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전 세계 바그네리안이 함께한 40여 일간의 여정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6년 10월 1일 12:00 오전


▲ ⓒEnrico Nawrath

지난 7월 25일부터 40여 일간 전 세계 바그네리안을 열광시킨 2016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이 개최됐다. 특히 올해는 ‘파르지팔’의 제3 시동(Dritter Knappe) 역을 노래한 테너 김석철(Charles Kim)이 한국인 테너로는 최초로 바이로이트 무대에 공식 데뷔했다. 

개막 전에는 지휘자 안드리스 넬손스를 둘러싼 스캔들로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올해 개막작인 ‘파르지팔’을 지휘하고, 2020년에는 대망의 ‘니벨룽의 반지’ 4부작 전체를 책임지기로 했던 넬손스였다. 그러나 페스티벌 음악감독인 크리스티안 틸레만과의 갈등이 전면에 불거졌다. 리허설 장소에 나타난 틸레만이 연습 과정에서 몇 가지 ‘강하고 직접적인 조언’을 건넸고, 넬손스는 이를 부당한 간섭이라 여겨 중도에 지휘봉을 내려놓고 말았다. 그가 떠난 빈자리에는 동독 출신의 노장 하르트무트 헨셴이 급히 호출됐다.

연출을 맡은 우베 에릭 라우펜베르크는 성배기사단의 본거지를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점령한 중동 한복판의 기독교 수도원으로 설정했다. 기사단의 노장 구르네만츠를 맡은 베이스 게오르크 제펜펠트는 올해 페스티벌에서 가장 빛나는 별이었다. 노래와 낭독의 경계를 절묘하게 넘나든 그의 독백은 완벽한 대사 전달력과 어우러져 커다란 감동을 주었다. ‘세계를 이지적으로 해석하는’ 독일어 특유의 엄격한 자음 울림과 한없이 유연하고 둥글게 전개되는 모음들의 부드러운 음악적 조화가 완벽에 가까웠다. 목소리가 아니라 종소리처럼 울려 퍼지는 그의 깊은 음성에 매체들도 최상의 표현을 동원해 “역사상 최고의 구르네만츠” “그의 스승 한스 조틴을 연상케 한 기념비적 명연” 등과 같은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타이틀롤을 노래한 테너 클라우스 플로리안 포그트는 ‘내추럴 본 파르지팔’이었다. 약음에서 나지막하게 읊조리는 레치타티보로 소년의 순수함을 섬세하게 표현했고, 2막 이후 장면에서는 강렬한 오라의 배음을 방출하는 의지적인 헬덴테너로서 영웅적 강인함을 과시했다. 암포르타스를 노래한 미국 텍사스 출신 베이스바리톤 라이언 맥키니는 할리우드 스타를 연상케 하는 외모와 묵직하고 둥근 저음으로 큰 인상을 남겼고, 베이스 카를 하인츠 레너가 노래한 티투렐은 단 한 번의 등장만으로도 영성을 움직이게 하는 위대한 저음의 세계를 실감케 했다.

제3 시동 역으로 등장한 테너 김석철은 ‘신 스틸러’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타 배역의 대사까지 암송할 정도로 작품 자체에 완전히 몰입한 그는 명징한 독일어 대사 전달력과 맑고 곧게 올리는 시적인 목소리로 관객들에게 존재감을 뚜렷이 각인시켰다. 구르네만츠와 쿤드리 등 주변 배역들의 대사와 몸짓 하나에도 정확하게 조응하는 적극적인 연기도 호평을 받았다.

연출가 라우펜베르크는 ‘파르지팔’을 범종교적 관점에서 바라보았다. 개별 종교와 종파, 교단이 지닌 종교적 폐쇄성과 도그마를 벗어나 자연의 상태에 가까운, 인류 본성의 ‘성스러움’에 대한 갈망과 호소를 작품에 담아냈다. 다분히 영화적인 연출이었다. 그에 비해 헨셴의 지휘는 생각보다 개성적이진 않았다. 이전 공연을 이끌었던 피에르 불레즈의 회색빛 모더니티나 필리프 조르당이 보여준 끈적이는 낭만의 소용돌이는 없었다. 그러나 대타로 섭외되어 준비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음에도 유연하게 흐르는 음악과 일정한 톤으로 정연하게 표현된 깊이 있는 관현악이 관객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니벨룽의 반지’는 올해도 논쟁의 중심에 섰다. 특히 프랑크 카스토르프의 연출에 대해 찬반이 확연히 나뉘었다. ‘반지’ 텍스트 특유의 묵시적 음울함과 문학적 추상성을 거세한 무대였다. 도시의 뒷골목 욕망사로 전체 드라마를 이끌었다. “현대의 컬트 클래식”이라는 숨 가쁜 찬사가 있었는가 하면, “음악의 흡입을 방해하는 불쾌한 연출”이라는 혹평도 있었다.

마레크 야노프스키는 초반 두 작품인 ‘라인의 황금’과 ‘발퀴레’에서 옹고집이라 할 정도로 인 템포만을 고수해 극적인 에너지와 다이내믹한 표정을 살리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지크프리트’를 변곡점으로 드라마틱하게 부활했다. 서주부터 끈적이는 루바토로 확실한 자기 표정을 심었다. 미메를 노래한 안드레아스 콘라트의 얼음처럼 차가운 광기와 통제 불능의 격정으로 브레이크 없이 폭주하는 소년 영웅 지크프리트 역의 슈테판 빈케가 자아낸 그로테스크한 2중주가 엄청난 음악적 쾌감을 선사했다.

4부작을 통틀어 가수진의 구성이 불균일했고, 지휘자의 ‘음악적 체력’ 문제도 불거졌다. 그러나 연출 상 지극히 개성적인 인물 표현을 다변화된 음악적 표정으로 세밀하게 포착해 어느 해보다 성공적으로 동시대적인 ‘반지’를 완성했다.

현지에서 만난 테너 김석철과의 인터뷰

김석철은 올해 페스티벌의 특별 프로그램인 어린이 오페라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에서 에리크를, ‘파르지팔’에서는 제3 시동 역을 맡았다. 현지의 평론가와 공연 관계자들은 “신선하고 맑은 고음과 극에 대한 몰입도가 탁월한 테너”라며 한결같은 찬사를 보냈다. 바이로이트에서 만난 그와 짧은 대화를 나눴다.

한국인 테너로는 최초로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노래했다. 소감이 어떤가?

어찌 보면 작은 역할인데 이렇게 큰 관심과 박수를 보내주시니 조금 쑥스럽기도 하다.(웃음) 우리 시대 최고의 바그너 음악가들과 함께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소중하게 다가온다.

‘파르지팔’의 제3 시동 역은 전통적으로 ‘바그너 레제로 테너’의 전유물이었다. 게르하르트 슈톨체, 헬무트 팜푸흐 등 독일권 명 테너들이 이 배역을 도맡아 불렀다. 본인의 목소리는 이와 달리 더욱 힘 있고 영웅적인 스타일인데, 어떻게 음악적 조화를 찾아나갔는가?

바이로이트에 와서 포그트, 제펜펠트 등 동시대의 대가들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 덕분에 배역에 맞는 목소리와 해석을 찾아가는 과정, 다채롭게 변화하는 음악적 흐름에 대한 적응력 등을 익힐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제3 시동 역에 ‘끝없이 문제를 제기하는 행동파 수도사’의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덧입힐 수 있었다.

페스티벌 예술감독인 카타리나 바그너가 특별히 개인적인 찬사를 보내는 등 첫 무대에 대한 주변의 호평이 자자하다. 앞으로 작품 활동 계획은?

내년 5월 체코 프라하에서 카타리나 바그너의 연출로 ‘로엔그린’을 노래할 예정이다. 유럽 각지의 무대에서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탄호이저’ ‘로엔그린’ 등의 출연에 대한 오퍼가 계속 들어오고 있다. 차분히 준비해나갈 예정이다.

오는 11월 국립오페라단의 ‘로엔그린’에서 타이틀 롤을 노래하며, 고국 팬들과 만나게 된다.

바그너의 오페라는 길고 어렵다는 선입견이 있다. 물론 쉽지 않은 음악인 것은 사실이다. 문학적 깊이를 갖추는 동시에 음악적으로도 아름답게 조율된 노래로, 바그너 오페라 특유의 깊이 있는 감동을 전해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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