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세 지휘자 로저 노링턴, ‘어린’ 음악을 들려주다

라디오 프랑스 필과 선보인 자유로운 음악회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6년 6월 1일 12:00 오전


▲ ⓒManfred Esser

별다른 감동이나 감흥이 없는 연주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너무나 많은 음악을 듣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물론 지구 일부에만 한정된 이야기지만, 음악이 지나치게 넘쳐나는 세상에 살고 있다. 허기가 모든 음식을 맛나게 하는 것처럼, 음악이 고플 때 음악은 더 맛깔스럽게 들릴 것이다. 그럼에도 자유롭고 감동스러운 연주는 여전히 존재한다. 그런 연주나 음악은 까다로운 시선을 거두고, 경탄의 눈빛으로 바라보게 된다.

올해 82세를 맞이한 지휘자 로저 노링턴(Roger Norrington)은, 아마 오늘날 생존해 있는 지휘자 가운데 음악 속에서의 자유와 모차르트의 작품들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일 것이다. 오케스트라에게 고전주의뿐 아니라 낭만주의 작곡가들의 작품도 비브라토 없이 연주할 것을 요구하는 그는, 자유로우면서도 심오한 인물이다.

여전히 잘 걷지만, 등받이가 있는 상당히 안락해 보이는 회전의자에 앉아서 지휘하는 노링턴은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 4월 23일과 30일 두 차례 연주회를 열었다. 23일에는 하이든 교향곡 49번 ‘열정’, 모차르트의 마지막 피아노 협주곡 27번(아당 랄룸 협연), 그리고 슈만 교향곡 3번을 선보였다. 30일에는 하이든 교향곡 82번 ‘곰’,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2번(필리프 카사르 협연), 그리고 멘델스존 교향곡 1번을 지휘했다.

화가 파블로 피카소는 ‘다시 아이가 되는 데 70년이 걸렸다’는 말을 남겼다. 노링턴이 오케스트라를 연습시키고 지휘하는 것을 2주 동안 지켜보면서, 피카소의 말을 떠올렸다.

우선 노링턴은 의심의 여지없이 자신이 지휘하는 음악을 잘 안다. 연습을 시키는 동안에도 그는 악보를 거의 보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의 음악적 아이디어를 유머 섞은 인간적인 방식으로 오케스트라에게 요구하고 관철했다. 때론 그의 독특한 유머 감각이 싸늘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기도 했지만, 노링턴은 개의치 않고 이를 유지했다.

그는 하이든 교향곡 ‘곰’을 연습시키며 닭 흉내를 내기도 했다. 사실 클래식 음악계는 다른 음악계나 예술계와는 다른 분위기가 있는데, 때로는 지나치게 진지한 프로페셔널리즘이 그것이다. 이는 오히려 음악이 숨 쉬게 하는 것을 막기도 한다. 단적인 예로 모차르트의 작품들을 근엄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무겁게 연주하는 것을 상상해보자. 이러한 연주자들의 모습을 모차르트가 본다면, 아마도 기겁을 하거나 배꼽을 잡고 웃을지도 모른다.

노링턴은 모차르트의 음악이 어떻게 연주되어야 하는지 너무나 잘 안다. 82세의 이 ‘늙은 아이’는 더 이상 자신을 증명해야 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 아이가 인생의 투쟁을 아직 시작하지 않았다면, 노인은 모든 인생의 투쟁으로부터 자유롭다. 로저 노링턴과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회는 대화의 장이었다. 의자에 앉아 너무나 느긋하게, 또 열정적으로 지휘를 하는 노링턴은 음악 속에서의 대화와 자유로운 인간관계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주었다. 비브라토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해석한 슈만 교향곡 3번과 멘델스존 교향곡 1번은 8-6-5-4-3의 현악 소편성을 바탕으로 놀라울 만큼 명료하면서도, 비록 웅장하지는 않지만 울림이 전혀 빈약하지 않은 소리를 들려주었다.

주관적인 추측일지는 모르지만, 불행하게도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단원들 가운데는 이 ‘늙은 아이’가 부여하는 자유를 스스로 거부하는 ‘젊은 노인’들도 있었다. 이들은 진지한 프로페셔널리즘의 자세로 숨 쉬는 음악을 억누르는 사람들일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는 그들만의 잘못은 아닌 것 같다. 음악 교육과 우리를 둘러싼 클래식 음악 환경이 만들어낸 산물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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