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레이프 오베 안스네스

가장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만나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6년 11월 1일 12:00 오전

북유럽을 넘어 동시대를 대표하는 그의 연주가 상쾌한 바람을 타고 들려온다


▲ ⓒÖzgür Albayrak

명실상부, 북유럽을 넘어 동시대를 대표하는 피아니스트 레이프 오베 안스네스(Leif Ove Andsnes)가 11월 27일 그의 여덟 번째 내한 공연을 롯데콘서트홀에서 독주회로 갖는다. 1996년 얀손스/오슬로 필과 그리그 협주곡으로 한국에 데뷔한 이래, 그를 만날 수 있던 기회는 주로 체임버 오케스트라(2005·2010 노르웨이 체임버, 2015 말러 체임버)였다. 독주자로 방문한 건 오직 세 번(1999·2002·2007)이었다.

21세기 들어 세계적 거장의 입지를 굳히는 안스네스를 한국은 그동안 홀대한 편이다. 2005년 1100석 규모의 LG아트센터에서 열린 노르웨이 체임버 공연이 유일하게 성황을 이뤘고, 나머지 2000석 이상 좌석의 예술의전당 공연은 고전했다. 음악 안에 자극적 요소가 없는 그의 특징은 앞으로도 불변일 것이다. 동시대에 안스네스의 성장을 서울에서 지속적으로 공감하려면, 이번 공연은 연주의 질뿐 아니라 유료 티켓 매출액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2000년대 안스네스는 자신의 음악을 알리기 위한 방편으로 스펙터클을 이용했다. 2008년엔 헬기로 그랜드피아노를 노르웨이 하르당게르(Hardanger) 산 정상으로 옮겼고, 2009년엔 공연장 벽면을 7개 스크린으로 나눠, ‘전람회의 그림’ 멀티미디어 공연을 가졌다. 계곡에서 목욕 수건으로 나신을 가린 영상물 속 안스네스는 평소 홀에서 보던 샤프한 이미지와는 또 달랐다.

2010년대 안스네스의 삶은 이전과 달라졌다. 베르겐 필 호른 주자인 부인 사이에서 2010·2013년에 태어난 세 자식의 보육과 연주를 병행하며 생활 패턴이 바뀌었다. 자정이 되어서야 자택에서 연습을 시작하기도 했고, 전체 연주 일정을 줄인 건 “가족이 음악에 우선한다”는 공개 선언과 같은 맥락이다. 여러 레퍼토리를 연구하는 대신 2012년부터 세 시즌 동안 ‘베토벤 여행(Beethoven Journey)’으로 협주곡 다섯 개를 말러 체임버와 반복한 건 ‘좋은 아빠’와 ‘베토벤 스페셜리스트’의 목표를 달성하기에 적합한 스케줄이었다.

안스네스는 1970년 노르웨이 남서안에 자리한 인구 4만의 섬, 카뫼이(Karmøy)에서 태어났다. 음악교사 출신인 양친은 네 살짜리 아들에게 기본적인 피아노 레슨을 시작했지만, 전문적인 교육을 강권하지 않았다. 대가족이 식사를 하고, 세 명의 여 형제와 자라면서 근면하고 소박하지만 겸손한, 음악계에는 널리 알려진 지금의 인성도 길러졌다.

연중 300일 이상 비와 구름이 끼는 베르겐으로 16세에 이주했고, 지금도 같은 도시에 살고 있다. 베르겐 음악원에서 체코 출신 이르지 흘린카를 사사했고, 공연장 안내원 아르바이트 일을 했다. 1987년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힌데미트 콩쿠르를 우승하고, 같은 해 오슬로에서 프로 무대에 입문했다.

안스네스는 경연 대회를 발판으로 삼기보다 레코딩의 순도가 실제 공연으로 이어지고, 다시 후속 앨범이 음반상을 받는, 선순환 구조로 커리어를 쌓은 대표적인 연주가다. LP 데뷔 레이블인 VNP를 시작으로 BIS, 시맥스 PSC, 버진 클래식스를 거쳐 1990년대 중반부터 2010년 초까지 함께한 EMI 클래식스, ‘베토벤 여행’ 프로젝트로 새로 계약한 소니 클래식스에 이르기까지 그의 앨범은 늘 싱싱함을 유지한다.

사실상 챔피언과 다름없는 그리그부터 모차르트·베토벤·쇼팽·슈만·리스트·야나체크·드뷔시·라흐마니노프·프로코피예프·닐센에 이르는 녹음과 연주 레퍼토리는 폭이 넓고, 깊이도 마찬가지다. 1996년만 해도 데카 레이블의 페터 야블론스키(1971~, 스웨덴), 올리 무스토넨(1967~, 핀란드)과 즐겨 비교됐지만, 20년이 지난 지금 그런 비교는 없다.

“위엄 있는 우아함과 힘, 통찰력을 지닌 피아니스트”로 지칭한 ‘뉴욕 타임스’ 리뷰는 2000년대 안스네스의 활동 전반을 설명하는 키워드와 다름없다. 그러나 지난 9월 런던 바비컨센터 리사이틀을 지켜본 영국 ‘가디언’지는 “다정하지만 단조롭다”고 안스네스에게 야심을 요구했다. 서울 공연에선 슈베르트 소품집 D946, 공연 직전에 알려질 시벨리우스 작품선, 그리그 서정 소곡집, 드뷔시 ‘판화’와 쇼팽 발라드(2·4번)와 녹턴 F장조가 연주된다. 이하 레이프 오베 안스네스와의 이메일 인터뷰를 통한 일문일답.

독일 잡지 ‘클라식 호이테’ 인터뷰에서 “지금껏 내 자신을 엘비스 프레슬리처럼 느낀 유일한 곳이 서울”이라 했다. 한국 관객들의 어떤 특징 때문인가?

내가 만나온 서울 관객은 젊고, 열광한다. 첫 내한인 1996년 오슬로 필 협연을 예로 들겠다. 앙코르를 위해 의자에 앉으려는데, 객석에서 사자 입에서나 나올 법한 포효가 나왔다. 두려울 정도의 반응이었는데, 동시에 아주 감동적이었다. 그런 류의 반응을 접하니 클래식 연주자지만 팝 스타의 기분을 공감할 수 있었다. 열정적인 문화가 저변에 깔려 있는 것 같다.

런던 심포니와 2001/2002, 2015/2016 시즌에 각각 ‘아티스트 프로파일’ ‘아티스트 포트레이트’ 시리즈를 함께 하면서 협연과 실내악, 리사이틀 공연을 가졌다. 베를린 필과는 2010/2011 시즌 ‘피아니스트 인 레지던스’를 지냈다. 이러한 프로그램에서 경험하는 유익은 무엇인가?

프로젝트에 관계되는 예술 조직과 뮤지션들, 주재 도시와 그곳의 청중과 친밀한 관계가 되니 나에겐 아주 멋진 일이다. 그런 제도가 없었더라면 나는 특정 관객을 상대로 몇 가지만을 보여주고 스케줄 따라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피상적인 존재가 됐을 것이다.

상주 음악가로 활동하며 신경쓰는 부분은 무엇인가?

이런 제도를 통해 내 자신의 여러 음악가적 모습, 가령 협연자나 독주자, 실내악 주자로서의 모습이 잘 비춰지면 더할 나위 없다. 현대음악 지지자로서 위상도 조명되면 좋겠다.


▲ ⓒmco

유년 시절 프로그램이 거의 낭만주의 계열이었던 것에 반해, 서울 내한 프로그램의 첫 곡은 슈베르트 D946이다. 전통적으로 슈베르트 즉흥곡을 독주회의 전채 요리처럼 이용해왔는데, 나이가 들면서 빈 고전주의를 초반에 놓는 설정으로 변한 것인가?

그렇다. 빈 고전주의 작품을 편안하게 느끼는 데 꽤 많은 세월이 흘렀다. 특히 노래하는 성격의 작품들, 중층적인 면모를 갖춘 모차르트와 슈베르트 작품에서 그랬다. 상대적으로 하이든이나 베토벤에 대한 기초적인 감정은 어린 시절에도 다가가기 쉬웠다.

지난 9월 바비컨센터 리사이틀 전에 가진 인터뷰에서 “시벨리우스 건반 음악을 부각시킬 책임이 있다. 그의 명작들은 쉼 없이 마음 속 무엇인가를 일렁이게 한다”고 했다. 3개의 서정적 소품 ‘퀼리키(Kyllikki)’처럼 분방한 소품들이 소나타보다 자연을 노래하기 쉬운가?

대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인데, 시벨리우스는 소나타 형식으로 딱 한 곡만 썼다. 초기작이어서 그렇게 중요한 작품은 아니다. 시벨리우스는 전통적인 소나타 형식에 대해 자유로움을 느끼지 않았고, 그래서 최소한 피아노는 그의 악기가 아녔던 셈이다. 반면 관현악에서는 물속 고기나 마찬가지였다.

150여 개 시벨리우스 건반 곡들은 유명하지 않다. 연주회용 작품을 어떻게 선별하는지.

시간을 들여 차분하게 시벨리우스의 모든 건반 작품을 살펴봤고 연주했다. 그 결과, 전체의 30~40%가량이 훌륭하고 나머지는 그렇지 않았다. 시벨리우스의 관현악 작품 중에선 졸작이 별로 없는데, 여러 건반 작품에선 걸작에서 파생되는 어휘나 영감이 없었다.

아시아 투어 프로그램 가운데 유독 한국에서만 그리그의 곡들을 추가로 연주한다.

주최 측에서 특별히 그리그를 요구했다. 나와 그리그를 ‘노르웨이’ 코드로 이해하려는 걸 잘 안다. 가능하면 음악을 더욱 직접적으로 청중에 전달되길 바란다. 진실하게 음악에 다가가는 자세가 그리그에선 더욱 중요하다.

드뷔시 ‘판화’는 사운드가 빙글빙글 소용돌이치는데, 처음 접했을 때도 흥미로웠는가?

실제로 ‘판화’를 연주하기 시작한 건 열일곱 살 때였다. 건반을 누르니 사운드가 얼마나 놀라웠는지 모른다. 손으로 전해지는 느낌은 상당히 관능적이었고, 그 느낌은 지금도 같다.

어린 시절 미켈란젤리의 영향으로 브람스의 발라드를 선호해온 것으로 알고 있다. 데뷔 이후 독주회에서 여러 작곡가의 발라드를 자주 선보이는 것도 같은 이유인지.

발라드를 자주 연주한 건 그저 우연이다. 쇼팽·브람스·그리그의 발라드와 나 사이에 특별한 연관이 있는 건 아니다.

10대 초반부터 쇼팽의 발라드를 편애했다. 여전히 이 곡들에서 새로운 걸 발견한다면, 해석은 어떤 방법으로 변하고 발전해왔나?

건반 주자 입장에서 보면, 쇼팽 4개의 발라드는 아주 복잡하지만 도전적인 작품이다. 4곡이 정서적인 면에서 다양하고 또 독특하다. 아마도 영원히 이 작품에 매달릴 수 있을 것 같고, 그래서 지금도 이 곡을 사랑한다. 그렇게 연구하다 보니 늘 새로운 게 보인다.

부인, 그리고 세 자녀와 베르겐에서 살고 있다. 그곳의 기후와 환경이 보육과 교육에 적당한가?

베르겐은 작은 도시지만 문화적으로 좋은 기회가 많은 편이다. 이곳에서 자식들이 크는 게 행복하다. 내게 자연은 중요한 부분이다. 산과 바닷가도 주거지와 가까워 매우 만족한다.

다음 레코딩 계획이 궁금하다.

이번 아시아 투어가 끝나고 나면 시벨리우스의 건반 작품 녹음에 들어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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