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레오의 시대

황덕호의 JAZZ RECORDING HISTORY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6년 10월 1일 12:00 오전

재즈 사운드에 공간감을 불어넣은 스테레오 녹음의 탄생과 그 배경

인간은 두 개의 귀를 갖고 있고 두 귀를 통해 소리의 공간감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은 오래전부터 음악 녹음·재생 전문가들에게 하나의 숙제였다. 적어도 1950년대 초반까지 음반이 만들어내는 소리는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소리의 공간감을 전혀 담지 못하거나 매우 부분적으로만 전달했기 때문이다. 스테레오 사운드, 다시 말해 공간감 있는 입체적 사운드는 녹음·재생 기술이 시작되고서 얼마 후인 78회전 음반 시대 때부터 이미 제기되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의 기술적 한계에서 이 환상의 소리는 현실과는 너무 먼 거리에 있었다.

그럼에도 1940년대 말~1950년대 초, 마그네틱테이프 녹음과 비닐 재질 LP의 탄생은 그 환상의 구현을 다시 한 번 부채질했다. 머큐리 레코드의 새로운 브랜드가 대변해주듯 마치 ‘살아 있는 실체’(Living Presence)처럼 느껴지던 1950년대 초의 녹음·재생 기술의 발전은 스테레오 사운드라는 마지막 화룡점정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1950년대 이전에 이미 모든 기술적 문제는 해결돼 있었다. 지휘자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 벨연구소, 웨스턴 일렉트릭 같은 선구자들의 상상력과 기술을 통해, 두 대 이상의 마이크로 서로 다른 소리를 담아 그것을 각기 다른 트랙에 입력하면 좌우에서 서로 다른 소리가 재생된다는 사실을 이미 1930년대에 확인했다. EMI의 엔지니어 앨런 블룸라인은 음반 소릿골의 양쪽 경사면을 이용해 서로 다른 정보를 심는 것(소위 ‘45/45’ 시스템)을 이미 1930년대에 성공시켰다.

문제는 이러한 스테레오 사운드를 재생시킬 수 있는 가정용 오디오가 얼마나 보급되는가 여부였다. 1950년대 초에도 소비자들은 아직 대부분 모노럴 음반을 위한 오디오 시스템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음반사들은 이미 스튜디오에서 스테레오 녹음을 시행하고 있었음에도 여전히 모노럴 음반을 발매했다. 하지만 EMI가 특허권을 소유했던 ‘45/45’ 시스템을 웨스턴 일렉트릭이 기술적으로 보완하고 미국 음반협회(RIAA)가 이 기술을 스테레오 음반의 표준으로 제시하자 1957년 가을부터 스테레오 음반과 이를 재생하는 오디오 시스템은 급물살을 타며 부상했다.

음반에 관한 기술적 발전이 대부분 그렇듯 스테레오의 발전의 추동력은 고전음악이었다. 음반 제작자들은 스테레오 녹음을 통해 거대한 공간을 차지하며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의 스펙터클을 거실에서 재현하고자 했다. 하지만 스테레오는 고전음악만의 독점물은 아니었다. 팝과 리듬앤드블루스를 주로 녹음하던 머큐리 레코드는 1950년대 초 음향 엔지니어 로버트 파인과 녹음감독 윌마 코자트 파인의 탁월한 녹음으로 ‘Living Presence’ 시리즈를 출범시키며 클래식 음반의 새로운 강자로 부상했다.

녹음의 질이 음반 판매에 얼마나 영향을 끼치는가를 확인한 머큐리 레코드는 그들의 기술을 다른 음악에도 적용하려고 했다. 머큐리의 재즈 전문 레이블로 새롭게 시작한 엠아시 레코드의 감독 피트 루골로(Pete Rugolo, 1915~2011)는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적임자였다. 스탠 켄턴 오케스트라의 진취적인 작품들을 작·편곡했던 그는, 아직 스테레오 재생 방식이 표준화되기 이전인 1956년 빅밴드의 박진감 넘치는 사운드를 과감하게 스테레오 음반으로 발매했다. 리듬섹션과 관악기 섹션을 좌우로 분리시킨 이 음반의 사운드는 마치 눈앞에서 빅밴드가 연주하는 것 같은 사실감을 음반을 통해 최초로 구현해냈다.

1954년 시드니 프레이에 의해 설립되어 발 빠르게 스테레오 음반을 다수 녹음·제작했던 오디오 피델리티는 1957년 비브라폰 주자 라이어널 햄프턴(Lionel Hampton, 1908~2002)과 이 음반사 최초의 스테레오 재즈 앨범을 완성했다. 햄프턴 오케스트라에서 6인조만을 추려 녹음한 이 음반은 햄프턴을 오른쪽에, 나머지 멤버들을 왼쪽에 배치함으로써 리더의 공간을 완벽하게 확보해주었다. 즉흥 솔로 연주의 비중이 높은 재즈에서 이러한 공간의 분리는 주인공을 더욱 부각시켰다. 햄프턴은 비브라폰 외에도 피아노와 드럼을 연주했음에도 그것은 동일한 악기를 연주하는 다른 연주자와 확실히 구분되었다.

같은 해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 1926~1991)는 컬럼비아 레코드로 완전히 자리를 옮기면서 이전의 독립 레이블에서는 이루지 못한 빅밴드 녹음에 착수했다. 당시까지도 컬럼비아는 스테레오의 가능성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아직 그 미래를 확신하지 못해 녹음은 모노럴과 스테레오 두 종류로 동시에 진행했고 음반 역시 모노럴로 발매되었다. 1997년 발매된 ‘Miles Ahead’의 세 번째 CD 버전에서야 드디어 오리지널 스테레오 녹음이 쓰이게 됐다.

협소한 재즈클럽 무대에서 빅밴드는 어쩔 수 없이 연주자들을 한자리에 모아 계단식 의자에 배치시킨다. 하지만 그 편곡을 들어보면 금관악기와 목관악기는 엄연히 분리되어 서로 부르고 응답하며 대칭을 이룬다. 이를 예리하게 파악한 프로듀서 조지 아바키안은 CBS 레코드의 넓은 스튜디오를 활용해 금관주자와 목관주자들을 좌우로 분리시켜놓고 독주자 마일스를 중앙에 배치했다. 이로써 음악이 전달하려는 내용은 더욱 명확해졌고 이 방식은 1950~1960년대 빅밴드 녹음의 일반적인 세팅이 되었다.

스테레오 사운드의 상징적인 이름으로 불리던 RCA-빅터의 ‘Living Stereo’는 1953년부터 클래식 음악에 스테레오 녹음을 적용했지만 팝과 재즈에 사용한 것은 1958년 배우이자 가수였던 해리 벨라폰테(Harry Belafonte, 1927~)의 앨범부터다. 로이 엘드리지(Roy Eldridge), 벤 웹스터(Ben Webster) 같은 명 독주자들은 스테레오를 통해 각기 자신의 공간을 확보함으로써 그 존재감을 부각시켰고, 가운데에 자리한 벨라폰테의 목소리는 전체 공간을 감싸 안았다. 이제 오디오가 있는 거실은 ‘살아 있는 사운드’를 통해 한밤의 재즈 클럽으로 변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달의 추천 재즈음반

피트 루골로 ‘Music for Hi-Fi Bugs’
Emarcy MG 36082|1956년 7월 9~11일 녹음
피트 루골로(편곡·지휘)

라이어널 햄프턴 ‘Lionel Plays Drums, Vibes, Piano’
Audio Fidelity AFSD 5849|1957년 녹음
라이어널 햄프턴(비브라폰·피아노·드럼)/보비 플래터(알토 색소폰·테너 색소폰·클라리넷·플루트)/오스카 데너드(피아노)/빌리 매켈(기타)/줄리어스 브라운(베이스)

마일스 데이비스 ‘Miles Ahead’
Columbia-Legacy CK 65121|1957년 5·8월 녹음
마일스 데이비스(플뤼겔호른)/길 에번스(편곡·지휘)

해리 벨라폰테 ‘Belafonte Sings the Blues’
RCA Victor Analogue Productions CAPF 1972 SA|1958년 1·3·6월 녹음
해리 벨라폰테(보컬)/데니스 파넌·앨런 그린·밥 코먼(편곡·지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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