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첼로에서 듣는 드넓은 음악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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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8년 4월 1일 12:00 오전

에마뉘엘 베르트랑 & 루트비히 크반트, 두 남녀가 들려주는 첼로의 목소리

얼마 전 바르셀로나의 음악박물관에 방문하여 여러 진귀한 악기들을 직접 볼 기회가 있었다. 다양한 서양 악기뿐만 아니라 동양의 여러 민속 악기를 함께 배치하여 관련성을 보여주었으며, 오디오 장치도 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게다가 한국음악 특별전이 널찍하게 열리고 있어서 국악을 살펴보는 뜻밖의 기회도 가졌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곳은 다름 아닌 체험 공간이었다. 여기에서는 첼로와 하프·풀무식 소형 오르간·전기 기타, 그리고 한국음악 특별전에 맞춰 장구와 편경·편종을 두어 누구나 직접 연주할 수 있었다. 이 중에서 가장 개인적인 감흥을 준 것은 첼로였다. 20년 전에 나름 열심히 했던 첼로를 이렇게 먼 곳에서 다시 잡아볼 기회가 있으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이때의 기억을 반추하며, 수많은 첼로 음반 중에서 다양한 곡이 수록된 두 무반주 앨범을 골라보았다.

 

첼로가 말하는 것

프랑스의 첼리스트 에마뉘엘 베르트랑은 1994년 로스트로포비치 콩쿠르에서 우승하고, 1996년에 국제 모리스 라벨 아카데미상을 받았다. 그녀는 정상의 첼리스트로서 세계 여러 무대에서 연주하고 있으며, 낭만에서 현대에 이르는 다양한 작품들을 녹음해왔다. 그녀의 음반들을 보면 무반주 첼로를 위한 음반들은 20세기에 집중되어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 앨범은 그중 하나로, 특히 전통적인 서정성을 가진 작품들로 구성됐다.

첫 수록곡은 영국 작곡가 벤자민 브리튼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3번이다. 로스트로포비치를 위해 작곡된 브리튼의 세 개의 첼로 모음곡은 20세기 무반주 첼로 문헌으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품으로 자주 연주되고 있다. 특히 3번은 로스트로포비치가 녹음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연주자들에게 집중적인 도전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래서 이 곡만큼은 개성적인 연주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틸만 비크(Ambitus)는 차분하고 여유롭다면, 킴 바크 디니첸(Kontrapunkt)은 여기에 종교적인 경건함을, 그리고 트룰스 뫼르크(Virgin)는 남성적인 무게감을 더한다. 반면에 팀 휴(Naxos)는 저돌적인 템포와 극단적인 표현으로 몰아붙인다. 페터르 비스펠베이(Channel)는 감정에 호소하는 낭만적인 접근을 보여주고 있으며, 매트 하이모비츠(DG)는 현대적인 감각으로 통일성을 강조한다. 오펠리 가이야르(Ambroisie)는 절제되고 정갈한 연주를 들려준다면, 드니즈 조키치(ATMA)는 보다 풍부한 음향과 다양한 음색으로 화려하게 치장했다.

첼리스트 에마뉘엘 베르트랑

 

 

 

 

 

 

 

 

 

 

 

베르트랑은 이들과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약간 빠르게 연주하면서도 현대적이기보다는 구조적인 측면을 부각한다는 점에서 고전적인 시각으로 바라본다. 주제가 맨 뒤에 나오는 범상치 않은 역변주 구성이 맘에 들지 않았던 것일까. 베르트랑은 첫 서주를 주제로 두고 변주해간다고 생각될 정도로 ‘앞으로’ 나아간다.

두 번째 곡은 스페인 작곡가 가스파르 카사도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다. 전주곡, 사라반드, 마지막 춤 등 옛 춤 모음곡을 모델로 했음을 언뜻 비추는 작품이다. 일반적으로 기교에서 나오는 독특함에 초점을 맞추는 데 반해, 베르트랑은 진지한 접근으로 내면의 깊은 심상에 다가가려고 노력한다. 섬세한 표현으로 감성적 파고를 일으키는 대만계 첼리스트 양원신의 연주(Avie)와는 또 다른, 베르트랑만의 도도한 매력을 갖고 있다.

세 번째 곡은 프랑스 작곡가 파스칼 아모옐의 ‘배회’이다. 아모옐은 베르트랑과 함께 자주 활동하는 피아니스트로서, 그와 함께 여러 음반도 출시했다. 저음의 단선율로 시작하여 음습함과 어두움, 그리고 외로움 등의 인상을 준다. 중간 부분에서 민속춤곡 풍의 리드미컬한 움직임을 들려주지만 어두운 분위기에서 벗어나지는 않는다. 마지막 부분에는 페테리스 바스크스의 무반주 첼로곡 ‘책’과 같이 연주자가 부르는 보칼리제가 들려오면 자신도 모르게 귀를 기울이게 된다.

마지막 곡은 헝가리 작곡가 졸탄 코다이의 무반주 첼로 소나타다(음반에는 ‘모음곡’이라고 잘못 표기되어 있다). 여러 명반과 함께 수많은 녹음이 존재하는 무반주 첼로의 절대적인 레퍼토리다. 사실 이러한 작품일수록 연주자는 기존의 해석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수 있는데, 오히려 베르트랑은 자신의 스타일을 드러내는 기회로 삼는다. 베르트랑은 카사도의 곡에서도 보여주었던 내면의 여행을 이어간다. 건조한 음색은 하이모비츠(DG)를 연상시키지만 보다 낭만적인 어휘를 사용하고 있으며, 절제하는 양원신(Avie)에 비해 안정감이 있다. 이러한 점은 나탈리 클라인(Hyperion)과 상통하는 점이 있다. 이러한 특징들은 베르트랑이 무반주 작품에서 임하는 구도자적인 마음가짐에서 온다. 모든 것을 초탈한 듯한 그녀의 첼로가 ‘말하는(parle)’ 것에 귀를 기울여보자. 함께 들어있는 DVD에는 첼로뿐만 아니라 그녀가 말하는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헝가리 밖의 헝가리인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시절 베를린 필하모닉의 솔로 첼리스트였던 아르투르 트뢰스터와 자라 넬소바, 모리스 장드롱, 보리스 페르가멘치코프, 지크프리트 팔름. 나열만으로도 거대한 무게감이 느껴지는 이들은 독일의 첼리스트 루트비히 크반트의 스승들이다. 1990년 뮌헨 ARD 콩쿠르에서 우승한 그는 현재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제1수석 첼리스트이다.

음반으로도 접할 기회가 많지 않은 그는 이 독주 음반에 20세기의 여러 작품을 수록했다. 특히 전설적인 현대음악 첼리스트인 팔름으로부터 전수받은 현대적인 감각이 이 음반을 더욱 신뢰하게 한다. 수록곡 전체를 보면 ‘헝가리의 20세기 첼로 음악’이라는 부제가 어울릴 듯하다. 졸탄 코다이로부터 시작하여 미클로슈 로자를 거쳐 리게티와 쿠르탁에 이르는 20세기 헝가리인의 유산을 훑는다. 그런데 코다이를 제외하고 모두 헝가리에서 살지 않았다는 특이한 공통점이 있다. 로자는 미국에서, 리게티는 독일에서 대부분의 음악 활동을 했으며, 쿠르탁도 헝가리의 국경이 열리면서 네덜란드, 독일 등을 거쳐 현재 프랑스에서 살고 있다.

첫 곡인 코다이의 ‘무반주 첼로 소나타’는 20세기 헝가리의 첼로 음악을 논하는 데 빠질 수 없는 곡이다. 크반트도 이 유명한 작품에서 자신의 스타일을 드러낸다. 급하지 않고 깊은 곳에서 끌어 올리는 첫 화음에서부터 그가 이 곡을 바라보는 시각이 나타난다. 그의 연주는 매우 여유 있어 보이지만 실재 연주시간은 빠른 편에 속한다! 마치 마법에 걸려든 것 같다. 하이모비츠(DG)나 양원신(Avie)에 비해 화성적인 효과에 신경을 쓰고 있는데, 이러한 점에서 클라인(Hyperion)과 맥락을 같이 한다. 이러한 특징으로 풍부한 음향과 두터운 저음이 큰 인상을 남기며, 3악장은 과감한 상승을 꾀하면서 귀를 즐겁게 한다.

리게티의 첼로 독주를 위한 소나타 역시 흥미롭다. 이 작품은 현대성과 낭만성, 그리고 민속성의 균형을 맞추어야 하는데, 하이모비츠(DG)와 비스펠베이의 첫 녹음(Channel)이 현대성에, 비스펠베이의 두 번째 녹음(Onyx)이 낭만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면, 크반트의 연주는 낭만성과 민속성을 아우르는 지점을 택했다. 그 결과, 리게티가 이 곡의 1악장을 작곡했던 동기, 즉 대학에서 첼로를 공부했던 한 여학생에 대한 애틋한 짝사랑의 감정이 더욱 감각적으로 다가온다. 매우 빠른 2악장에서는 코다이의 곡에서도 들려주었던, 음정 하나하나를 지르밟는 여유가 발휘되며 멜로디의 낭만성과 화성적인 현대성을 균형 있게 전달한다.

쿠르탁의 ‘다섯 개의 작품’은 현대음악 애호가라면 가장 집중하게 될 작품이다. 현대적이면서도 명상적인 음향 공간에서 희미한 별빛과 같이 운동하는 음정들은 쿠르탁의 정신세계와 맞닿아 있다. 이 곡에는 헝가리의 민속 음악에서 사용하는 음계를 기반으로 하는 쿠르탁의 특징이 표면에 드러나 있는데, 크반트의 연주는 저음의 공명을 활용하여 이를 더욱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지극히 고요한 ‘그림자’ 악장에서 더욱 집중하여 귀를 기울이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마지막 곡은 미클로슈 로자(음반의 Rósza는 Rózsa의 오기다)의 ‘첼로 독주를 위한 광시곡 풍의 토카타’이다. 로자는 영화 ‘쿼바디스’ ‘벤허’ 등의 음악을 작곡한 영화음악의 거장으로 큰 명성을 떨쳤다. 그가 남긴 적지 않은 클래식 작품들은 버르토크의 영향을 강하게 드러내는 경우가 많은데, 이 작품은 리게티의 소나타 2악장 ‘광시곡’과 유사해 보인다. 크반트의 연주가 이를 의도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호흡과 아티큘레이션을 유사하게 적용하면서 앞 트랙의 리게티가 연상되도록 유도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70세가 넘은 영화음악 거장의 클래식에 대한 각별한 애정에 공감하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다.


이달의 추천 음반

❶ 에마뉘엘 베르트랑 ‘말하는 첼로(Le violoncelle parle)’

에마뉘엘 베르트랑(첼로)
HMC902078 (CD+DVD: NTSC, PCM Stereo, 48분)

 

❷ 루트비히 크반트 ‘솔로’

루트비히 크반트(첼로)/마르쿠스 베커(피아노)
CAMPANELLA Musica C130144


글 송주호(음악 칼럼니스트)
기고와 해설, 강의 등 여러 활동으로 우리를 위한 음악으로서의 클래식을 나누고 있다. 화음쳄버오케스트라 자문위원, 현대음악앙상블 ‘소리’ 프로그래머로서 흥미로운 음악회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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