성이 없어 다소 아쉽다. 베를린 필과의 연주는 베를리오즈의 음악에 담겨 있는 불연속성, 다층성, 야수성, 돌발성 등을 과감하지만 유연한 해석으로 소화하며, 악보 구석구석에 숨어 있는 미세한 움직임 하나하나에 신경 쓰기보다는 푸근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회화를 그리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특히 4악장 ‘단두대로의 행진’, 5악장 ‘마녀들의 밤 향연의 꿈’에서는 2000년 위암 수술 후 죽음의 문턱을 넘은 자로서 어떤 초연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생전에 콘서트 프로그램을 잘 짜기로 유명한 아바도는 멘델스존의 ‘꿈’과 베를리오즈의 ‘환상’을 ‘꿈’이라는 주제로 연결시켜 놓는다. 지휘가 끝난 후 관객의 기립 박수 속에서 가쁜 숨을 쉬며 옅은 미소를 띠는 그의 마지막 모습이 마치 이 ‘꿈’ 같은 시간이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표정을 짓고 있는 것 같다.

사진 아울로스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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