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객석’ 기자들이 꼽은 화제의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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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7년 3월 1일 12:00 오후

아시아와 북유럽 연주자들의 내밀한 대화

 

서울 종로의 밤이 북유럽 정취로 물들었다. 매서운 바람이 불던 2월 9일 밤, 금호아트홀과 쿠흐모 체임버 뮤직 페스티벌이 손을 잡고 선보인 금호 & 쿠흐모 체임버 뮤직 페스티벌의 첫 공연이 열렸다. 핀란드를 대표하는 작곡가 시벨리우스의 작품을 중심으로 금호 출신의 젊은 연주자 9인과 핀란드 출신의 현악기 주자 3인이 무대를 꾸몄다.

핀란드의 쿠흐모 체임버 뮤직 페스티벌은 1970년부터 개최돼온 유서 깊은 실내악 축제다. 9000여 명이 살고 있는 아주 작은 도시인 쿠흐모에 매년 여름마다 200여 명의 음악가와 수만 명의 관객이 모인다는 것은 놀라운 기록이다. 이번 공연을 시작으로 2018년에는 한국 연주자들이 핀란드로 날아가 연주자들과 호흡을 맞춘다.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의 김용연 부사장은 “한국의 클래식 음악 시장은 여전히 큰 규모의 대서사시와 솔리스트들의 화려한 연주에만 익숙해 있다. 역사를 지닌 실내악 축제와의 교류를 통해 높은 음악성을 추구할 것”이라고 취지를 밝히기도 했다.

이번 공연은 3일간 4회의 공연을 갖는, 페스티벌이라 부르기엔 단출한 프로그램으로 꾸려졌다. 첫날 첫 순서로 시벨리우스 ‘죽음’ 중 ‘슬픈 왈츠’ ‘백학이 있는 풍경’을 연주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피아니스트 김다솔은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여인의 처연하고도 아름다운 몸짓에 담긴 감정을 효과적으로 드러냈고, 여섯 명의 현악주자는 쓸쓸한 듯 차갑고 깨끗한 북유럽의 풍경을 세밀하게 펼쳤다. 특히 바이올리니스트 이지혜(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제2바이올린 악장)는 차분하고 섬세한 호흡으로 곡의 중심부를 채우며 탄탄한 소리를 만들었다. 그녀는 본 윌리엄스의 ‘종달새의 비상’에서도 같은 이유로 돋보였다.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은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 비올리스트 이한나와 각각 버르토크 ‘7개의 루마니아 민속 춤곡’, 브리지 ‘비올라와 피아노를 위한 2개의 소품’을 선보였는데, 그중 선우예권·임지영의 조합은 다소 아쉬웠다. 임지영의 힘 있는 보잉과 그로부터 솟구치는 직선적 표현이 선우예권의 부드러운 흐름과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 반면 이한나는 비올라 특유의 매력적인 음색을 한껏 드러내며 진중한 표현으로 선우예권과 한 호흡을 이루었다.

피아노 독주 버전의 시벨리우스 ‘핀란디아’(선우예권)와 ‘피아노를 위한 5개의 독특한 표현’(김다솔)을 통해 젊은 두 남성 피아니스트의 각각 다른 개성이 펼쳐졌고, 파야 ‘사랑의 마술사’가 마지막 곡으로 무대에 오르며 연주회는 한껏 무르익었다. 소박한 편성으로 풍부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내면을 꺼내 보임으로써 진실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귀한 시간을 선물 받았다.

김호경

‘금호 & 쿠흐모 체임버 뮤직 페스티벌 Ⅰ’
2월 9일 | 금호아트홀

 


익숙함을 낯설게 마주하다

 

“Moi!”(핀란드의 인사) 핀란드 출신 지휘자 유사페카 사라스테가 시벨리우스의 첫 번째 교향시 ‘전설’로 서울의 밤에 인사를 건넸다. 이날 서울시향은 초판이 아닌 1902년판 ‘전설’을 연주했다. 유럽 북구 특유의 장대한 자연과 고담(古談)을 담은 몽환적인 분위기가 절정으로 향하는 상승과 하강의 반복으로 고조되는 가운데, 특히 비올라의 독주가 돋보였다. 집요하게 반복되는 선율을 밀도 있게 이어나가는 비올라 수석 강윤지의 활약이었다.

비올라의 강세는 계속됐다. 14년간 베를린 필의 단원으로 활동한 비올리스트·지휘자·작곡가인 브렛 딘이 등장해 자작곡인 비올라 협주곡을 선보였다. 비올라를 위한 곡이지만, 정작 비올리스트에게는 난이도 높은 작품. 브렛 딘은 비올라 연주에서 잘 사용되지 않는 운지법을 과감하게 선택해 바이올린에 견줄 만큼의 고음역대를 소화하다가도, 한 번씩 저음을 그어 악기의 정체성을 드러냈다. 관현악단의 기이하고 난해한 소리 파편들이 홀 곳곳을 떠돌다 한데 모여 비올라 독주와 주도권을 두고 다투기 시작했다. 홀로 싸움을 감내하는 굵직하면서도 부드러운 비올라의 카리스마는 오케스트라를 상대로 더욱 두드러졌다. 격렬한 충돌 구간을 지나자 대립 구조는 차츰 해소되었고,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1부 무대가 끝났다.

이어진 2부는 베토벤 교향곡 4번. 베토벤이 지닌 다분한 낭만적 기질을 고전적 즐거움으로 승화한 교향곡 4번은 정확한 비팅을 구사하는 사라스테의 지휘 아래 밝고 경쾌하게 연주됐다.

이날 공연은 비올라가 바이올린과 첼로 사이에 있는 악기가 아닌,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존재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새삼 깨달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연주가 끝날 즈음 알아채 아쉬웠지만, 늘 솔리스트로 만난 첼리스트 이상 엔더스가 객원 수석으로 함께했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비올라라는 악기도, 이상 엔더스도, 익숙하다 여긴 것들을 낯선 모습으로 마주할 수 있어 더욱 즐거웠던 밤이다.

정원

브렛 딘 협연, 유사페카 사라스테/서울시향
2월 11일 |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부드럽게 감싸는 사랑의 느낌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이 4년 만의 8집 정규 앨범 ‘브리티시 비올라’를 출시하고 이를 기념하는 리사이틀을 가졌다. 서울 공연은 2월 14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펼쳐졌다. 그가 ‘지난 세기의 모든 비올라 작품에 대한 경의를 담은 음악’이라고 했을 만큼 이날 레퍼토리는 전작에서 들을 수 없었던 신선한 곡들로 채워졌다. 벤저민 브리튼, 프랭크 브리지, 요크 보엔 등 20세기 영국 작곡가의 비올라 곡들은 낯설지만 격조높은 작품 마다의 색깔들과 용재 오닐의 관조적인 여유와 조화를 이루며 각 음악들이 갖는 기품을 차분하게 전해주었다.

특히 요크 보엔 작품에서는 진한 비올라 음색을 바탕으로 한 생동감 넘치는 매력, 정제된 균형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침 없는 조화를 이루며 청중을 압도했다. 물론 용재 오닐 특유의 자연스럽고도 감미로운 선율은 그의 연주를 기다려온 청중을 실망시키지 않고 하나의 공감대를 이끌게 했다.

이어진 2부는 밸런타인데이에 들려주고 싶은 로맨틱 비올라 프로그램으로 채워졌다. 이날 용재 오닐은 바이올린을 들고 바흐의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의 협연자로 나섰다. 이어진 피아졸라의 ‘탱고 발레’, 빌라 로보스의 ‘브라질풍 바흐 5번’은 섬세한 서정미가 돋보여 풍성한 감동을 선사했다. 특히 피아졸라의 ‘탱고 발레’는 생동감이 넘치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게 절묘한 감각과 템포, 리듬감으로 활기찬 기운을 전해주었다,

기품과 서정성, 자유로움이라는 키워드를 자연스럽게 이끌어낸 무대와 청중은 모두 행복한 분위기였다. 서로의 사랑을 전하는 밸런타인데이의 의미만큼 음악의 무한한 가능성을 느끼게 한 시간이었다.

국지연 

리처드 용재 오닐 비올라 리사이틀
2월 14일 |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과학철학예능연극

 

방송 시작 3분 전, 스튜디오에 하나둘 입장하는 패널들은 서로 안부를 나누고, 평소 좋아하던 연예인과 인증 샷을 찍는 등 어수선하다. 곧 생방송 시작합니다! 3초, 2초, 1초, 땡!

젠틀한 사회자의 양옆으로 진화론과 창조론 패널들이 짐짓 긴장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이곳은 100분 동안 토론이 진행되는 생방송 현장, 이 아닌 연극 무대다.

토론의 주제는 ‘진화론 대 창조론’으로, 양측은 러닝타임 내내 치열한 논쟁을 벌인다. 종교철학을 전공한 연예인, 기생충으로 인류의 진화를 설명하는 기생충 전문가, 과격한 무신론자인 진화생물학 박사는 진화론을 주장한다. 반대편에 앉은 기독교 신자인 분자생물학 박사와 천주교 신자인 해외파 천문학자, 잡학다식한 뇌과학자는 창조론을 지지한다.

극이 던지는 질문은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나가는 패널 6명의 모습은 토론과 연극,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은근슬쩍 넘나든다. 각각의 인물은 특징이 분명하고 서로 부딪힐 때마다 스파크가 팍팍 튀도록 배치됐다. 이들의 토론은 잘 짜인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듯 유쾌한데, 마치 방송국 편집실에서 매만진 것처럼 대사들의 공간이 착착 들어맞기 때문이다. 단순한 연습을 넘어 일정 수준 이상의 공부가 뒷받침되었으리라 느껴진다.

결론으로의 도약이 다소 성급했다는 점은 살짝 아쉽다. 극 후반부에 불쑥 인공지능 이야기가 나오는데, 생물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를 끌어온 80% 부분과 비교했을 때 호흡과 리듬이 조급해진 듯 느껴졌다.

‘공연에서 왜 토론을 할까?’라는 미끼를 던진 극은 흥미로운 과학 이야기를 실컷 늘어놓은 뒤, 공연이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 철학적 고민을 남긴다. 과학과 철학과 재미를 잘 엮어낸 작품이다. *PS: 이 연극은 제목이 스포일러입니다.

이정은

연극 ‘신인류의 백분토론’
2월 10~26일 |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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