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김규연, 넓이와 깊이를 향한 도전

INTERVIEW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8년 4월 1일 12:00 오전

강석우의 온 에어 콘서트와 류재준의 피아노 협주곡 협연 무대를 통해 대중과 마니아층의 간극을 좁혀가고 있는 그녀의 새로운 발걸음

 

새로운 것은 다양함 속에서 꽃핀다고 했던가. 피아니스트 김규연의 근래 무대들은 고전과 현대, 대중과 마니아층을 아우르는 넓음과 깊음 속에서 새로운 길들을 모색하는 탐구자처럼 진지하고 대범했다. 뉴욕 맨하튼 음대에서 솔로몬 미코프스카를 사사하며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그녀에게 얼마전 있었던 한국에서의 무대들은 또 다른 도전이었다.

롯데문화재단이 낮 시간을 이용해 다양한 기획으로 일반 대중을 위한 L콘서트 중 하나인 강석우의 온 에어 콘서트는 요즘 가장 핫한 공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인기가 높다. 배우 강석우는 라디오 음악방송으로 인기를 얻어 온 터라 친근하면서도 따뜻한 그의 진행으로 듣는 클래식 음악 공연의 매력은 한층 기대를 모으고 있다. 2월 23일 김규연은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과 23번 2악장을 연주하며 대중과 편안한 호흡을 함께 나눴다. 봄날의 꽃향기와 함께 아름다운 선율이 무대를 감쌌던 이날 그녀는 안정된 테크닉과 절제된 피아니즘으로 섬세한 선율을 선사했다.

“낮 공연이라 저녁 공연과는 다른 분위기가 있더라고요. 중년 여성을 중심으로 가족들도 많이 온 것 같았는데 사회를 보는 강석우씨의 멘트를 특히 재미있어 하더군요. 친근한 이미지의 배우가 클래식 음악을 이어주는 매개체 역할을 해 주는 것 같아 편안하게 연주할 수 있었어요. 저도 대중과 가까워 질 수 있는 분위기의 무대에서 즐겁게 연주할 수있어 무척 의미 있었습니다.”

대중과 호흡할 수 있는 편안한 느낌의 무대와는 다르게 작곡가 류재준의 피아노 협주곡을 세계 초연한 폴란드 독립 100주년 기념 충북도립교향악단 정기연주회는 클래식 음악에서도 특히 현대 음악에 조예가 깊은 청중들의 관심이 높았던 무대였다. 2월 27일 청주예술의전당 대공연장에서 펼쳐진 공연에서는 펜데레츠키의 교향곡 5번과 류재준의 오페라 서곡 ‘장미의 이름’, 그리고 피아노 협주곡이 연주되었다.

3악장으로 구성된 류재준의 피아노 협주곡은 각 악장별로 특징적인 작곡가의 세계가 구현되어 있는 작품이다. 이날 연주를 들은 음악 칼럼니스트 박제성은 ‘피아니스트 김규연이 연주한 류재준의 피아노 협주곡 무대는 세계초연으로서 작곡가의 성숙한 음악세계가 드러난 중요한 순간이었다며 5분 정도의 길지 않은 협주곡에서 작곡가는 미니멀적이면서도 비르투오소적인 피아노의 운용을 통해 음향이 발전해 나아가는 감각적이면서도 원초적인 에너지를 선보이는 데에 성공을 거두었다’고 평했다.

그는 특히 ‘장미의 기사’ 서곡 때보다 한결 고급스럽게 발전된 오케스트레이션에 의한 두터우면서도 유려한 음향과 명확한 서사구조에 입각한 피아노와 오케스트라의 긴밀한 대화, 그리고 동형반복과 분산음형에 따른 앙상블의 팽창과 수축에 환호하지 않을 수 없었다며 ‘이 가운데 김규연의 강력한 터치와 기민한 패시지 처리가 돋보인 피아노의 주도적인 역할이 돋보였다’고 말했다. 또한 ‘목관과 현악, 금관이 만들어내는 음악적 스토리와 대위법적인 균형이 자아내는 흥미진진한 연결, 라벨과 프로코피예프를 오가는 듯한 특징적인 음향과 스트라빈스키를 능가하는 강렬한 복리듬 및 버르톡을 연상시키는 듯한 아치형 구조가 조화를 이루는 과정, 그리고 그 결과로서의 장대한 클라이맥스와 왈츠풍의 탐미적인 결말 등이 몹시 감동적이었다’고 덧붙였다.

김규연 또한 이날 연주는 음악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류재준 작곡가의 피아노 협주곡을 초연한 것이 무척 뜻깊었다며 류재준 작곡가의 곡에는 생동감 넘치고 열정적으로 폭발하는 순간 조차도 그 어떤 서정적인 향기가 잔재한다고 말했다.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할 때 다양한 색깔과 음들의 역동성을 통해 피아니스트와 오케스트라가 음향의 다양성을 함께 빚어나가는 순간들이 짜릿했어요. 2악장의 멜리스마적인 요소들과 오스티나토는 서정적인 면을 부각시킴과 동시에 한없이 내면으로 침잠하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냈죠. 양승돈 선생님과 충북도립교향악단이 훌륭하게 연주해 주어서 난해한 곡을 즐기면서 연주할 수 있었습니다.”

 


클래시컬 뮤지션 네트워크 예술감독으로서

 

이렇게 성격이 전혀 다른 두 무대에서 그녀가 느꼈던 건 ‘음악’이란 것이 여러 사람에게 각각 의미가 다르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요즘 그녀는 다양한 의미를 느낄 수 있는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고 있다. 최근 김규연은 클래시컬 뮤지션 네트워크(Classical Musicians Network)의 예술감독이 되어 활동하고 있다. 클래시컬 뮤지션 네크워크는 뮤지션들과 10대의 영 뮤지션들이 서로 음악적 교류를 비롯한 다양한 삶의 멘토링을 주고 받는 플랫폼으로 영 뮤지션들과 선배 뮤지션들이 다양한 영감과 경험을 교류하며 진정한 음악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시너지를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클래시컬 뮤지션 네트워크가 추구하는 또 다른 중요한 컨셉 중 하나는 젊은 뮤지션들이 자유로운 사고를 가지고 앞으로 음악 뿐 아니라 다양한 삶의 도전들을 즐기고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잠재력을 넓혀주는 것이에요. 올해는 뉴욕에서 뮤지션과 영 뮤지션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한 연주회, 맨토십 토크, 여름에는 소규모의 서머 유스 뮤직 페스티벌(Summer Youth Music Festival)을 준비하고 있는데 점차적으로 뮤지션과 영 뮤지션의 네트워크를 보다 확장시킬 예정입니다.”

그녀는 젊은 연주자들을 보면서 가끔 ‘지금 내가 알았던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하는 생각에 잠긴다고 한다.

“지금의 깨달음은 분명 몰랐던 그 순간들을 헤쳐 나오면서 단단해진 근육을 통해 얻어진 결과물이겠죠. 그들 역시 그 경험들을 통해 자신만의 깨달음을 얻었을 테고요. 하지만 돌이켜 보면 지금 세대의 연주자들 역시 자신의 사고를 유연하게 만들어주고, 삶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꿔주었던 중요한 어느 순간이 있었을 거예요. 어린 뮤지션들에게 그 소중한 순간을 우리가 만들어 줄 수 있다면 무척 의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녀는 예술감독 역할을 통해 음악이 우리 삶을 구성하는 모든 것들과 연결되어 있음을, 그리고 교육과 교류를 통해 그 연결의 고리들을 하나씩 이어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좋은 것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한데, 좋은 것을 알기 위해서는 역시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클래식 음악의 역할이 더 크다는 것도 새삼 더 깨닫게 되고요.”

다양한 음악 플랫폼을 통해 넓이과 깊이를 조절해 가고 있는 그녀. 오는 4월에는 미국 마이애미에서 뉴월드 심포니와 라벨 왼손을 의한 협주곡과 G장조 협주곡을 연주하고 5월에는 링컨센터에서 NYCP와 챔버뮤직 연주를 앞두고 있다. 미국 여류 작곡가를 조명하는 음악회로 레베카 클락(Rebecca Clark)과 에이미 비치(Amy Beach)의 작품을 연주할 예정이다. 6월 14일 예술의전당 11시 콘서트에서는 차이콥스키 협주곡 협연 무대로도 만날 수 있다.

“예전에는 제 연주, 제 인생에 집중하느라 음악인의 한 사람으로서의 역할이나 의미에 대해 생각할 여유가 없었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후배들도 많이 생기고 동료, 선배들과의 음악적인 교류들도 넓어진 지금, 연주자로서의 제 역할, 사회에서의 클래식 음악의 의미 같은 것들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결국 음악적인 경험이 더 많아지는 것이 중요할 것 같아요. 음악을 연결할 수 있는 다양한 플랫폼에 대한 이해와 관심도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연주를 하면서도 여행을 많이 즐기고 다른 세계의 풍경과 사람들에게서 영감을 얻었던 김규연은 인터뷰를 마치고 떠나고 싶은 여행지에 대해 이야기 했다.

“여행하면서 봤던 풍경들, 그때의 느낌, 모두 음악 속에 있는 기억들이에요. 그렇게 여백이 있던 시간 속에서 전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 속에 늘 있었던 건 결국 사람이었어요. 낯선 풍경과 자연 속에서 만난 사람들은 내가 무엇인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걸 느끼게 해 주었죠. 저는 음악을 하는 사람이니까 이제 그동안 음악을 통해 느낀 경험들로 그 연결 고리를 이어가야 할 것 같아요. 누군가에게 무엇이 될 수 있는 삶이라면 분명 연주도 그 삶의 향기를 닮아갈 테니까요.”

 

 

글 국지연 기자 사진 심규태(HA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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