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루티스트 김유빈

이상을 향해 가지를 뻗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6년 5월 1일 12:00 오전

1997 대전 출생
2010 예원학교 입학
2013 리옹국립고등음악원 입학
2014 제네바 콩쿠르 1위 없는 공동 2위, 젊은연주자상, 청중상 수상
2015 프라하 스프링 콩쿠르 우승
2016 ‘객석’ 차세대 이끌 젊은 예술가 선정

반달 눈웃음이 참으로 앳된 18세 소년과 예술의전당을 거닐었다. 우면산 기슭에 봄기운이 완연한 날이었다. 플루티스트 김유빈과의 만남. 그가 청주시향과 닐센 플루트 협주곡을 협연하고 이틀이 지난 후였다. 교향악축제 연주를 성공적으로 마친 그는 홀가분한 표정으로 기자를 맞이했다.

“솔리스트로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첫 데뷔 무대였어요. 게다가 교향악축제라니! 한국의 훌륭한 연주자들만 설 수 있는 무대잖아요. 책임감이 느껴져 연습을 정말 많이 했어요. 아마 제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연습했던 것 같아요.”(웃음)

그는 다행히 “무대에서 하고 싶은 것을 ‘몽땅’ 보여주고 내려왔다”고 한다. 연주가 끝나고 관객들과 대화를 나누며 “좋은 연주자가 되어가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수줍게 말했다.

올해 ‘객석’ 유망주로 선정된 김유빈은 현재 프랑스 리옹국립고등음악원에 재학 중이다. 그가 이름을 알린 것은 2014년 제네바 콩쿠르에서 1위 없는 공동 2위를 수상하면서부터다. 그 기세를 이어 2015년 프라하 스프링 콩쿠르에서 우승했고, 이번 5월 유서 깊은 프라하 스프링 페스티벌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리옹국립고등음악원 졸업 연주를 눈앞에 두고 분주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그에게 이번 내한은, 2주간의 달콤한 봄 소풍이었다.

나, 김유빈의 시작
어린 시절, 제게 음악만큼 좋은 친구는 없었어요. 더블베이스를 전공하신 아버지 덕에 음악을 곁에 두고 성장할 수 있었죠. 플루트보다 먼저 접한 악기는 피아노와 바이올린입니다. 장난기 넘치는 성격 탓에 활을 하도 부러뜨려 부모님이 바이올린은 금세 그만두게 하셨지만, 피아노와는 오랫동안 가깝게 지냈어요. 초등학교에 입학할 즈음,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플루트를 선물하셨어요. 어머니의 레슨을 졸졸 따라다니며 자연스럽게 플루트 소리를 접했습니다. 맑고 예쁜 플루트 소리가 참 좋았어요. 플루트를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다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악기를 불기 시작했고, 그렇게 플루트는 제 인생의 동반자가 됐습니다.

프랑스, 새로운 배움의 장
예원학교 3학년에 다닐 때부터 플루트 실력이 급속도로 늘기 시작했어요. 당시 사사했던 이소영 선생님께서 프랑스 유학을 권유하셨죠. 플루트의 선진국이라 불리는 프랑스는 플루트를 배우는 많은 학생들이 동경하는 곳이에요. 때맞춰 한국에서 열린 필리프 베르놀의 마스터클래스에 참여하며 프랑스 유학을 결심했어요. 예원학교 졸업 후 필리프 베르놀이 있는 리옹국립고등음악원으로 진학했습니다. 프랑스 특유의 자유로운 레슨 분위기는 신선한 충격이었어요! 한국 학생들은 선생님 말을 굉장히 잘 듣잖아요. 연주할 때도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연주하는 편이죠. 그런데 프랑스에선 선생님과 학생이 동등한 위치에서 대화하며 레슨하는 거예요.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이것은 나의 의견이니, 마음에 안 들면 너의 생각에 맞춰 연주하라”고 하셨죠. 거침없이 자신의 의견을 표명하는 학생들 모습에 적잖이 당황하기도 했어요. 또한 한국은 어린 시절부터 입시와 콩쿠르에 얽매여, 치열한 경쟁 속에서 음악을 배웁니다. 그러다 보니 단점을 차근차근 고치기보단, 장점을 빠르게 부각시키는 데 급급하죠. 반대로 프랑스에선 학생의 단점을 먼저 바로잡는 레슨을 해요. 저 같은 경우는 프랑스에서 ‘소리 만드는 법’을 집중적으로 다듬었어요. 프랑스의 새로운 교육 분위기는 플루트에 대해, 음악에 대해, 새롭게 다가가는 계기가 됐습니다.

예술가로서 삶을 위해 감내한 것
본가가 대전이라 예원학교 다닐 때부터 가족과 떨어져 홀로 서울 생활을 했어요. 어린 나이였는데, 많이 외로웠죠. 중학교 때 악기 실력이 빠르게 향상된 것도 혼자 있는 시간을 죄다 연습으로 채워서 그런 것 같아요. 프랑스로 유학 가서도 마찬가지였어요. 연주자가 되려면 ‘외로움을 스스로 극복해야 한다’는 걸 이제는 깨달았습니다. 또한 저는 예원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동창들보다 일찍 대학생이 됐어요. 고등학교 시절의 추억이 없는 점은 큰 아쉬움이에요. 얼마 전 중학교 동창들을 만났는데, 괜히 저만 동떨어져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이제는 또래들이 쓰는 은어도 못 알아듣겠더라고요.(웃음)

해외 콩쿠르 도전기
제네바 콩쿠르는 어릴 때부터 꼭 참가하고 싶었던 콩쿠르예요. 프랑스로 유학을 가자마자 바로 제네바 콩쿠르 접수 기간이 시작됐죠. 참가하려면 급하게 출전 레코딩을 준비해야 하는 일정이었어요. 필리프 베르놀에게 제네바 콩쿠르에 참가하고 싶다고 적극 어필했고, 베르놀은 제 의견을 지지해줬습니다. 콩쿠르를 위해 열 개가 넘는 레퍼토리를 정신없이 익혔어요. 콩쿠르 기간에는 비염이 심해져 체력적으로 무리가 왔죠. 고생하며 준비한 첫 콩쿠르에서 1위 없는 2위라는 좋은 성과를 거둬 정말 뿌듯해요. 제네바 콩쿠르 경험을 기반으로 2015년 프라하 스프링 콩쿠르는 다소 수월하게 준비할 수 있었고, 우승이라는 좋은 결과를 얻었습니다.

연주자로서 전환점이 된 순간
제네바 콩쿠르 본선 무대가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요. 생애 첫 오케스트라 협연 무대라 많이 긴장했는데, 오케스트라와 호흡이 정말 잘 맞았어요. 이제껏 해본 연주 중 가장 인상 깊은 무대를 꼽으라 하면, 그날의 연주를 주저 없이 말할 거예요! 제네바 콩쿠르 직후 심사위원들에게 연주에 대한 다양한 피드백을 들을 수 있었고, 현재까지도 심사위원들과 연락이 이어지고 있죠. 다양한 연주회에도 정식으로 초청되기 시작했어요. 이 콩쿠르를 거치며 ‘플루트가 정말 나의 직업이 됐구나’ 실감했습니다.

한 곡을 무대에 올리기까지
음악을 다양하게 듣는 편이에요. 한 작곡가의 여러 작품을 들으며, 그 작곡가만의 색깔을 파악합니다. 모차르트 플루트 협주곡을 연습할 때는, 모차르트 오페라를 많이 찾아 듣는 식이죠. 작곡가의 작곡 스타일을 확실하게 이해한 뒤, 나만의 스타일을 도입하기 위해 고민합니다. 저는 음악을 ‘연구하는’ 연주자가 되고 싶어요. 요즘은 출판사가 많아서 한 작곡가의 작품도 여러 가지 버전으로 출판되고 있죠. 작곡가의 의도에서 많이 벗어난 에디션은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작곡가의 원전 악보를 학구적으로 분석해, 작곡가의 의도 안에서 저만의 자유로움을 표현하고 싶어요.

나에게 영감을 준 예술가
두 명의 플루티스트가 떠오르네요! 2000년 타계한 장 피에르 랑팔의 연주를 들으며 많은 영감을 받았어요. 동시대 연주자들은 깨끗하고 정확하게 연주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랑팔의 연주에선 어떤 틀에서 벗어난 자유로움이 느껴져요. 음악적 규칙을 지키면서도, 자신만의 음악을 이야기하는 모습이 인상 깊게 다가왔어요. 다음은 모든 플루티스트가 좋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에마뉘엘 파위! 파위의 연주를 들으면 ‘모든 사람이 다 좋아하는 스타일로 연주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죠. ‘그의 연주는 왜 모두가 좋아할까?’ 고민해본 적이 있어요. 파위의 연주를 들으면 ‘나라면 이렇게 연주했을 텐데’라는 반감이 든 적이 한 번도 없죠. 원전 악보에 대한 충실함, 과장되지 않은 표현, 짓누름이 없는 소리… 흠잡을 데가 없는 연주예요. 거부감 없는 그의 연주 스타일이 모두에게 통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좋은 연주자이며, 닮고 싶은 연주자입니다.

레퍼토리 확장에 대한 욕심
요즘 바로크 음악에 흠뻑 빠져 있어요. 리옹에서 플루트 시대악기인 트라베소(Traverso) 레슨을 받고 있습니다. 트라베소는 현대악기와 기교가 많이 달라요. 무엇보다 음량이 정말 작죠. ‘바로크 음악은 절제해서 연주하라’는 말이 있는데, 현대악기 음량이 너무 커서 바로크 음악을 연주할 때는 소리를 작게 내라는 뜻인 것 같아요. 더불어 동시대 연주자들은 현대 레퍼토리도 수월히 소화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바로크 시대부터 현대까지 차근차근 레퍼토리를 확장해나갈 예정입니다.

나와 밀접한 타 예술 장르
음악이 아닌 다른 분야는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어머니는 제가 어릴 적에 ‘피아니스트가 될 것 같다’고 생각하셨죠. 피아노곡을 한 번 들으면 악보가 없어도 연주할 만큼 피아노에 소질을 보였다고 합니다. 피아노는 지금도 종종 치고 있어요. 만약 플루티스트가 되지 않았더라면, 피아니스트가 되지 않았을까요?(웃음)

평단과 대중에게 듣고 싶은 말
‘기대 이상으로 연주하는 플루티스트’라는 말을 듣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선 어느 위치에 있든 항상 초심을 잃지 않고, 꾸준히 연습하고, 작품에 대해 고민해야 합니다. ‘지루하게 연주한다’는 말은 정말 듣고 싶지 않아요. 음악이 지루하면 그것은 음악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계획
이번 5월에는 프라하 스프링 콩쿠르 우승 부상으로, 프라하 스프링 페스티벌에서 협연합니다. 6월에는 리옹국립고등음악원을 졸업하고, 9월에 파리 음악원에 입학해 필리프 베르놀 문하에서 다시 석사 과정을 이어갈 예정이에요. 저는 오케스트라에 대한 꿈이 있어요. 젊을 때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유럽 오케스트라가 취향에 맞는 편이죠. 미국 오케스트라는 기교적으로 완벽하지만 음악적으로는 딱딱한 느낌이 있는데, 유럽 오케스트라는 부드럽고 열린 소리를 갖고 있어요. 석사를 하면서 꾸준히 오케스트라 입단을 준비하려고 합니다.

사진 심규태(HARU)

Back to site top
Transla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