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불역쾌재’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6년 12월 1일 12:00 오전

10월 26일~11월 6일
LG아트센터

이 또한 유쾌하지 아니한가!?

작가로서 장우재는 현실에 매우 민감한 편이다. 그의 전작들을 살펴보면 우리 사회에서 첨예하게 대두된 문제들이 어김없이 한 편의 이야기 속에 녹아들어 갔다. 그러나 이번에 공연된 ‘불역쾌재’는 조금 다르다. 현실에 대한 직설이 불가능할 때 우리의 선배 작가들은 역사를 불러와 그 뒤에 숨어 하고 싶은 말을 담아내는 현명함을 선보였다. 장우재의 섬세한 작가적 감각도 현실을 직설로 풀어낼 수 없음을 감지한 것일까? ‘불역쾌재’는 작가 장우재로서는 매우 드문 역사극이다. 재미난 것은 역사를 불러온 태도다. 구체적인 과거를 현재로 소환하여 그 접점을 현실화하는 것이 일반적인 역사극의 태도라면 이 작품은 구체화 대신 추상화를 택했다. 조선이라는 국호, 왕과 사관, 여러 신하가 나오지만 그것은 그저 배경일 뿐, 극을 이끌어가는 기지와 경숙의 두 스승과 그들이 겪는 일들은 역사적 구체성을 비켜나 추상으로 알레고리화한다.

처음과 끝이 맞물리는 회귀적 구성의 내용은 수묵화 같은 무대에서 펼쳐진다. 몇 개의 낮은 단으로 구성된 바닥과 점점이 회색이 칠해진 뒷벽은 기지와 경숙을 그림 속으로 끌어들였고, 필요에 따라 천장에서 내려오는 나무들과 뒷벽에서 열리고 닫히는 공간은 두 사람의 긴 여정을 간소하면서도 효과적으로 드러냈다. 수묵화의 무대에서 가장 돋보인 것은 기지와 경숙을 연기한 오영수와 이호재 두 노배우의 열연이었다. 연기 스타일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어떤 앙상블을 펼쳐낼지 궁금했는데 각자 개성 있는 화술과 연기가 기지와 경숙의 상반된 성격을 더욱 뚜렷하게 만들어냈다. 이로 인해 얼핏 관념적으로 보일 수 있는 분별과 포용이 실체화되는 효과를 냈다. 다만 두 배우가 함께 연기하는 장면이 대체로 무대 뒤편에 배치되어 그림 속 풍경처럼 객석과 거리가 멀었던 점은 공연 내내 가장 아쉬운 점이었다.

두 스승이 살신성인으로 몸소 실천한 ‘불역쾌재(不亦快哉)’는 작품 말미에 반복적으로 제시되는데, 이것은 상상의 역사, 분별과 포용이라는 관념, 그리고 수묵화 속에 펼쳐지는 인간 군상들이 유기적으로 연관되지 못했다는 작가와 연출가의 자기 고백으로 들린다. “이 또한 유쾌하지 아니한가!”라는 깨달음은 관객들에게 느낌표로 다가와야 함에도 필요 이상으로 반복되어 강제 주입되는 느낌이 강했다. 두 스승의 죽음 앞에 춤을 추는 왕의 깨달음이 관객의 깨달음이 될 수 있도록 희곡으로, 연출적으로도 보완되어야 할 부분이다.

기지와 경숙의 분별과 포용은 얼핏 과학과 예술로 구분되는 듯 보인다. 비난하고 조롱하지만 그 속에 깃들어 있는 서로에 대한 존중은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게 했으며, 그들이 동시에 맞이하는 죽음은 결국 분별과 포용이 별개의 것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세상의 급박한 사정과 동떨어져 보이는 두 스승의 달관한 듯한 대사와 몸짓이 사실은 복잡다단한 말초의 세상살이를 보듬는 ‘불역쾌재’의 철학적 언행이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는 절대 유쾌하지 않다. 하루하루 뉴스와 언론을 통해 믿기 어려운 사실들이 밝혀지는 요즘이다. “이 또한 유쾌하지 아니한가!”의 경지가 저 멀리 까마득해 보인다. 그러나 연극 ‘불역쾌재’ 속 죽음 앞에서 처연하던 두 스승의 가르침―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사고하되, 서로 손을 맞잡고 다독이는 것―이 어려운 현실을 헤쳐갈 수 있는 원칙이자 우리가 유쾌해질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사진 LG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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