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발레단 예술감독 강수진, 사람과 사람 사이에 흐르는 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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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8년 2월 1일 4:22 오후

‘사람’에 대한 애정, ‘관계’에 대한 사색이 없다면 무대 위 몰입은 불가능할 것이다. 무용수 시절의 강수진은 주어진 인물에 몰두하기 위해 외부로부터 고립한 채 스스로와 싸우며 춤췄다. 그러나 국립발레단의 예술감독이 된 이후, 그는 수십 명의 무용수·스태프와 부지런히 결집하고, 때로는 대립한다. 하나의 무대를 완성하기까지, 그는 이제 다른 과정을 겪는다. 국립발레단 예술감독 5년 차. 강수진의 인생에 달라진 것, 또 여전한 것은 무엇일까

 

강수진은 변했다. 열정, 인내, 끈기, 도전정신. 그를 설명하던 단어들. 이제는 여기에 새로운 것들이 더해진다. 전체를 보는 눈, 리더로서의 책임. 그는 중재하고, 지휘하고, 결단하는 자리에 앉았다.

“인간적이지 않으면 어떻게 예술을 하겠어요?”

국립발레단 예술감독 부임 후 4년간의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무용수 개개인의 역량과 상태, 직원 한 명 한 명의 마음가짐, 그로부터 비롯되는 조합과 화합에 대해 강조하는 강수진에게 ‘아주 인간적이군요!’ 하고 말하니 그는 당연한 소리를 한다는 듯 웃었다.

1998년 ‘뉴욕 타임스’지가 격찬한 ‘로미오와 줄리엣’의 줄리엣, 브누아 드 라 당스(최고무용수상)의 수상을 안겨준 ‘카멜리아 레이디’의 마르그리트, 완벽한 은퇴 무대를 탄생시킨 ‘오네긴’의 타티아나까지. 강수진이 애정을 품은 인물은 수없이 많지만, 그 뜨거운 마음은 연습실과 무대에 머물러 있었다. 예술 스태프, 동료 무용수들과 조화를 이루고, 수석 무용수로서 책임감을 지니고 있었지만, 단체의 장이 가지는 리더십과는 분명 다른 모양일 것이다. 현재 그는 연습실과 책상을 오가며, 극장 밖 회의실을 다니며, 국내외 여러 분야의 사람을 만나며, 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무대를 만들어가고 있다.

“국립발레단의 예술감독이 된 이후 아침 시간이 더 중요해졌어요. 똑같이 스트레칭을 해도 예전에는 근육을 깨우는 데 집중했다면, 요즘은 건강한 에너지를 지니기 위해 하죠. 제 기운이 맑아야 발레단 전체에 긍정적인 에너지를 줄 수 있어요. 내면이 완전해야 일이나 관계에서 균열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 리더가 존경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야 조직이 하나로 뭉쳐 발전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어요. 그래서 이전보다 스스로를 세심히 돌보고 있죠.”

‘당신은 카리스마 있는 리더인가요, 부드러운 유형의 리더인가요?’ 따위의 질문을 생각하다 머쓱해졌다. ‘채찍과 당근’ 이런 유치한 표현도 지워버렸다. 군무부터 차근차근 성장한 무용수로서, 지독하게 깨져본 경험이 있는 주역으로서, 또 서툰 행정가로서 그는 묻고, 배우고, 나누며 자신만의 리더십을 키우고 있다. 솔직함과 지치지 않는 열정, 그리고 성장하겠다는 명확한 목표. 때로는 단순한 명제가 해야 할 일을 분명하게 한다. 3년의 임기를 한 차례 연임한 강수진과 2018년을 시작하는 어느 시간을 함께 보냈다.

 


강수진이 국립발레단에 오기까지

강수진과 국립발레단의 인연은 1997년에 처음 맺어졌다. 당시 슈투트가르트 발레에서 수석 무용수로 막 진급한 서른한 살의 강수진은 국립발레단의 초청을 받아 이시다 다네오 안무의 ‘노트르담의 꼽추’를 최경은·김지영과 트리플 캐스트로 올랐다. 그보다 앞선 1994년, 슈투트가르트 발레의 내한 공연이 있었고, 당시 언론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줄리엣으로 출연한 강수진을 금의환향이라는 제목으로 맞이했지만, 고국의 무용수들과 호흡을 맞춘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그리고 2006년 국립발레단의 갈라 공연에 또 한 번 출연했다.

“다른 무용단에 게스트로 설 때는 연습 일정이 촉박하게 진행되기 때문에 사실 정서적인 교류를 할 여유가 없어요. 그래도 한국에 갈 때는 늘 감사한 마음을 느꼈던 것 같아요. 인터뷰를 할 때도, 무대에 올라 관객을 만날 때도 뜨거운 애정이 느껴지니 더 잘하게 되죠. 그 마음들이 언젠가 한국에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조금씩 키웠어요. 30년간의 독일 생활을 뒤로 하고 한국에 가겠다는 결정을 매우 빠르게 할 수 있던 건 이러한 경험이 제 안에 쌓여있었기 때문이에요.”

강수진은 국립발레단의 7대 예술감독 겸 단장이다. 지난 4년간의 성과에 대해 논하기 전 먼저 국립발레단의 발전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국립무용단이라는 이름으로 발레·현대무용·한국무용의 구분 없이 춤을 추기 시작한 게 지난 1962년. 故 임성남이 초대 단장(1962〜1992)을 맡았고, 1973년이 되어서야 국립발레단이라는 명칭으로 분리되었다. 임성남은 ‘지젤’ ‘호두까기 인형’ 등 해외 명작을 국내에 소개하고, ‘춘향의 사랑’ ‘왕자호동’ 등 수십여 편에 달하는 창작 발레를 발표하는 등 한국에 발레 장르를 알리기 위해 30년간 애를 썼다. 임성남의 뒤를 이은 건 로열 발레학교·아메리칸 발레 시어터 스쿨·스위스 취리히 발레 출신의 김혜식(1993〜1995)이다. 오랜 외국 생활을 경험한 김혜식은 기업인들을 모아 후원회를 결성하고 부설 어린이 발레교실을 운영하는 등 국립발레단에 대한 관심을 고취했다. 연습시간을 배로 늘리고, 캐스팅도 실력 위주로 하는 안팎의 변화를 꾀하는 동안 진통이 없던 건 아니지만, 그의 용단은 환영받아 마땅한 것이었다.

김혜식의 뒤를 이은 최태지(1996〜2001) 역시 해외파였다. 교토에서 태어난 재일교포 2세인 최태지는 일본·프랑스·미국에서 공부했고, 1987년에 국립발레단에 정식 입단해 활동한 바 있다. 38세라는 젊은 나이에 예술감독 자리에 오른 그는 도쿄 발레와의 합동 공연을 개최하고, 볼쇼이 발레와 교류하는 등 국제 교류의 물꼬를 텄다. 특히 30년간 볼쇼이 발레의 예술감독으로 활동한 안무 거장 유리 그리고로비치를 초청해 그가 안무한 ‘호두까기 인형’ ‘백조의 호수’ ‘스파르타쿠스’ ‘라바야데르’ 등을 레퍼토리화했다. ‘해설이 있는 발레’ 시리즈를 개최하며 대중화를 이끄는 동안 이원국·김용걸·김지영·김주원 등 스타 무용수들이 탄생했다. 그 사이 국립발레단은 국립극장 전속 단체에서 재단법인 체제로 독립했다.

김긍수(2002〜2004)와 박인자(2005〜2007)가 짧은 임기 동안 미국·러시아·폴란드 등에서 해외 공연을 치르고, 모던 발레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을 때쯤 최태지(2008〜2013)가 다시 부임한 것은 무용계의 큰 이슈였다. 한국 발레의 르네상스를 이뤘다고 평가받던 최태지는 정동극장장 임기가 미처 끝나기 전 국립발레단으로 돌아와 또 한 번 활력을 불어넣었다. 임성남 전 단장이 안무한 ‘왕자호동’을 2시간 길이의 전막 발레로 탄생시켜 국가 브랜드화에 일조했으며, 레퍼토리를 늘리고, 더욱 적극적으로 관객층을 확대했다.

©인플루엔셜

 

 

 

 

 

 

 

 

 

 

 

 

 

강수진이 7대 예술감독으로 부임한 2014년, 그의 나이 마흔여덟이었다. 19세에 슈투트가르트 발레에 입단한 후 30년 가까이 독일에 머물러온 강수진은 그곳에서의 안정적인 미래를 뒤로하고 과감하게 한국행을 택했다. 1년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국립발레단 예술감독직과 현역 무용수의 삶을 병행하느라 아침마다 단원들과 기본 훈련을 함께했던 강수진은 2016년 7월, 슈투트가르트 오페라극장에서 1400명 관객의 함성을 받으며 무용수로서의 삶을 마무리했다. 종신 단원 자격을 유지할 수도 있었지만 “일 년에 단 몇 번이지만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것이 싫고, 또 후배 무용수가 얻을 수도 있는 기회를 뺏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스스로 자리를 내놓았다.

 


춤을 짓는 단체가 가지는 에너지

‘허난설헌-수월경화’(2017)국립발레단에서의 업적 중 무엇보다 먼저 단원 창작의 활성화를 손에 꼽을 수 있다. ‘KNB 무브먼트 시리즈’는 안무가 육성 프로그램으로 2015년 시즌 1에는 12명의 안무가가 9개 작품을, 2016년 시즌 2에는 8명의 안무가가 7개 작품을 선보였다. 2017년에는 이들 작품 중 일부를 라이브 연주로 선보이는 ‘댄스 인투 더 뮤직’을 개최했다. ‘KNB 무브먼트 시리즈’ 시즌 1에 선보였던 솔리스트 강효형의 첫 안무작 ‘요동치다’는 슈투트가르트 발레의 ‘넥스트 제너레이션’ 공연에 초청되고, 무용계 최고 권위의 상인 브누아 드 라 당스 안무 부문 후보에 오르는 등 결실을 거두었다. ‘KNB 무브먼트 시리즈’를 통해 강효형의 재능을 발견한 강수진은 그에게 1시간 길이의 작품을 안무할 기회를 주었고, ‘허난설헌-수월경화’라는 제목의 한국적이면서도 세련된 작품이 탄생해 평단과 대중의 호응을 얻었다.

‘마주하다’(2017)

 

 

 

 

 

 

 

 

 

 

 

 

국립발레단이 창작 발레를 지원하는 게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초대 단장 故 임성남은 1960년대부터 한국적 소재로 수십 편의 작품을 안무하고 기획했다. 당시 ‘러시아에는 러시안 발레가 있고, 아메리카에는 아메리칸 발레가 있는데, 왜 우리에게는 코리안 발레가 없는가’라는 다소 공격적인 질문 아래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졌다. 후대에 새롭게 탄생해 레퍼토리가 된 ‘왕자호동’ 등 성과도 있었지만, 한국의 전통무용에서 비롯된 동작이 서구의 발레 언어와 어색하게 결합하는 시행착오를 겪은 것이 대부분이었다. 1990년대 김혜식 단장 시절에도 ‘젊은 안무가들의 창작발레’라는 제목으로 공연을 열었다.

‘세레나데’(2016) 

 

‘KNN 무브먼트 시리즈’를 기획하며 중요하게 여긴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이 시대의 무용수가 가져야 할 덕목은 ‘개성’이라고 본다. 또한 오랫동안 무대에 서며 ‘팀워크’의 중요성을 배웠다. 이 두 가지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앞선 예술감독들이 기본기를 탄탄하게 만들어놨으니 현대에는 무용수들이 주체적으로 개성을 드러내면서 발전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기 위해 안무가 중심으로 작은 팀이 많이 꾸려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몇몇이 팀을 이루어 직접 안무를 하고, 또 초연하는 무용수가 되어 새로운 근육을 발달시키는 ‘장’을 펼치고자 했고, 그 목적을 어느 정도 달성했다. 자신이 생각한 ‘느낌’을 설명하고, 또 그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무용수·안무가로서 성장하는 데 엄청난 도움이 된다. 사실 ‘KNB 무브먼트 시리즈’를 시작할 때 이만큼 좋은 작품들이 나올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앞으로가 더욱 기대된다.

창작 발레의 의미가 유럽에서는 실험적인 것의 의미를 지닌 반면, 러시아나 중국에서는 민족 혹은 국가 이미지를 이입하는 방식이 우세했다. 국립발레단의 ‘왕자호동’ 역시 민족주의 발레와 맥을 같이 하는 작품이었다. 과거 서양의 양식을 빌려 한국의 것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여러 시행착오가 있었는데. 여기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과거에는 스위스의 초콜릿을 스위스에 가야만 살 수 있었지만, 이제는 한국의 편의점에서도 살 수 있는 시대가 되지 않았나. 세계화가 된 지금, 한국적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어떤 말로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 한국인들만이 가지고 있는 정서, 한국 무용수들만이 표현할 수 있는 분위기라는 게 있다. 이 정체성을 세련된 방식으로 드러내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강효형에게 전막 발레 안무를 맡길 때 한국적이면서도 스토리가 있도록, 지나치게 모던하지 않게 안무할 것을 요구했다고 들었다. 그렇게 역사 속 인물을 소재로 하고, 한국적인 음악을 사용한 ‘허난설헌-수월경화’가 탄생했다. ‘전통적’인 것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허난설헌-수월경화’은 현시점에 필요하다고 생각해 기획한 작품이다. 한국적 소재나 분위기에 대한 강박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본다. 작년 11월에 공연한 크리스티안 슈푸크 안무의 ‘안나 카레니나’도 여러 장르가 혼합되어 있지 않나.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로 창의력을 발휘하는 게 중요하다. 그 안에서 한국에서 나고 자란 안무가가 지닌 특유의 무엇이 자연스럽게 드러날 것이다.

 


슈투트가르트 발레와의 연결 고리

‘말괄량이 길들이기’(2015·2016)강수진이 창작 발레에 적극성을 띠는 것을 두고, 무용계는 슈투트가르트 발레의 안무가 발굴 프로그램을 떠올렸다. 슈투트가르트 발레는 발레닥시옹(하나의 스토리에 의한 극적 발레 형식)을 창시한 장 조르주 노베르(1727~1810)에 의해 설립되었는데, 그의 실험 정신을 기리기 위한 노베르 소사이어티가 후원하는 안무가 발굴 프로그램이 매년 두 번씩 열리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벌써 60년의 역사를 지니며, 그동안 존 노이마이어·윌리엄 포사이스·이르지 킬리안·우베 숄츠 등 세계적인 안무가들이 이곳을 거쳐 갔다.

무용수 시절의 강수진은 여러 안무가의 뮤즈가 되어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그들의 생각을 몸으로 표현해낸 경험이 있다. 이르지 킬리안에게 한국무용의 기본 동작을 보여주었다가 킬리안이 아이디어를 얻어 인간의 진화와 문화유산에 대해 말하는 모던 발레 ‘스테핑 스톤’을 창작한 일도 있었다. 창작자와 무용수가 케미스트리를 이루면 훌륭한 작품이 탄생할 수 있다는 걸 그는 여러 번 체감했다. 마치 브람스와 요아힘처럼, 프로코피예프와 오이스트라흐처럼 말이다!

‘봄의 제전’(2014·2015·2016)

 

 

 

 

 

 

 

 

 

 

강수진은 슈투트가르트 발레와의 네트워크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취임 후 얼마 되지 않아 선보인 ‘교향곡 7번&봄의 제전’은 각각 우베 숄츠와 글렌 테를리 안무작으로, 숄츠는 슈투트가르트 발레에서 무용수로 활동, 테를리는 예술감독을 역임한 바 있다. 2016년에는 강수진에게 스승과도 같은 슈투트가르트 발레의 예술감독 출신 마르시아 아이데를 초청해 그의 안무작 ‘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선보였다. 작년 11월에 선보인 ‘안나 카레니나’는 슈투트가르트 발레에서 초기 안무 경력을 쌓은 크리스티안 슈푸크의 작품이며, 자신이 독일에서 여러 번 공연했던 존 크랭코 안무의 ‘말괄량이 길들이기’ 역시 국립발레단의 레퍼토리로 안착했다.

현 한국 발레단의 시스템을 보면, 슈투트가르트 발레의 레퍼토리만 가져온다는 비판을 할 수만은 없다. 유명 안무가의 작품을 들여오려면 저작권을 소유한 재단이나 무용단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데, 공연을 확정 짓기까지 보통 3년이 걸리며, 저작권 계약 또한 3년 단위로 갱신한다. 안무가에게 신작을 의뢰해 무대를 올리려면 5년 이상이 걸리며, 공연할 때마다 저작권료를 지급해야 한다. 국민일보 장지영 기자는 ‘임기가 3년인 국립발레단의 예술감독이 레퍼토리를 안정적으로 축적하기는 힘든 구조’라고 지적했다. 그나마 강수진 개인이 슈투트가르트 발레와 깊은 연을 맺고 있어 발 빠르게 좋은 작품을 가져오고 있다는 것이다. 슈투트가르트 발레는 저작권의 계약 기간을 강수진이 국립발레단 예술감독으로 재직할 때까지로 한정하고 있다.

‘봄의 제전’(2014·2015·2016)

 

 

 

 

 

 

 

 

 

 

 

슈투트가르트 발레의 레퍼토리만 가져온다는 지적에 대한 생각은?

1986년에 처음 독일에 가서 2년 동안 너무나 힘들었지만, 떠나지 않고 30년이나 활동할 수 있던 이유 중 하나는 세계 여러 나라의 안무가들이 그곳에 모이기 때문이었다. 글렌 테틀리·한스 반 마넨·이르지 킬리안을 비롯해 미국과 유럽, 러시아 등 곳곳에 있는 안무가들이 슈투트가르트를 찾아왔고, 나는 그곳의 무용수로서 완전히 다른 여러 스타일을 경험했다. 신진 안무가로 와서 경험을 쌓아 세계적인 안무가가 되는 과정을 목격하며 배운 것도 많다. 슈투트가르트 발레의 레퍼토리만 가져온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 자체로 다양성을 추구하고 있으니 큰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슈투트가르트 발레의 무용수 시절, 마르시아 아이데와 리드 앤더슨, 두 명의 예술감독을 경험했다. 예술감독으로서 그들로부터 받은 영향은 무엇인가?

마르시아 아이데 선생님은 내가 국립발레단 예술감독으로 부임할 때 세 가지 역량이 필수라고 조언해주었다. 단원들이 전적으로 신뢰하게 만드는 카리스마, 발레단에 뚜렷한 색을 입히기 위한 장기적인 투자, 그리고 단원 한 명 한 명에 대한 깊은 이해다. 그 말씀을 깊이 새기고 있다. 2016년에 ‘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지도하기 위해 한국에 방문했을 때 그는 단원들이 한번 가르쳐준 것을 모두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낸다며 국립발레단이라면 ‘개성’을 만드는 데 10년도 채 걸리지 않을 거라고 격려했다. 리드 앤더슨은 1997년 내가 슈투트가르트 발레에서 처음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맡아 코믹한 연기에 대한 걱정을 품고 있을 당시 나에게 ‘믿음’을 보여준 감독님이다. 그 믿음 덕에 나도 모르는 내 안의 유머러스함을 발견했고, 새로운 연기를 펼칠 수 있었다. 그가 단원들에게 보여준 신뢰는 내가 우리 단원들에게 품어야 하는 마음과 같다. 이 외에 간접적으로나마 운영 시스템에 대한 여러 가지 것들을 슈투트가르트 발레에서 보고 배웠다.

슈투트가르트 발레는 안무가 존 크랭코의 철학이 깃든 곳이고, 예술감독 리드 앤더슨은 그 철학을 완전히 신봉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크랭코는 고전주의에 확고히 기반을 둔 레퍼토리를 현대적이고, 발전적인 형태로 만들어 스토리텔링의 기능을 강화한 안무가다. 고전 발레의 언어를 순수한 움직임을 위해서가 아닌, 극적 표현을 위해 사용할 수 있도록 이끈 인물인데, 강 단장 역시 이러한 정신을 물려받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표현의 방법론에 있어 국립발레단 단원들에게 강조하는 것은 무엇인가?

존 크랭코가 슈투트가르트 발레에 남기고 간 정신,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수많은 안무가와 무용수들, 그 외에 세계 여러 나라에서 만난 예술가들로부터 배운 것이 내 안에 차곡차곡 쌓여 있을 것이다. 발레야말로 고전의 본질에 시대의 색깔을 입혀가는 대표적인 장르다. 클래식은 불멸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지만, 옛것만 고집하면 현대인들은 지루해하기 마련이다. 클래식에 이 시대의 감성을 담아 새롭게 탄생시켜야만 오래도록 이어질 수 있다. 살아 숨 쉬는 예술, 이것이 곧 존 크랭코의 정신이기도 하다. 수없이 본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도 지금 이 시대에, 또 이 순간에 무대 위에 서 있는 무용수의 진심 어린 감정으로 표현되면 새롭게 보인다. 무용수들이 표현하고자 하는 감정을 스스로 발견하고,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끄집어내는 게 내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본다. 또한 이 시대에 품는 ‘진심’이 후대에 클래식으로 남을 거라는 믿음으로 꾸준히 창작을 지원하려고 한다.

 


프리마 발레리나의 마지막 순간, 그 이후

강수진은 국립발레단에 재직 중이던 2015년 11월, 한국에서 은퇴 공연을 열었고, 2016년 7월, 수없이 올랐던 슈투트가르트 오페라극장에서 마지막 무대를 치렀다. 장광열 비평가는 한국 공연에 대해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연기력, 주인공의 심리를 담아내는 섬세한 감정과 춤, 그리고 파트너십까지 일품이었다. 세 차례의 파드되에서 보여준 강수진과 제이슨 라일리의 앙상블과 감정의 교감은 춤이 얼마나 사람의 감성을 깊은 곳까지 터치할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고 평했다.(본지 2015년 12월호) 강수진은 독일에서의 마지막 공연에 대해 ‘그야말로 완벽했다. 극장장부터 경비아저씨까지, 맨 앞줄 관객부터 맨 뒷줄 관객까지, 모든 단원과 직원이 한마음으로 똘똘 뭉친 것 같았다. 그 엄청난 에너지 덕분에 작은 흐트러짐 없이 머릿속에 그려둔 각본 그대로 진행할 수 있었다’고 에세이 ‘한 걸음을 걸어도 나답게’(인플루엔셜, 2017년 발행)에 적었다. 1400명의 관객이 보여준 하트가 그려진 ‘고마워요, 수진’ 카드 이벤트와 무대, 객석에 쏟아진 꽃과 풍선. 한 장의 사진만으로도 감동스런 현장이 전해졌다.

슈투트가르트 오페라극장에서 열린 은퇴 공연 ‘오네긴’의 커튼콜 ©Stuttgart Ballet

 

 

 

 

 

 

 

 

 

 

 

 

 

무용수로서 은퇴 후 몸의 변화가 있나?

크게 달라진 건 없는 것 같다. 살이 좀 찔 거라 예상했는데 그대로다.

일상은 어떻게 달라졌나?

마음가짐이 삶 자체를 바꾸더라. 아침에 스트레칭을 하는 건 똑같은데, 예전에는 반드시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다면, 요즘은 나의 건강을 위해 하니 부담이 없다. 그 태도만으로 어마어마한 정신적 여유가 생겼다. 음식도 예전에는 연습량을 늘리기 위해 높은 칼로리를 섭취하고, 공연이 끝난 후에도 소모한 것을 채우기 위해 많이 먹었는데, 이제는 그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인지 적당히 힘이 날 만큼만 먹는다.

한 발레단의 소속 무용수로서 은퇴하고도 게스트로 무대에 서는 무용수들이 있는데, 무대에 설 계획은 전혀 없나?

없다. 50세까지 원 없이 춤을 췄기 때문에 미련이 없다. 실수도 해보고, 넘어져도 보고, 반대로 엄청난 무대에서 훌륭한 예술가들과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다시 무대에 서기 위해서는 이러한 과정을 또 겪어야 하고, 그만큼 많은 시간과 집중력을 쏟아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집에서는 가끔씩 춤을 춘다.(웃음)

얼마 전 국립발레단 수석 무용수 김지영이 국립현대무용단 ‘댄서 하우스’에 출연해 은퇴 시점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하는 걸 들었다. 국립발레단은 정년이 따로 없는데(국립발레단은 무용수가 자진해서 은퇴를 결심하면 일정 기간 급여의 일부를 지급하면서 직업 전환 준비를 돕는다). 파리 오페라 발레처럼 개인차 없이 42세로 정해져 있는 단체도 있고, 무용단마다 각각 다르다. 이에 대한 생각은?

국립발레단 예술감독으로 부임했을 때 무용수들의 은퇴시기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56년의 역사가 흐르는 동안 국립발레단의 여러 단장도 고민했을 것이다. 나의 경우, 스스로 생각하기에 무대에서 최고의 기량을 발휘했을 때는 40대였다. 10대에는 그저 발레가 좋았고, 20대에는 무조건 열심히 했다. 30대가 돼서야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정확히 알고 췄다. 그리고 40대가 됐을 때 비로소 무대를 즐길 수 있었다. 자유롭게 배역에 빠져들 수 있었고, 폭넓은 감정 표현을 할 수 있었다. 더 오래 춤출 수도 있었지만, 나는 나와 무대, 그리고 관객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50세에 무대에서 내려왔다. 물론 나와 달리 영국 발레리나 마고 폰테인은 60세에도 공연을 했고, 쿠바의 알리시아 알론소는 무려 90세에도 춤을 췄다! 개인마다 상황과 능력이 다르니, 나이를 못 박아 두는 것에는 무리가 있을 듯하다. 숫자보다는 얼마만큼 스스로 컨트롤하고, 관객 앞에서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지가 더욱 중요한 것 같다.

 


다시, 봄의 설렘처럼

단장 취임 이후 두 달 정도 지났을 때, ‘백조의 호수’ 공연을 지켜보던 강수진은 관객이 빠져나가자 무대에 올라 마이크를 들었다. 악마 로트바르트, 왕자 지그프리트라는 서로 다른 역할을 하룻밤 사이 훌륭하게 소화해낸 솔리스트 이재우를 수석 무용수로 승급시키겠다는 깜짝 발표를 한 것. 그랑솔리스트를 거치지 않고 바로 수석 무용수로 승급한 파격 인사로, 발레단 내 아무도 몰랐던 일이었다.

강수진은 “슈투트가르트 발레에서 그림자 같은 역할을 오래 해서 무용수들의 마음을 잘 안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더더욱 실력만으로 평가한다. 역할에 잘 어울릴 만한 기질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되면 과감하게 기회를 준다. 기회를 잡는 건 무용수 몫이다.

“기회는 사람이 아닌 실력에 준다는 것을 신념으로 삼고 있다. 무용수들이 빛날 수 있는 작품, 주역이든 군무든 모두 함께 빛날 수 있는 작품이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주역이 아무리 잘해도 군무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완성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만큼 무대 위 모든 무용수가 중요하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과거 주역 커플만 주목받던 흐름은 조연을 포함하는 무용수 전체에 대한 관심으로 확대됐다. 강수진은 단장실에 혼자 앉아 있는 것보다 직원들과 함께 사무실에 앉아 있는 것을 더 좋아한다.

 


‘처음에 이곳에 왔을 때 내가 직원들에게 무언가를 물어보면, 다들 바짝 언 표정으로 대답을 하곤 했다. 내가 잘 몰라서 물어보는 것인데 아마 잘못을 되묻는 것으로 오해한 것 같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나는 여전히 많은 것을 물어보며 일한다. 그리고 누구든 불편해하지 않고 기꺼이 알려주고 함께 이해해나간다. 나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지만 그들의 도움으로 한 단계씩 성장하고 있음을 느낀다.’

-에세이 ‘한 걸음을 걸어도 나답게’ 중에서


발레단의 몇몇 예술감독은 예술감독직과 단장직을 분리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하기도 하더라. 행정적인 부분과 예술적인 부분을 나누어 담당할 필요가 있다는 것인데, 직접 해보니 어떤가?

일단은 주어진 일을 모두 잘 해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경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일이라 두려움이 앞선 건 사실이다. 출근 첫날 책상에 앉아 서류를 들여다보고 있으니 깜깜하긴 하더라. 수익을 계산하는 일이나, 또 단체의 장으로서 여러 분야의 사람을 만나는 일… 생각보다 재미있다! 단원들, 직원들이 서로 도와가며 모두 함께 성장하고 있다. 예술적인 영역과 실질적인 이익을 위한 일 모두 잘 해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어느 한 부분도 흐트러지지 않도록 균형을 맞추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다. 경영·기획·홍보, 무용수·지도위원·스태프 등 어느 한쪽이라도 균열이 생기면 언젠가는 전체가 무너질 것이다. 나 스스로 균형을 잘 잡고, 다 함께 앞으로 나아가려 노력하고 있다.

국립발레단에서 꿈꾸는 미래는?

음… 발레단의 전 직원이 봄의 설렘을 잃지 않으면 좋겠다. 힘들 때도 있고, 어려울 때도 있지만, 처음 국립발레단에 들어왔을 때 가졌던 마음, 무용수뿐 아니라 행정직원까지 각자 품었던 긴장감과 바람이 있을 것이다. 그 순수한 마음을 잊지 않고, 각자의 자리에서 조금씩 성장해준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다. 말은 쉽지만 실제로 행하기에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끊임없이 자기 자신과 싸워야 한다. 사랑을 시작할 때의 마음으로 발레단에서 일할 수 있기를 정말로 바란다.

개인 강수진이 바라는 것은?

그게 전부다. 사랑받는 만큼 우리 발레단이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글 김호경 객원기자
진행 이미라 기자
사진 김용호
공연사진 국립발레단
의상 에스카다·라 실루엣 드 유제니
메이크업 황유정(보보리스네트웍)
헤어 은순영(보보리스네트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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