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랑 피아노 독주회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7년 1월 1일 12:00 오전

2016년 12월 8일
롯데콘서트홀

진지한 레퍼토리, 기발한 해석

피아니스트가 자신의 연주회에서 가장 크게 염려하는 것 3가지를 들자면 우선 공연장의 음향, 청중의 성향과 공감도, 마지막으로 처음 만나게 될 악기에 대한 내용일 것이다. 언뜻 이런 요소들은 연주자의 의지로 바꾸거나 개선할 수 없을 것 같지만, 노련한 무대 경험과 연주자로서 카리스마, 음악적 설득력의 유무에 따라 어느 정도는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전 세계 청중에게 친숙한 스타 피아니스트 랑랑은 이제 막 35세가 된 청년이지만 분주한 연주 일정은 물론이고 공익사업을 포함한 사회 활동, 심심치 않게 보이는 정치적 행보와 함께 멀티미디어적으로 만들어내는 이미지 관리 등에서 이미 중년의 아티스트가 지닐 법한 여유를 보여준다. 다소 과장된 무대 매너와 청중을 과도하게 의식하는 모습 때문에 불필요한 평가를 얻고 있다는 생각도 동시에 드는데, 레퍼토리 선정에서 보여주는 그의 진지함을 생각한다면 더욱 그렇다.

지난해 12월의 프로그램 역시 세심한 고려가 느껴졌다. 가장 대곡인 리스트 소나타 B단조를 중심에 두고, 리스트가 예견한 인상주의의 주인공 드뷔시를 오프닝으로, 라틴 음악에 프랑스적 우아함과 인상파의 요소를 결합시킨 20세기 초 3명의 스페인 작곡가들을 후반부에 배치한 구성은 통일성의 측면에서 단연 돋보였다.

지명도가 없어 더욱 신비로운 느낌의 드뷔시 발라드는 낭만주의 특성을 밑바닥에 튼튼히 키워놓았던 작곡가의 초기 피아니즘을 여실히 보여주는 걸작이다. 드라마틱한 변화나 색채의 탈바꿈을 잠시 미뤄두고 꿈꾸는 듯한 마무리를 꾀한 랑랑의 해석은 음악회 전체를 몽환적 분위기의 안개로 덮어주는 역할을 훌륭히 해냈다. 다분히 파괴적인 악상과 과장된 다이내믹으로 휘황찬란한 덮개를 씌워 요리해낸 리스트의 소나타는 지난 시대 리스트 전문가들의 필터를 놓고 보면 비교가 어려울 정도의 괴팍함이 두드러졌으나, 랑랑 특유의 리듬감과 아기자기한 구성을 통해 마치 흥미로운 영화의 하이라이트를 편집한 듯 연속으로 터지는 드라마틱한 장면들의 흡인력도 인정해야 할 듯하다. 특히 예상을 깨는 프레이징은 거의 모든 대목의 끝부분에서 두드러졌는데, ‘꺾는다’는 표현이 가장 어울릴 듯한 루바토의 극단적 과시는 당황스럽지만 그 기발함으로 경탄을 자아내게 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발랄함만 느껴졌다면 후반부의 라틴 레퍼토리는 오히려 공허할 수도 있었던 바, 알베니스-그라나도스-파야 삼총사의 다채로운 피아니즘은 랑랑의 손끝에서 매우 사려 깊게 그려졌다. 스페인 여행수첩과도 같은 알베니스의 스페인 모음곡에서는 1·2·3·4·5·8번 등 여섯 곡이 선택되었는데, 깔끔한 논 레가토와 홀의 울림에 자연스럽게 기대는 듯 표현한 풍성한 페달링이 정교하게 나타났으며, 춤을 추듯 흥겹게 움직이는 그의 발놀림을 구경하는 것도 객석의 흥밋거리였다. 이에 반해 그라나도스의 ‘고예스카스’는 사색의 모습이 부족하게 나타나 아쉬움을 던진 연주였다. 3곡인 ‘등불 옆의 판당고’는 청중을 지나치게 의식한 듯 다소 서둘러 마무리됐으며, 4곡 ‘슬픔, 또는 아가씨, 그리고 나이팅게일’은 화사한 톤과 감각적인 다이내믹이 짜릿한 맛을 자아냈지만 호젓하고 여유로운 뒷맛을 주는 해석과는 거리가 있었다. 파야의 ‘사랑은 마법사’ 중 ‘불의 춤’은 특유의 오버액션을 자제한 채 집중력 있는 타건과 부풀린 다이내믹 레인지를 통해 입체적으로 그려졌다. 스페인의 낙천성과 신비스러움, 열광의 극치에 이르는 모든 요소를 집약한 호연이었다.

사진 롯데콘서트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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