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만난 소프라노 조수미, 무대를 오래 지키기 위한 마음

INTERVIEW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7년 3월 1일 12:00 오후

영화 ‘유스’ 출연과 대중가요 음반 발매 이후 새로운 것에 계속 도전하는 그녀의 음악 인생

 

“Hi, Sumi. I’m so sorry….”

지휘자 롱 유(Long Yu)는 소프라노 조수미를 보자마자 대뜸 미안하다는 말부터 꺼냈다. 납작 엎드려 절이라도 할 판이었다. 롱 유는 중국 출신으로 현재 세계무대에서 큰 활약을 보이는 지휘자다. ‘뉴욕 타임스’지가 그를 가리켜 ‘중국의 카라얀’이라 표현할 만큼 국가적 영웅 대접을 받는 인물이다. 그런 그가 안부 인사도 건너뛰고 다짜고짜 미안하다고 했다.

롱 유는 격앙된 목소리로 중국 정부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피아니스트 백건우에 이어 소프라노 조수미도 중국 비자 발급이 거부되어 2년 전 이미 예정되어 있던 투어가 물거품이 되었기 때문이다. 원래는 2월 19일 광저우, 23일 베이징, 26일 상하이 공연 일정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녀의 매니지먼트는 연주 날짜가 다가오자 자초지종을 파악하려 했지만 어느 시기가 되자 연락이 잘 안 되더니 아무런 반응조차 없었다고 했다. 롱 유는 옆에서 듣고 있기 민망할 정도로 조수미에게 중국 정부의 이해할 수 없는 처사에 대해 미안함을 전하며 본인이 중국에 돌아가는 대로 할 수 있는 최선의 조치를 하겠다고 말했다. 이야기는 한참 동안 이어졌고, 조수미가 연주 곡목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꺼내 화제를 돌리자 그제야 롱 유도 악보를 펼쳐 리허설을 시작했다.

조수미는 지난 1월 31일에 있던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정기 공연에 초청받아 총 다섯 곡을 노래했다. 뉴욕 필하모닉과는 첫 호흡이었고, 지휘를 맡은 롱 유와는 중국에서 여러 차례 연주를 함께 한 바 있는 편안한 관계의 지휘자였다.

오케스트라와의 첫 리허설부터 조수미는 단원들로부터 갈채를 받았다. ‘절정의 기량’이라는 표현이 좀 진부할 수 있겠으나, 무대에 선 조수미를 설명할 더 정확한 표현은 없는 것 같다. 단원들은 연주자인지 관객인지, 한 곡 한 곡 리허설을 할 때마다 그녀의 연주에 고개를 흔들기도 하고 밝게 웃으며 동료 연주자들과 감탄을 나누는 모습을 보였다.

링컨 센터의 데이비드 게펀홀은 연주하기가 다소 어려운 곳이다. 그래서인지 지휘자는 밸런스를 맞추는 데 꽤나 신경을 쓰는 모습이었다. 조수미는 홀의 구석구석마다 소리가 어떻게 전달이 되는지 꼼꼼한 모니터링을 요구했다. 새로운 홀을 찾을 때마다 늘 하는 일이라고 했다. 객석이 비어 있는 홀에서 리허설을 하지만, 사람이 들어오게 되면 소리가 어떻게 전달될지 모르기에 미리 체크를 해둬야 실제로 무대에 섰을 때 당혹스럽지 않기 때문이란다. 첫 리허설을 마친 조수미와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눴다.

 

연주를 위한 여행과 리허설은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 되었을 텐데, 최근 ‘인간 조수미’의 인생의 화두가 궁금하다.

(한참을 가만히 생각하더니) 요즘 제일 많이 생각하는 건 순간의 소중함인 것 같다. 누구에게나 그렇듯이 내 인생에 있어 소중한 존재들이 있는데, 나는 그들을 위한 시간에 늘 일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를 하늘로 보내드리던 순간도, 나를 끔찍하게 사랑해줬던 반려견 세 마리와 고양이도 한 번 안아주지 못한 채 떠나보냈다. 그래서 치매를 앓고 계신 어머니의 건강을 더욱 걱정하게 된다. 지난 20년 동안 나를 도왔던 니나 할머니도 이제 여든세 살이 되어 지금은 거동이 어려울 정도로 몸이 불편한 상황이다. 사람 나이로 치면 120살쯤 된 강아지 신디 역시 하루에 여섯 번 약을 먹어야 하고 시력도 잃었다. 그들이 필요한 순간에 곁에 있지 못한다는 안타까움을 절감하고 있다.

최근 중국 공연 취소된 것에 대해 국내 언론은 물론 뉴욕의 주요 언론에도 대서특필했다. 원인은 최근 국내 정치적 여건 때문일 텐데, 당사자로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

나뿐 아니라 다른 몇몇 예술인도 예정돼 있던 중국 일정이 모두 취소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사실 한국을 오랫동안 떠나 있기도 하고, 워낙에 연주 여행이 많은 터라 고국의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해 자세하게 알지 못하는 때가 많다. 많은 경우 예술은 정치적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현실적 제약을 안고 있다. 이런 문제는 한 명의 예술가가 노력한다고 해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본다. 결국 정치인들이 해야 하는 일이 있고, 예술가가 애쓸 부분이 있는 것이다. 지휘자 롱 유를 통해 중국 문화예술계의 저항이 맹렬하다고 들었다. 그러나 그 윗선이 이 긴장을 언제쯤 풀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롱 유/뉴욕 필하모닉과 협연하는 조수미 ⓒChris Lee

 

최근 활동을 보면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영화 ‘유스’에 출연한 것도 큰 화제였는데 수많은 소프라노 가운데 왜 하필 조수미였을까?

대본에도 나와 있지만, 실제로 파올로 소렌티노 감독은 내 노래를 즐겨 듣는 팬이라고 했다. 워낙에 소렌티노 감독의 전작 ‘그레이트 뷰티’가 아카데미상·골든 글로브상에서 수상한 경력이 있는 유명한 작품이라 ‘유스’ 출연 제안을 받았을 때 기쁨이 컸다. 시나리오를 검토하면서 소렌티노 감독이 오페라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었기에 이런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내가 출연하는 장면은 영화의 대미를 장식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기뻤다.

영화감독을 제외하고는 클래식 음악에 문외한이었던 사람이 많았을 것 같은데, 촬영 환경은 어땠나?

서로 마찬가지다. 나 역시 영화 촬영이 처음이었으니까. 오페라 가수가 영화에 출연할 일이 어디 있겠는가. 내겐 전혀 새로운 경험이었고 재미있게 촬영을 했다. 생각했던 것처럼 오랜 시간 동안 여러 테이크를 끊어 촬영한 건 아니었고, 최대한 실제 공연의 느낌을 살리는 쪽으로 작업이 진행되었다. 영화에서 주인공으로 작곡가이자 지휘자 역할을 맡았던 마이클 케인은 실제로는 악보를 읽을 줄도 모르는 문외한이라고 했다. 그러니 나를 알 턱이 없었다. 내가 출연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지휘하는 모습을 연기하기 위해 두 명의 지휘자에게 4주 동안 지휘를 배웠다고 했다. 내게도, 배우들과 스태프에게도 서로 영역을 존중하고 배우는 좋은 기회였다.

2015년에는 가요 앨범 ‘그리다’를 출반했다. 예상을 뛰어넘은 파격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조수미스러운 도전이라는 평가도 있었다.

영화 촬영과 비슷한 측면이 있었다. 나와 다른 방식으로 일하는 음악가들과의 호흡이 새로웠지만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조수미가 가요 음반을 낸다는 것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그런 측면에서 내게는 분명 큰 도전이었다.

곡목을 정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1983년에 한국을 떠났는데, 그때는 방송을 통해 한국 음악을 접할 방법도 없었고 그야말로 문화적 단절 속에 지냈다. 그러다 보니 세대를 풍미했던 한국 가요는 다른 나라 이야기였다. 요즘에야 인터넷을 통해 거의 실시간으로 한국의 트렌드를 접할 수 있지만, 그 사이에 나는 유행을 모른 채 오랜 시간을 흘려보낸 셈이다. 앨범 작업의 첫 시작은 프로듀서로부터 200곡을 전달받는 일이었다. 선입견 없이 직접 들으며 7곡을 골랐다. 편곡과 연주, 그리고 피처링으로 도움을 준 대중음악가들과의 작업을 통해 목표로 했던 클래식한 분위기를 풍성하게 만들 수 있던 것 같다.

영화 출연과 대중가요 음반 발매 이후 앞으로 계획은?

스페인과 러시아 곡들 가운데 보석 같은 작품이 많다. 이런 곡들을 모아 앨범 작업을 할 계획이다. 창작곡을 발표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바리톤 토머스 햄프슨이 브람스의 마지막 가곡인 ‘네 개의 엄숙한 노래’를 현악 오케스트라로 편곡해서 암스테르담 신포니에타와 함께 투어를 했다. 바리톤 마티아스 괴르네도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함께 슈베르트의 가곡을 자주 연주한다. 이들과 같이 방식을 살짝 바꿔 원곡을 장점을 끌어낼 수 있을 만한 프로젝트를 구상 중이다.

지금까지 해보지 않았던 오페라의 역할에 도전해볼 생각은 없는지?

카라얀이 벨리니 오페라 ‘노르마’를 제안했을 때 거절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역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카라얀은 내가 밤의 여왕 역에 너무 집중하지 않도록 조언해준 분이기도 하다. 그만큼 목이 혹사되기 쉬운 곡이기 때문이다. 가끔 ‘노르마’의 아리아를 부르긴 하지만 다시 제안을 받는다고 해도 역할을 맡을 것 같지는 않다. 당장 이번 뉴욕 필하모닉의 연주에서 부르는 푸치니 ‘투란도트’ 중 ‘주인님, 제 말을 들어보세요’도 처음으로 준비한 곡이다. 워낙 류라는 역할이 내가 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선택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콘서트 형식의 무대에서는 못해본 역할의 곡들을 부르긴 하지만, 정식 오페라 무대에 서는 건 좀 다른 이야기다. 무거운 역을 자꾸 하다 보면 성대에 무리가 가고, 결국 내가 가진 소리를 잃어버리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올해 연주 일정을 말해달라.

얼마 후 프라하에서 말러 4번과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그림자 없는 여인’을 무대에 올린다. 지휘자 게오르그 숄티, 빈 필하모닉과 함께한 음반(Decca)으로 그래미상을 받았던 작품이라 더 의미 있다. 미국·일본에서의 연주와 마닐라에서의 자선 공연이 예정돼 있다. 작년부터 이어진 마리아 칼라스에 헌정하는 데뷔 30주년 기념 투어도 예정돼 있다. 6월에는 영국 웨일스에서 격년제로 열리는 BBC 카디프 싱어 오브 더 월드의 심사위원으로 다녀올 예정이다. 학생 시기에 음반으로 만났던 거장들과 함께 심사를 하게 되어 기쁘다. 8월에는 몬트리올 심포니와 켄트 나가노 지휘로 포레의 레퀴엠과 스트라빈스키의 작품을 연주할 예정인데, 특별히 켄트 나가노와는 음반 작업도 많이 했고 오랜 시간 동안 무대에서 함께 연주해온 ‘절친’이라 더 기대가 된다. 그리고 9월에는 로마의 콜로세움 야외극장에서 공연이 있다. 오랜 동료인 안드레아 보첼리와 셀린 디옹·엘턴 존이 함께 꾸미는 무대다. 다양한 아티스트가 등장하고 콜로세움이라는 무대가 주는 특별함 때문인지 많이 기다려진다.

한국에서의 일정은 없는가?

오는 5월에는 데뷔 30주년 기념 공연 중 일정상의 문제로 작년에 하지 못한 지방 공연이 계획되어 있다. 그리고 9월 2일 서울에서 파크콘서트가 ‘파리’를 콘셉트로 개최된다. 파리의 사계절을 잘 그려내 한국의 관객들께 좋은 선물을 드리고 싶다. 맡겨진 모든 연주가 소중하고, 이를 위해 늘 최선을 다해 준비해서 무대에 오르지만, 한국에서의 공연은 좀 더 특별하다. 외국에서의 무대를 친구를 대하는 마음으로 임한다고 표현한다면, 고국의 무대는 가족들을 모시는 기분이랄까. 가족은 누구보다 특별한 존재 아닌가. 한국의 관객들은 내게 가장 소중한 분들이다. 그래서 더 세심하고 꼼꼼하게 연주할 수밖에 없다.

 

 

조수미는 오랜 친구인 체칠리아 바르톨리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며, 어쩌다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현역으로 무대를 지키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자신들도 기가 막혀 웃었다고 전했다. 절정의 기량을 지키기 위해 그녀가 쏟은 열정만큼 노력을 기울인 다른 수많은 음악가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의 오늘이 빛나고, 내일이 더욱 기다려지는 이유는 그녀의 기량 때문만은 아니다.

“아마도 계속 밤의 여왕으로서 노래를 불렀다면 지금보다 훨씬 부자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다른 길을 택했다.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게 맞는 일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끊임없이 생각한다. 새롭게 계획하고 도전하는 것에서 기쁨과 보람을 얻는다. 나의 예술세계는 그 길을 찾아 떠나는 여정이다.”

마침 한국인 관광객 일행이 그녀를 알아보고 말을 건넸다. 친절한 그녀는 꽤 오랜 시간 동안 그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사진 촬영까지 모두 마친 후에야 돌아섰다. 연주가 있던 바로 전날 뉴욕에 도착해 여러 번의 미팅과 리허설에 시간을 쏟았을 텐데 그녀는 지친 기색 하나 없었다. 그녀는 2박 3일 동안의 빡빡한 뉴욕 일정을 마친 후 바로 그날 밤 홍콩 필하모닉과의 연주를 위해 서둘러 JKF 공항으로 발길을 돌렸다.

 

김동민(뉴욕 클래시컬 플레이어스 음악감독)  사진 김용호·크레디아

Back to site top
Transla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